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환원의 발견법적이고 정당화하는 역할에 대하여

강형구 2016. 8. 3. 06:58

 

 

   니클즈(Thomas Nickles)는 자신의 논문 이론간 환원의 두 가지 개념에서, 이전까지 환원에 대한 과학철학적 논의에서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던 환원의 또 다른 측면을 강조한다. 네이글(Nagel)이 제시한 연역적인 환원과 달리, 그의 이른바 두 번째 환원 개념(

)’은 이론 사이의 엄격한 논리적 연역 관계를 요구하지 않는다. 니클즈에 의하면, 뉴턴의 고전역학과 아인슈타인(Einstein)의 상대론적 역학, 보어의 고전적 원자모형과 이후 하이젠베르크(Heisenberg)를 비롯한 일군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개발된 양자역학 사이에는 네이글이 제시한 환원적 관계가 아닌 다른 종류의 환원적 관계가 존재한다.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선행이론은 잠재적인 후속이론이 만족시켜야 할 조건들을 제시함으로써 가능한 후속이론의 특성을 제약함과 동시에 후속이론을 개발하는 데 있어 발견법적(heuristic) 지침을 제시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등장한 후속이론과 선행이론 사이에 엄격한 논리적 연역관계가 성립할 필요는 없다. 또한 후속이론에 특정한 종류의 조작(operation)을 가함으로써 제한된 조건 속에서 후속이론이 선행이론으로 환원됨을 보여줄 수 있는 경우, 이는 후속이론에 대한 정당화(justification)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환원이 발견법적이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전역학과 상대론적 역학 사이의 관계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상대론적 역학을 개발한 아인슈타인에게 고전역학이 중요한 발견법적 지침을 제공했는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빛의 속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속도를 갖는 물체들을 고려할 경우, 새로운 종류의 변환(로렌츠Lorentz 변환)은 고전역학적 변환(갈릴레이 변환)으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지침이 아인슈타인에게 중요한 발견법적 지침으로 작용했는가? 물론 이러한 지침이 아인슈타인에게 어느 정도 제약을 가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자신의 글들과 상대성이론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일반적인 평가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이 상대론적 역학을 개발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 갈릴레이 변환이 전자기장을 기술하는 맥스웰 방정식의 상대성을 만족시키지 못하며’, ‘맥스웰 방정식에 의해 빛의 속도는 관측계와 무관하게 일정하다는 것이 도출된다는 두 가지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새로운 역학은 제한된 범위에서 고전역학으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니클즈적인 지침은, 적어도 상대론적 역학의 개발에 있어 핵심적인 발견법적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했던 것처럼 보인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환원의 개념이 후속이론을 개발하는 데 있어 최소한의 발견법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역할의 비중과 정도를 어떻게 결정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따라서 환원의 발견법적 역할을 주장하려는 니클즈의 입장에서는 환원의 개념이 후속이론을 개발하는 데 어떻게, 어느 정도로 발견법적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분석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제시한 사례에서

의 값이 0에 가까울 경우, 상대론적 역학에서의 질량이 고전역학적 질량과 거의 일치하게 된다는 발견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이러한 관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혹은 이러한 관계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지침 아래에서 아인슈타인이 상대론적 역학을 개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인슈타인에게 고전역학과의 환원적 관계는 새로운 역학이 만족시켜야 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적 지침으로만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음으로 니클즈가 주장하는 환원의 정당화하는 역할에 대해서 검토해보자. 19세기 말까지 뉴턴의 고전역학은 천체 현상들뿐만 아니라 지상계 물체들의 다양한 운동을 분석하는 데 폭넓게 적용되었고 경험적으로도 잘 지지되었다. 따라서, 만약 이러한 성공적인 고전역학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새로운 역학의 경우, 적어도 일정한 제한 조건 아래에서 고전역학과 경험적으로 동등한 결과를 도출해야한다는 조건을 만족시켜야지만 이전까지 고전역학이 보여주었던 광범위한 경험적 성공을 제대로 포섭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제한 조건 아래에서 고전역학과 환원 관계가 성립한다는 상대론적 역학의 특성은 이 역학을 정당화하는 데 일정 부분의 역할을 담당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환원적 관계가 상대론적 역학을 새로운 역학으로서 정당화시키는 데 어느 정도나 기여한 것일까?

  

   특수 상대성이론이 성립된 당시에는 특수 상대성이론과 동일한 좌표변환을 도출하는 다른 종류의 이론이 있었고, 이 이론을 옹호하던 학자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로렌츠(H. A. Lorentz)였다. 로렌츠의 이론 또한 고전역학과의 환원적 관계를 만족시켰으므로, 적어도 후속 이론이 이전 이론과 갖는 환원적 관계가 특정한 후속 이론을 정당화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상대성이론의 경우, 상대적으로 등속운동하는 좌표계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가속도 운동을 하는 모든 좌표계들을 다룰 수 있는 일반 상대성이론이 개발되고, 그 이론에 의해 예측된 몇몇 현상들(태양 근처에서 공간의 곡률이 커지는 현상, 수성의 근일점 운동 등)이 입증된 이후에야 비로소 잘 수립된 과학이론으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는 것은 상대성이론의 정당화와 수용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를 고려해본다면, 니클즈가 말하는 환원 개념이 상대론적 역학의 정당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이론들 사이에 환원적 관계가 성립하는 경우, 이러한 환원적 관계가 이론을 개발하는 데 일정 정도의 발견법적 역할과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과학사를 통해 직관적인 수준에서 파악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환원의 발견법적 역할과 정당화하는 역할을 철학적 논의에 도입할 경우 뒤따르는 두 가지의 어려움이 있다. 첫째, 환원적 관계가 발견법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객관적인 수준에서 논의할 것인가? 만약 과학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러한 주장을 할 경우, 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풍부한 과학사적 근거들이 제시된 이후에는, 이러한 근거들의 해석과 관련된 해석의 타당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료에 대한 해석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또 다른 종류의 심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가 환원적 관계의 정당화하는 역할에 대해 말할 경우, 이 때의 정당화란 어떤 종류의 정당화를 말하며 어떠한 기능과 비중을 담당하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비록 니클즈가 네이글의 환원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자신의 두 번째 환원 개념으로는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몇몇 과학사적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명료화되지 않은 정당화의 개념이 여러 사실들을 잘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환원의 정당화하는 역할이 환원 개념에 대한 중요한 반론들(, 파이어아벤트의 반론들)에 대처하는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니클즈가 말하는 새로운 환원의 개념은 추가적인 철학적 분석과 고찰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