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촘스키, [내재주의적 관점에서 본 언어] 요약 정리

강형구 2016. 10. 13. 06:58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내재주의적 관점에서 본 언어

  

촘스키는 이 논문에서 언어, 사고, 마음에 대한 방법론적 자연주의의 탐구방법을 다시 한 번 옹호하면서, 이러한 탐구의 방법이 현재로서는 언어, 사고, 마음에 대한 이론적 설명에 있어서 내재주의적 접근법을 경험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촘스키는 언어, 사고, 마음에 대한 내재주의적 접근법의 유효성과 타당성을 주장함과 동시에, 내재주의적 접근에 대한 철학적 반박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재반박한다.

  

   우선 촘스키는 자연주의적 접근법으로부터 내재주의적 접근법을 구분하려 한다. 그에 따르면, 내재주의적 접근법은 특정 종류의 현상에 관련한 한 유기체의 내적 상태를 이해하려는 접근법이다. 내재주의적 접근법에서도 현상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추구하는데, 이는 숨겨진 구조들과 설명적 원리들에 기초해서 세계의 특정한 측면들(세계의 심적이고 언어적인 측면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촘스키의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일상적인 이해에 대한 자연주의적 탐구인 민족지학과는 구분된다.

  

   직관에 근거할 때, 문자 그대로 해석되는 언어의 의미론적 자원과 그것을 사용해서 표현되는 사고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런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서 철학적 입장에서는 서로 반대되는 다음과 같은 답변들을 내놓았다. 데이빗슨의 경우 언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사람들 및 쓰여진 혹은 음향적인 산물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답했던 반면, 더밋은 공통된 공적 언어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민족지학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물음을 좀 더 조심스럽고 다양한 방법으로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촘스키로 대변되는 언어학의 입장에서는 언어와 그 사용에 대한 최상의 과학적 이론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방법론적 자연주의, 그 중에서도 내재주의적 접근법은 민족지학과는 구분된다. 왜냐하면 민족지학이 사람들이 갖는 일상적 개념들에 대해서 연구하는 반면 내재주의적 접근법에서는 특정 현상에 대한 자연주의적 이론을 만들려고 하며, 이 둘은 각각 서로 다른 지적 영역에 소속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담화와 자연주의적 탐구는 분명하게 구분되며, 개별 과학들은 일상적인 담화와는 별도로 각자 고유의 발전 행로를 따른다. 촘스키가 문제 삼는 점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과 같은 개별과학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일상적인 개념들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이면서도, 유독 사고, 언어, 마음과 관련되는 과학인 언어학에 대해서는 그것이 일상적인 개념들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마음, 언어, 사고 등에 대한 철학적 설명과학적 설명과 구분될 뿐만 아니라 철학적 설명과학적 설명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들의 입장을 소개하고, 이들이 방법론적 이원주의’(심적인 것과 심적이지 않은 것을 구분함)의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를 비판한다. 더밋 등에 의하면 철학은 자연주의적 탐구로부터 얻어질 수 없는 다른 종류의 설명을 요구하며, 이러한 설명에서는 의식으로의 접근을 핵심적인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해 촘스키는 다른 모든 측면들에서는 우리와 동일하지만 우리와는 달리 우리의 마음, 언어, 사고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의식할 수 있는외부 생명체의 사례를 사고실험을 통해 제시하면서, 해당 법칙들을 의식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그 법칙들을 포함하고 있는 이론적 설명이 철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따지려는 입장을 비판한다.

  

   촘스키가 생각할 때 다른 과학적 영역들에서는 해당 영역의 현상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최선의 이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반면, 유독 언어학에서만 최선의 자연주의적 이론이 중요한 지점에서 불충분하다(의식으로의 접근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고 주장하는 것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또한 촘스키는 이른바 철학에서 주장하는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에서는 언어, 사고, 마음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 자연과학들의 성과들과 연속적이고 조화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촘스키가 생각할 때 이러한 입장에서 말하는 자연과학이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등장 가능한 자연과학들과 조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에서는 마치 언어, 사고, 마음에 대한 철학적 이론이 현재의 자연과학들에로 환원되어야 하는 입장을 취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의 과학사적 사례들(대표적으로 뉴턴적 종합)을 보면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통합은 환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언어에 대해서만 내재주의-외재주의의 문제가 대두되고, 최근에는 세계의 측면들 및 공동체의 규범들이 언어의 의미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함을 주장하는 의미론적 외재주의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촘스키가 생각할 때 철학에서 언어에 대한 의미론을 수립하려는 시도는 민족지학에 속하지도 않고 언어에 대한 자연주의적 탐구에 속하지도 않는다. 촘스키는 우리의 일상적인 직관에 근거한 퍼트남의 사고실험(쌍둥이 지구 실험)을 비판한다. 일상적인 직관은 다양한 고려사항들에 의해서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에 퍼트남의 사고실험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단어가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을 지칭하는 퍼트남의 견해 또한 유지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견해에 의하면 더 이상 쌍둥이 지구 실험이 성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약 퍼트남이 퍼스적인 의미에서 전문적인 지칭개념을 사용할 경우 이 개념에 대한 일상적인 직관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촘스키는 언어, 사고, 마음에 대한 내재주의적 탐구가 충분히 가능하며 이러한 탐구가 성공적으로 실행되고 있음을 보인다. 내재주의적 탐구가 목표로 하는 대상은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자연언어이해가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언어학적 의미론이나 민족지학과는 구분된다. 내재주의적 탐구는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 내에서의 권력 관계에 의해서 어휘 구성 및 어휘 사용이 일정 정도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내재적인 관점에서 언어, 사고, 마음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가 이루어질 수 있다. 청각, 시지각 연구에 있어서도 내재주의적인 과학적 탐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언어와 사고, 마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언어에 대한 개체 중심의 내재적 접근 방법을 과학적으로 추구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촘스키의 주장이다.

  

   논평: 이 논문에서 촘스키는 자연주의적인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일상적인 개념들 및 이 개념들에 대한 일상적인 직관이 아님을 강조한다. 또한 촘스키는 언어, 사고, 마음에 대해서도 충분히 내재주의적인 연구가 가능함을 주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의식 외부에 있는 것들에 대한 철학적 혹은 과학적 탐구는 인간의 의식 내부에 있는 것들에 대한 철학적 혹은 과학적 탐구와 다소 분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이에 대한 이론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언어, 사고, 마음을 사용하며, 이러한 이론의 합당성 여부를 평가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지체계 및 언어, 사고, 마음을 사용한다. 이 때 우리가 구축하는 이론적 체계가 겨냥하고 있는 대상이 우리가 아닌 우리 외부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론적 체계가 경험적으로 타당한지 뿐만 아니라 이론 내적이고 형식적인 측면에서 타당한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자신에 대한 탐구가 외부 세계에 대한 과학적 탐구들 만큼의 과학성을 지닐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물리학이나 화학은 특정한 이론에 기반해서 해당 영역에 속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상들을 조작하고 사용가능하게 만드는 능력 또한 갖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예측성과 조작가능성은 물리학이나 화학이 지닌 중요한 과학적 특징이며, 이는 이러한 과학들이 우리 자신이 아닌 외부 세계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촘스키가 말하는 내재주의적 이론이 물리학, 화학 수준의 과학성을 지닐 수 있겠는가? 만약 촘스키 식의 내재주의적 이론이 과학적 이론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언어, 사고, 마음에 관해서는 과학적 이론이 아닌 철학적 이론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