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이야기

서양과학사 독서노트 15: 근대 과학사의 여러 측면들

강형구 2016. 4. 24. 07:14

 

① 『뉴턴과 아인슈타인, 우리가 몰랐던 천재들의 창조성

   책머리에 : 뉴턴, 아인슈타인 등과 같은 과학의 천재들에 대한 환상적인 상()이 있다. 이러한 천재들은 일반적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갑작스러운 영감을 통해서 위대한 물리 이론을(뉴턴의 경우 중력법칙, 아인슈타인의 경우 상대성이론) 만들어낸다. 대개 과학의 천재들은 고독하고 고립된 생활 속에서 과학 이론을 개발한다. 이전까지의 과학적 전통이 무엇이었는지, 또한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당대의 다른 과학자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당대의 역사적문화적 분위기와 각종 사건들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는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일반인들에게 퍼져 있는 천재 과학자의 상은 편파적이고 일면적인 것이다. 따라서 과학학을 전공한 저자들은 이른바 천재들의 창조성이라고 불리는 것을 다양한 각도에서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한다.

  

1: 뉴턴과 아인슈타인, 신화를 넘어 창조성으로

   (19) 그런데 이들은 정말 같은 시대 과학자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우주의 비밀을 밝혀낸 신의 전령들이었나? 혹시 이들의 천재성이 후대 사람들이나 언론에 의해서 과장된 측면은 없었을까? (20) 이러한 상황에서 뉴턴은프린키피아에서 케플러의 3대 법칙을 모두 수학적으로 유도하고 증명한 것이다. (21)프린키피아의 난해함은 자연스럽게 뉴턴의 신격화로 이어졌다. (22) 상대성이론의 난해함은 아인슈타인의 후계자들이 아니라 언론이 선전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럴수록 더 신비스러운 것이 되었으며, 동시에 아인슈타인은 언론의 보도를 타고 빠르게 국제적인 스타로 부상했다. (23) 그렇지만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자신들의 이론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것이 너무 어려워서 동료 과학자들조차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과학자들은 상상할 수도, 생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이론을 만든 사람이라는 생각은 곧 신격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며,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신격화할수록 이들의 창조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의미가 없어진다.

  

   (24) 뉴턴의 이론이 즉각 수용되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 이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기존의 과학 패러다임과 무척 달라서였다.

  

   고독한 천재의 신화에 대한 비판.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공통점. 독자적인 공부를 통해서 선배 과학자들의 업적을 습득했다. 이들은 단순히 지식을 흡수한 것을 넘어 독서 과정에서 모순과 차이에 주목했다. 주변의 지적인적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자신들이 궁금해하던 난제를 해결해나갔다. 전통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이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론이나 방법론을 제공했다는 점. 창조적인 과학자들의 창조성도 재능숙련노력훈련집착환경의 요소가 결합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보통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감의 산물이 아니다.

  

   뉴턴의 경우는 그의 후계자들이 그를 과학적 천재의 새로운 모델로 만들고자 노력했으며, 아인슈타인의 경우는 신문잡지방송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뉴턴은 대중서를 통해 과학혁명을 상징하는 과학자로, 영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잡았다. 뉴턴이 가진 천재성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18세기 동안에 견해가 급변했다(성실하게 노력하는 학자영감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는 학자). 예술의 영역에서 천재를 보는 관점이 바뀌면서 뉴턴의 후계자들은 이제 뉴턴의 근면성과 노력보다는 상상력,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직관, 베이컨식의 귀납과는 정반대되는 추측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2: 뉴턴, 풍차와 흑사병 그리고 기적의 해

   57. 뉴턴은 데까르뜨와 보일이 프리즘을 통해 색깔이 만들어지는 현상과 조수와 같은 자연현상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음에 주목했고, 이들의 이론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면서 발전시켰다.

  

3: 프리즘으로 세상을 읽다

   69. 아리스토텔레스는 겉보기 색깔이 빛과 어둠을 섞어서 만들어진다는 이론을 제창했고 이는 변형이론(modification theory)으로 불렸다. 70. 데까르뜨는 색깔에도 그의 기계적 철학을 적용했기 때문에 물질이 처음부터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빛이 미세물질로 구성된 매질을 통해 순간적으로 전달되는 압력이라고 파악했다. 데까르뜨는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실제 색깔과 겉보기 색깔을 구분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빛이 변형되어 색깔이 생긴다는 변형이론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뉴턴이 의문을 품은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71. 뉴턴에게 의문을 심어준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와 데까르뜨였다면, 그 의문을 해결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보일이었다. 보일은 실험을 통해 직접 보일 수 없는 가설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고, 이런 점에서 보일은 실험과학의 선구자로 뉴턴의 본보기가 될 수 있었다.

  

   망원경으로 유명해진 뉴턴. 갈릴레오의 발명 이후 망원경은 유명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망원경을 개량하는 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뉴턴 또한 빛 현상과 더불어 망원경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당시 볼록렌즈 망원경의 단점이었던 색수차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 오목거울을 사용한 반사망원경을 개발하게 되고 이를 통해 유명해진다. 이런 유명세에 힘입어 그는 광학과 관계된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게 되지만, 이 논문으로 인해 후크를 비롯한 다른 학자들과의 논쟁에 시달린다.

  

   프리즘을 보면 빛이 보인다. 프리즘과 관계된 빛의 다양한 현상들을 토대로, 뉴턴이 경험에 기반한 추론을 했음을 보여주는 부분. 프리즘 현상을 통해 뉴턴은 백색광에 여러 가지 성질을 지는 각각의 빛 입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후크와의 신경전. 후크는 빛 현상에 관련해 뉴턴과는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 후크는 빛이 발광체에서 일어나는 짧은 진동운동이라고 생각했으며, 이 진동이 물체 주변에 있는 균일한 투명 매질을 통해서 전파되어 나간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상호간에 건설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광학과 뉴턴의 창조성

   뉴턴은 풀이 가능한 문제를 만들어내는 측면에서 창조성을 발휘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상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로 실험해보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견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 해당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물리적 직관과 이론적 개념들을 사용함과 동시에 엄격한 경험적 실험을 수행했다는 점에 뉴턴의 독창성이 있다. 선배 연구자들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능력, 한 문제에 대한 끈질긴 연구와 노력.

  

4: 사과에서 만유인력까지

   사과가 없었다면 만유인력도 없었다? 세간에 널리 퍼져 있는 환상이지만 이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뉴턴 이전의 연구들 중 특히 케플러와 데카르트의 업적에 주목. 케플러의 행성 법칙을 통해 일양적인 원운동이라는 이전까지의 중심 원리를 포기, 태양과 행성 사이에 작용하는 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됨. 데까르뜨의 자연철학에서는 원형 관성의 개념이 거부, 대신에 원운동은 진공을 발생시키지 않기 위한 물질 사이의 소용돌이 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됨. 닫힌 회로를 구성하는 순환의 측면. 중력은 원운동을 하는 입자들의 원심적 경향의 차이에서 발생.

  

   만유인력의 새로운 측면. 이전에는 한 물체에 작용하는 하나의 힘만을 고려, 만유인력은 항상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다룸. 천상계와 지상계라는 엄격한 구분을 타파, 천상계 행성의 운동과 지상계 사과의 운동을 단일한 개념으로 설명. 만유인력은 두 물체가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작용하고, 물체에 가속을 유발하는 운동의 원인이었다.

  

   만유인력 개념의 성숙. 후크는 곡선운동을 접선방향, 즉 관성에 따라 운동하는 직선방향의 성분과 중심 물체 쪽으로 끌리는 성분으로 분해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에 덧붙여 중심 물체 쪽으로 향하는 힘이 물체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할 것이라고 제안. 하지만 충분한 수학적 능력이 없어서 이러한 제안을 구체화시키지는 못했음. 이러한 후크의 생각이 뉴턴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뉴턴은 자신이 읽는 책을 요약했을 뿐만 아니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또한 처음부터 곧바로 자신이 읽고자 하는 책을 읽었으며,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기를 거듭해서 반복했다. 뉴턴이 가장 흥미를 갖고 있던 사상가는 데까르뜨였고, 그는 데까르뜨의 사상을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뉴턴 중력 개념의 형성에 연금술에 대한 뉴턴의 관심이 반영되었다는 최근의 과학사적 연구들.

 

② 『현대과학의 풍경중 서론 :과학, 사회 그리고 역사

   저자들은 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신화적 상(과학적 지식은 인간과 무관한 객관성을 띠며, 과학자들은 비과학적인 여러 요인들과는 상관없이 객관적 진리를 탐구한다는 오해)을 비판하면서도, 모든 과학적 지식이 과학 외적 요소에 의해 채색되어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피하며 중도적인 입장에서 과학사를 서술하려고 한다.

  

   ‘과학사의 기원에서 저자들은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과학사라는 전문 분과 학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서술하고 있다. 윌리엄 휴얼은 칸트와 유사하게 인간의 지식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에게 부과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생각을 바탕으로 1837년에귀납과학의 역사를 저술했다. 또한 휴얼은 인간의 과학적 지식 속에서 신의 목적을 찾을 수 있는 여지를 인정했는데, 이는 20세기의 사상가인 화이트헤드의 저서 속에서도 드러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과학이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지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 따르면 과학은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기 위해서 수행한 활동의 부산물로 등장한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기에 이르러 미국의 역사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를 경계하게 되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과학 이해는 잘못된것으로 인식되는 동시에, 과학 외적인 이해관계와 무관하다고 생각되던 순수과학의 개념사혹은 지성사는 순수과학의 실용적인 이용과는 별도로 취급된다. ‘개념사혹은 지성사적 과학사를 대표하는 학자는 알렉상드르 코아레였다. 이 시기에 과학사학자들은 과학이론의 발전에 개입하는 지적인 요소들을 연구하는 내적 과학사와 과학적 발견의 더 큰 함의를 찾는 외적 과학사가 확연히 분리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내적 과학사외적 과학사의 구분은, 과학에 대한 과학철학자들의 분석이 실제의 과학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1960년대 이르러 광범위하게 인식되면서, 또한 토마스 쿤의 영향력있는 저작인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서 과학 개념의 발전에 있어 과학 외적인 요소(당시의 철학적 사조, 문화적 배경, 물질적 조건 등)들이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게 되면서 서서히 무너지게 된다.

  

   ‘과학과 사회에서 저자들은 쿤의구조가 등장한 이후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과학사에서 변화를 겪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쿤 이전에 과학사회학자인 머튼은 과학자 사회의 번영을 위한 네 가지 규범을 보편주의’, ‘집합주의’, ‘무사무욕’, ‘조직화된 회의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다. 쿤의 저서가 등장한 이후, 과학 또한 인간 집단을 조정하고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산되고 전파되고 기능하는 일종의 텍스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대두되었고, 이는 이른바 과학전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과학전쟁과학의 사회구성적 성격을 강조하는 모스트 모더니스트들 및 과학사회학자들과 과학의 객관성과 보편타당성을 강조하는 개별 과학자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말한다. 이후 내적 과학사외적 과학사의 구분은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과학적 지식의 생산 및 합의와 수용의 절차에 대한 사회학적이고 문화학적인 탐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저자들은 어느 한 쪽의 극단적 입장을 취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근현대 과학사를 서술하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저자들은 왜 근현대과학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만약 우리가 순수히 지성사적 관심을 갖는다면, 현대 과학이 발전하게 된 개념적인 계보를 추적해야 하며 이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현재 우리의 삶과 관련된 여러 과학의 분야들의 역사를 알고자 한다면, 그 분야들의 지식이 사회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구성되었고 작동되어 왔는지 알고자 한다면 굳이 먼 과거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과학적 지식, 과학 기관, 과학 제도의 작동과 그 현재적 의의를 파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고중세 과학사가 아닌 근현대과학사인 것이다.

 

홍성욱,인문학적 사유의 창조성과 실용성

   이 논문에서 홍성욱 교수는 기존의 인문학 위기에 대한 인문학계의 다양한 반응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인문학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인문학적 창조성이 가진 고유한 능력을 적극적으로 계발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홍교수에 의하면 인문학적 사유의 창조성은 기존의 텍스트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하나의 텍스트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텍스트들을 넘나들며 그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통찰을 찾아내는 데 있다. “대학에서의 인문학 교육은 텍스트를 창조적으로 읽고,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면서 자신의 해석을 잘 만들 줄 아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홍교수는 이러한 인문학적 사유의 창조성이 현대 사회가 직면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의 실용성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문학 위기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을 비판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홍교수가 얘기하는 창조적인 텍스트 읽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인문학적 사유의 창조성이 현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토머스 쿤이라는 걸출한 학자의 업적이 과학사 및 과학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몇몇 뛰어난 과학사학자, 과학철학자, 과학사회학자의 사례들을 통해서 이들의 업적이 학문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걸출한 인문학도가 아닌 보통의 인문학도들이 일정한 사회적 입지를 보장받고 활발하게 활동하기가 힘든 현실적인 상황에 있다. 따라서 인문학 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은, 사회의 어떤 조직에 어떤 제도를 신설해서 인문학도들이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지와 같은 제도적인 측면에서 나오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홍성욱,과학사와 과학기술학, 그 접점들에 대한 분석

   이 논문의 중반부까지 홍성욱 교수는, 미국에서의 과학사와 과학기술학이 표면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에서는(각 학문이 주로 참여하는 학술저널의 종류 및 저널 기고자들의 정체성 등을 고려할 때) 분리되어 있을지라도, 과학사 논문을 쓰는 저자들이 과학기술학자들의 논문이나 저서들을 많이 참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과학사와 과학기술학 사이의 학문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논문의 후반부에서 홍교수는 우리나라 과학사학자들과 과학기술학자들 사이의 간극이 넓으며, 각 학자들의 상대 학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함을 지적한 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기술학과 과학사 사이의 원활한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과학사학자들은 과연 과학기술학이 과학사적 담론에 있어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을 것인가?’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학의 장점이 과학과 기술, 과학과 사회 사이의 상호관계를 좀 더 구체적이고 본격적으로 분석해나가는 데 있다면, 현대 과학 공동체의 지적 활동이 고립된 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 및 해당 사회의 산업구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근대 이후의 과학사를 서술함에 있어 과학기술학의 성과를 반영하는 것은 좀 더 현실적인 과학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점이 될 것이다.

 

홍성욱,토머스 쿤의 역사학, 철학, 그리고 과학

   토머스 쿤은 과학철학 뿐만 아니라 과학사, 과학사회학, 과학기술학 및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조가 형성되는 데 직간접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홍성욱 교수는 이 논문에서 토머스 쿤의 생애, 그가 물리학도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옮기는 과정, 그의구조가 갖는 핵심적인 내용 및 이 책이 당대 지성계에 미친 영향, 이후의 그의 경력 등을 전반적으로 조망하면서 토머스 쿤이라는 인물의 대략적인 상을 비교적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 홍교수에 따르면 토머스 쿤은 과학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그림을 제시했지만, 그의 역사학적 방법론은 오히려 전통적인 과학적 방법론과 흡사했고 과학사학계의 지배적인 방법론으로 자리잡는 데 실패했다”.

  

   홍교수의 논문을 읽으면서 눈에 띄었던 몇몇 부분들에 대한 나 자신의 생각을 간략하게 남긴다. 1948년 경 쿤은 러셀, 필립 프랑크, 브리지먼 등 과학철학자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과학 방법론 일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있었다고 한다. 러셀은 수학자로 가장 유명하지만, 언어철학자이자 분석철학자로서도 큰 명성을 얻었던 철학자다. 또한 러셀은 당대의 경험과학에도 큰 관심을 가져, ‘내가 수학을 하지 않았다면 물리학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러셀은 평생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그는 외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 및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철학적 작업을 수행했다. 과연 쿤이 러셀의 어떤 저작을 읽고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필립 프랑크는 아인슈타인의 친구로서 비엔나 모임의 일원이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서 과학철학을 가르친 인물이다. 그는 라이헨바흐와 더불어 이후 논리경험주의의 계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학자이며, 나는 개인적으로 그에게 애착이 간다. 아인슈타인의 잘 알려진 전기를 쓴 제레미 번스타인은 필립 프랑크를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지만 굉장히 열정에 넘치는선생으로 묘사하고 있다. 브리지먼은 이른바 조작주의(operationalism)’으로 유명한 철학자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 상대성이론의 철학을 대변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아인슈타인의 과학철학은 단순히 조작주의, 실증주의라고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다소 중층적이고 복잡한 의미에서의) 실재론자였고, 따라서 마흐 식의 실증주의는 그의 철학을 잘 설명해주지 못한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에서 자하르는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이론들(특수 상대성이론, 일반 상대성이론)을 형성하는 데 있어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요소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쿤 식의 텍스트 읽기는,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로부터 파생되는 검증 가능한 명제들을 생각해 보고, 이 명제들을 실험적으로 테스트해 보고, 테스트를 잘 통과하면 이 가설 자체를 수용하는 가설-연역적 과학적 방법론과 유사했다.” “쿤의 텍스트 읽기는 항상 과학사들의 역사를 겨냥하고 있었다.” “쿤의 과학사 프로젝트는 과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담론과 역사에 대항해서 지성사로의 진정한 과학의 역사를 복원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었다.” 위와 같은 대목들에는 쿤을 해석하는 홍성욱 교수의 독창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홍교수는 지속적으로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잡종독창적인 텍스트 읽기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번 살펴 본 홍교수의 논문에서 그는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인문학적 사유의 창조성을 강조할 때 인문학도들 특유의 창조적 글 읽기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텍스트에 대한 창조적 해석자로서의 쿤을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홍성욱 교수의 중요한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텍스트 읽기, 경계와 영역을 넘나드는 텍스트 읽기, 그러한 텍스트 읽기를 통한 새로운 사유의 창조, 이러한 새로운 사유를 통해 현대 사회의 복잡 다단한 위기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좀 더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렇듯 강도 높은 텍스트 해석을 할 수 있어야만 나날이 실용화되는 학문의 세계에서 인문학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홍교수의 주장인지도 모르겠다.

 

Katherine Pandora, Karen A. Rader,Science in the Everyday World

   이 논문에서 판도라와 래더는 과학사는 과학자들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어떤 상을 가졌는지, 과학적 활동이 기타 사회적 활동들과 어떻게 관계 맺었는지에 대한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대중 문화 속에서 과학적 지식이 형성되고 정교화되는 과정을 탐구함으로써, 과학사가들은 대중과 전문가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저자들에 의하면, 역사의 각 시기별로 대중에게 과학이란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빅토리아 시기에 과학과 대중 문화 사이의 관계는 좋은 탐구 주제가 된다. 다윈 같은 전문 과학자의 서적보다 일반적인 대중을 대상으로 한 서적이 더 많이 판매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리고 당시 대중 과학 서적은 전문 과학 서적과 그 성격이 달랐는데, 특히 대중 서적은 전문 서적과는 달리 과학적 내용과 관련한 더 일반적인 철학적 물음들을 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 또한 베른슈타인(?)의 과학 전집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베른슈타인의 전집은 과학적 지식의 내용을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었고, 아인슈타인은 과학에 대한 저자의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중요한 시사를 얻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인슈타인은 베른슈타인의 전집을 통해 모든 개별 과학 영역을 아우르는 보편 원리에 대한 탐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자연사 박물관이 인기 없는 공간에서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 또한 좋은 연구 주제가 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또한 대중들이 과학자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이 시기별로 어떠했으며,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변화를 위해서 누가 어떤 구체적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Zuoyue Wang and Naomi Oreskes,History of Science and American Science Policy

   논문의 요점 : 과학사학자들이 미국의 과학정책을 수립하는 데 참여한 적이 있지만, 정책 수립의 의사결정 과정 속에서는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과학사가들은 과학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조망을 제공해 줄 따름이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저자들은 과학사가들의 학문적 업적이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파되고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과학사가들의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Paula Findlen,The Two Cultures of Scholarship?

   핀들렌은 쿤 이후의 과학사가 거대 담론이 아닌 미시 담론을 다루는 미시사의 형태로 변화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과학사의 각 영역이 점차적으로 전문화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비록 각 전문화된 영역에 고유한 사실들과 개념들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개별 시기와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근본적인 동기는 좀 더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것이다. 따라서 과학사가들은 적어도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는 과학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Steven Shapin,Hyperprofessionalism and the Crisis of Readership

   섀핀 또한 핀들렌과 유사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 그는 과학사가 고도로 전문화되면서, 지적 관심을 통해 읽고자 하는 마음이 절로 드는 과학사적 출판물들의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을 지적한다. 또한 이러한 전문화 경향은 출판되는 논문의 형식이나 문체에도 영향을 준다. 따라서 그는, 기본적으로는 대등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고 각자의 전공 분야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이 사람들이 충분히 관심을 갖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해야 하는 상황을 제시한다. 섀핀은 이 상황 속에서 타인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과학사 논문을 작성해야만 이른바 독자층의 부재라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