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달성도서관에 다녀와서

강형구 2017. 1. 14. 22:09

 

   아내의 출산 이후로 시내 서점이나 동네 도서관에 거의 가지 못했다. 휴일인 오늘, 모처럼 마음을 먹고 동네에 있는 달성도서관에 들렀다. 늘 그랬듯 나는 과학 관련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를 습관처럼 둘러본다.

  

   과학사에 관련된 좋은 책들이 많이 번역된 것은 참 다행이다. [서양과학의 기원들](데이비드 린드버그), [과학혁명](피터 디어), [객관성의 칼날](찰스 길리스피), [코페르니쿠스 혁명](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토머스 쿤) 등과 같은 책들을 우리말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저자들이 쓴 과학사 저술은 다소 부실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쓴 개론서나 기고문 모음집 형식의 책들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우리나라 안에서 오직 100명 정도만이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더라도, 평생을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그런 책을 쓰려는 야심이 우리나라 저자들에게도 필요할 것 같다. 우리나라 저자들 중에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와 같은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 [구조] 정도의 깊이를 갖는 책이라면, 그 책이 나 자신의 철학적 입장과는 상반되더라도 나는 무척 반가워할 것이다. 실제로 쿤의 [구조]는 나에게 그러했다. 라이헨바흐, 라카토슈(그의 수리철학 저술들) 등과 같은 저자들의 저술을 먼저 접했던 나에게 [구조]의 주장은 놀라웠고 위협적이었으며, 그 주장을 반박해야 한다는 강한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구조]를 읽을 때 느꼈던 흥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학부 과학철학 강의를 수강하며 그 책을 여러 주에 걸쳐 꼼꼼하게 읽었다. 쿤의 사상은 과학에 대한 독일 및 영국의 사상과 대결하고 있었으며, 당시 과학철학에 관해서는 다소 주변에 있던 프랑스의 사상(바슐라르, 뒤엠)과 맞닿아 있었다. 나는 [구조]를 읽었던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왜 [구조]와 같은 책이 미국에서 나왔는지, 왜 그 책이 그토록 큰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되물어왔다. 그만큼 [구조]는 그에 반대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중요한 책이다. 어떤 의미에서, 진정 위협적인 적은 나로 하여금 동지에 대해서 갖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토머스 쿤이 살아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를 위협할 수 있는 사상을 담은 책이 우리나라의 저자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저 헛된 기대에 불과한 것일까? 오늘 도서관에서 과학의 여러 주제들을 인문학적 주제들과 피상적으로 연계시켜 내용만을 억지로 채운 책들을 보니, 우리나라 과학저술가들의 역량이 10년 전에 비해 별반 발전한 게 없는 것 같아 씁쓸했다. [온도계의 철학]과 같은 책은 그나마 나에게 다소 위안을 주었지만, 최초에 영어로 쓰인 그 책을 다시 우리말로 옮겨 읽어야 하는 현실이 아쉬웠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과학의 역사, 과학의 사상에 대한 훌륭한 책들이 꾸준히 우리말로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과학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부터였다. 물론 우리나라의 과학사, 과학철학 관련 고등교육제도 환경이 여전히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관련 학과가 학부에 있는 대학은 하나에 지나지 않고, 관련 대학원 또한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과학사, 과학철학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은 반드시 생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오늘도 나는 도서관에서, 과학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를 서성이며 물리학에 관한 책 몇 권을 빌려가는 앳된 학생 한 명을 보았다. 그런 어린 학생들에게 도서관에서 발견한 훌륭한 과학책 한 권은 진정 멋진 선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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