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멍청한 질문들을 계속 하는 것

강형구 2020. 11. 21. 17:40

   나는 오래 전부터 멍청한 질문을 계속 해 오고 있다. 하나의 예를 들겠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데카르트가 해석 기하학을 발명했다는 사실로부터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떠올렸다. 그림처럼 상상할 수 있는 혹은 도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기하학적 문제들을 해석 기하학의 언어로 공식화할 수 있을까? 달리 말해, 우리가 시각적 이미지를 이용하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하학의 문제들을 해석 기하학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당시의 온라인 커뮤니티였던 [수학사랑]에 올렸는데, 이에 대한 대답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이상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이 의미가 있는 질문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상대성 이론에 대한 글들을 읽고 있는 요즘 나는 여전히 계속 멍청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이다. 우리는 지구 위에 있으면서 어떤 단단한 막대의 길이를 1m라고 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에 따르면 중력장이 있는 곳에서는 중력장이 없는 곳에 비해 막대의 길이는 약간 줄어들고 시계의 시간 간격은 약간 늘어난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지구 위에 있는 막대의 길이를 1m라고 할 수 있을까? 정확히 말해 1m보다 약간 작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만약 막대의 길이가 약간 줄어든다면, 이 막대는 강성(rigidity)을 유지한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길이가 줄어들긴 하지만 막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물체들도 같은 비율로 줄어들기 때문에 막대의 강성은 유지된다고 보아야 할까?

 

   이런 질문을 어떤 물리학 교수님께 던졌는데, 교수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두 길이 사이의 차이는 너무 미세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안 됩니다. 또한 강성의 경우, 먼저 강성을 제대로 정의해야만 이에 대한 답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답을 듣고 나는 내가 참으로 멍청하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했다. 그리고 나는 왜 내가 계속 이렇게 멍청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에 대해 잠시 고민을 해 보았다. 그런데 대답은 퍽 단순했다. 내가 멍청하기 때문에 멍청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말 똑똑하다면 멍청한 질문을 던질 이유가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지구 위에 사는 물리학자는 지구 위에 있는 단위 길이가 지구를 비롯한 다른 질량체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그래서 마치 일종의 관성계라고 여겨질 수 있는 어떤 기준계의 단위 길이에 비해 짧다고 말할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바로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이다. 그런데 이 중력장 방정식은 어떤 과정을 통해 유도되었나? 아인슈타인은 등가 원리 사고 실험과 회전 원판 사고 실험으로부터 일정한 중력장의 효과를 일정한 가속도의 효과와 동일시하고, 일정한 가속도의 효과를 시공간 곡률과 동일시할 수 있음을 추론했다. 그리고 상대성 원리의 일반화를 일반 공변성이라는 수학적 조건으로 공식화하여, 이로부터 에너지와 운동량 보존 법칙을 만족시키면서도 뉴턴의 중력 이론을 근사적으로 도출하는 장 방정식을 추론해냈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은 사고 실험, 수학적 제약 조건(일반 공변성)의 부여, 이전 이론과의 근사적 일치, 물리학에서의 주요 보존 법칙들을 만족시키는지의 여부 검토 등을 통해 도출된 셈이다. 이렇게 도출된 중력장 방정식은, 측정을 통해 확인된 질량-에너지 분포 값을 입력할 경우, 우리가 있는 곳의 단위 막대가 얼마나 줄어들어 있는지 말해 준다. 즉, 이론은 우리가 지구 위에서 보고 있는 물체의 길이 1m가 물리학적 기준 물체의 길이 1m와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 우리는 측정 도구가 말해주는 값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측정 도구의 값을 이론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이 이론이 맞는지의 여부는 늘 두 개의 구분되는 물리적 상황이 일치할 때의 값을 비교함으로써 확인해야 한다. 시계를 오랫동안 자유 운동시키고 난 후 그 시계를 중력에 의해 계속 속박되어 있던 다른 시계와 비교하거나, 중력이 약한 곳에서 쏜 빛을 중력이 강한 곳에서 비교하거나, 중력장이 강했을 때의 항성 위치 측정값을 중력장이 미미했을 때의 항성 위치 측정값과 비교해야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막대 길이의 변화를 서로의 근방에서 확인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근방에서 서로 같은 길이를 갖는 두 단단한 막대는, 하나의 막대가 그 어떤 복잡한 경로를 거쳐서 원래의 막대 근처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늘 동일한 길이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이러한 경험적 사실을 반박하는 실험적 관측 결과를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