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이야기

(서평) 시간의 본성에 관한 잊혀진 논쟁의 성공적 소환

강형구 2020. 8. 14. 10:09

Jimena Canales, The Physicist & Philosopher : Einstein, Bergson, and the debate that changed our understanding of time(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5)

 

2020. 8. 14.(금)

국립대구과학관 강형구 연구원

 

    1922년 4월 6일,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한 회의실에서 저명한 프랑스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과 함께 시간의 본성에 관해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은 이후 사람들이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그 영향이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지만, 놀라운 것은 이 논쟁의 의의와 이 논쟁이 완결되지 않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두 개의 시간, 즉 물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간과 경험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지각을 통한 시간 경험을 인정하지만, 이러한 부정확한 시간 경험을 시계가 알려주는 객관적인 물리적 시간에 의해 수시로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시계가 우리에게 시간의 비밀을 알려주는 것일까?

 

    1922년에 아인슈타인과 베르그송 사이에 벌어진 이 논쟁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시간은 특수한 측정 장치에 의해 측정되고, 측정 장치는 눈금 또는 숫자를 통해 시간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하지만 그와 같은 측정된 시간이 시간의 전부일까? 아니면 인간이 지각을 통해 흐름을 인지하는 지속으로서의 시간이 더 시간의 본질에 가깝고, 측정 장치는 다만 그러한 본질적 시간을 부분적이고 추상적으로 반영하는 것일 뿐일까? 베르그송은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ㆍ물리학적 귀결들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적 수식과 측정 장치가 드러내는 수치들만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시간의 본질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그러한 본질은 물리학이 아닌 철학적 사유로서 파악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와 같은 베르그송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철학자의 시간은 세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식으로 표현된 물리학의 원리들을 토대로 도출된 물리학적 시간이 객관적인 시간이다. 물리학적 시간의 객관성은 이 시간이 측정 장치의 시간과 일치함을 통해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시간에 대한 일종의 감정이나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감정이나 느낌을 실재하는 객관적인 세계에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 어쩌면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적 시간이 객관적이기는 하지만 시간의 본성 모두를 반영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한발 양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완고한 태도를 유지했고, 20세기의 파르메니데스로 기억되기를 선택했다. 흐름과 지속으로서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느끼는 흐르고 지속하는 시간은 일종의 환상일 뿐이다.

 

    저자인 히메나 카날레스가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시간의 본성에 관한 아인슈타인과 베르그송 사이의 논쟁은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금방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폴 랑주뱅,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와 막스 폰 라우에 등 상대성 이론의 옹호자들은 시간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입장을 지지했다. 하지만 특수 상대성 이론에 근접했고 아인슈타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앙리 푸앵카레, 헨드릭 로렌츠는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을 해석하는 방식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시간에 대해 해석할 수 있는 가능한 방식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ㆍ물리학적 귀결들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시간의 개념이 아인슈타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학과 측정 장치를 통해서만 해석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렇듯 시간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해석은 결코 완결된 것이 아니었다. 영국에서 상대성 이론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은 흐름과 지속으로서의 시간 개념을 아인슈타인처럼 환상으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흐름과 지속으로서의 시간 개념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대안적인 상대성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유명세를 띤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상대성 이론과 함께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시간 개념을 전파했고 이러한 전파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성공은 이 논쟁을 종결짓지는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철학적 입장을 라이헨바흐와 카르납으로 대표되는 논리경험주의의 철학이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반면, 베르그송에서 화이트헤드를 걸쳐 자리 잡은 하버드 대학의 철학적 전통에서 성장한 철학자 콰인은 훗날 논리경험주의에 대한 강력한 반대 논증을 펼쳤다. 패러다임 전환의 개념을 제시하며 과학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일으킨 쿤 역시 하버드의 학문적 전통 속에서 성장한 학자였다.

 

    시간의 본성에 대한 아인슈타인과 베르그송 사이의 논쟁은 단순히 지성적인 측면만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과 베르그송이 독일과 프랑스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문화 속에서 자리했던 위치, 시계들 사이의 동기화 기법과 점차로 발전되는 계측 장비들이 두 사람의 철학적 입장과 맺는 관계, 영화라는 기술적이고 예술적인 도구가 두 사람 각각의 시간 개념을 옹호하는 데 사용된 방식 등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측면들이 둘 사이의 논쟁과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히메나 카날레스의 이 책은 이와 같은 다양한 측면들을 생생하고 다채롭게 묘사함으로써, 시간의 본성에 관한 논쟁이 단지 학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기술 문화, 정치적 배경, 예술적 경향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 논쟁이 갖는 다양한 측면들을 상세히 서술함으로써 시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가 단지 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문제였음을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다.

 

    다양한 인물들과 에피소드들을 통해 이 논쟁의 다면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의 중요한 장점이기도 하지만 이에 따른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일례로, 논리경험주의는 아인슈타인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기는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입장을 곧이곧대로 대변한 철학적 입장은 아니었다. 논리경험주의의 시공간 철학을 대표하는 라이헨바흐의 경우, 그는 아인슈타인과 달리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시간 정의 방식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특수 상대성에서의 동시성 정의가 임의적 규약임을 분명히 밝혔고, 아인슈타인의 동시성 정의 이외의 다른 정의를 사용하더라도 동등한 정도로 타당한 다른 이론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동시성 정의와 관련한 이론 다원주의를 받아들였다. 상대성 이론의 철학적 재구성과 해석에 있어서도 라이헨바흐는 아인슈타인과 다소 입장을 달리했다. 이런 세부적인 측면들까지 다루지 못하는 것은 이 책의 서술 방식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또한 최신의 양자 우주론을 언급하며 오늘날 시간의 본성에 관한 논쟁이 물리학자와 철학자 사이에서가 아니라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저자의 진단은 오직 부분적으로만 옳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리학적 추론과 철학적 사유는 동일하지는 않지만 자연탐구에서 서로 복잡하게 얽힌 채로 작용한다. 시간의 실재성을 다시금 옹호하고 있는 학자들인 리 스몰린, 팀 모들린 등은 물리학적 추론과의 연관성이 축소되어 있던 철학적 사유의 기능을 다시금 활성화시킨 학자들이며, 이들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철학자-과학자의 전통(과학적 추론과 철학적 사유를 병행하고자 하는 전통)을 부활시키려는 학자들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양자 우주론에서 뜨겁게 진행되고 있는 시간의 실재성에 관한 논쟁 역시 물리학적 사유들 사이에서의 논쟁이라기보다는 물리학적 사유와 철학적 사유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쟁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들이 이 책의 부분적인 단점과 한계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본성에 관한 근본적인 논쟁이 20세기 전반기에 미결인 채로 남아 있었으며,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살아남아 학자들 사이의 뜨거운 논쟁 주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변화와 존재의 문제가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사이의 첨예한 논쟁 지점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 문제의 역사와 전통은 참으로 오래된 것이다. 이토록 오래된 주제가 20세기의 지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ㆍ기술적 맥락 속에서 반복되었고, 그것은 여전히 21세기 고유의 맥락 속에서 살아남아 인간의 지적 탐구를 추동하고 있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영원한 변주, 이 책은 이와 같은 끝없는 노래를 아름답고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