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시공간철학 수업을 준비하며

강형구 2020. 10. 17. 12:26

   나는 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다. 내가 과학관에 2017년 7월에 입사한 이후 네 번째로 준비하고 있는 기증품 특별전 ‘도형의 아름다움’의 전시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간다. 전시 준비를 위해 기우항 교수님에 대한 책들과 논문들 및 기하학에 관한 책들을 읽었고, 기우항 교수님과 만나 대화를 여러 번 나누기도 했다. 이후 전시 스토리북을 직접 썼고, 그 스토리북을 토대로 전시 콘텐츠를 직접 만들었으며, 전시 공간과 분위기에 맞게 10번 정도 콘텐츠를 고쳤다. 전시를 위한 체험 전시품을 만들거나 빌렸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준비해서 만든 전시다. 물론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가 끝난 후의 또 다른 전시를 기약한다. 학예사가 하는 일은 전시를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원이자 학예사인 내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의 수업 “시공간철학”을 준비한다. 나는 아직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 않은 미성숙한 연구자에 지나지 않는다. 학문 연구는 더 이상 나의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지 않다. 설혹 내가 박사 학위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수업을 준비하는 것에서 나의 열정을 느낀다. 비록 이제는 나이가 많고 학문적으로 성공하기는 이미 늦었을지라도, 그런 현실적인 사실들과는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시공간철학에 대해 큰 흥미와 관심을 갖고 있다. 나는 이 분야에 대한 나의 학문적 역량이 일천함을 충분히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력하게나마 나의 능력을 이 분야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자 한다.

 

   이번 수업을 통해 시간과 공간에 대한 흄과 칸트의 입장, 마흐의 경험주의와 푸앵카레의 규약주의를 살펴보았으며, 지난 시간에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관해 논의했고, 다음 시간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관해 논의한다. 아인슈타인의 1916년 3월 논문을 직접 들여다보고, 아인슈타인 연구자들(존 노턴, 존 스테이철, 위르겐 렌, 미셸 얀센 등)이 그의 취리히 노트를 분석하여 얻은 결론도 살펴본다.

 

   이번에 일반 상대성 이론에 관한 수업을 준비하며 나는 잠시 아찔함을 느꼈다. 이 일반 이론에 이르면 시간과 공간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과 더 멀어진다. 우리가 평소에 경험을 통해 지각하는 시간과 공간은 일반 이론에서 더 이상 중요하게 기능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기준계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게 동일한 수학적 형식을 띤 물리 법칙으로 점-사건의 일치라는 물리적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기술하고자 한다.

 

   이러한 일반 공변성의 추구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은 더 이상 직접적인 물리적 해석을 잃는다. 시계로 측정한 시간 간격과 막대로 측정한 공간의 길이가, 수학적 방정식이 말하는 시간 간격과 공간 길이와 일치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물리적 측정은 수학적 방정식에 의해서 교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중력장 아래에 있는 단위 막대는 (근사적인) 관성계에 있는 단위 막대에 비해 그 길이가 짧고, 중력장 아래에 있는 시계의 시간 간격은 (근사적으로) 관성계에 있는 시계의 시간 간격보다 더 길다. 그런데 일반 공변성이라는 고도로 추상적인 조건을 따라 이론을 추구한 결과, 아인슈타인이 수성의 근일점 운동과 태양 및 목성 근처에서의 빛의 휘어짐이라는 관측 가능한 결과를 도출해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웠다. 시간과 공간이 직접적인 물리적 해석을 잃어버리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론이 새로운 예측들을 제시했고 이 예측들이 경험적으로 입증되었으니 말이다.

 

   추상적이고 수학적임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이론(상대성 이론)이 경험적으로 성공적이라는 것을 전제할 경우, 철학적 성찰은 이에 대해 어떤 성찰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상대성 이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사유하는 인간에게는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사유하는 인간은 과학 이론을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와 조화롭게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