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과학관에서의 3년, 앞으로 남은 25년

강형구 2020. 7. 25. 10:16

   나는 31살부터 직장에서 일을 했다. 5년 6개월 동안 한국장학재단에서 일했고, 3년 동안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일했다. 한국장학재단에서는 공공기관 직원으로서 일하는 법을 배웠다. 연간 계획 수립, 사업 진행, 사업 결과 보고 등 일련의 업무 처리 과정을 배웠고, 공문서 쓰는 법을 숙달했다. 국립대구과학관에 입사한 이후 나는 지금까지 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로서 일하는 법을 배웠다. 과학사·과학철학을 전공한 연구원인 나는 과학기술자료를 수집해 조사‧연구하고,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 콘텐츠를 만들어 실제로 전시를 운영하는 경험을 쌓았다.

 

    나는 내가 앞으로 25년 이상 과학관에서 근무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정년이 65세로 연장될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향후 25년 동안 과학관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장품을 보관할 수 있는 시설, 소장품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비하고, 중요한 과학기술자료들을 꾸준히 수집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국립과학관의 경우 국립중앙과학관을 제외하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의 수량이 비교적 적은 편인데, 이는 국립과학관의 취약한 점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세계에 편입된 이후 비교적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적 성취를 이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었거나 생산되고 있는 가치 있는 과학기술적 사물들이 다량으로 존재하며, 이 사물들을 보관하고 연구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을 국립과학관들이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할 때 향후 국립과학관에게 꼭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연구를 기반으로 한 전시이다. 현재는 과학관에서 전시 주제, 전시 내용에 대한 대략적인 아이디어만을 제안요청서에 제시하고, 나머지 세부적인 콘텐츠에 대해서는 전시 업체에서 과학관에 제안해 오는 식으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전시를 하면 과학관 자체의 역량이 향상되기 어렵다고 본다. 최소한 전시(상설전시, 특별전시) 5개년 계획을 수립한 후, 그 계획에 맞도록 연구 인력을 배치하여 각 전시별로 최소 1년 정도 연구원들이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과학사ㆍ과학철학 전공자는 전시의 역사적 철학적 의의를 연구하고, 물리학 전공자는 물리학 관련 전시 아이템 발굴 및 이의 전시품 구현 방안을 연구하며, 공학 전공자는 실제로 전시품을 어떻게 설계할지 등을 연구한다. 이렇게 충분히 연구가 이루어질 경우 과학관이 주도적으로 전시를 진행해나갈 수 있고, 이때 전시 업체는 과학관이 갖고 있는 세부적인 청사진을 실물로 충실하게 구현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과학관이 지향해야 하는 또 다른 목표는 과학문화기관으로서 기능하는 일이다. 우리들은 대개 과학을 학교에서 배운다. 그런데 학교 이외에 과학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학교 이외에 과학에 대해서 일반적인 수준에서 자유롭게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도 어렵다. 물론 민간 영역에서 자생적인 방식으로 여러 모임들이 조직되어 그와 같은 과학문화 활동을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와 같은 조직들을 지원하는 공공부문의 기관 또한 필요하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과학모임을 지원하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체험하기 어려운 과학적 경험을 제공해주고,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강의를 듣거나 토론할 수 있는 문화의 장으로서 과학관이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본다.

 

    과학관에서의 남은 25년 동안 이러한 일들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이런 일들을 나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으므로, 과학관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힘을 모아 하나씩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 분명하면 적어도 길을 완전히 잃고 헤매지는 않을 것이며, 오래 기다리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성과가 조금씩 누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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