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내가 기다리는 사람

강형구 2016. 6. 14. 22:54

 

   나는 직장인이다. 하루의 노동이 끝나고 퇴근을 하고 나면 짧게나마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다. 나는 다음(Daum)’이라는 한국의 온라인 종합포털에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에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관한 나의 글들과 내 개인적인 생각들 및 일상들을 담은 글들을 게시한다. 글을 쓰는 일차적인 목적은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것이다. 나는 글 읽는 것뿐만 아니라 글 쓰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시나 소설 쓰기를 즐겨했다. 물론 되돌아보면 전부 엉터리 같은 글들이었지만 말이다. 지금도 나 자신이 그다지 대단한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글을 쓸 뿐이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자기만족만을 위해서 쓰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사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나의 글들을 쓰고 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블로그에 찾아와서 대체 뭐 이런 곳이 있나하며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의 블로그에 찾아와서 ,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군하고 잠시나마 호기심을 느낄 수도 있다. 나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도, 나를 아는 사람들도 내 블로그에 방문하는 것을 환영한다. 그렇지만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것은 한국의 아인슈타인이 될 젊은이들이다.

  

   한국의 아인슈타인? 그게 과연 어떤 젊은이란 말인가? 아인슈타인에게 한 번 물어본다고 가정해보자. 아인슈타인이 생각하는 거인들은 누구였는지를. 아인슈타인은 과연 어떠한 전통에 속해 있으며, 그의 선배들은 누구였는지를. 아인슈타인은 갈릴레이, 뉴턴, 칸트, 마흐, 푸앵카레 등을 자신의 선배들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맥스웰, 헤르츠, 로렌츠 등도 매우 존경하고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철학적이고 인식론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물리학자였다. , 자연과학에 관련한 인식론적인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내가 말하는 한국의 아인슈타인이란 자연과학을 전공하면서도 자연과학에 관련된 인식론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 똑똑하고 진지한 한국의 젊은이이다.

 

   사실 나는 내가 그러한 젊은이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나 자신은 그렇게 되지를 못했다. 우선 나의 개인적인 자질이 많이 부족했다. 의욕만 앞서고 재능이 따라주지를 못했던 것이다. 둘째로는 한국의 학문적인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물론 나는 나보다 수 세대 전에 공부를 했던 선배들보다는 훨씬 더 나은 위치에 있었다. 자연과학과 관련된 좋은 책들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었고 나는 그런 책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깊이 있는 서양의 자연철학 전통을 접하고 그것을 제대로 공부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제대로 닦여 있지 않은 울퉁불퉁한 험한 길을 외롭게 걸어왔고, 이제는 후배들이 그 길을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도록 길을 넓히고 매끄럽게 만들고자 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인식론과 관련된 책을 즐겨 읽었다. 그가 칸트와 흄, 푸앵카레를 읽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논리경험주의자 슐릭이 쓴 상대성이론 해설서를 칭찬했으며, 라이헨바흐의 철학적 작업에 깊은 인상을 받아 라이헨바흐를 베를린 대학의 물리철학 교수로 초빙하는 데 애썼다. 플랑크 역시 스스로 [물리철학]이라는 제목의 작은 책자를 쓴 바 있다. 슈뢰딩거 역시 인식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보어나 하이젠베르크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순수한 철학도 혹은 순수한 과학철학도가 아니다. 어떤 분야든 관계없이 자연과학을 열심히 공부하며 이에 관한 인식론적인 문제들에 심각하게 관심을 갖는, 진지하고 똑똑한 젊은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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