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권위보다는 자유를, 환상보다는 상식을

강형구 2021. 6. 5. 16:10

   내가 철학적인 글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읽는 이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함께 생각해보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자연 세계의 본질을 기술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두 학문은 수학과 물리학일 것이다. 그리고 전문적 학문인 수학과 물리학을 잘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적 재능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 수학과 물리학을 잘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나는 수학과 물리학의 본질적인 개념들을 ‘이해’ 혹은 ‘납득’하는 데에는 유별나게 특출한 지적 재능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전한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개념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철학이 특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 일반적 지성인들을 위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지식이 전문적이고 난해해질수록 이 지식에 불필요한 환상이나 오해가 덧붙고 이와 더불어 이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부당한 권력이 주어지는데, 나는 일반인들을 위한 철학이라는 학문이 이러한 환상과 오해를 해소하고 그 권력의 부당함을 밝히는 데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게 철학이란 너무 쉬운 이야기를 불필요하게 어렵게 하는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인 학문이다. 철학이란 곰곰이 따지고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괜히 복잡하게 만들고 그것에 덧붙일 필요가 없는 환상을 덧붙이는 사람들에 대해 저항하는, 일반 사람들의 상식을 되찾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내 생각에 철학적 이성은 보편적이다. 누구나 철학적 이성에 접근할 수 있다. 다만 그 다다르는 시기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지성적 재능은 보편적이지 않다. 특출한 지성적 재능은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보유하며, 그렇기에 이러한 재능은 유전적인 우연의 결과이자 일종의 행운이라 보는 것이 옳다. 어떤 사람이 철학적 이성과 지성적 재능을 모두 갖고 있을 수 있지만, 그가 오직 지성적 재능만을 갖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재능을 통제하지 못한 채 그 재능에 끌려 다니고 말 것이다. 뛰어난 지성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유익한 일들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다. 철학적 이성은 지성적 재능이 이루어 놓은 업적들을 규명하여 이들을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접근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

 

   누군가 나에게 왜 과학철학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전문적인 과학자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연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깊은 열망을 갖는다. 그런데 오늘날 자연세계를 설명하는 지식인 자연과학적 지식은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어, 이 지식을 일반적인 지성을 가진 사람들 역시 충분히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때의 이해가 권위에 의한 강요와 훈육의 결과로 나타나는 숙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과서의 내용을 강제로 암기하고 이를 적용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어느 정도의 지성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내 생각에 과학철학은 과학적 지식을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이해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철학적 이성의 활동이자 그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는 철학은 인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차이와 차별을 끊임없이 평준화하려는 활동이다. 철학이 이러한 종류의 활동이기 때문에 철학은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과학철학은 비범한 과학자들의 과학적 업적을 평범한 철학적 이성을 가진 일반인들이 접근가능 하도록 만드는 활동이다. 분명 과학철학이 적지 않은 인내와 사고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철학이 여는 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평등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