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기하학의 역사와 의미를 되돌아보는 기하학자

강형구 2020. 1. 10. 17:38

   나는 2018년에 처음으로 경북대학교 수학과 기우항 교수님을 뵙게 되었다. 기우항 교수님께서 대구과학관이 주관하여 진행하는 정책연구의 조사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2018년 이래로 기우항 교수님을 자주 찾아뵈었다. 찾아뵐 때마다 이제 자신에게는 필요 없는 것들이라며 이런저런 자료들을 많이 주셨다. 교수님께서 남기신 논문들과 연구 노트들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내용들(미분기하학 분야의 전문적인 논문들)이라 도저히 소화를 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교수님의 저술들 중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도 제법 많이 있었다.

  

   [기하학의 흐름], [기하학이란 무엇인가], [기하학의 발전과 전망], [기하학의 발전과 장래]. 이와 비슷한 제목의 논문 혹은 기고문들을 기우항 교수님의 자료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에 대한 내용이 담긴 PPT 발표 자료들도 다수 있다. 교수님께서는 경북대학교 위상수학 및 기하학 연구소장으로 재직하실 때에도 기하학의 전체 역사와 그 의의를 조망하는 글을 남기셨다. 이와 더불어 교수님의 자료 중에는 [한국수학의 발전]을 주제로 한 논문, 강연문 등도 자주 등장한다. 이는 교수님께서 기하학 전체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 수학의 발전 과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셨음을 뜻한다.

  

   나는 어제인 202019일에도 기우항 교수님을 방문했다. 2019년에 전북대학교와 협업하여 진행한 [경북대학교 수학 연구 전통의 역사] 보고서를 전달해드리기 위해서였다. 교수님을 방문하자 교수님께서는 이번에도 쓸 데가 있으면 쓰라고 자료 한 뭉치를 주셨다. 또한 교수님의 책상에는 현재 작성 중인 미분기하학 논문 원고가 놓여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80대인 오늘날에도 국내 다른 수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수학 논문을 작성하여 해외 저널에 투고하고 계신다 했다.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자 집념이었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내가 주목했던 것은, 기우항 교수님이 기하학자로서 전문적인 논문을 계속 집필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기하학의 역사와 의의에 대한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고찰 역시도 관심을 갖고 진행하고 계신다는 점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 수학의 역사, 한국 기하학 연구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게 된 것 같았다. 푸앵카레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철학자를 생각해보라. 이들은 전문적인 수학자 혹은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수학, 물리학의 역사와 그 철학적 의의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지 않았는가? 박세희 교수님, 기우항 교수님은 수학사, 수리철학에 관심을 가진 우리나라 수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잘 모르지만 이와 같은 전통을 잇고 있는 우리나라의 수학자들이 있을 것이다.

  

   비록 내가 기우항 교수님과 함께 전문적인 미분기하학 논문을 집필하지는 못하겠지만, 기하학의 발전과 그 의의에 관해 서술하는 글을 함께 쓸 수는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자로서 기우항 교수님의 수학사 및 수리철학 서술을 더 풍부하고 정교하게 보완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기우항 교수님과 함께 기하학에 관련되는 소규모 특별전시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좋은 협업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기하학의 발전 과정, 기하학이 갖는 의미 등을 글, 그림, 영상, 전시품 등을 활용하여 좀 더 친숙하고 풍부하게 일반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기하학의 역사와 의의에 대해 남기신 기우항 교수님의 글들을 읽는 것은 내게 과학사 과학철학 연구자이자 한국인 후학으로서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물론 나는 여기서 미래의 발전 여지를 본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수학사와 수리철학적 논의 역시 수학 못지않게 향후 많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청출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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