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물리학의 철학 독서노트 11

강형구 2016. 9. 22. 06:58

 

코소(Kosso),현상과 실재(Appearance and Reality), 152-176.

  

   보어는 양자적 세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물리학의 목적은 자연이 어떠한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코소에 따르면 보어는 형이상학적 주장과 인식론적 주장을 동시에 하고 있으며, 이러한 두 주장은 일관되지가 않다. 우리가 양자적 세계를 인식론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고 해서 양자적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자적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그것보다는 양자적 속성들이 우리와 독립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보어의 인식론적 주장 또한 그 뜻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보어의 주장을 좀 더 세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벨의 증명이 말해주는 것: 우리가 보기 전까지 양자적 대상의 스핀 정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벨의 증명이 무엇을 증명했고 무엇을 증명하지 않았는지를 분명하게 해야할 필요가 있다. 벨의 증명은 결정론, 비결정론과는 관련이 없다. 이 증명은 비결정성과 관련이 있다. 계의 개별적인 속성들이 비결정적이라고 해서 그러한 속성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또한, 양자적 계에서도 항상 결정적인 속성들을 찾을 수 있다. 전하량, 스핀의 크기, 질량 등이 그러한 속성들이다. 어떤 특성들이 상대적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특성들을 가진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벨의 증명은 구체적이면서 결정적이다. 이 증명은 양자적 대상들의 겉보기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양자적 대상들이 실제로 어떠한가에 대한 주장이다. 이 증명을 통해, EPR 실험에서 등장하는 개별 입자들이 스핀 정향과 관련해서는 내재적으로 확률적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EPR 사고실험은 세계를 기술하는데 있어서 양자역학이 불완전함을 보이려고 했지만, 벨의 증명은 실재 자체가 분명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벨의 증명은 인식론적 실재론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반면 형이상학적 실재론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 일견 벨의 증명은 반실재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고, EPR 실험에 대한 벨의 분석은 계의 본질적인 상호결속성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증명을 꼼꼼하게 분석하면 이는 인식론적 반실재론이 아닌 인식론적 실재론을 지지하는 역할을 함을 알 수 있다. 물론 벨의 증명이 다루는 속성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속성들이다.

  

   양자적/고전적 구분: 고전적 체계에서는 상보적 속성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고전적 속성들은 결정적이고 서로 양립가능하다. 반면 양자적 계들은 중첩적 상태에 있을 수 있으며 몇몇 특성들은 서로 상보적이다(양립불가능하다). 양자역학에서는 관찰한다는 행위가 양자적 계를 고전적 계로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양자역학에서 관찰 행위는 관찰되는 계에 급격하고 불연속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고전적인 관찰들이 양자역학적 계에 대한 증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코펜하겐 해석: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상태함수는 관찰가능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사고들을 조직하고 예측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이론은 자연을 기술하는 유용한 도구일 뿐이며(도구주의의 관점), 양자역학이라는 과학이론이 도구주의에 힘을 실어준다고 본다. 우리는 양자역학의 사실들과 양자역학의 해석을 구분하고, 양자역학에 대한 어떤 해석이 가장 적합한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코펜하겐 해석은 다음의 네 가지 주장들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 양자역학은 완전하다. 고전적 속성들은 양자상태를 기술하는데 사용될 수 없다. 둘째, 모든 관찰가능한 것들은 고전적이다. 셋째, 과학의 임무는 관찰가능한 것들 사이의 관계들을 기술하는 것이다. 넷째, 우리는 양자 상태함수 또는 양자적 세계에 실재성을 부여할 수 없다.

  

   하지만 측정 이전에 양자적 계의 모든 속성들이 미결정적이라는 증거가 없다. 또한, 우리가 양자적 계에 대해 관찰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코펜하겐 해석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들로부터 너무 비약이 큰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양자역학은 거시적 사물들이 미시적 사물들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만을 보여주지, 미시적 사물들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입자성, 파동성은 양자역학에서 2항관계로(특정한 실험도구에 대한 입자성 또는 파동성) 바뀐다. 측정의 행위만이 양자적 중첩상태로부터 고전적인 값을 도출한다. 측정에는 뭔가 특별한게 있는 것일까?

  

   측정의 문제: 우리는 측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오직 측정과 관찰이라는 물리적 상호작용만이 파동함수를 붕괴시킨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요소가 물리적 상호작용을 측정으로 만드는 것인가? 만약 국소적 숨은 변수들이 존재할 경우, 국소성의 문제와 측정의 문제는 사라진다. 그러나 벨의 증명을 통해서 밝혀진 바 있듯, 숨은 변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크기 만으로는 측정을 측정이게끔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실험에서는 미시적 입자들이 거시적 장치와 상호작용함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적 중첩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측정은 사건을 기록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상호작용의 기록이 측정을 측정이게끔 만든다.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적 계와 고전적 계를 구분하지만, 그 경계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 귀결 중의 하나가 슈뢰딩거의 고양이사고실험이다. 우리는 측정이 상태함수를 붕괴시킬 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모르며, 따라서 측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모른다.

  

   양자역학에 대한 대안적 해석들: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양자역학에 대한 대안적인 해석들이 등장했다.

  

   다세계 해석: 이 해석에서는 상태함수가 붕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들로 나뉘어진다고 본다. 낡은 세계로부터 새로운 세계들이 순간마다 창조되며, 현재의 세계에 소속된 우리들은 다른 세계를 의식하거나 지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무수히 많은 세계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형이상학적 부담이 너무 크다. 또한 이 해석은 여전히 측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의식 해석: 이 해석에서는 측정의 핵심적인 요소가 인간의 의식이라고 본다. 인간의 의식과 대상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측정이 이루어지고 상태함수가 붕괴된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서는 의식을 가진 관찰자의 존재가 핵심적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의 근저에는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이 존재한다. 일상적인 생각으로는 중첩현상이 의식에서 일어난 것 같지만, 의식은 물리적 대상에 명확한 측정값을 부여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하지만 이는 양자역학에 대한 많은 해석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세계가 필연적으로 주관적인 성격을 띤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이 해석 자체가 사변적이면서도 모호하다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모든 것은 양자역학적이라는 해석: 이 해석에서는 양자적 계, 고전적 계 구분없이 모든 것들이 양자적 계라고 본다. 이러한 해석에서 측정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결정된 상태를 관찰한다는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양자역학은 거시적 사물들에 대해서도 적용되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대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양자역학적 효과는 거시적 사물들에서 미미한 것일까? 이는 거시적 현상들의 경우, 다양한 측정장치들을 통과하면서 양자역학적 중첩효과가 희석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 또한 여전히 측정의 독특한 측면들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봄의 이론: 봄의 새로운 이론은 결정론과 결정성을 유지하는 대신에 빛보다 더 빠른 인과적 신호를 허용한다. 모든 자연적 계는 입자적 요소와 파동적 요소 모두를 갖고 있다. 입자적 요소와 파동적 요소 모두 실재론적이며, 이 요소들의 진화과정은 결정론적으로 정해진다. 이 때 입자의 위치는 근본적이며, 다른 속성들은 위치의존적이다. 계의 최종적인 정보원은 계의 위치이며, 위치가 정해지면 그에 따라 측정값도 산출된다. 봄의 이론에 따르면 입자가 슈테른-게를라흐 장치의 어떤 부분에 부딪치는지에 따라서 업-스핀, 다운-스핀이 분명하게 결정된다.

  

   봄의 이론에서 위치란 국소적인 숨은 변수다. 비국소적 숨은 변수는 스핀 정향과 같이 맥락의존적인 변수다. 장치의 회전, 즉 상호작용의 맥락을 바꿈으로써 스핀의 정향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상호작용의 맥락이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빛보다 빠른 인과적 신호가 가능함을 전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론적 속도 제한의 위반은 늘 숨겨진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봄의 이론은 특수상대성 이론과 경험적으로 양립가능하다. 봄의 이론에서 측정의 불확정성은 주관적 불확정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이론에서는 위치의 근본적인 속성들이 우리로부터 숨겨져 있기 때문에, 이 이론은 형이상학적 실재론이면서 인식론적 반실재론의 입장을 취한다.

 

스클라(Sklar),물리학의 철학(Philosophy of Physics), 179-202.

  

   양자이론에 있어서 측정이란 무엇인가? 측정의 문제: 양자이론의 형식적 측면, 물리적 세계에의 적용 측면에는 문제가 없고, 다만 그 해석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어떻게 국소화된 입자가 퍼져나가는 파동으로서 올바르게 기술될 수 있을까? 이른바 투영 공준이란 무엇인가?

  

   파동함수가 계의 상태에 대한 확률적 기술이라는 해석을 취하면, 이러한 기술은 계에 대한 완전한 기술이 아니므로 파동함수의 붕괴 또한 납득 가능해진다. 그러나 중첩현상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양자적 계에 대한 추가적인 기술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보어는 특정한 체계의 양자적 상태에 대한 기술이 그 상태에 대한 완전한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계에 대한 양자적 상태를 고전적으로 퍼져나가는 함수라고 생각하거나, 이를 계에 대한 우리의 불완전한 지식의 확률적 척도로 생각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양자이론은 새롭게 도입된 양자상태 뿐만 아니라 고전적 상태 또한 사용한다. 만약 양자역학의 법칙들에 따라서 모든 물리적 상태들이 적법하게 기술된다면, 고전적 용어들을 통해 특성화되는 측정도구들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 것일까? 이렇듯 측정과정의 본성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양자적 상태의 진화에 관해서는 일종의 결정론적 측면이 있고, 이는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시간 간격에 측정이 개입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계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무시하고 투영 공준을 따르게 된다.

  

   만약 파동함수를 계의 물리적 상태라 하면, 왜 측정 과정으로 인해서 물리적 상태가 그토록 급격한 질적 변화를 겪는지를 이해하기가 힘들어진다. 물리적 계가 다른 물리적 계와 상호작용하는 것은 명확하게 기술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측정이라는 것은 그보다 더 복잡한 상호작용인 듯 보인다. 측정과정이 개입되면 간섭현상은 사라진다.

  

   보어의 해결책과 이에 대한 비판자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측정이 기초적 개념의 역할을 담당한다. 측정과정은 세계에 대한 확고한 사실을 구성하고, 이론은 다만 그러한 사실들 사이에서의 상관관계를 제공하는 역할만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측정은 고전적 용어로 기술되지만, 계와 도구 사이의 경계선 설정은 다소 유동적이다.

  

   이제 슈뢰딩거 고양이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고양이 같은 거시적 물리적 대상이 삶과 죽음 상태의 중첩상태에 있다고 기술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미시적 상태에서 입자는 분명

또는

를 통과했을 것이지만, 진정한 측정은 우리가 상자를 열어볼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상자를 들여다보기 전까지 고양이는 죽음과 삶의 중첩상태에 있다고 얘기해야 할 것이다.

  

   슈뢰딩거의 사고실험은 코펜하겐 해석이 반직관적임을 보여줄 뿐이다. 코펜하겐 해석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사고실험의 귀결을 성공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관념주의자의 해결책: 유진 위그너도 슈뢰딩거와 유사한 사고실험(‘위그너의 친구’)을 제안했다. 위그너에 의하면 측정되는 계에 의해서 마음이 영향을 받을 때 오직 그 때에만 측정이 이루어진다. , 물질과 마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측정이 가능해진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한다. 이러한 해석은 형이상학적으로도 예외적일 뿐만 아니라, 마음이 물리적 계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물리적으로 밝히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물리적 상호작용으로서의 측정: 일상적인 물리적 상호작용들의 구체적인 하위집합으로 측정을 특성화하려는 시도가 있다. 여러 실험 결과들을 미시적 계와 거시적 계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측정의 주요한 두 측면을 지적한다. 첫째, 측정장치의 마지막 상태는 많은 입자들을 포함하고 있고 거시적 규모에서 확인 가능하다. 둘째, 거시적인 장치는 세계 속의 일상적인 물리적 계이다. 측정을 바라보는 이런 식의 관점은 다양한 장점들을 가진다. 이 관점에 의하면 일상적인 물리적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단 하나의 세계가 있을 따름이며, 이 때의 측정이란 양자동역학 법칙들로 기술될 수 있는 물리적 상호작용이다.

  

   코헨의 해석과 통계적 해석: 코헨은 동역학에서의 측정의 위치에 대한 다른 종류의 설명을 제시했다. 측정되는 계의 순수한 상태들과 측정하는 도구 사이의 상관관계들을 수립하는 상호작용의 본성에 대해, 코헨은 이를 기초적 수준에서의 통계적이고 혼돈적인 활동을 통해서 설명함으로써 측정 후에도 입자와 도구가 한정된 상태들을 갖는다는 직관 및 관측 후에도 중첩상태가 파괴되지 않는다는 직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세계해석: 에베렛과 휠러는 양자역학에 대해 객관적인 형이상학을 유지하지만 직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정말로 이상한 해석을 제안했다. 이들에 의하면, 측정이 이루어진 후에도 파동함수의 구성 성분들은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유지된다. 측정 순간에 기존의 우주가 여러 우주들로 나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에 대한 반대들도 많다. 우선 이러한 해석은 기괴하며 불필요하게 여겨지고, 파동함수는 한 가지 방식이 아닌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분해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요소들에 대응하는 우주를 설정해야 한다는 부담 또한 있게 된다.

  

   양자논리학: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양자이론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들이었다. 이와는 달리, 세계의 현상을 통합하는 가장 일반적인 도식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있다. 양자역학에서는 확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 때의 확률은 확률에 관한 고전적인 규칙들을 따르지는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일군의 학자들은, 양자역학에서의 조합 확률 함수의 부재를 새로운 확률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표준적인 논리학 그 자체를 변화시켜서 양자역학을 이해하려는 시도도 가능하다. 특히 라이헨바흐는, 실질적으로 논리학 또한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경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며, 양자역학에 적합한 논리학이 참도 거짓도 아닌 값을 명제에 부여할 수 있는 3치 논리학이라는 제안을 했다. 또한 버코프와 폰 노이만의 작업도 중요하다. 이들은 양자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들만을 고정시키는 이론적 방법을 개발하려고 했는데, 이에 따라 이들은 계의 상태들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논리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고전논리학에서의 분배법칙이 양자역학에서는 성립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들은 정규 모듈 격자에 따른 논리학으로 양자역학의 기술이 가능함을 보였다.

  

   기존의 논리학을 새로운 논리학으로 대체하면 양자세계의 역설적인 측면들이 제거되는 것일까? 또한 새로운 논리는 전통적인 논리를 보완할 뿐이거나, 새로운 논리 또한 전통적인 논리를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양자논리학을 적용해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점들이 존재한다.

  

   논평: 벨의 증명이 인식론적 반실재론이 아닌 인식론적 실재론을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코소의 주장이 참신하다. 코소는 과학철학이 관계된 개념들을 정확하게 사용함으로써 개념들의 부정확한 사용을 토대로 얻어진 그릇된 추론 결과들을 정정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코소에 따르면, 양자역학적 속성들 중 일부(입자의 스핀 정향)는 비결정적이지만 일부(전하량, 질량, 스핀 크기 등)는 결정적이기 때문에 양자역학적 속성들 전체를 비결정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어떤 속성들이 비결정적이라고 해서 이 속성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봄의 이론이 형이상학적으로는 실재론적이지만 인식론적으로는 반실재론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코소의 주장도 참신했다. 봄은 인간의 인식 능력 밖에 있는 숨은 변수들을 가정함으로써, 형이상학적 실재론을 유지함과 동시에 인간에게 극복할 수 없는 인식론적 한계를 부과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