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정유년 새해맞이

강형구 2017. 1. 28. 23:18

 

   나는 금요일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아내와 딸 지윤이를 데리고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내려왔다. 차가 막히지 않을까 약간 고민했지만 다행히도 차는 전혀 막히지 않았고, 갓 생후 50일이 된 지윤이는 무사히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동했다. 부모님께서는 부산에서 반갑게 우리 가족을 맞아 주셨다. 나는 부모님 댁에서 짐을 풀고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한 후 한 숨 잤다. 점심식사를 한 후에는 온천장역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오랜 친구인 종수를 만나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나는 2월 말부터 대구과학고등학교에서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철학 수업을 가르쳐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최근에 나는 예전에 사 두었던 [과학교육: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역할]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부산에 내려올 때에도 이 책을 가지고 와서 틈틈이 읽었기에, 새해 전 날에는 이 책을 다 읽었다. 과학사 과학철학 전공자가 아니라 과학교육학을 전공한 선생님들 세 분께서 번역하신 책이라, 군데군데에서 오역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흥미롭고 수긍이 가는 내용들을 담은 책이었다.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해온 것처럼,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포함된 과학교육은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더 크게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음력으로 새해 첫 날이다. 정유년 1월 1일. 설날이나 추석처럼 명절 때에는 조상님들에게 차례를 지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버지와 함께 온천장에 있는 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고 돌아왔다. 차례상에는 떡국, 소고기 수육, 오징어와 문어, 튀김과 전, 나물, 각종 과일 등이 올라간다. 차례상을 차릴 때에는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등과 같은 규칙들을 기준으로 음식과 과일을 배열하는데, 우리 집의 경우에는 그러한 규칙들을 엄격하게 지키는 편은 아니다. 고조할아버지와 고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께 차례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인사드렸다. 그리고 조상님들께 이번에 새로 태어난 우리 딸 지윤이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차례가 끝나고 차례음식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후, 아내와 나는 지윤이를 부모님께 잠시 맡겨두고 근처에 있는 동래 롯데시네마에 가서 ‘더 킹’이라는 영화를 보고 돌아왔다. 영화는 2시간 정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한 영화였지만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내와 나는 집으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하고 낮잠을 한 숨 잤다. 그 후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낸 나는 저녁식사를 간단하게 한 다음 외투를 걸치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왔다. 예전에 다녔던 초등학교는 전과는 달리 많이 변해 있었고,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 다녔던 학원도 그 때와 달리 많이 쇠퇴해 있었다. 내가 수학능력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다녔던 대입재수학원은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것도 확인했다.

 

   얼마 전 부모님이 살고 계신 동네가 아파트 재개발지역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쭉 살아왔던 이 집도 조만간 허물어질 것이고, 그 자리에 새로운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이번에 부산에 와서도 거듭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은 내 마음과 같지 않게 끊임없이 변해 가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였던 내가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어 3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다 보면 40이 눈앞에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내 나이가 마흔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나는 언제까지나 마냥 부모님의 자식, 누나의 동생으로만 남아 있을 줄 알고 있었다.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흘러간다. 새로 자라나는 세대 앞에서 나는 점점 더 구식 세대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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