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세 아이의 아빠

강형구 2020. 7. 12. 15:04

 

   2016년 12월 8일에 아내와 나 사이에서 첫째 아이(지윤)가 태어났고, 2020년 6월 16일에 둘째와 셋째 아이(서윤, 태현)가 태어났다. 쌍둥이 출생 이후 유가읍사무소에 방문해서 아이들의 출생신고를 마쳤으니, 우리 가족은 이제 공식적으로 5인 가족이 되었다. 서윤이와 태현이가 아내와 함께 산후조리원에서 나와서 우리 모두 한 집에서 함께 살게 된 지도 1주일이 넘었다. 지윤이 때 이미 경험했던 신생아 육아지만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특히 아이 하나가 아니라 아이 둘이라, 중간 중간 틈틈이 쉬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아내와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쌍둥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둘째 서윤이는 순하다. 분유를 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 이외에는 우리 부부가 크게 할 일이 없다. 셋째 태현이에게는 손이 많이 간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많이 울며, 표정 변화도 다양하다. 둘째는 외모나 성격이 나를 닮은 것 같고, 셋째는 아내를 닮은 것 같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 셋이 각자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실감하며 흥미로움을 느낀다. 세 아이를 보면서 지윤 혼자만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한 다양성을 실감한다. 동생들이 태어난 것이 우리 부부에게만 아니라 첫째 지윤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한다.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심과 배려심이 형성된다. 동생들로 인해 지윤이가 더 생각이 깊고 의젓해질 것이다.

 

   이런 저런 일들로 바쁜 와중에서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다. 학술대회에서 온라인으로 발표를 했고, 학술지에 투고를 했다. 며칠 전에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2019년 우수도서 온라인 역자 강연도 했다. 이제는 리 스몰린의 [다시 태어난 시간]의 주석, 참고문헌, 감사의 글 부분을 번역할 예정이고, 이 일이 끝나면 라이헨바흐가 1929년에 쓴 [물리적 지식의 목표와 방법]을 번역할 예정이다. 이들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자 해야 하는 일들이므로, 나는 고민하거나 주저하는 일 없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로 이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나의 작업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일들을 할 뿐이다.

 

   2009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삶을 마감했을 때 대학원생이던 나는 엄청난 슬픔에 잠겼다. 슬픔으로 인해 글을 제대로 읽고 쓸 수 없었던 나는 대한문 근처에 마련된 분향소에 찾아가서 오랫동안 기다린 후 고인에게 조의를 표했다. 그러나 올해 박원순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옛날의 슬픔을 느끼지는 못했다. 박원순 시장은 집권 여당의 일원으로서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시의 수장 역할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으며, 사실 확인이 완벽하게 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최근 그의 전 비서와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이처럼 박원순 시장이 집권 세력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것, 그러한 그가 윤리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에 있었다는 점이 나의 슬픔을 상당부분 덜어냈다. 또한 무엇보다도 나는 박원순 시장보다는 내 삶을 돌보는 게 더 급했다. 세상을 떠나간 사람보다는 얼마 전에 세상에 태어나 나의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내 아이들이 더 소중했다. 그래서 나는 박 시장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비교적 덤덤했다. 그의 공은 공이고, 과는 과다. 그가 없어도 서울시는 원만하게 운영되어야 하며, 후임 시장이 그의 뒤를 이어 서울을 잘 이끌어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 결말이 좀 더 아름다웠다면 박원순 시장은 새로운 세대의 모범이 되어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영감과 희망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다다를 수 있었지만 결국 이르지 못한 지점을 생각하면 몹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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