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회전, 돈다는 것

강형구 2021. 6. 26. 09:44

   회전(回轉, spin). 어떤 물체가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 물체는 자신이 아닌 다른 물체 주변을 돌 수도 있고, 그 자신을 하나의 축으로 삼아 돌 수도 있다. 그런데 물체는 왜 도는 것일까? 물체가 도는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한 물체는 다른 물체 주변을 다양한 방식으로 돌 수 있다. 다른 물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일정한 빠르기로 돌면, 그 물체의 궤적은 동그란 원이 된다. 그런데 대체 왜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일정한 빠르기로 돈단 말인가? 물체에 그렇게 돌고자 하는 본성이 있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일상적인 비유를 들자면, 내가 튼튼하고 가는 줄로 다른 물체를 매달고 힘을 써서 돌리는 것처럼, 두 물체 사이에는 일종의 힘이 작용하는 것 아닐까?

 

   내가 힘을 써서 물체를 돌리는 일, 내가 종이 위에 컴퍼스를 가지고 원을 그리는 일은 나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밖에 나가 하늘을 보면, 매일 태양은 뜨고 지고, 달은 뜨고 지고, 별들도 뜨고 진다. 이 천체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도는 것에도 여러 방식이 있다. 같은 빠르기, 같은 방향을 유지하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시시각각 빠르기도 달라지고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다시 돌아와야지 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돌다가 영영 떠나버려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어떤 사람은 원뿔을 이용해서 곡선들의 이론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 곡선들을 회전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은 한 점이 다른 점 주변을 같은 거리와 같은 빠르기를 유지하게끔 도는 것이다. 그런데 왜? 타원은 한 점이 다른 두 점과의 거리의 합을 일정하게 유지하게끔 도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러한 “왜?”라는 질문에 더 이상 답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낄 때 사람은 일종의 경이로움을 느낄 것이다. 물론 좀 더 단순한 자연의 과정에 의거해서 그러한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는 있겠지만, 좀 더 단순해진 그 자연 과정에 대해서도 다시 “왜?”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일이 있다. 지금까지는 돈다는 것을 도는 것 바깥에서 관찰했는데, 정작 지금 이 순간 우리 스스로가 돌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구형의 형태를 갖고 있고, 이 땅이 자신의 몸을 축으로 삼아 돌 뿐만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계속 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왜 우리는 이 땅이 스스로 돌고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우리가 가만히 있고 다른 천체들이 돌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자전이든 공전이든 지구는 질량을 가진 물체로서 자연스럽게 운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물체들이 자연스럽게 운동할 수 있도록 공간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공간이 주인이 아니라, 물체의 자연스러운 운동이 주인이고, 공간은 그 주인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시간은 좀 다르다. 시간은 세계 속 모든 물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인과적 과정이라, 세계 속에서 물체의 운동과 동등한 수준으로 주인 행세를 하는 것 같다. 세계 속 물체들은 자연스럽게 운동한다. 이 운동을 ‘낙하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회전에 관한 물음은 남는다. 왜 도는가? 돌아가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운동인가? 다른 공간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돌 수 있지 않는가? 무엇인가 돌다가 그것에서 다른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간 것 아닌가? 지금껏 질문들을 던져 놓았으니, 이제 다시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을 찾아보기로 한다. 언젠가 회전에 대한 전시를 기획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