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버지, [개인주의와 심적인 것] 요약 정리

강형구 2016. 10. 6. 07:42

 

 

버지(T. Burge),개인주의와 심적인 것("Individualism and the Mental")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을 생각해보자.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는 한 사람 A가 있다. A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명제 태도들을 갖고 있다. ‘나는 몇 년 동안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다’, ‘손목과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관절염의 통증이 발목에서 느껴지는 관절염의 통증보다 더 심각하다’, ‘관절염에 시달리는 것이 간암에 걸린 것 보다는 낫다등등. 위와 같은 명제 태도들은 옳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A그릇된 것으로 여겨지는 다음과 같은 명제 태도를 갖는다고 생각해보자. ‘요즘은 허벅지도 쑤시는데, 혹시 관절염 증세가 허벅지에까지 옮겨간 것이 아닐까?’ 만약 A가 자신의 이러한 추측에 대해서 의사 D에게 물어보았을 경우, 의사 D는 다음과 같이 답변할 것이다. “그런 걱정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관절염은 관절에만 일어나는 질병이고 근육에는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다음과 같은 반사실적 상황을 상상해보자. A의 모든 개인적인 특징들이 위에서 제시된 사고실험과 동일하지만, 반사실적 상황에서 A가 속한 사회에서는 관절염이라는 단어를 관절에서 발생하는 질환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류마티스성 질환들을 지칭하는 데에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 ‘요즘은 허벅지도 쑤시는데, 혹시 관절염 증세가 허벅지에까지 옮겨간 것이 아닐까?’라는 A의 추측은 그릇된 것이 아닌 옳은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만약 A가 이러한 자신의 추측에 대해서 의사 D에게 물어보았을 경우, 의사는 이전의 경우와는 달리 A의 추측이 그럴 듯한 추측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실험은, 환자의 물리적이고 비의도적인 심적 역사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환경의 차이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서 환자의 심적 내용이 달라짐을 보여주고 있다.

  

   위와 같은 결론은 단순히 관절염이라는 용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다양한 종류의 단어들에도 적용되는 결론이다. 이는 우리가 불완전한 이해를 갖고 있는 모든 개념들에 적용될 수 있는 사고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단어를 잘못 해석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것을 비교적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전문적 용어들, 즉 일반인들이 전문가에 비해서 불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는 용어들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슴고기라는 일상적인 용어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은 가슴고기라는 용어가 옆구리 혹은 엉덩이 부위의 고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그릇되게 생각할 수 있으며, 그 용어에 해당하는 부위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서면 동의가 있어야만 계약이 성립되었다고 계약이라는 일상적인 용어에 대해서 그릇되게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위에서 제시된 예들이 특정 용어의 사전적인 의미오해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위와 가은 개념적인 오류들을 매우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몇몇 개념의 내용에 대해 불완전한 이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들에 대한 명확한 명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러한 가능성으로부터 앞서 제시한 사고실험이 성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 B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명제 태도를 갖고 있다고 하자. 다른 사람 C가 희지 않은 백조의 사례 s를 제시하며 B의 그러한 믿음이 틀렸다고 지적할 경우, BC에게 나는 그 s가 백조인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반응할 것이다. 이 때 B는 개념적 차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B의 믿음이 갖는 오류는 개념적또는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좁은 의미에서 경험적인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명제 태도를 가지는 것은 필수적이며, 이 때의 부분적인 이해라는 것은 흔하고 정상적이다. 명확한 명제 태도가 사회적 상황에 의해 다른 내용을 갖는다는 것은, 사회적인 의사소통적 실천이 명제 태도의 내용을 고정하는 하나의 요소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알다’, ‘후회하다’, ‘깨닫다등과 같은 동사들은 순수하게 개인의 주관적인 기여를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동사들은 위에서 제시된 사고실험에 해당되지 않는 것 아닌가? 또한 이른바 지표적 성질을 가지는 단어들, 즉 세계와 언어적이지 않고 존재적으로(de re) 연관되는 단어들에는 위와 같은 사고실험이 적용되지 않는 것 아닌가? 이러한 반론들을 토대로, 위에서 제시된 사고실험을 전통적인 철학적 입장에서 재해석하려는 네 가지 방법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첫 번째의 재해석 방법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제시된 사고실험에서 그릇된 개념에 부여된 속성들이 주체의 심적 태도가 아닌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에 부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앞서 제시된 사고실험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입장에서는 내 허벅지에 관절염이 전염된 것이 아닐까라는 A의 믿음이 A의 허벅지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관절염이 아닌 류마티스성 질환에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관절염이라는 용어에 대해 주체가 갖는 불투명한 명제 태도들(주체의 관점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들을 반영하는)의 발생한다는 사실을 부당하게 무시한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두 번째의 재해석 방법은, 제시된 사례에서처럼 주체가 불완전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경우, 주체의 태도와 내용이 불확정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체가 개념에 대해 불완전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경우에도 주체는 주저없이 그 개념에 대한 내용을 부여한다. 이러한 주체의 태도와 내용이 불확정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주체가 개념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할 때의 주체의 태도와 내용만이 확정적이라는 가정을 전제하는 셈인데, 이러한 전제는 부적절하다.

  

   세 번째 재해석 방법은, 주체가 갖고 있는 개념에 대한 오류에 별도의 새로운 오류개념을 부여하는 것이다. , 만약 A내 허벅지에 관절염이 전염되었을 것이다라고 믿는 경우, 그러한 그릇된 개념에 허관절염이라는 새로운 별도의 오류개념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주체의 오류개념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대상차원의 개념을 도입해서 사고실험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부적절한데, 왜냐하면 주체가 오류개념을 갖고 있는 경우 주체에 부여되는 심리적 귀속 언어는 대상차원의 개념으로 분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류개념에 대한 대상 수준의 적절한 개념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의 분명한 기준이 없으며, 개념적 오류가 발생했을 때마다 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부여하는 것은 임시방편적이라는 의미에서 이 방법은 부적절하다.

  

   네 번째 재해석 방법은 주체의 실수를 메타언어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체는자신이 오류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을 경우 그의 잘못을 문자 그대로 시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주체는 자신의 견해에 대한 대상차원의 해석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상차원의 해석은 실제 언어 사용자들의 반응과 동떨어져 있다. 주체는 그의 추론이 메타언어적인 관점에서 포착되는 단어들에 의해 고정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의 추론은 언어적인 것이 아닌 심리적인 것에 의해 진행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 주체에게서 볼 수 있는 불투명한 명제 태도들의 발생은 위와 같은 메타언어적 재해석 방법을 차단한다고 보아야 한다.

  

   논평: 언어의 의미에 대한 버지의 반 개인주의적 입장은 언어 사용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실천과 그 실천에 대해 우리가 갖는 직관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적 언어실천과 그에 대한 직관은 우리가 속한 언어공동체의 전문가들에 의해 합당하게 정정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버지가 제시하고 반박하는 네 가지의 재해석 방법들 중 첫 번째의 재해석 방법을 지지한다. 특정 개인이 자연종이라 여겨지는 특정 개념을 그릇되게 이해하고 있을 경우, 그에 따라 개인에게 발생하는 불투명한 명제 태도들은 해당 사회의 과학 전문가 집단에 의해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정정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때의 정정은 그 개인의 개인적 명제 태도들에 대해서가 아닌 해당 개념의 존재적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개인의 명제적 태도들이 갖는 내용이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사회적 상황 SS'에서 주체 A가 명제 P에 대해 갖는 태도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명제 P가 각각의 사회적 상황에서 P와 관련되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대상과 존재적으로 합당하게 연관될 수 있다고 본다. , 나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자연종으로 여겨지는 개념들에 대한 개인의 명제적 태도들을 존재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