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물리학의 철학 독서노트 12

강형구 2016. 9. 23. 07:05

 

코소(Kosso),현상과 실재(Appearance and Reality), 126-151.

  

   상태함수, 상보성, 불확정성 원리: 거시적인 물체들에 의한 파동이나 전자기파의 파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양자역학적 파동은 어떠한가? 양자역학의 파동에서 운동량과 파장 사이에는 반비례 관계가 성립한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 따라서

. 그런데

이므로,

이다. 이때 h는 플랑크 상수이다.

  

   양자역학에서 물질파의 진폭이란 무엇일까? 양자역학에서의 파동은 상태함수

로 불린다. 양자역학은 상태함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 형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기술한다.

가 표상하는 물리적 속성은 무엇일까?

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물리적 속성은 없고,

에 대응하는 물리적 속성은 존재한다. 이는 해당 점에 대상이 존재할 확률과 관련된다. 양자역학에서 시간에 따른 상태함수의 연속적 진화는 결정론적으로 정해지지만, 해당 위치에서 대상을 발견하는지의 여부는

의 값을 토대로 확률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관찰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파동은 존재하지 않고 단일한 관측값으로 수렴(파동함수의 붕괴)한다. 물리적 속성과 상관 있는 값은 상태함수의 제곱이지만, 두 입자가 충돌할 때 간섭하는 것은 다름아닌 상태함수이다.

  

   양자역학에서 대상이 갖는 운동량은 상태함수의 파장과 상관관계를 갖는다. , 파장이 짧을수록 운동량이 커지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상태함수 진화를 보면,

일 때(위치가 완전히 결정되었을 때) 파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운동량은 완전히 비결정적이다. 또한 양자역학의 상태함수 진화를 보면,

일 때(운동량이 완전히 결정되었을 때) 위치는 완전히 비결정적이다. (131) , 위치와 운동량을 결정할 때 둘 사이에 상호배타적인 교환관계가 발생한다. 양자역학에서 위치와 운동량은 서로 양립불가능하다. , 위치와 운동량은 서로 상보적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이 관계를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현한다.

.

  

   불확정성 원리는 측정을 통해 도달된 원리가 아니라 상태함수에 대한 분석에 의해서 도달된 원리이다. , 이 원리는 인식론적인 불확정성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비결정성과 관련된다. 따라서, ‘불확정성 원리라는 이름보다는 비결정성 원리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스핀과 EPR 실험: 빛 파동은 일상적인 파동처럼 극화될 수 있다. 양자역학적 입자들도 마찬가지로 스핀이라 불리우는 유사한(극화될 수 있는) 속성을 가진다. 특정한 축(수직축, 수평축 등)을 중심으로 스핀을 분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입자는 수직축을 기준으로 -스핀을 가질 수도 있고 다운-스핀을 가질 수도 있다. 입자들의 스핀 방향은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전자의 스핀 방향과 전자의 자기장 방향이 함께 변하기 때문에 전자가 어떤 스핀을 가지고 있는지는 자기장을 이용해서 판단할 수 있다. 스핀을 갖고 있는 입자를 (비균질적인) 자기장에 통과시키면, 입자는 (거시적인 물체들과는 달리) , 다운이라는 두 개의 값들 중 하나의 값만을 갖게 된다.

  

   전자의 스핀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슈테른-게를라흐 장치라고 한다. 이 장치를 통해서 업-스핀 전자와 다운-스핀 전자를 분류해낼 수 있다. 단일한 전자가 어떤 스핀값을 가질지에 대해서 양자역학은 확정적인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다만 그 전자가 특정 스핀값을 가지게 될 확률만을 알려줄 따름이다. 과연 이렇듯 세계에 대한 양자역학적 기술에 내재되어 있는 확률의 본성은 무엇일까? 양자역학에 따르면 어떤 전자가 업-스핀을 갖는지 다운-스핀을 갖는지는 측정 이전에 결정될 수 없으며, 양자역학은 오직 특정 스핀이 산출될 확률만을 말해줄 뿐이다.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 등은 이와 같은 양자역학이 세계를 기술하는 불완전한 이론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1935년에 이러한 주장을 담은 공동논문을 발표했다(이른바 EPR 논문).

  

   EPR 논문에서의 사고실험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두 입자들로 구성된 계가 있고, 이 계의 합 스핀값은 0이고, 각 입자는 서로 상반되는 스핀값을 갖는다. 이제 두 입자들이 서로 거리적으로 충분히 분리된다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입자 1을 측정했을 때 만약 이 입자가 -스핀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입자 2의 스핀 값이 다운임을 알게 될 것이다. 문제는 입자 1에 대한 측정이 이루어진 즉시이 결과가 입자 2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순간적인 원격작용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입자 2가 입자 1과는 무관하게 특정한 스핀값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야 할 듯하다. 아인슈타인은 두 번째 입장을 옹호하면서 이 입장과 관련한 모종의 숨은 변수 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연에는 양자역학으로는 기술되지 않는 숨은 변수들이 존재하거나, 자연의 상호작용이 비국소적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실천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성공적임을 인정했지만, 이 이론이 형이상학적인 측면에서는 불완전한 이론이라고 보았다.

  

   벨의 증명: 보어는 아인슈타인과 달리 비결정성과 비국소성이 양자적 세계 자체의 측면이라고 주장했고, 벨의 증명은 아인슈타인보다는 보어를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벨의 증명은 국소성과 숨은 변수들이 둘 다 자연에 대해서 참일 수는 없음을 보였다.

  

   EPR 사고실험에서는 계의 순수상태와 혼합상태의 구분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이 사고실험에서는 두 입자의 스핀을 측정하는 슈테른-게를라흐 장치가 항상 같은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자 1, 2에 대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장치를 설치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할 경우, 예를 들어 입자 1의 스핀이 일 때 입자 2의 스핀이 오른쪽일 확률을 물을 수 있기 때문에, 입자들의 스핀 산출값에 대한 다양한 종류의 질문들을 던질 수 있다. 만약 서로 다른 두 이론적 입장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서로 구분되는 결과값을 예측한다면, 또한 그러한 예측들과 관련해서 여러 번 실험을 하고 이러한 실험결과들의 상대빈도를 따질 수 있다면, 어떤 이론적 입장이 옳은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이러한 실험들을 토대로 문제가 되는 입자들의 쌍이 순수상태에 있는지 혼합상태에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

  

   입자들의 스핀을 세 방향에서 측정가능하도록 실험을 설정하자. 그리고 우선 입자들의 스핀 정향과 관련해서 숨은 변수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보자. 입자 1의 수직축 스핀이 다운일 때 입자 2의 오른쪽 스핀이 일 확률은 얼마일까(일종의 조건부 확률)? 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P(2R+/1V-)? 축을 0도 회전했을 때 스핀을 가질 확률은 1, 축을 90도 회전했을 때 확률은 1/2, 축을 180도 회전했을 때 확률은 0이고, 더 일반적으로 말해 축을 θ만큼 회전했을 때 스핀을 가질 확률은

이다. 오른쪽 축은 수직축으로부터 120도 회전한 것이기 때문에, 오른쪽 축에서 스핀을 가질 확률은 1/4이 된다(cos60°=1/2이므로). , P(2R+/1V-)=1/4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서로 다른 두 축에 대해서 두 입자가 서로 다른 스핀값을 가줄 확률은 1/4이다. 이 값은 양자역학과도 합치하고 실험결과와도 합치한다.

  

   이제 국소적 숨은 변수들을 가정할 경우 어떤 예측결과가 발생할지를 살펴보자. 입자 1이 다음과 같은 스핀값 (V-, L-, R-)을 갖는다고 하자. 이 때, 각각의 입자들이 정해진 방향에 대한 명확한 스핀값을 갖고 있다. 입자 1(V-, L-, R-)인 경우, 입자 2(V+, L+, R+)이다. 이를 A’라고 하자. 입자 1(V-, L-, R+)인 경우 입자 2(V+, L+, R-)이다. 이를 B’라고 하자. A가 실험된다고 가정할 경우 한 축에서의 스핀이 이고 다른 축에서의 스핀이 다운일 확률은 1이다. B에 대해서는 확률이 1/3이다. (148쪽을 참조) 모든 가능한 쌍들의 값은 쌍 A 또는 쌍 B가 되므로, 다른 방향의 스핀이 나올 확률은 적어도 1/3 이상임을 알 수 있고, 이는 국소적 숨은 변수를 가정하지 않았을 때의 예측값과 다르다. 그리고 이 예측값은 양자역학 이론에 근거한 값 및 실험결과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벨의 증명은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을 부정적으로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벨의 증명이 비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봄은 이러한 이론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이론에서 등장하는 숨은 변수들은 맥락적이다. 예를 들어, 입자 1의 스핀 정향은 측정 장치의 방향에 따라서 달라진다. 문제는, 입자 2의 스핀 정향 또한 입자 1을 측정하는 장치의 방향에 따라서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이를 전달하는 인과적 신호의 신호가 빛보다 빨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빛이 속도의 상한이라는 특수 상대성이론을 위배하는 귀결을 낳는다.

 

  

스클라(Sklar),물리학의 철학(Philosophy of Physics), 202-225.

  

   숨은 변수의 문제와 결정론, 결정론과 비결정론: 세계에 대한 뉴턴 동역학적 세계상은 결정론을 강조하는 기능을 했다. 물론 뉴턴 역학에서조차도 엄밀한 의미에서의 결정론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측정도구를 통해 계의 초기 상태를 원하는 만큼의 정밀도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턴역학, 전자기학 등은 진정으로 결정론적이라 부를 만한 측면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들의 철학적 토대로서는 라이프니츠의 충족이유율, 칸트의 인간 오성의 규칙으로서의 보편 인과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철학적 입장에 따르면, 만약 우리가 물리적 현상에 대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의 무능에 기인한 것이지 세계에 그 현상에 대한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양자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주어진 사건에 대해 충분한 인과적 설명을 할 수 있는 어떠한 사전 사건도 찾아질 수 없다.

  

   숨은 변수들에 반대하는 논증들: 양자적 상태의 동역학적 진화는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지배된다. 다만 측정의 결과값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비결정성이 대두된다. 왜냐하면 양자역학은 측정의 결과값에 대한 확률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정론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측정과정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양을 드러내주는 역할만을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측정 이전에 입자는 특정한 숨은 변수들을 갖고 있어서, 그 변수들이 측정값들을 완전하게 결정하는 것 아닌가? 보어는 양자적 상태가 양자적 계에 대한 완전한 기술이라고 주장했지만, 양자적 계를 더 자세하게 서술해서 양자 세계에 결정론을 도입할 수는 없을까?

  

   우선 양자적 상태의 기댓값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보자. 관찰가능한 C가 관찰가능한 AB의 함수일 때, C의 기댓값과 A, B의 기댓값은 어떤 관련을 맺을까? A, B, C를 동시에 관찰했다면, A, B의 기댓값으로부터 C를 계산한 결과가 C의 기댓값과 일치할 경우 이를 일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A, B, C가 동시에 관찰가능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동시에 측정될 수 없는 양들 사이의 기댓값들의 합(AB의 합)이 다른 양(C)의 기댓값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폰 노이만은 이른바 선형성 가정을 제시했다. , 관찰가능한 C가 관찰가능한 A, B의 함수인 것처럼, C의 기댓값 또한 A, B의 기댓값의 함수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형성 가정을 근거로 폰 노이만은 숨은 변수가 존재할 경우, 그러한 변수들을 토대로 한 양자역학의 통계적 예측들이 그릇될 것임을 증명했다. , 폰 노이만은 결정론을 가정할 경우 양자역학은 그릇될 것임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측정값들이 동시에 측정되지 못할 경우에도 굳이 폰 노이만의 선형성 가정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 또한 중요한 것은, 아주 단순한 물리적 계의 경우에는 숨은 변수 유형의 이론이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숨은 변수에 대한 공준을 수립하는 것은 비일관적이지 않으며, 이러한 공준은 특별한 경우 양자역학의 예측과도 부합한다. 따라서 폰 노이만의 선형성 가정은 너무 강한 것으로 여겨진다. 숨은 변수들의 값이 측정이 수행될 때마다 발생하는 결과들에 단일한 값을 부여하고, 이 값이 양자역학의 예측들과 양립가능한 숨은 변수 이론을 수립할 수 없을까? 이에 대해, 코헨과 슈페커는 가장 단순한 경우 이외의 경우에 대한 숨은 변수 이론을 수립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증명했다. 이들은 초등 기하학의 결과만을 사용해서, 상호 직각인 세 방향에 대한 스핀값을 결정할 수 있는 숨은 변수 이론이 불가능함을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코헨, 슈페커의 증명에 대해서도, 양자역학이 불완전한 통계적 이론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 수직 방향에서의 스핀 값이 동시적으로 측정될 수 있을지라도, 서로 다른 방향에서의 스핀의 값들은 동시에 측정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방향에 따라 측정값을 결정하는 또 다른 숨은 변수들이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계의 분리불가능성,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 논변: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은 불완전한 이론이며 심층적인 수준에서는 계에 대한 결정론적인 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양자적 계의 측정 이전 상태를 특성화하는 무엇인가가 측정값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생각을 보여주는 논문을 포돌스키로젠과 더불어 1935년에 제안했다. 서로 상관된 스핀을 갖고 있는 두 입자로 구성된 계가 있고, 한 입자의 스핀이 일 경우 다른 입자의 스핀은 다운이다. 이 두 입자가 공간적으로 충분히 분리되었을 경우, 한 입자의 스핀이 혹은 다운일 확률은 1/2이다. 하지만 측정을 통해 입자 A의 스핀이 으로 드러나면 입자 B의 스핀은 다운임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입자가 서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A의 스핀을 측정하자마자 B의 스핀이 결정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는가? 이를 근거로 아인슈타인 등은, 측정 이전까지의 계에 대한 양자적 상태는 계의 실제적 상태에 대한 완전한 기술을 담고 있지 않으며, 양자역학은 불완전한 이론이고, 양자역학에서의 파동함수는 계에 대한 우리의 부분적 지식을 반영할 따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보어는, 이러한 사고실험의 결과 또한 측정과정에 대한 파동함수의 상대성이 가진 하나의 측면을 보여줄 따름이라고 응수했다. 보어에 의하면 계의 상태는 측정에 상대적으로만 존재한다. 특수 상대성이론에서 막대의 길이가 기준계에 상대적이었던 것처럼, 파동함수 또한 물리적임과 동시에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벨의 정리: 벨의 정리는 양자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평가가 옳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선 아인슈타인이 옳다고 가정하고, 각각의 입자들이 숨겨진 매개변수 값들을 동반한다고 전제하자. 또한 우리는 두 입자에 대한 측정이 상호간에 인과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전제하자(국소성의 전제). 그리고 입자에 대한 측정값은 오로지 각 입자에 대한 숨은 변수들의 가능한 값들에만 의존한다. 이제 다음과 같은 표기법을 생각해보자. 세 방향 A, B, C가 있고, 두 개의 입자가 있다. ( , , ; , , )에서 앞의 세 칸은 입자 1, 뒤의 세 칸은 입자 2를 나타낸다. 그리고 세 칸은 차례로 방향 A, B, C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기호 (+, 0, 0; 0, 0, +), 측정에 의해 입자 1에 대한 A 방향의 스핀값이 +이고 입자 2에 대한 C 방향의 스핀값이 +임이 확인되었음을 나타낸다.

  

   이제 다음과 같은 등식들을 생각해보자. 등식 A-C: (+, 0, 0; 0, 0, +)=(+, +, -; -, -, +) + (+, -, -; -, +, +) 이 등식은 숨은 변수 이론에 근거한 등식이다. 입자 1이 특정한 방향에 대해 +의 스핀값을 가지면, 입자 2는 그 방향에 대해 -의 스핀값을 갖게 된다. 또한 위 등식은 만약 우리가 (+, 0, 0; 0, 0, +)라는 측정값을 얻었을 경우, 이에 대해 가능한 상태들이 (+, +, -; -, -, +)(+, -, -; -, +, +)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비슷하게 우리는 등식 B-C: (0, +, 0; 0, 0, +)=(+, +, -; -, -, +) + (-, +, -; +, -, +), 등식 A-B: (+, 0, 0; 0, +, 0)=(+, -, +; -, +, -) + (+, -, -; -, +, +)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등식 A-C의 좌항이 등식 B-C의 좌항에 다시 등장하고, 등식 A-C의 우항이 등식 A-B의 우항에 다시 등장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등식 B-C와 등식 A-B의 합이 등식 A-C의 합보다 적을 수는 없음을 알 수 있다. 풀어서 말하면, A 방향에 대해 입자 1+값을 갖고 C 방향에 대해 입자 2+값을 가질 확률은, B 방향에 대해 입자 1+값을 갖고 C 방향에 대해 입자 2+값을 가질 확률에, A 방향에 대해 입자 1+값을 갖고 B 방향에 대해 입자 2+값을 가질 확률을 더한 값보다 클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양자역학은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도출된 부등식이 양자역학에 의해서 예측된 확률값들에 위배됨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숨은 변수의 가정이 잘못되었거나 국소성의 가정이 잘못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국소성을 유지하면서 통계적인 숨은 변수들을 가정하는 것 또한 양자역학과 일관되지 않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벨의 정리는 양자역학적인 계들 사이에 일종의 뒤얽힘현상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정리는, 측정도구와 계가 인과적으로 접촉하지 않아도 측정이 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논평: 물리학의 철학수업에 대한 마지막 독서노트이자 논평이다. 우선 스클라와 코소의 책 각각에 대한 총평을 하고자 한다. 코소의 책현상과 실재는 일관성과 명료성의 측면에서 뛰어나다. 코소는 과연 우리가 갖고 있는 물리학 이론이 물리적 현상을 기술하는 것인가 물리적 실재를 기술하는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갖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현대 물리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코소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글을 쉽고 명료하게 쓰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이론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철학적 주제들을 정확하게 다루고 있다. 정확한 개념들을 사용해서 물리학과 관련된 자신의 철학적 주장들(상대성이론은 세계가 실제로 어떠한지를 말하는 이론이라는 것, ‘양자역학에서 계의 모든 특성들이 비결정적인 것은 아니다)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이 갖고 있는 중요한 장점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코소의 책은 상대성이론 및 양자역학에 관련된 미묘한 철학적 논쟁점들을 세세하게 짚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코소는 이 두 물리학 이론과 관련된 과학철학적 논의의 성과들을 비교적 덜 소개하고 있으며, 이 이론들의 발전 과정에 대한 적절한 역사적 서술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점들은 아마도 코소가 자신의 책의 일관성과 명료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단점들일 것이다. 이에 대해 스클라의 책인물리학의 철학은 이러한 코소의 단점들을 잘 보충해주고 있다. 스클라는 자신의 책에서 상대성이론, 양자역학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지식을 적절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성이론 및 양자역학과 관련하여 과학철학의 진영에서 발전시켜온 논의들을 자신의 책에서 충분히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그가 상대성이론에서 물리적 기하학의 문제, 시공간에 대한 실체론-관계론 논쟁, 시공간적 질서와 인과적 질서 사이의 관계를 다룰 때, 또한 양자역학에서 측정의 문제를 비교적 상세하게 다룰 때 잘 드러난다. 또한 그는 통계역학의 역사 및 철학 또한 적절한 수준에서 다루고 있으며, 이는 코소의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스클라의 책은 코소의 책이 보여주는 정도의 일관성과 명료성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스클라는 코소와는 상반되게, 각각의 물리학 이론들을 어떤 관점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 혹은 지침을 사전에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스클라가 물리학의 철학과 관련된 일련의 논쟁들을 폭넓게 소개시켜주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논쟁들에 대한 명쾌한 결론을 저자 스스로 내려주고 있지 않는데다가, 대개 저자의 결론이라는 것이 이러한 문제는 쉽게 결론내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독자로 하여금 어느 정도 허탈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하는 스클라 책의 단점은, 독자가 천천히 생각하면서 독서하기 어렵게 만드는 문체의 불명료함과 긴박함이다. 스클라의 문장은 간단명료한 코소의 문장에 비해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들며, 아주 두꺼운 책을 짧은 내용으로 요약해 놓은 듯한 그의 논지 전개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기 버겁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수업의 주제인 숨은 변수 이론 및 양자역학의 비결정성 문제에 대한 간략한 논평을 덧붙이고자 한다.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주장하는 EPR 논문은 물리학적 논문이라기보다는 메타물리학적 논문이다. 왜냐하면 이 논문은 구체적인 물리학적 문제들 혹은 이론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물리학적 기술 혹은 이론이 어떤 조건들을 만족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에 대한 이와 같은 메타물리학적 비판은, 이러한 비판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양자역학과 대등한 성과를 산출하는 물리이론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한 그 힘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물리이론의 대표적인 예로 봄의 비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이론이 특수 상대성이론의 근간이 되는 상한 속도로서의 빛원리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과연 봄 이론의 지지자들이 이 문제를 임시방편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만약 해결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