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책 읽는 아빠

강형구 2016. 6. 28. 22:29

 

 

   올해 12월 초가 되면 아내에게서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다. 내가 아빠가 된다는 것이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나이 서른다섯에 아빠가 된다. 과연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과연 나는 어떤 아빠가 될까? 자상하고 따뜻한 아빠가 될까? 아니면 엄하고 무서운 아빠가 될까?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어깨가 무거워지고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나를 자주 상상해본다. 아이는 나를 어떻게 볼까? 나는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다. 퇴근을 하면 대부분의 경우 다른 데 들르지 않고 집에 온다. 축구, 야구, 등산과 같이 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운동이라 해봐야 고작 주민 센터에서 30분 정도 달리기 하는 것 말고는 없다. 나는 집에 와서 주로 책을 읽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컴퓨터를 이용한 공부에는 한계가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서 음악을 듣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정신이 산만해짐을 느낀다. 그래서 아주 고전적인 방식으로, 책상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필요할 때마다 생각한 내용들을 여백에 글귀로 짤막하게 적어두기도 한다.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뿌듯함이 느껴진다. 그저 책에 담겨 있는 내용들을 다 읽어보았다는 이유만으로 뿌듯한 것이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가 그 내용들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의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 같다. 공부는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아이에게 내가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줄 것이다. 동네 도서관, 시내 도서관에도 자주 데려갈 것이다. 서점에도 자주 가서 책을 구경하고 필요한 책을 사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아이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아도 혼내지 않을 것이다. 물론 너무 못하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 100명 중에 50등 이상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어떤 일을 하든지 아주 잘 하지는 못하더라도 평균 이상은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책을 읽으며 마음을 편안히 먹는 법을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SNS를 해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본다고 해도 책을 읽는 것만큼의 충족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의 생각을 따라가 보고, 그렇게 생각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스스로 생각하게 되니, 그 고요한 독서의 시간 동안 다시 자신을 발견하며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독서를 한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아이가 나처럼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법을 아이에게도 알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나는 아이가 자기 전에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것이다. 만약 아이가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면, 나는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도서관 정원을 산책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것이다. 훗날 아이가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아이가 퇴근 후 샤워를 하고 의자에 앉아 30분에서 1시간 정도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몹시 만족스러울 것 같다. 아이가 내가 직접 쓴 책을 읽게 된다면 아마도 그것은 정말 좋은 일일 것이다. 나 역시 우리 아이가 읽을 만한 좋은 책을 쓰고 싶다. 교양 있는 성인이 된 나의 아이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쓰고 싶다. 반면 다른 학자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책을 쓰고 싶은 욕심은 그다지 크지 않다.

  

   나의 아이에게 나는 똑똑한 아빠, 말 잘하는 아빠보다는 조용히 책 읽는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 또한 가끔씩 아이가 뒤적여 볼 수 있는 책을 쓴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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