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일반 상대성에 대한 초기의 철학적 해석들

강형구 2021. 2. 21. 19:38

토머스 리크먼, “일반 상대성에 대한 초기의 철학적 해석들”(2018. 5. 7.)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에서

Thomas Ryckman, “Early Philosophical Interpretations of General Relativity”

from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18. 5. 7.)

 

일반 상대성 이론에 관한 초기의 철학적 해석들은 네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① 마흐주의자 : “관성의 상대화”를 실현했다고 본다. 원거리 동시성을 조작주의적으로 취급했음을 높게 평가한다.

② 칸트주의, 신칸트주의 : 종합적인 “지성적인 형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형식이 다름 아닌 일반 공변성의 원리라는 것이다.

③ 논리경험주의 : 물리적 이론의 경험적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규약”들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④ 물리학의 기하학화를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 : 에딩턴, 바일. 초월적 관념론의 입장에서 중력과 전자기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1. 철학적 새로움을 찾기(The Search for Philosophical Novelty)

 

   1919년 5월 29일에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이 일식을 관측했는데, 이는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최초의 경험적 시험이었다. 1919년 11월 6일에 영국의 왕립학회와 왕립천문학회의 연합 회의에서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옳음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이다. 상대성 이론에 의해 일식 때 별빛은 1.75호초 휘어질 것이라고 예측되었고, 이 예측은 잘 들어맞았다. 이후 일반 상대성 이론은 철학적 관심과 탐구의 중심이 되었다.

   

   이 시기 버트런드 러셀은, 모든 철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자신의 형이상학적 체계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상대성 이론을 통해 칸트의 선험적 종합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막스 폰 라우에의 경우, 상대성 이론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잘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2. 마흐의 실증주의

2.1. 초기 아인슈타인에 대한 영향

 

   아인슈타인의 초기 논문들은 대부분 플랑크의 작용 양자(1900년)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학생 시절 자신이 마흐의 『역학의 발달』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는 1905년 특수 상대론 논문의 조작주의적 특성에서 잘 드러난다.

 

2.2. “관성의 상대화”?

 

   물체의 관성 질량과 운동은 그 물체를 둘러싼 모든 다른 질량체들의 영향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마흐의 개념이 일반 상대성 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16년 논문의 전반부에서 아인슈타인은 이와 같은 마흐의 영향을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은 일반 공변성(자연 법칙의 형식 불변성)을 일반 상대성의 원리와 혼동했다. 마흐의 죽음에 대한 애도사에서도 아인슈타인은 마흐의 개념이 일반 상대성 이론 개발을 위한 중요한 동기를 부여했음을 밝히고 있다.

 

2.3. 실증주의와 “구멍 논증”

 

   1916년 논문의 3절에서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중력장 방정식에 대한 일반 공변성의 요구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마지막으로 남은 물리적 객관성을 앗아간다. 이는 마흐의 현상주의(phenomenalism)과 연결되었다. 우리의 모든 시공간 검증은 시공간 일치들의 결정과 같다. 오직 시공간 일치와 같은 위상적인 관계들만이 임의적인 좌표 변환 아래에서 불변하므로, 우리의 모든 물리적 경험은 궁극적으로 그와 같은 일치들에로 환원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아인슈타인의 언급은 마흐주의자들로 하여금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마흐의 현상주의를 옹호하고 있다고 판단하게끔 만들었다. 예를 들어, 마흐주의자였던 요세프 페촐트(Josef Petzoldt)는 1921년에 일반 상대성 이론이 마흐의 관점에 부합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만약 한 이론이 일반적으로 공변하면 시공간 다양체의 점들은 내재적인 주된 정체성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계량 장과 독립적인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물리적 장이 없는 텅 빈 공간에는 물리적 실재성이 부여되지 못한다. 시공간 좌표들은 물리적 사건들을 식별하기 위한 임의적인 이름표들에 지나지 않는다.

 

2.4. “마흐의 원리”

 

   아인슈타인은 모든 관성적 효과들을 상대화하고자 하는 마흐의 프로그램을 완전하게 이행하기 위해서 우주상수를 덧붙였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세 기둥이 마흐의 원리(계량 장이 에너지-운동량에 의해 완전히 결정), 일반 공변성, 등가 원리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마흐의 원리를 얼마나 충족시키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예를 들어, 드 지터는 물질이 없는 경우의 장 방정식 해가 존재함을 보였다.

 

2.5. 반-실증주의의 출현(Emerging Anti-Positivism)

 

   일반 상대성 이후 통일장 이론을 추진하면서 아인슈타인은 점점 실재론적 입장을, 최소한 반실증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3. 칸트적, 신칸트주의적 해석

3.1. 특수 상대성에 대한 신칸트주의자들의 해석

 

   헤르만 코헨과 파울 나토르프의 마르부르크 학파는 신칸트주의 학파였다. 이에는 에른스트 카시러도 포함된다. 이들은 물리과학과 수학의 철학에 관심을 가졌다. 주목할 만한 저서로 다음과 같다. 카시러, 『실체 개념과 기능 개념』(1910). 나토르프, 『정밀과학의 논리적 기초』(1910). 카시러는 10년 후 일반 상대성 이론조차도 비판적 관념론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시간과 공간이 감각 인상들의 모음인지 아니면 독립적인 지성적 형식인지의 문제가 있다. 신칸트주의자들은 후자의 입장을 선호했다. 신칸트주의자들은 빛 공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빛 공준은 뉴턴적인 원격작용의 신비로운 절대주의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3.2. 면역 전략(Immunizing Strategies)

 

   1919년 11월에 일반 상대성 이론의 경험적 성공이 공식화된 이후, 칸트주의를 전적으로 고수하려는 입장은 거의 없었다. 셀리엔(E. Sellien)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칸트의 관점은 오직 직관적인 공간에만 관련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물리적 공간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슈나이더(Ilse Schneider)의 경우, 칸트의 이론은 3차원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간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4차원 시공간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칸트의 입장을 특정한 영역에 국한시키고 이 영역이 물리학에서의 결과와는 관련이 없다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3.3. 초월적 감성학을 포기하느냐 혹은 새로 꾸밀 것이냐(refurbishing)

 

   칸트주의자들은 상대성 이론에 의해 칸트 철학의 어떤 부분이 교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칸트가 유클리드 기하학을 순수 직관의 형식으로서 상정한 것이 문제였다.

 

   빈터니츠(Winternitz, 1924)의 경우, 시간과 공간은 칸트의 생각과 달리 순수 직관의 형식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인과성, 연속성, 충분한 근거의 원리, 보존 법칙 등이 그와 같은 순수 직관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이러한 다른 원리들 역시 양자역학에 의해 그 타당성이 의심된다.

 

   볼레르트(Bollert, 1921)의 경우,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시간성(연속의 질서)과 공간성(공간적 순서의 결정성)이 물리적 지식의 선험적 조건들임을 보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객관화의 단계를 진전시켰다. 물리적 대상의 개념에서 주관적인 요소들을 제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볼레르트에 따르면 이러한 객관화가 비판적 관념론의 핵심이다. 따라서 칸트의 선험주의는 상대성 이론과 모순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볼레르트의 입장은 카시러의 입장과 유사했다.

 

3.4. 일반 공변성 : “결정의 단일성”의 종합적 원리

 

   일반 상대성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신칸트주의적 해석은 에른스트 카시러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1921년)이다. 카시러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핵심적인 인식론적 의의는 일반 공변성의 요구에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마르부르크의 초월적 관념론에서의 물리과학의 인식론은, 칸트의 초월적 감성학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포함할 수 있는 인식론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물었다. 신칸트주의자들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인식 비판”에 대한 결정적인 시험으로 간주했다.

 

   카시러는 “일반 공변성이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물리적 객관성의 마지막 잔여물을 없앴다”는 아인슈타인의 언급에 주목했다. 시공간 좌표들은 오직 사건들(일치들)에 대한 이름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카시러는 칸트의 원래 의도는 오직 공존과 계열의 개념만이 모든 물리적 지식의 전제라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카시러는 일반 공변성을 물리적 지식의 대상 구성을 통제하는 “결정의 단일성”의 방법론적 원리가 최근에 이르러 세밀화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의 초월적 관념성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4. 논리경험주의

4.1. 방법론의 교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자들이었던 슐리크, 라이헨바흐, 카르납의 주된 준거점이 되었다. 슐리크는 1917년에 『현대 물리학에서의 시간과 공간』을 썼다. 아인슈타인은 이 책에 대해 열광적인 평가를 보였다. 이 책은 푸앵카레의 규약주의를 옹호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카르납은 1921년에 박사학위논문 『공간』을 썼고, 이 논문은 1922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논문은 공간 개념의 변환을 다룬다. 공간의 직관적, 물리적, 형식적 개념을 구분하였다. 직관적 공간의 위상학이 특정한 선험적, 현상학적 조건이 된다.

한스 라이헨바흐는 1918-1919년 겨울학기에 베를린 대학에서 열린 아인슈타인의 첫 번째 일반 상대성 이론 세미나에 참여했다. 그는 학생 5명들 중 1명이었다.

 

   상대성 이론에 대한 철학적 분석은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의 주요 논제들을 제시해 주었다. 논리경험주의는 물리 이론의 선험적 요소들을 규약이라고 해석했다. 이론적인 개념들을 관측과 연결할 때 규약들이 필수적인 역할을 하며, 이론적 용어들을 관측적 언어로 정의하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동시성의 규약성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분석은 논리경험주의에게 방법론적 패러다임의 역할을 했고, 라이헨바흐의 논리적 분석에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물리학 이론을 주관적(정의적) 부분과 객관적(경험적) 부분으로 나누는 작업을 진행하게끔 만든 것이다.

 

4.2. “상대화된 선험성”에서 “기하학의 상대성”으로

 

   기하학의 상대성은 보편력의 도입 및 계량적 규약주의를 통해서 구현된다. 자연에 대한 수리과학에 있어 경험적 인식을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은, 물리 이론의 수학적 개념들을 물리적 실재의 요소들과 연관시키는 동등화의 정의들이다. 라이헨바흐의 구성적 공리화(1924)에서 그는 시공간의 계량적 속성들은 위상적 속성들에 비해서 덜 근본적이라고 주장했다. 인과적 질서에서 시간적 질서가 비롯되며, 시간적 질서에 의해서 계량적 속성들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시간에 대한 인과적 이론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라이헨바흐의 첫 번째 저서(1920)는 신칸트주의적인 관점에서 작성되었다. 대상 개념을 ‘구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론 특수한 “상대화된 선험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 저서에서 “동등화의 원리들(coordinating principles)”은 지각 자료들을 질서 짓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원리들로서 나타난다. 구성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라이헨바흐는 이 저서에서 새로운 방법론으로서 “과학 분석의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후 슐리크는 라이헨바흐와 서신 교환을 하며, ‘동등화의 원리들’은 푸앵카레가 말한 규약과 동일하다고 주장했고, 라이헨바흐는 이에 동의했다. 1922년 경에는 라이헨바흐의 성숙한 규약주의적 관점이 등장했다. 특정한 계량적 지시자를 선택해야만 시공간 계량에 대한 경험적 결정이 이루어진다. 동등화의 정의가 규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한소의 측정 막대를 실질적으로 단단한 물체로서 상정한다. 선택된 계량적 지시자는 물리적 힘에 의한 수정 요소들을 통해 교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물체들을 같은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보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야 한다. 이 경우, 시공간 계량의 본성은 경험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

 

   태양 중력장을 통하는 빛 광선의 경로는 비유클리드적이다. 그런데 라이헨바흐에 따르면 이 결론은 측정 막대를 통제하는 규약에 의존한다. 보편력을 허용할 경우 여전히 유클리드 기하학을 유지할 수 있다. 라이헨바흐는 보편력을 허용하지 않는, 기술적으로 단순한 이론을 선호해야 한다고 보았다.

 

4.3. 라이헨바흐의 계량적 규약주의에 대한 비판

 

   라이헨바흐에 따르면 중력 그 자체는 보편력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이르면 계량적 속성들이 포기된다. 시공간 구조는 시간의 인과적 이론으로 환원된다.

 

   이에 대해 리크먼은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첫째, 라이헨바흐는 일반 상대성의 일반적으로 굽은 시공간을 편평한 민코프스키 시공간들의 조각들을 기운 것으로 본다. 이는 잘못된 경향이라는 것이다. 둘째, 중력의 조석력과 같은 힘을 보편적인 힘, 규약적인 힘이라고 보기 어렵다. 셋째, 무한소의 강체 막대 개념은 일시적인 개념일 뿐이다.

 

   그러나 나(강형구)는 리크먼의 비판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측정 막대의 행동 그 자체가 중력 이론 그 자체에 기초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측정 자체가 동등화 정의에 의존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5. “물리학의 기하학화” : 플라톤주의, 초월적 관념론, 구조주의

 

5.1. 서로 다른 동기들

 

   상대성 이론이 등장한 이후 물리학을 기하학으로 환원하자는 논의가 제시된 바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의 기하학화로서 간주되었다. 바일(Hermann Weyl) 등과 같은 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 17세기 이래로 중지되어 있던 기하학화의 전통을 부활시켰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 자신은 이와 같은 물리학의 기하학화 개념에 고도로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힐베르트는 물리학이 4차원의 유사-기하학이라 보았다. 공간 차원과 시간 차원이 구분되므로 유사-기하학인 것이다. 힐베르트는 공리적 방법을 옹호했다. 바일, 에딩턴은 유사-리만 기하학을 일반화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칼루차는 5차원 리만 기하학을 사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바일과 에딩턴의 관점은 수학적 실재론 또는 플라톤주의에 근거한 것이 아닌, 초월적 관념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두 가지 이론적 경로를 모두 따랐다. 첫째, 리만 기하학을 일반화시키는 방법. 둘째, 추가 차원을 덧붙이는 방법. 아인슈타인은 통일 물리학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 그의 초기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1930년대에 많은 지도적인 물리학자들은 통일장 이론을 통해 물질의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기하학적 통일의 추구에 아인슈타인은 30년의 시간을 할애했고, 이 기간 동안 아인슈타인의 연구 방법론은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은 논리적 단순성과 같은 수학적 미학을 고려했고, 본질적으로는 철학적 이유들 때문에 채용한 특정한 수학적 구조들을 사용했다.

 

   1933년의 강의 “이론 물리학의 방법에 대하여”에서 아인슈타인은 창조적 원리가 수학 속에 있다고 언급했다. 물리적 실재가 연속적인 장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믿음은 양자역학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되었다.

 

5.2. 시작 단계 : 중력을 “기하학화” 하기

 

   계량 텐서는 길이와 시간에 대한 측정 가능한 계량적 관계의 근저에 있는 기하학적 양이다. 중력의 강도는 시공간 곡률의 정도로 대체된다. 이 곡률은 조석력(tidal force)에 의해 표현된다. 두 개의 자유 낙하하는 물체들이 서로 근접하는 것을 통해 표현된다. 일반 상대성에서 자유 낙하하는 물체의 방정식은 측지선 방정식이 되고, 물체의 가속은 사라지며 자유 낙하 운동은 관성 운동과 식별불가능하게 동일해 진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중력은 기하학화 된다. 시공간의 기하학 속에 포함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중력이 기하학으로 환원된다는 주장에는 반대했다. 이러한 주장은 관성과 중력의 통합이라는 자신의 이론의 핵심적 성취를 잘라내기 때문이다.

 

5.3. 기하학화의 확장

 

   일반 상대성 이론의 중력장 방정식은 잠정적인 것이었다. 좌변은 시공간의 곡률(기하학)을 나타내는데, 잘 다듬어진 대리석과도 같다. 우변은 물질-에너지에 대한 비기하학적이고 현상적인 표현인데, 이는 낮은 질의 나무와도 같다. 이 이론에서 오직 중력장만 직접적인 기하학적 의의를 가지고, 다른 장들은 그렇지 못했다. 중력장과 전자기장 사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비대칭성에 대해서 불만을 느꼈다. 그는 중력장과 전자기장을 동일한 장의 서로 다른 구성 성분으로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전개했다. 이와 같은 통일장 이론의 추구를 위해서는 일반 상대성의 리만 기하학을 일반화할 필요가 있었다.

 

5.4. 순수한 무한소 기하학

 

   수학자 헤르만 바일은 1918년에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문제가 되었던 비대칭성을 순수한 “무한소 기하학”을 통해서 제거할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막대의 길이 역시 같지 않을 수 있다고 더 기하학을 일반화시켰던 것이었고, 이를 통해 맥스웰 방정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일은 이를 근거로 기하학과 물리학의 개념은 동일하며 물리적 세계의 모든 것은 시공간 기하학의 표명이라고 주장했다.

 

   1920년에 바일은 물질의 입자 구조가 시공간 기하학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렸다. 그러나 바일은 양(magnitude)의 상대성에 대한 자신의 인식론적 원리가 일반 상대성을 위한 더 우월한 인식론적 틀이라고 믿었다. 바일은 각각의 시공간 점에서 길이의 단위인 게이지(gauge)가 변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바일의 주장은 경험적으로 지지되지 못했다. 바일에 따르면 화학 원소들의 원소 스펙트럼이 안정될 수 없는데, 실제 관측 결과는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5.5. 에딩턴의 세계 기하학

 

   일군의 물리학자들은 모든 비중력 물리학을 통합할 수 있도록 아인슈타인 이론에서의 리만 기하학을 적합하게 일반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시도하게 되었다. 1921년 12월, 테오도르 칼루차는 5차원 리만 기하학을 통해서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하고자 했다. 그해 2월, 에딩턴은 바일의 4차원 기하학을 더 일반화시켰다. 에딩턴의 이론에서는 오직 동일한 방향을 가리키는 근접하는 벡터들만을 서로 비교할 수 있다. 에딩턴의 이론을 “아핀 장의 이론”이라고 부른다.

 

   세계 기하학은 순수하게 수학적인 구성이다. 완전히 비개인적인 세계의 관념을 위해 필요한 구조적 속성들을 갖고 있는 구성인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의 발전에 따라 세계 기하학이 그와 같은 이상적, 비개별적 구조를 나타내리라는 기대는 포기하게 되었다. 대신 이 이론은 틀 또는 시각적 표상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의 중력 법칙은 일종의 정의로서 나타난다. 에딩턴은 자신의 세계 기하학 접근법이 물리학의 근본적인 법칙들의 근원에 대해 새롭게 조명해준다고 보았다. 또한 이는 이후 그가 수행하게 되는 프로그램 즉 근본 법칙들을 대수적으로 도출하는 프로그램의 동기를 부여해주었다.

 

5.6. 범기하주의에 대한 마이에르송의 견해

 

   에밀 마이에르송은 1925년의 저서 『상대론적 연역』에서 아인슈타인의 “물리적 세계의 이성적 연역”을 바일과 에딩턴의 중력과 전자기정의 사변적인 기하학적 통합과 구분했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은 범기하주의를 헤겔의 논리학과 비교했다. 마이에르송은 바일과 에딩턴의 관념주의를 물자체와 인식 주체를 혼동한 것으로 비판했다.

 

   마이에르송은 그 본성상 순수하게 수학적인 또 다른 직관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 바일의 미분기하학에는 비교의 적분가능한 관계와 적분불가능한 관계 사이에 근본적인 구분이 존재한다. 후자는 기초적이고 인식론적으로 특권을 가지지만, 무한소의 균질적인 공간이 광역적인 비균질적 공간과 양립가능함이 보일 경우에만 정당화된다. 에딩턴은 초월적 관념론의 직관적 기초보다도 더 우월하고 완전히 일반적인 개념적 기초를 찾았다. 그는 기하학 안에서 상대성 이론의 객관적인 4차원 세계를 구성하고자 했다. 그는 이를 위해 특히 비계량적인 4차원 아핀 접속을 이용했다. 그는 아인슈타인 이론의 경험적으로 입증된 적분 가능한 계량적 관계를 자신의 이론 내에서 도출해낼 수 있었다.

 

5.7. 구조적 실재론?

 

   통일장 프로그램에서는 외부 세계의 근본적 구조를 수학이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일종의 과학적 실재론인 구조적 실재론과 관련되는 것처럼 보인다.

 

   인식론적인 구조적 실재론은 이론의 방정식들에 의해서 파악되는 사건들 사이의 인과적 혹은 양상적 관계들만을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버트런드 러셀이 1926년의 강연에서 이와 같은 입장을 최초로 제시한 바 있는데, 이때 러셀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존재론적인 구조적 실재론에서는 물리적 세계의 구조적 측면들만이 존재론적으로 근본적이라고 본다.

 

   구조적 실재론에서는 이론 변동 간에도 수학적 구조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고 보며, 이는 기하학적 통합의 개념과도 잘 부합한다. 푸앵카레 역시 구조적 실재론과 비슷한 관점을 취했다. 객관적 실재는 오직 수학적인 법칙들을 통해 표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바일과 에딩턴의 경우, 중력과 전자기장 법칙들이 관측자 독립적인 실재에 관한 기하학적인 공통 틀로부터 비롯됨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입장은 도구주의 또는 과학적 실재론과는 그 지향하는 방향이 달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