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omas S.Kuhn,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5.
◎ 토머스 쿤, 『코페르니쿠스 혁명』(정동욱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사, 2016)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한국장학재단 기획조정실 강형구
과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영국의 과학자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유명한 일화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과학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명한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이 어느 날 도서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체계가 가진 정합성을 불현듯 깨달았다는 유명한 일화를 기억할 것이다. 17세기에 뉴턴은 자신의 눈앞에서 떨어지는 사과와 함께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는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반면, 역설적으로 20세기의 쿤은 이제는 옛 유적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웅장한 건축물을 뒤돌아보며, 달과 함께 떨어지는 뉴턴의 사과 앞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달과 무관하던 사과가 어느 순간 달과 함께 떨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뉴턴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사물에 대한 인간의 이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앞서 소개한 일화는 쿤에게는 길고 흥미진진한 탐험의 시작에 불과했다. 1947년 당시 물리학 박사과정에 있던 쿤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체계의 정합성에 대해 깨달은 이후, 그는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하버드 학생들에게 과학사를 가르치며 그의 길고 긴 탐험을 이어갔다. 1957년에 출판된 『코페르니쿠스 혁명』에는 그러한 탐험을 통해 쿤이 과학지식의 진화에 대해 얻은 새로운 생각들이 담겨 있다. 여기서 새삼스럽게 드는 의문 하나가 있다. 왜 쿤은 근대과학의 대표자인 뉴턴이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이야기를 썼을까? 이 물음에 대한 그의 흥미롭고 매혹적인 대답은『코페르니쿠스 혁명』곳곳에 담겨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철저하게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개념들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를 파괴하는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다. 쿤은 코페르니쿠스의 저작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부조화 및 양면적 특성 속에서 과학지식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다.
쿤이『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코페르니쿠스의 저술은 최초로 “깊이와 완전성 면에서『알마게스트』에 필적할 수 있는 최초의 유럽 천문학 저작”(362쪽)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스스로를 프톨레마이오스의 전통에 속하는 천문학자라고 여겼으며, 따라서 우리는 코페르니쿠스를 ‘최후의 프톨레마이오스주의자’로도 부를 수 있다.『알마게스트』로 대표되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2구체 우주론을 바탕으로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별들과 태양의 운동을 훌륭하게 설명해주는 정교하고 방대한 수학체계였다. 지구가 우주 중심에 있고 항성 천구가 우주 맨 바깥에서 균일한 원운동을 하며 우주 안의 모든 천체들과 지구의 모든 사물들을 움직이게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2구체 우주론은, 세계 모든 사물들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포괄적인 체계의 뼈대를 이루었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부터 천문학자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체계가 별들이 아닌 행성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행성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원 궤도 주위를 다시 회전하는 원(주전원)을 추가하고, 원 궤도의 중심을 지구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설정하기도 했다(이심). 더 나아가 천문학자들은 행성이 원운동을 하되 원의 중심이 아닌 다른 점을 기준으로 동일한 각속도로 회전한다고 설정함으로써(이퀀트)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천문학의 중심 원리였던 균일한 원운동 원리를 위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레니즘 천문학자들이나 그 이후의 아랍 천문학자들은 이와 같은 수학적 장치들에서 큰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 이들은 행성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주전원, 이심, 이퀀트를 추가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별들과 행성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정교한 천문학 체계를 발전시키는 데 주력했던 이들은, 그들이 만든 이론체계가 우주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체계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과 단단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 따르면 에테르로 이루어진 천상의 천체들이 지구 밖 천구에서 원형을 그리며 끝없이 회전하고, 지상에서는 흙, 물, 공기, 불로 구성된 원소들이 자신들의 본성에 따라 직선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세계관은 인간이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숱한 현상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했으며, 신이 인간을 중심으로 세계를 창조했다는 기독교의 세계관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주의 중심에 있는 지구를 하나의 행성으로 바꾸는 것은 단지 천문학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와 세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의미를 바꾸는 일이었고, 그야말로 대대적인 ‘혁명’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쿤은 이 혁명이 아주 낯선 방식으로 찾아왔음을 발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체계에 익숙해 있으며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을 수학적으로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던 유럽의 일급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오직 전문적인 천문학자들만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에 근거해서 천문학 체계에 결정적인 수정을 가했고, 이로써 길고 긴 혁명을 시작하는 되돌릴 수 없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당시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었던 신플라톤주의는 감각 경험보다는 수학적 구조를 중시했으며, 한 이론의 수학적 단순성과 아름다움이 그 이론의 참됨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신플라톤주의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던 코페르니쿠스는 원 위에 주전원이 거듭해서 덧붙여지고, 급기야는 균일한 등속 원운동 원리에 어긋나는 이퀀트마저 도입되는 상황에 대해 마치 ‘괴물같다’고 판단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수학적 원리에 따라 단순하고 조화롭게 운행되어야 하는 세계가 그토록 임시방편적이고 거추장스러운 방식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천문학 체계의 수학적 단순성과 아름다움을 구하고 싶었던 그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태양의 변두리로 옮기는 혁신을 단행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전문적인 천문학자들만이 관심을 가질만한 고도로 기술적인 사항을 혁신하기 위해 거대한 혁명을 시작하는 나팔을 불었다. 그가 만약 2구체 우주론에 근거한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에 능통하지 않았다면, 또한 그가 만약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에 비견될만한 수준의 수학적 정교함을 가진 새로운 천문학 체계를 제시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이 혁명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지극히 전문적인 영역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차 더 넓은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코페르니쿠스 자신은 혁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측면에서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 전통에 속해 있었다. 지구의 운동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적 논변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운동이론에 근거한 개념들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 비록 그의 새로운 천문학 체계가 정성적 측면에서 행성들의 운동을 기본 주전원 없이 단순하게 설명했다 하더라도, 이 체계 역시 미세 주전원들을 사용했으며 정확성의 측면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렇기에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코페르니쿠스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될 수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와 같이 신플라톤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었던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의 정밀한 행성 운동 관측기록을 토대로 행성의 궤도를 원에서 타원으로 바꾸었다. 또한 케플러가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을 발견하여 행성들의 운동을 성공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체계는 단순성에서뿐만 아니라 정확성 측면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넘어섰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천문학에서 세계관 전체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공간 관념 및 운동 이론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고대 원자론자들이 제시한 입자론적 세계관 및 무한 공간 개념은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에게 영향을 미쳤고, 이들은 천상과 지상의 물체들이 동일한 원리에 근거해 움직임을 보이는 새로운 운동이론을 발전시켰다. 뉴턴에 이르러 지상계와 천상계가 분리된 유한한 우주는 지상계와 천상계가 동일한 원리를 따르는 무한한 우주로 변모한다.
쿤의『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서양과학사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광범위하고 다원적이었던 사건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해석한 야심작이었다. 쿤은 이 책에서 과학에서의 거대한 혁명이 고도로 전문가적인 영역에서 처음으로 촉발됨을 보였고, 그러한 촉발은 신플라톤주의와 같은 철학사상에 대한 코페르니쿠스 개인의 선호 혹은 취향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다. 쿤은 전문적이고 국소적인 분야에서의 혁신이 점차적으로 더 광범위한 개념체계로 확산되어 끝내 인간이 가진 세계관 전체를 탈바꿈시키는 과정 역시 보일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에서 쿤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갖는 의미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렵지 않고 생동감 있게 서술했다. 이 책을 위한 쿤과 코넌트의 서문에서도 알 수 있듯, 쿤은 사상사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근대 천문학의 역사를 재조명함으로써 과학적 지식이 진화하는 과정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쿤의『코페르니쿠스 혁명』은 그의 잘 알려진 저작인 『과학혁명의 구조』의 모태가 된다. 하지만 두 저작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중요한 측면에서 의미심장한 차이를 보인다. 쿤은 과학사학자로서『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서술했다. 비록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그의 해석이 다른 학자들의 해석과 다소 차이가 나더라도, 그는 역사학자로서 구체적인 사료들을 근거로 제한적인 범위에서 이 혁명에 대해 해석했다. 다시 말해, 이 책에서 쿤은 모든 과학혁명이 아닌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한정해서 자신의 해석을 펼쳤다. 하지만 그의『과학혁명의 구조』는 다르다. 쿤은『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역사적 연구를 근거로 삼아,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지식이 진화하는 일반적인 과정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주장했다.『구조』에서 쿤은 과학사를 무기로 든 철학자로서 과학지식을 바라보는 새로운 철학적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으로부터 『과학혁명의 구조』로의 이행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쿤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으로부터 과학혁명을 일반화시키기보다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특성들을 다른 종류의 과학혁명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지 추가적으로 사례 연구를 했을 수 있다. 천문학 혁명이 역학 혁명, 화학 혁명과 정확히 동일한 양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16세기에 시작된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20세기 초의 상대성이론 혁명이나 양자역학 혁명과 동일한 방식으로 일어났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코페르니쿠스 혁명』은 『과학혁명의 구조』와는 독립적인 고유의 가치를 갖는다.『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서양 천문학뿐만 아니라 서양 문화 전체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사건으로 평가되는 근대 천문학 혁명의 의미를 비전문가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천문학 혁명에 대해 쿤이 제시한 해석은 흥미롭고도 독창적인 것이었다.
김명자 선생님의 번역을 통해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된 지도 어언 30년이 넘었다. 과학지식의 진화에 대한 쿤의 사상은 우리나라 학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숱하게 많은 논의들을 낳았다. 쿤이 제시한 ‘패러다임’의 개념은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갔고, 이제는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일상적으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지문에서도 쿤의 사상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쿤의 사상은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쿤이『구조』에 등장하는 새로운 사상을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는지, 그 사상의 구체적인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떨어지는 사과에 관한 뉴턴의 일화가 다소 단순화되고 과장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것처럼, 패러다임의 개념을 떠올리게 된 쿤의 일화 역시도 단순화되고 과장된 채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쿤의『구조』가 소개된 지 30년이 지나 그 내용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오늘,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쿤의『구조』에 대한 또 다른 논의라기보다는 어떻게 쿤이『구조』에서의 착상을 떠올릴 수 있었는지에 대한 반성적인 재검토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의 처녀작인『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코페르니쿠스 혁명』이『구조』로 이행하기 위한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했다면, 우리는『코페르니쿠스 혁명』과 『구조』사이의 연결고리가 단단한지의 여부에 대해 다시금 물어볼 수 있다. 두 저서 사이의 연관이 그만큼 긴밀하기 때문에,『구조』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도 이제 우리는 『구조』뿐만 아니라 매끄러운 우리말 문장으로 번역된『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쿤의 사상에 대한 포괄적이고 비판적인 검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쿤의『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우리에게 사상사적인 관점에서 과학의 역사에 접근하는 것의 의의를 다시금 일깨워준다는 의미도 갖는다. 오늘날의 과학사에서는 쿤의『코페르니쿠스 혁명』과 같은 거시적이고 사상사적인 접근보다는 미시적이고 사회학적인 접근법을 채용한 저작들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과학사라는 학문분야의 최신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최신의 경향이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 시대의 저작을 되돌아봄으로써 오늘날의 저술들에 대해 반성적으로 비판할 수 있으며,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우리에게 이러한 비판을 위한 소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만약 우리가 쿤의 책을 통해서 과학적 지식이 진화하는 과정에 대한 유의미한 깨달음과 통찰을 얻을 수 있다면, 이는 과학사에 대한 사상사적 접근이 갖는 고유한 특징과 장점이 여전히 유효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까닭에, 60년 전에 출판된 이 책의 우리말 번역본이 출판된 것이 시기적으로 ‘늦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쿤의 사상, 더 나아가 서양의 과학지식이 발전하는 양상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를 위한 훌륭한 ‘출발점’이 될 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독자들은 과학사․과학철학 전공자 정동욱 선생님의 번역을 통해 쿤의『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매끄러운 한국어 문장, 책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심한 주석은 이 번역이 충분히 믿을만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 책의 번역본 출간을 계기, 뛰어난 과학사가이자 과학철학자였던 쿤의 과학사상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금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이 기회를 빌려 옮긴이인 정동욱 선생님께 진심어린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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