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데이빗슨, [A Nice Derangement of Epitaphs] 요약 정리

강형구 2016. 10. 4. 06:53

 

 

도널드 데이빗슨(Donald Davidson),A Nice Derangement of Epitaphs

  

   우리는 일상 속에서 종종 언어적 유희들을 경험하는데, 이러한 언어적 유희들 속에 등장하는 단어들의 뜻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단어들의 뜻과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다양한 언어적 유희의 상황 속에서 의사소통을 하는데 거의 어려움을 겪지 않는데(물론 사람들마다 이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데이빗슨은 이러한 상황을 주목하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적합한 언어철학적 설명을 제공하려고 한다.

  

   이렇듯 맥락에 따라서 문자 그대로의 뜻이 변경되어 해석되는 경우가 많은데, 데이빗슨은 특정한 발화의 맥락에서 말해진 단어들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 그는 화자의 의미문자 그대로의 의미사이의 전통적인 구분이 여전히 어느 정도는 유효하다고 보지만, 우리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 과연 언어를 아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언어란 무엇인지, 문자적인 것은 무엇이며 이미 수립된, 규약적인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의사소통에 있어서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가장 가깝게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른바 최초의 의미(혹은 일차적인 의미)’는 해석의 순서에 있어서 가장 먼저 등장한다. 의사소통 중에 화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청자에게 이해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만, 단지 이러한 의도만으로는 화자가 발화하는 문장들의 의미를 청자가 이해(해석)할 수는 없다. 따라서, 둘 사이에는 무엇인가 공유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발화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들의 구분을 가능하게 하는 복잡한 체계 또는 이론일 것이며, 조직화된 방식으로 새로운 발화들을 해석해내는 우리의 능력을 이러한 체계 또는 이론이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사소통 상황 속에서 화자와 청자가 어떻게 서로에 대한 이해를 획득하는지에 대한,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간주되는 최초의 의미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이다. 데이빗슨에 따르면 이와 같은 전통적인 견해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세 가지의 원리들이 있다. 첫째는 최초의 의미가 체계적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최초의 의미가 공유된다는 것이며, 셋째는 최초의 의미가 학습된 규약들 혹은 규칙성들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것이다. 데이빗슨은 의사소통 상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도 위에서 제시된 세 가지의 원리들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원리는 수정된 형태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세 번째의 원리는 받아들일 수 없게 됨을 보이고자 한다.

  

   의사소통을 함에 있어서 화자와 청자는 언어를 매개로 작동하는 특정한 체계 또는 이론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고, 특정한 종류의 재귀적 이론 이외에는 의사소통 시에 해석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기술할 수 있는 별다른 이론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체계 또는 이론이 변하지 않는 고정된 무엇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든데, 왜냐하면 의사소통 도중에 해석자에게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단서들이 있을 경우, 해석자는 기존의 의미와는 아주 다른 종류의 의미를 단어들에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정된 체계 또는 이론을 상정할 경우, 우리는 청자가 어떻게 화자의 발화 의미를 이해했는지 혹은 이해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정합적인 설명을 해내기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은 이루어진다. 화자는 청자에게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청자는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체계 또는 이론을 조정함으로써 화자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데이빗슨이 생각하기에 이름과 관련된 어떠한 이론도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데, 이름들에서 지시적 요소를 찾으려고 시도한다고 해도 이름들이 순수히 지시사들로 환원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청자가 갖고 있는 언어 해석 체계(혹은 이론)의 변경을 전제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에 관한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데이빗슨에 따르면 청자는 화자의 발화를 해석해내는 하나의 회귀적 해석 이론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청자는 화자의 발화 맥락에 관한 여러 요소들에 따라서 자신의 해석 이론을 변경한다. 다시 말해, 화자에 의해 제공되는 추가적인 정보에 따라서 청자의 해석 이론이 지속적으로 변경되는 것이다. 물론 화자는 청자로 하여금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지만, 화자의 입장에서는 청자의 해석 이론이 어떤 것인지 대화가 시작되고 진행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이어서 데이빗슨은 의사소통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전 이론진행 이론이라는 두 개념을 제시한다. 청자의 입장에서 사전 이론은 화자의 발화를 해석하기 전에 화자에 대해 갖추고 있는 해석 이론이며, ‘진행 이론은 화자와 의사소통을 하면서 화자가 제시하는 여러 단서들에 의해서 수정된 해석 이론이다. 화자의 입장에서 사전 이론은 의사소통 이전에 화자에 의해 청자가 갖고 있다고 상정되는 해석 이론이며, ‘진행 이론은 화자에 의해 청자가 갖게 되기를 의도하는 해석 이론이다. 의사소통을 통해서 청자와 화자의 진행 이론이 성공적으로 수렴할 경우 서로에 대한 이해는 완결된다. 청자와 화자가 서로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고 서로 친숙한 경우, 청자와 화자 각각이 전제하고 있는 사전 이론은 상당히 유사하고 합치하지만, 서로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경우, 청자와 화자가 속한 언어 공동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최소한의 사전 이론만이 전제된다.

  

   데이빗슨에 의하면 성공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사전 이론이 공유될 필요는 없으며, 청자가 개인적으로 화자를 얼마나 잘 아느냐에 따라서 사전 이론이 달라지는 것이지 청자가 해당 언어 체계(혹은 규약, 규칙성)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일반적인 개념틀도 개별 발화를 해석하는 데 있어 그 자체로 충분하지 못할 것이며, 서로 다른 화자에 대해서는 개념틀 이론이 다르게 기대되어야 한다는 것이 데이빗슨의 생각이다. 화자와 청자가 사전에 규칙 또는 규약에 의해 지배되는 언어를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의사소통의 진행에 따라서 화자와 청자가 서로의 진행 이론을 맞추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 데이빗슨이 생각하는 언어 능력이란, 상대와 대화하면서 올바르고 수렴하는 진행 이론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인데, 그는 진행 이론에 도달하는 규칙이 존재하지 않고 이에 관련되는 격률이나 방법론적 일반화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앞서 제시한 세 번째의 원리(‘최초의 의미가 학습된 규약들 혹은 규칙성들에 의해서 지배된다’)가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논평: 사전 이론에서 진행 이론으로의 수정을 통해서 화자와 청자가 완전한 의사소통에 이른다는 데이빗슨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과연 이러한 수정 혹은 조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청자가 화자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을 때 청자가 화자에 대해 갖는 사전 이론이 다소 변경될 수 있다고 해도, 그러한 변경의 정도는 그다지 크지 않으며 그러한 변경에 대한 체계적 이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언어적 의사소통은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들 중 하나이며, 이는 매우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이다. 화자에 대한 친숙함은 화자와 관련된 다른 종류의 의사소통(몸짓, 표정, 화자와 관련되는 행동)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것이지, 화자와의 언어적 의사소통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화자가 단어들의 일상적인 의미와 어긋나는 의미들을 사용한다고 해도, 나는 그러한 의미들의 변칙적인 사용 또한 일상적인 의미로부터의 (유사)규칙적인 이탈이 축적되면서 청자로 하여금 화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개인 고유의 특징들이 의미의 변칙적인 사용에 대한 근거를 부분적으로 제공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변칙적 사용 또한 이미 확립되어 있는 언어의 관습적인 사용 규칙들에 의해 강력하게 제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