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꿈과 현실

강형구 2017. 2. 4. 00:53

 

 

   나는 세속적인 욕심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대학원에 갔을 때도 나는 그저 내가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 자신의 삶을 충분히 건사할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대학시절부터 나는 독립할 수 있기를 열망했다. 내가 군복무를 장교로 한 이유는 장교 복무를 통해서 급여를 받아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독립적인 삶을 바랐을 뿐 성공하는 삶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살 수 있다면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을 충분히 감수할 생각이었다.

  

   나는 나이 서른에 대학원에서의 공부를 그만두고, 인문학 전공자가 취업하기 극도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를 악물고 구직전선에 뛰어들었다. 서른한 살에 취직을 하여 직장생활을 한 지 어느덧 5년이 지났다. 직장생활 5년을 하고 나니 힘들었던 나의 지난 시절들이 번지르르하게 윤색될 수 있음을 실감한다. 나는 과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거쳐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석사학위를 받은 후 공공기관에 취직하여 근무하며 박사과정을 수료한 사람이다. 나라 경제가 극도로 어려운 시기에 비교적 안정적이고 안전한 공공부문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대학원에서의 공부도 계속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공기관 직원으로서의 근무가 안정적이고 민간기업에 비해 편하다고 하여도, 원래 나의 꿈은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대학원 시절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것은 나로서는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숙소에서 학교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학교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연구실에 들어가 교육방송을 들으며 영어공부를 했고, 교육방송이 끝나면 내가 공부하고 싶은 책이나 논문을 읽었다. 오전 공부를 하고 점심식사를 한 후 학교를 한 바퀴 산책했고, 오후 공부를 하고 저녁식사를 한 후 다시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집으로 걸어 들어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취직 후에는 그런 삶을 살 수 없었다. 매일 직장에 출근해서 직장에서 정해준 일들을 해야만 했다. 물론 직장의 일은 충분히 보람된 일이다. 국민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니, 결국 나는 국민을 위해 일하면서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사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꿈꿔왔던 삶, 즉 연구하고 교육하는 삶을 직장에서는 살 수 없었다. 일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며 이런 얘기를 하고 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그나마 출퇴근 시간과 주말 시간은 나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주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주말에는 집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현실이 냉정하며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현실과 꿈 사이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일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끝내 책을 붙잡고 한 장이라도 더 읽어내려고 애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려고 생각하니 그저 아득하기만 할 뿐이지만,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에 충실하게 살다보면 논문자격시험도 합격하고 어설프지만 완전 엉터리는 아닌 학위논문도 쓸 수 있으리라고 희망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의 오랜 공부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기회도 나에게 찾아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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