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지식인의 유체이탈 화법에 대하여

강형구 2016. 6. 25. 06:18

 

   “절대 현혹되지 마라.”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곡성에 나오는 말이다. 약간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나 역시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무엇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른바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겉만 번지르르한 이야기들이다. 아주 어렵고 고매한 지식을 현학적으로 늘어놓거나, 마치 자신은 우리 사회의 일원이 아닌 것처럼 세상에서 돌아가는 여러 현상들에 대해 비판만 늘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믿을 필요는 없다. 비판이 겨누고 있는 현상을 낫게 하거나 바로잡게 하기 위해서 쓴 소리를 하는 것이 가치 있는 비판이다. 그저 비난하고 공격하기 위한 것은 제대로 된 비판이라 할 수 없다.

  

   내가 학부시절부터 곰곰이 생각해 온 지식인의 행태가 있다. 그것은 지식인들이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정부를 비판한다는 것이다. 나의 대학 시절, 많은 지식인들은 김대중 정권에서도 정부를 비판했고 노무현 정권에서도 정부를 비판했다. 정부를 비판하지 않으면 마치 지식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아주 흥미로운 것은 이른바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오히려 정부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왜 보수 정권 집권 하에서 비판적인 지식인의 수가 줄어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어떠한 정권 하에서도 정부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을 보면서 나는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을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사는 것처럼 우리들 스스로를 비판한다.

  

   지식인들에게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된다. 당신은 지금 어떤 활동을 하면서 당신의 사회적 생존을 유지하는가? 그 활동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우리 사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그 지식인이 어떻게 답변할 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라. 그리고 실제로 그가 어떤 활동을 통해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주며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본 다음, 그가 세상의 여러 현상들에 대해서 내뱉고 있는 비판들을 살펴보라. 아마 이런 비판들 중 십중팔구는 그 현상을 개선하거나 바로잡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저 비난하기 위해 내뱉는 말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 성장의 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무리하게 근대화와 공업화를 추구하면서 재벌과 대기업 위주로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했는데, 경제 성장 이후에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졌고 기업은 이율을 늘리기 위해서 국내가 아닌 외국시장을 공략했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똑똑한 인재들은 돈을 더 많이 받거나 강한 권력을 갖는 직업군에 집중되어 있다. 정부나 공공조직은 민간의 창조성과 생산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실질적인 사회 경제의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것은 민간 영역인데, 민간 영역이 점점 더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 청년들은 외국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거나, 극도로 열악한 환경의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않기 위해 일부 안정적인 직장만을 추구하고 있다. 경제 성장 동력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정부 부채와 가계 부채는 늘어만 간다.

  

   나는 우리나라의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경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면, 단순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비판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대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쌓여가는 빚더미 위에서 서로에 대한 증오심만 키워가고 있는 이 나라를 위해 스스로가 어떤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지식인이 할 수 있는 현명하고 가치 있는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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