‘시민과학적 담론’으로서의 과학철학과 STS
1. 여는 말 : ‘논리경험주의 운동’의 시민과학적 성격
나치가 독일의 정치를 잠식하기 전, 독일의 한 방송국에서 대중들을 위한 교양과학 라디오 방송 강의를 했던 논리경험주의자가 있었다. 이 강의에서는 원자 수준의 미시세계로부터 우주라는 거시세계까지 20세기의 과학이 보여주는 세계상을 교양 있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대중들로부터 제법 인기를 얻은 이 강의의 강연록은 강의가 끝난 이후 종합·편집되어 『원자와 우주(Atom and Cosmos)』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적 학자였던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 1891-1953)임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라이헨바흐는 김나지움 재학 시절과 대학 재학 시절에 자유주의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헨바흐는 청년들이 옛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면서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옹호하였으며, 지성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상호 간의 활발한 토론을 통해 각자의 주체적인 입장을 수립해야 한다고 보았다. 일반적으로 라이헨바흐는 훗날 칸트 철학을 비판하고 기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대학 재학 시절 다른 학생들과의 세미나를 통해 칸트를 비롯한 전통적인 철학 고전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헤겔 이후의 관념주의 철학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철학이 다시 당대의 자연과학 분과들과 긴밀한 연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논리경험주의를 옹호하는 학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그런데 자연철학은 특정한 과학 분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 일반에 적용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특징을 보인다. 철학은 그 일반성과 보편성 때문에 건전한 이성 능력을 가진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접근 가능하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자명한 원리들로부터 출발하고자 했고, 칸트 역시 ‘계몽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이성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강조했듯, 철학은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개방적 학문이라는 이념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렇듯 논리경험주의 운동은 그 초기에 특정한 원리들이 중심이 되는 하나의 철학 사조였다기보다는, 20세기 초에 만연했던 과학의 전문화 경향과 전통 철학의 관념화 경향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다시 한 번 철학과 과학이 결합하여 교양 있는 시민들이 이해가능한 합리적 세계상을 구축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논리경험주의 운동이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이 운동에는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 1891-1970)이나 한스 라이헨바흐뿐만 아니라 물리학 박사 출신의 철학자 모리츠 슐릭(Moritz Schlick, 1882-1936), 수학자 한스 한(Hans Hahn, 1879-1934), 물리학자 필립 프랑크(Philipp Frank, 1884-1966), 수학자 쿠르트 괴델(Kurt Goedel, 1906-1978), 사회학자 오토 노이라트(Otto Neurath, 1882-1945) 등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초기 과학기술학의 시민과학적 면모
과학사와 기술사는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과학사와 기술사를 포괄하는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을 역사적, 철학적, 사회학적, 문화적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문학적 전통은 근대 유럽의 정치적 변동 및 계몽주의 운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들의 평등권 개념이 확립되고 대중 교육과 평등 교육의 이념이 확대되면서, 프랑스의 백과전서학파는 당시까지 결집된 다양한 지적 산물들을 종합하여 이를 일반 시민들에게 널리 보급하고자 노력한 바 있다.
콩트(Auguste Comte, 1798-1859)의 사회학, 역사학, 실증주의는 근대적인 산물이며 근대의 경험과학이 이룬 성공과 관련된다. 지식을 신성화하고 특권화하는 중세의 유산에서 벗어나, 근대의 학문 개념은 누구나 직접 경험하고 검증할 수 있는 실증적인 지식을 수용한다는 이념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객관적인 역사학과 사회학은 이러한 이념에 근거하여 발전하였으며, 과학기술학 역시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과학기술학은 인간의 과학적 실천과 기술적 실천이 어떤 양상을 보이며 전개되었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서양에서는 19세기 이전까지 이와 같은 과학기술학이 특정한 분과를 형성하지는 않은 채 교양 저술가 또는 일반 자연과학자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수학이나 물리학, 화학 등과 같은 개별 과학의 역사에 대해서는 주로 해당 분야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스스로 연구하였으며, 기술의 역사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작업에 임하던 일선의 기술자나 기술에 관심이 있는 인문학자가 연구하였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수준의 탐구가 보여주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은 연구가 ‘전문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학, 의학, 신학 등과 같은 학문들은 적어도 중세 이후로 전문화되어 있었던 반면, 수학과 천문학을 제외한 개별 과학들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좀 더 광범위한 의미의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 영역에 함께 소속되어 있었다. 개별 과학들의 지위가 이러했다면, 과학에 ‘대한’ 학문인 과학기술학이 19세기 중엽까지도 전문화되지 않았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과학기술학적 연구는 실질적인 학문적인 목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좀 더 일반적이고 순수한 지성적 호기심과 탐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연구 결과도 전문가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교양 있는 일반 시민들을 위한 것이었다.
일례로 『귀납적 과학의 철학(The Philosophy of the Inductive Sciences)』을 쓴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1794-1866)을 생각해보자.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이자 철학자이며 신학자이기도 했던 휴얼이 이 책을 집필한 것은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당시 성공적으로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기술적으로도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던 과학기술의 함의를 일반적인 수준에서 고찰하기 위해서였다. 이 책을 통해 휴얼은 ‘자연철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는 특정한 개별과학 분과 학자들로부터 얻은 명성이라기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 교양 있는 시민들로부터 얻은 명성이었다.
토머스 쿤(Thomas Kuhn, 1922-1996)이 과학사에 입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하버드 대학교의 총장 제임스 코넌트(James Conant, 1893-1978)는 미국의 교육과정에서 교양교육(General Educ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물로 평가된다. 19세기 말까지 미국의 학문적 역량이나 성숙도는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비록 미국이 영국과 같은 언어인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비교적 짧은 지성적 전통으로 인해 미국학자들의 공동체가 갖는 평균적인 학술적 역량은 유럽에 비해 뒤떨어지는 편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도 이어졌는데, 당시까지도 철학과 자연과학 등 주요 학문들의 중심지는 영국과 유럽이었으며 선진 학문을 공부하고자 하는 미국의 학자들은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영국과 유럽에 추가로 유학을 다녀와야 하는 형편이었다.
지적 전통의 역사가 짧으면 자연스럽게 지적 전통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아지며 그 깊이도 얕아진다. 코넌트는 하버드 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비록 산업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미국이 영국과 유럽을 어느 정도 따라잡았을지라도, 여전히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전공 분야라는 협소한 지적 범위에 제약되어 있으며 대학생들은 과학 그 자체에 대한 폭넓은 역사적·철학적 이해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코넌트가 학부생들을 위한 과학사 강의를 하버드 대학에 신설하여 운영하려 했던 것은, 이와 같은 과학사 강의를 통해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전공의 경계를 넘어 일반적으로 공유된 문화로서의 과학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쿤이 쓴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 대한 여러 연구들이 밝혀준 바 있듯, 과학을 바라보는 쿤의 입장은 실제로 유럽의 학문적 전통에서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피에르 뒤엠(Pierre Duhem, 1861-1916)의 물리학사 연구, 과학적 사실에 대한 루드비히 플랙(Ludwig Fleck, 1896-1961)의 연구, 신칸트주의의 입장에서 현대물리학을 고찰했던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의 연구 등은 쿤의 과학관과 많은 측면에서 유사하다.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적 학자였던 루돌프 카르납 역시 쿤의 『구조』에 많은 공감을 표명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미국 과학학의 중요한 분수령이 된 쿤의 저서들은 당시 학문의 후발 주자였던 미국에서 뒤늦게 등장한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시민들에게 당대의 과학기술이 갖는 일반적인 의미를 이해시키고, 이를 통해 과학의 전문화가 갖는 폐해와 위험을 막으려는 것은 근대 이후의 오랜 지성적 전통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역사와 그 실천적 함의를 다루는 과학사와 기술사 역시도 그러한 전통 안에 속한 연구 분야였다.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어떤 방식으로 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쿤 자신이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과학혁명에 대한 학부 과학사 강의를 준비하면서 쿤은 자신이 ‘물리학 전공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교양 있는 지식인으로서 근대 이전의 자연철학에 좀 더 공평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쿤 스스로 회고한 것처럼, 쿤은 역사라는 인문학적 접근법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역학 역시 그 시대의 맥락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이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과학학의 전문화, 이에 따른 과학학 내·외부에서의 대립
최근 과학철학 내에서는 논리경험주의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논리경험주의의 형성 과정, 비엔나 학파(Vienna Circle)와 베를린 학파(Berlin Group)의 차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외의 지역에서의 논리경험주의 운동, 논리경험주의와 쿤 철학 사이의 관계, 논리경험주의의 정치적 성향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들이 논의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유럽에서의 논리경험주의가 나치의 독일 점령 이후 미국과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일어나는 정착과 전문화의 과정이다. 초기와 후기의 논리경험주의에 대한 최근의 비교 연구들에 의하면, 초기 논리경험주의가 ‘특정한 철학 사조’가 아닌 일종의 ‘철학적 운동’에 가까웠고 정치적으로도 급진적인 편에 속했다면, 후기의 논리경험주의는 ‘과학철학’이라는 특정한 분과 안에서 ‘몇몇 주요 주제들’에 대해서 논의하는 다소 보수적인 전문가적 분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당시 미국을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철학적 사조는 실용주의였고 이는 영국의 상식적 철학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생활세계에 정착해야 했던 논리경험주의자들은 그때까지 자신들이 발전시키고 있었던 철학적 입장을 미국의 실용주의 및 영국의 상식적 철학과 결합시켜야 했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전통 철학계에서 대부분 철학자로서의 위상을 인정받지 못했던 논리경험주의자들로서는 특정한 주요 주제들(기호논리학, 귀납 및 확률, 입증 등)을 세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자신들의 철학적 전문성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논리경험주의 ‘내부’의 전문화 요구는 당시 미국에서 일반적이었던 학문들의 전문화 경향과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 사이의 냉전 시기에 이와 같은 전문화의 경향은 심화되었다. 냉전 시기 동안에 철학자들은 사회나 과학의 현안 문제들에 대한 철학적 의견 표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그 대신 철학 고유의 전문화된 주제들에 대해서 연구하기를 종용받았다. 이에 따라, 철학자뿐만 아니라 개별 분과의 학자들이 모여 활발하게 토론하며 논의를 진행시켰던 초기 논리경험주의의 간학제적(interdisciplinary) 성격은 점차적으로 축소되었다. 물리학자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철학이 과학과는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이는 미국의 대표적인 물리학자였던 리차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이 철학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부터도 잘 알 수 있다.
전문화는 과학철학과 과학 사이뿐만 아니라 과학철학과 과학사, 과학철학과 기술사 사이도 벌려놓았다. 실제로 윌리엄 휴얼, 알렉상드르 코아레(Alexandre Koyre), 피에르 뒤엠, 에른스크 카시러 등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기에 활동한 저자들의 저작에는 역사와 철학이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하지만 쿤의 『구조』가 등장하고 과학사와 기술사 역시 급속도로 하나의 전문 분야로 진화하고 성장하면서, 과학사와 기술사는 고유한 학문 분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유지해나가기 위해 의식적으로 철학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거리 두기의 가장 대표적인 근거는 ‘과학철학이 과학의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 과학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영국에서 등장한 과학지식사회학(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에도 적용된다. 엄연한 하나의 과학 분과로 인정받고 있던 사회학의 논의를 과학에도 확장시키고자 했던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은, 과학지식사회학 역시 하나의 ‘과학’으로 인정받기 위해 네 가지의 테제(인과성, 공평성, 성찰성, 대칭성)를 내세우며 일관된 하나의 지성적 프로그램(이른바 ‘스트롱 프로그램’)을 추구했다. 이와 같은 과학지식사회학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은 기존의 과학철학이 과학에 대한 ‘왜곡된 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유로 거부하였으며, 이는 과학사와 기술사가 과학철학과 거리를 두면서 내세웠던 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과학에 대한 인문학인 과학학의 세부 분과들이 각자 독자적인 연구 영역을 확보하고자 노력하면서 과학철학, 과학사, 기술사, 과학지식사회학 사이의 대립과 분화는 전반적으로 심화되었다. 그와 더불어 각각의 분과들은 자기 고유의 연구방법론과 서술방법론이 실제의 과학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과학학의 전문화 경향에 대해서 과학자들마저도 비판하고 나섰다는 데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일어난 ‘과학전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과학자들은 과학의 객관성, 정치성, 역사성 등을 마치 과학자들 자신보다 더 우월한 관점에서 평가하고 비판하는 듯 보이는 과학학자들의 학문적 정당성에 강력한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다.
4. 과학철학과 과학기술학의 재회 : 장하석의 ‘상보적 과학’ 개념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불가분하게 얽혀 있고, 우리의 정치적 판단과 행동에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며, 교양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과학기술의 의미와 기능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쉽게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비단 오늘만의 것이 아니다. 근대 이후 과학기술이 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면서부터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다만 오늘날의 시대가 이전까지의 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과학의 전문가들이 더 이상 자신의 전공 분야 이외의 분야에 대한 깊은 식견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20세기 초까지는 과학학적 연구가 일선의 과학자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지금은 그러한 연구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건전한 상식을 얻고자 하는 일반 시민들의 요구는 이전 시대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증폭된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과학학의 고유한 기능이란,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통해 일반 시민들 역시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과학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일반 시민’의 개념 속에 과학자들 자신도 포함된다는 데 있다. 입자물리학자였던 쿤이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듯, 과학자들 역시 과학학을 통해 과학을 여러 측면들을 바라보는 자신들의 관점을 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철학의 역사, 과학사학의 역사 등 과학학 자체의 역사에 대한 탐구를 통해 우리는, 과학학이 내부에서의 전문화 과정으로 인해 과학학 고유의 ‘시민과학적 담론 형성’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과학학의 중요한 협력자인 과학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결과를 초래했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담긴 과학학의 내용이 철학· 역사학·사회학 등 다양한 과학학 분과들 사이의 협동 작업을 통해서 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학학 분과들 사이의 새로운 협력이 필요함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을 통해 과학학은 일반 시민들을 위한 과학 담론 형성뿐만 아니라, 미래에 과학자가 되거나 과학 정책 형성에 기여하게 될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학 교육에도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다.
다행히 근래에 들어 과학학 분과들 사이의 새로운 협력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과학철학사학회(The Society for the History of Philosophy of Science, 줄여서 HOPOS라고 칭함)의 설립을 들 수 있다. 과학철학사학회에서는 과학철학의 역사를 다룰 뿐만 아니라, 기존의 과학사학계에서 ‘철학적 과학사’ 또는 ‘내적(internal) 과학사’라는 이름으로 기피되던 과학사 서술을 장려한다. 또한 과학철학사학회는 과학철학과 과학사 전공자들의 의사소통과 의견교환을 중요하게 여기며, 서로 다른 전공자들 사이의 협력 작업을 옹호한다. 이와 같은 협력의 움직임은 국내에서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최근 과학철학회·과학사학회·과학기술학회가 공동주최한 2013년 과학학 연합학술대회를 들 수 있다. 이 연합학술대회에서는 과학철학, 과학사를 비롯한 다양한 전공자들이 ‘과학기술의 의사결정과 책임’이라는 대주제 아래에서 발표하고 토론한 바 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과학학 사이의 연계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피력해왔다. 예를 들어 마이클 프리드먼(Michael Friedman)은 「과학지식사회학과 그 철학적 의제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과학지식사회학 논자들의 비판과 달리 이미 카르납, 노이라트 등 논리경험주의의 철학에서 과학지식사회학이 옹호하는 ‘철학적 상대주의’의 입장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이 경험과학으로서의 과학지식사회학을 철학과 혼동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과학지식사회학이 철학을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으로부터 자신들의 경험과학적 탐구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과학철학계 내에서도 과학철학이 과학지식사회학과 대립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들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앨런 리차드슨(Alan Richardson)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과학: 카르납, 라이헨바흐, 과학사회학」이라는 논문에서, 논리경험주의의 전통적인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 구분을 통해 논리경험주의자인 라이헨바흐와 카르납 역시 과학적 지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의지(volition)’, ‘결정(decision)’과 같은 비인식론적인 요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함을 긍정했다고 주장했다. 라이헨바흐는 과학이론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의지적 요소들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요소들을 결정함으로써 결정적인 ‘이론적 분기(bifurcation)’가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카르납 역시 과학에서의 ‘내적 문제’와 ‘외적 문제’를 구분하면서, ‘외적 문제’에 대한 답은 인식론적 탐구를 통해서는 얻기 힘듦을 인정했다. 이는 이른바 ‘이론적인’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자인 라이헨바흐와 카르납 역시도 과학적 지식을 구성하는 비인식론적 요소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을 뜻한다.
토머스 위벨(Thomas Uebel)은 라이헨바흐나 카르납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표 명했던 논리경험주의자 오토 노이라트와 필립 프랑크의 경우를 논했다. 위벨은 이들이 합리적인 이론 선택에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들이 차지하는 역할을 좀 더 분명한 형태로 강조한 바 있음을 자신의 논문 「논리경험주의와 지식사회학 : 노이라트와 프랑크의 경우」에서 주장하였다. 위벨에 따르면 노이라트는 사회적으로 가치중립적인 과학이 존재하지 않으며, 과학자의 개인적인 태도 및 실천적인 고려 사항들이 이론 선택의 문제에 있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보았다. 프랑크 역시 ‘이론미결정성(underdetermination)’의 문제로 인해 ‘권위’가 과학 이론의 수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론 선택에 이론 외부적 기준을 포함시킴으로써 오히려 이론 선택의 합리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프리드먼, 리차드슨, 위벨의 논문이 ‘과학철학과 과학지식사회학 사이의 불편한 관계’에 대한 오해를 풀고 둘 사이의 화해를 위한 첫 걸음으로서의 예비적인 역할을 했다면, 과학학 분과들 사이에서의 연계와 협력이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지에 대한 좀 더 분명한 입장을 제시한 학자도 있다. 대만의 과학기술학자인 루에이린 첸(Ruey-Lin Chen)은 「대만에서 과학철학에 대한 STS의 도전」이라는 논문에서, 과학철학적 논쟁이 과학학의 발전에 무용하다는 일반적인 시각과 달리 과학철학이 대만의 STS 연구 발전에 유용한 모형을 제시해 줄 수 있음을 주장했다. 첸에 따르면 과학철학은 메타담론으로서 STS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과학철학은 과학에 대한 새롭고 일반적인 이미지를 구성할 수 있으며, 경험과학으로서의 STS에 특화된 철학을 공식화하는 작업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학 본래의 기능을 잘 살리면서도 과학학 분과들 사이의 협력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논자는 장하석이다. 저서 『온도계의 철학 : 측정과 과학의 진보』와 『물은
인가? 증거, 실재론, 다원주의』로 잘 알려진 장하석은,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결합된 분과인 ‘과사철(HPS,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이 기존의 과학에서 다루지 않는 잊혀진 물음들과 그에 관한 지식들을 복원함으로써 ‘상보적(complementary) 과학’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온도계의 철학』에서 장하석은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하는 온도계 하나에도 이전 과학자들이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들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상세한 사료 분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역사적 분석이 ‘측정과 과학의 진보’라는 일반적인 주제에 대해 어떤 철학적 함의를 갖는지도 제시한다. 즉, 이 책에서 역사와 철학은 서로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좀 더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장하석이 주장하는 ‘상보적 과학’과 ‘다원주의(pluralism)’가 ‘시민과학적 담론’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장하석은 거듭해서 자신의 탐구가 ‘아주 일반적인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사례들’로부터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온도계로 온도를 재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익숙한 일이며, 구리와 아연 조각 및 소금물을 적신 휴지만 있으면 누구나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의 전지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아주 일상적인 사실로부터 ‘물음’을 제기하고, 이 물음에 대해 역사적 사료들을 찾아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답변을 해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장하석은 일반 시민으로서 해당 전문 분야의 과학자를 신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학자가 자신의 전공이 아닌 과학 분야에 대해서조차 전문가라고 믿을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일반 시민들 역시 자신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여러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이 의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토론을 하는 등 독자적인 과학적 탐구를 수행할 수 있다. ‘이미 주어진 답’에 대해 의심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교과서를 찾는 대신 직접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장하석이 말하는 ‘상보적 과학’이다. 역사는 잊혀진 물음들의 저장소로서, 오늘의 우리가 질문할 수 있는 물음들에 대해서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질문들을 과거의 사람들이 제기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비록 장하석이 ‘상보적 과학’이라는 생경한 표현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아주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실들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아나가는 것은 전통적인 철학적 방법의 잘 알려진 특징이다. 예를 들어 ‘정의란 무엇인가’, ‘덕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이 너무도 친숙한 주제를 대화로 풀어서 탐구를 진행했던 플라톤(Platon)의 ‘대화편’을 생각해보자. 이 ‘대화편’에는 ‘전문가’가 대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진지한 시민이 등장한다.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것’에서 출발하고자 했던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역시도 ‘상식(bon sense)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법한’ 토대 위에서 철학을 진행하고자 했다.
장하석이 이와 같은 전통 철학의 질문 기법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은 철학적 문제에 토대를 둔 ‘역사적 탐구’와 자신이 직접 실행해보는 ‘실험’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의 과학에서 거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물음들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은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과연 옛날 사람들은 온도계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 사람들은 어떻게 ‘온도계의 온도 측정’이라는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었을까?” 물론 이런 물음들을 염두에 두고 사료들을 직접 찾아 분석하는 것은 일반인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과사철이라는 분과의 ‘전문성’이 등장한다. 즉, 일상적으로 누구나 물을 수 있을 법한 물음을 더 진지하게 묻고, 이에 대한 답을 일상적으로 가능한 실험 또는 역사적 사료에 대한 탐구를 통해 찾아나가는 작업이 바로 과사철 전공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과연 상보적 과학이 과학인가?”라는 회의적인 물음을 던지기보다는, “과연 상보적 과학이 시민과학적 담론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건설적인 물음을 제기해보자. 『온도계의 철학』은 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교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읽고 고민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자연을 수량화하는 측정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는지, 그리고 측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자연을 좀 더 정밀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구체적인 사례들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통해, ‘과학의 진보’라는 일견 거창한 주제가 얼마나 우리의 실제적인 삶과 맞닿아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과학적 담론에 참여하고 이 담론 안에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경이로움, 자연의 작동 원리를 더 잘 알고 싶다는 욕구는 어쩌면 인류의 보편적인 욕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욕구는 체계화된 지식들의 더미 위에서, 순위를 매기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주 억눌리곤 한다. 아인슈타인 역시 당시의 독일의 과학교육을 비판하면서, 정형화된 과학교육 속에서도 신성한 호기심이 압사당하지 않은 것을 하나의 ‘기적’으로 여긴다고 소회한 바 있다. 딱딱한 교과서적 서술로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고, 지적으로 도전적이며, 다양하고 풍부한 사례들이 포함되어 있는 ‘과학교양서적’은, 늘 그랬듯 독창적인 과학자들의 중요한 지적 자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아인슈타인은 애런 베른슈타인(Aaron Bernstein, 1812-1884)의 『일반인을 위한 과학전집(The People's Natural Science Books)』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으며, 이렇게 촉발된 호기심은 그로 하여금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순수이성비판』이나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의 『인간의 이해력에 대한 탐구』와 같은 철학 서적을 읽도록 유도했다. 또한 프랑스의 저명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e, 1854-1912)가 쓴 대중적 과학저작인 『과학과 가설』이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 발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이렇듯 정형화되지 않은 인문학적 과학서는 청년들로 하여금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하고, 과학자에게는 기존의 이론에 도전하여 새로운 이론을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자극제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물론 장하석의 ‘상보적 과학’이 시민과학적 담론의 유일무이한 전형은 아닐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책들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역시 과학자뿐만이 아니라 많은 일반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제 쿤이 자신의 책에서 제안했던 개념인 ‘패러다임(paradigm)’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쿤의 『구조』는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연에 대한 탐구에 동참하도록 자극하지는 않는다. 또한 독자가 자신의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자기 스스로 그 의문에 답하려는 의지를 북돋지는 않는다.
이러한 비판은 대표적인 과학지식사회학자 데이비드 블루어(David Bloor)의 저작 『지식과 사회의 상』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이 책에서 블루어는 과학지식에 대한 사회학이 가능함을 애써 주장하고 있지만, 독자로 하여금 독자 역시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탐구에 동참할 수 있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전문화된 학문적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정보화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여전히 자연에 대해서 친숙하게 물을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유도하는 진지한 과학인문학적 저서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장하석이 제시하는 ‘상보적 과학으로서의 과사철’ 개념은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새롭다. 이 개념이 전통적인 것은, ‘상보적 과학’의 주된 기능 중의 하나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더 이상 읽지 않는 과학고전’의 의미를 재발굴하고 보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보적 과학’은 전통적인 철학적 질문의 기법을 보존하고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방관자나 관망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자연에 대한 논의에 합류할 것을 권유한다. 그와 동시에 이 개념의 새로운 점은, 이 개념 안에서 역사와 철학이 다시금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역사는 ‘과학교과서가 답해주지 않는 질문들에 대한 자료 저장소’로서 역할을 맡고, 이 자료들을 찾아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 속에서 연구자는 조금씩 자기 스스로의 해답을 찾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초기의 논리경험주의자들 역시 자신들의 철학을 ‘과학적 철학’ 또는 ‘학문적 철학’이라고 불렀고, 철학 역시도 과학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동의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철학을 통해 협력 작업도 가능하리라 희망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때 말하는 ‘보편성’이란 ‘절대적 참(absolute truth)’과는 구분된다는 점을 주의하자.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일반적인 교양을 가진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형식으로 과학적 지식을 분석하는 작업을 했고, 그러한 작업을 통해 산출된 결과가 다수의 시민들 속에서 ‘공유’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논리경험주의가 표방한 이른바 ‘통일과학운동’은 이러한 시민과학적 담론의 관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장하석을 비롯해 과학학 사이의 협력을 강조하는 논자들은 초기의 논리경험주의자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을 승계하고 그것을 좀 더 정교하게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논리경험주의는 더 이상 현대 과학학자들의 ‘비판’이나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참고’할 수 있는 훌륭한 지적 자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5. 맺는 말 : 시민과학적 담론으로서의 과학학과 그 전망
과학철학, 과학사, 과학기술학 등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인 이른바 ‘과학학’은 대중 및 과학자들의 지지를 얻을 때 비로소 그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여러 전공들에 대해 동시에 정통할 수 없으며, 학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전공에 집중적으로 몰두해야 하는 까닭에 자신의 전공 분야가 갖는 역사적·정치적·문화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를 수행할 여유가 없다. 일반 시민들 역시 바쁜 일상으로 인해 고도로 전문화된 과학기술의 여러 가지 함의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찾기 어렵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전문적 과학자와 시민들 사이에서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담론 형성 전문가’로서의 과학학자는 시민과 과학자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초기 논리경험주의 운동이 이와 같은 ‘시민과학적 담론’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음을 앞서 살펴보았다. 베를린 학파가 주도한 독일의 ‘경험적 철학 학회(Society for empirical philosophy)’는 여러 전공을 가진 학자들 사이의 세미나뿐만 아니라 대중들과 함께하는 토론의 장을 만들어 현대 과학의 현안에 대한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이와 비슷한 종류의 철학적 입장이 비엔나 학파가 대외적으로 표명한 ‘과학적 세계관’에서도 드러난다. 비엔나 학파는 자신들의 지적 작업이 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대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시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시민과학적 담론’의 성격은 초기의 과학사와 기술사에서도 드러난다. 초기의 과학사와 기술사는 과학기술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탐구함으로써, 과학기술 변화 양상과 그것이 인간의 삶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함의를 밝히고자 했다.
과학학의 분과들이 학문적으로 전문화됨으로써 논의가 더 깊고 세련되어졌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으나, 이에 따라 과학학 분과들 사이의 대립이 심화되고 심지어는 과학학이 과학자들로부터 배척되는 사건도 일어났음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은 과학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학학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다. 과학학은 과학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과학적 지식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과학자들과 일반인들이 생산할 수 없는 과학에 대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담론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담론을 통해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전공 분야를 벗어나 다른 과학 분과들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으며, 일반 시민들 역시 현대 과학의 전반적인 역사와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과학이라는 집단적 지식 형성에 동참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일반적인 수준의 담론에서 과학자와 일반 시민이 비교적 동등한 자격으로 토론과 논쟁에 임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높일 수 있다.
과학학이라는 분과 안에서의 학문적인 논의를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학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더 나아가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과학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시민과학적 담론’으로서의 과학학이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현재 여러 학자들이 다양한 시도들을 벌이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상보적 과학’으로서의 과사철 개념을 주장하며 ‘다원주의’를 옹호하는 장하석의 입장은 매우 주목할 만한 시도이다. 비판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과학을 바라보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과학적 지식의 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이와 같은 시도가 얼마나 유익할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아인슈타인를 위해 21세기적인 『역학의 과학』과 『과학과 가설』를 선물하는 것, 그것이 인문학으로서의 과학학이 할 수 있는 핵심적인 기여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갖게 되는 경이로움과 호기심을 보존하고, 늘 인간이 주체적으로 과학적 탐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고무하고 자극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과학학으로서의 인문학은 자꾸만 닫히려고 하는 과학의 문을 거듭해서 열어 그곳에 새로운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만든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과학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며, 인간이 마음의 문을 닫을 때 우리의 과학 역시도 그 종말을 고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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