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특허청의 알베르트씨

강형구 2016. 7. 9. 09:58

 

 

   나는 종종 특허청에서 일하던 말단 공무원 알베르트씨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알베르트씨는 어린 시절부터 성격이 고약했다고 한다. 화가 나서 바이올린 선생님에게 의자를 집어던지고 자주 여동생을 괴롭혔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선생님을 만만하게 봐서 종종 호되게 매질을 당했고, 훈육과 규율을 경멸해서 거리에서 줄 지어 걸어가는 군인들을 불쌍하게 여겼다. 그는 아이들이 유태인이라고 놀려도 농담으로 호쾌하게 웃어넘길 줄 알았고, 자신을 적대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여유롭게 자기 할 말을 할 줄 아는 배짱을 키웠다. 만약 그런 반항아 알베르트씨가 체격이 건장하고 몸놀림이 빨랐다면 멋진 싸움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알베르트씨는 민첩하게 몸을 놀리는 데는 젬병이었다. 대신 그는 어디든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거나 생각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다. 주변이 시끌벅적한 것에 아랑곳없이 그는 아무데서나 책을 펴고 글을 읽으며 공상에 잠기곤 했다. 희한하게도 알베르트씨는 기하학, 미적분학, 물리학, 철학 같은 골치 아픈 학문들에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부모님에게 자신은 훗날 철학자가 되겠다고 말했다가 크게 혼나기도 했다. 머리가 제법 똑똑했던 알베르트씨는 공부를 곧잘 했지만 결코 모범생은 아니었다. 사실 알베르트씨는 학교 공부를 지겨워했다. 그는 혼자서 책을 읽거나, 전기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와 삼촌의 작업장에 가서 전기 기계들을 갖고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는 것을 좋아했다.

  

   바이올린 선생님에게 의자를 집어 던졌기는 해도 알베르트씨는 음악을 사랑했고 틈날 때마다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 지겹고 비합리적이며 우스꽝스럽게 엄숙한 세상에서 음악의 조화와 아름다움은 그에게 상당한 만족감을 주었다고 한다. 잘 생긴 청년이 된 그는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공상에 잠긴 채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시를 읊고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 대학에서도 그의 반항적인 기질은 여전했다. 그는 수업에 자주 빠졌고 대부분 집에서 혼자 공부했다. 다만 그는 대학 실험실에 자주 가서 이것저것 여러 실험들을 했다. 그는 시를 읊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도 대학에서 요구하지 않는 여러 종류의 책들을 읽었다. 그는 동유럽 출신에 다리를 약간 절며 빛나는 눈빛을 가진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 여인 역시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알베르트씨와 비슷한 보헤미안이었다.

  

   방랑자이자 반항아였던 알베르트씨는 대학 졸업 후 곤욕을 치렀다. 물리학자가 되고자 하는 그를 받아주는 대학이 아무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원서를 넣을 때마다 번번이 떨어졌고, 급기야는 알베르트씨의 아버지가 대학교수에게 하소연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대학 시절 워낙 교수들의 말을 우습게 여겼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판이 물리학 교수들 사이에 널리 퍼졌는지도 몰랐다. 할 수 없이 알베르트씨는 물리학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전전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갔다. 대학시절 동기의 도움을 받아 특허청의 말단 공무원으로 취직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천만 다행이었다. 취직 후 그는 대학시절의 연인 밀레바와 결혼을 했고, 곧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나 물리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는 물리학의 변두리 중의 변두리에 있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그런 처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과 비슷한 보헤미안 친구들, 물리학과 철학에 관심이 있던 괴짜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매주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값싼 소시지 파티를 벌였다. 그는 출근을 하면서도 음악적 몽상에 잠겼고, 특허출원 심사를 하면서도 이런저런 공상에 빠졌다. 사회에서 그를 누구라 부르고 어떻게 평하든 그는 물리학을 사랑했고 물리학에 빠져있었다. 그는 징징거리는 아이를 한 팔에 안고 좁아터진 집 한 구석에서 물리학 문제를 풀었다. 나는 그런 특허청의 알베르트씨를, 지극히 고집스럽고 넉살좋고 야심만만한 보헤미안 알베르트씨를 종종 기억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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