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촘스키, [언어 사용을 설명하기] 요약 정리

강형구 2016. 10. 11. 07:02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언어 사용을 설명하기

  

   퍼트남은 인간의 언어 말하기 능력은 분리된 상태에서의 이론적 해명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해서는 핵심적 자연과학들과 통합될 수 있는 이해가능한 설명적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퍼트남의 생각이다. 또한 퍼트남은 언어에 대한 뇌과학적 탐구는 심리학, 뇌과학과 관련이 있을 수는 있어도 언어의 의미와는 별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퍼트남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언어 말하기에 대한 자연주의적 탐구는 불가능하며, 뇌의 형태 및 과정에 대한 연구는 의미에 대한 이해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촘스키가 생각할 때 퍼트남이 제시하는 인간이라는 개념은 일상적인 개념이고, 일상적인 개념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불가능한 것은 그 본성상 그러한 것이다. ‘언어 말하기의 개념도 마찬가지다. 과학적 탐구에서는 인간혹은 언어 말하기에 대한 일상적인 의미를 사용하지 않는다. 물리학이나 화학에서의 일상적 개념들도 자연주의적 탐구가 진행되면서 기각되었던 것을 생각해보자. 물리학자들은 물리적 개념들이 일상적인 담화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 대한 자연주의적 탐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탐구에서는 믿음, 욕망, 의미 등과 같은 일상적인 개념을 그 설명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여기는 명명가능한 사물개념 또한 자연주의적 탐구에 적합하지 못한 많은 인간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자연언어라는 개념도 이러한 탐구에 적합하지 않다.

  

   촘스키에 의하면 인간의 과학형성 능력과 일상적인 이해는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물론 과학적 용어가 일상적 용어와 어느 정도 대응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심리학, 생물학에서도 철학적 담론에 등장하는 지각적 내용과 같은 개념을 다루지 않는다. 일상적 개념들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표준적인 과학으로서 받아들여지기 힘들며, 과학적 탐구에서의 이해가 진행되면서 개념들은 예리해지고 동시에 일상적인 측면들을 점차적으로 잃어간다. 과학적 개념들은 추상화 과정을 거쳐가면서 자연언어에서 적용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론적 성질들을 갖게 되는 것이다.

  

   촘스키는 뇌 형태와 과정에 대한 탐구가 언어 말하기라는 인간의 활동을 규명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의미에서 퍼트남의 두 번째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만약 주체 A가 고양이에 대해서 생각할 때 A의 뇌에서 반응 C가 일어난다면, C에 대해 아는 것이 고양이의 의미를 연구하는데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촘스키에 의하면 두뇌의 전기적 활동 유형이 생성 문법 규칙의 다섯 부류들(이탈: 단어 의미 기대치, 구 구조 규칙, 지칭 구체화 조건, 이동에 관한 국소화 조건, 무이탈)과 상관관계를 갖는다. 두뇌에 대한 연구는 여러 층위로 나누어지는데(원자, 세포, 세포 조합, 신경 연결망, 계산-재현 체계), 계산 재현 이론은 현재 강한 경험적 지지를 갖고 있다. 현재로서는 언어와 그 사용에 대한 가장 기반이 튼튼한 자연주의적 이론이 계산-재현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생성 절차에 의해서 구조적 기술들이 형성되는데, 이 절차를 ‘I-언어라 부를 수 있다. I-언어와 개념 조직화 및 화용적 능력은 구분될 수 있으며, I-언어가 어휘목록에 포함된 요소들의 형식과 의미를 구체화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유전적으로 결정된 언어능력 초기상태는 모든 인간들에게 동일할 것이며, I-언어들 사이에는 아주 제한된 변이만 허용될 것이다. 언어 내적 체계의 조그만 차이가 커다란 현상적 차이를 불러 일으키겠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I-언어는 두뇌의 특성이며, 계산-재현 이론은 가상의 대상이 아닌 실재의 대상을 다루고 있다. 수행체계는 조음-지각적 유형개념-내포적 유형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고, 생성된 표현은 음운 형식(PF)’논리 형식(LF)’이라는 두 측면을 모두 갖는다. 이러한 수행체계가 존재하는지, 이 체계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경험적 사실들을 필요로 한다. I-언어와 수행체계의 조합을 통해 인간의 행위가 일어난다.

  

   계산-재현 이론에 구현된 알고리즘이 사고와 관련된 인지과정을 잘 설명해줄 수 있지만, 실제로 인간이 그러한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사고하는 것은 아니다. 두뇌가 알고리즘을 수행하는 것과 인간이 의식적으로 기계적 알고리즘을 수행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 활동에 관련된 모든 사항들을 다 설명하는 이론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촘스키에 의하면 데이빗슨은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불필요하게 강조했다. ‘진행 이론에 대한 데이빗슨의 최초의 관찰은 옳다고 하더라도, 이로부터 데이빗슨의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주의적 탐구에 의해 정정가능한 일관된 체계를 분리시키고, 그 체계를 통해 복잡성의 일부분이 도출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 촘스키의 생각이다.

  

   의사소통에 있어 반드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공통된 언어’, ‘공통된 의미라는 개념들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일까? 촘스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통된 언어’, ‘공통된 의미라는 개념들의 정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공유되어야 하는 것은 오직 언어능력의 초기상태 뿐이며, ‘공통된 언어라는 것은 일상적 개념이므로 과학적 탐구에 적합한 일관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촘스키의 생각이다. ‘공동체의 개념도 그 일상적인 성격 때문에 과학적 탐구에 적합하지 못하다. 물론 공통된 언어공동체개념은 일상적 사용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지만, 이런 용어들은 설명적인 이론 담론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촘스키에 의하면, 버지가 주장한 것처럼 관절염오사용 사례를 설명하는데 있어 굳이 공적 언어라는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

  

   마음의 C-R 체계로 구성되어 있는 믿음 체계인 ‘I-믿음 체계를 상정해보자. 우리는 ‘I-믿음 체계를 통해서 프레게 식의 공통된 의미가 왜 생기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초기의 생물학적 언어 능력이 예화된 이후에는 사고와 의미의 특성이 매우 다양한 변수들에 의해 변이하므로 이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촘스키는 언어의 의미론적 구조가 인간의 내적 본성으로부터 도출될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을 일종의 구문론이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적으로 결정되는 특징들은 단순한 언어적 표현들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언어적 표현들의 몇몇 특징들은 보편적인 반면, 다른 특징들은 언어 특수적이다. 주어진 수행체계들 아래에서 음운 형식과 논리 형식이 언어적 표상의 사용에 대한 제약 조건들을 복잡한 방식으로 부여한다. 의미에 대한 내적 조건들은 풍부하고, 복잡하고, 뜻밖인 경우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개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그러한 다양성 때문에 혼란을 느끼지는 않는다.

  

   자연주의적 탐구의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관점과는 분리되는 세계의 그림을 구성해야 한다. 물론 이 때의 분리가 완전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촘스키는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와 이론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언어와 심리학을 연구하는 방법을 변경할 수 있는 외재적 접근법을 가설적이고 외재적인 자연주의라 부르며 이를 비자연주의적 외재주의와 구분한다. 과학이론에서의 기술적 용어들은 그 용어들과 관련된 우리들의 일상적인 직관과는 상관이 없다. 과학이론이 성공적이라고 밝혀진다고 해서 이론에서 등장하는 관계 R과 유사한 R'이 단어들과 사물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우리는 R'과 관련된 직관을 가질 수도 없을 것이다.

  

   퍼트남은 사회적 협동, 언어적 노동의 분업, 지칭을 구체화하는 환경 이론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촘스키가 생각할 때, 사람들이 지칭을 위해 R'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사람들 스스로는 이 R'이 무엇인지 의식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환경 이론을 수립할 수가 없다. 또한, 과학적 이론의 성공 여부를 평가할 수는 있지만 일상적 직관과 관련되는 일상적 개념들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 I-언어는 마음의 다른 구성 성분들로부터 추상화된, 언어 능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퍼트남의 외재적 의미론은 과학사의 사례들을 납득될 수 있게 만드는 측면이 있지만, 퍼트남 식으로 과학사의 사례들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촘스키의 생각이다.

  

   이론의 초기 단계에서 보어는 전자에 대해 말 그대로 틀린 믿음을 표현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전자를 지칭할 때 그의 마음에 두고 있었던 그러한 존재는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에 대해 그가 가졌던 상과 이에 대한 조음은 구조적으로 이후의 개념들과 충분히 유사하기 때문에, 이러한 유사성을 통해 전자에 대한 믿음을 천사에 대한 믿음과 구분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촘스키의 생각이다. 다른 예로, 생성음운론자들은 구조음운론자들이 상정하는 개체들이 존재함을 부정했지만 구조음운론의 많은 부분들이 생성음운론의 토대에서 설명됨을 보여주었다.

  

   일상적인 용어 생각하다의 의미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과 튜링은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생각하다’, ‘원자’, ‘전자등은 균질적인 I-언어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자연주의적 탐구는 앞으로도 늘 지향성 혹은 의향성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