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이야기

서양과학사 독서노트 03: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헬레니즘 시기의 과학

강형구 2016. 4. 10. 07:12

 

3: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헬레니즘 시기의 과학

 

로이드(Lloyd), 초기 그리스 과학8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그의 자연철학이 동시대의 과학적 문제들과 어떤 관련을 갖고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둘째, 그 자신이 스스로의 탐구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한 것을 토대로 그의 자연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오르가논(Organon)분석론 후서(Posterior Analysis)에서 논리적인 방식(logical treatise)으로 지식 이론을 발전시킨다. 그는 지식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episteme에 대한 정확하고 기술적인(technical) 의미를 제시하는데, 그에 의하면 지식은 어떤 사실에 대한 유일무이한 원인을 아는 경우에 얻어지며, 이 때 사용되는 과정이 논리적 증명(demonstration, syllogism)이다. 그는 기초적 전제들을 (a) 공리(axioms) (b) 정의(definitions) (c) 가정(hypothesis) 셋으로 구분한다. 공리란 그것이 없이는 추론이 불가능한 원리들이다. 정의란 용어들의 의미에 대한 가정(assumption)이다. 가설이란 용어들에 대응하는 특정한 사물들의 존재에 대한 가정이다.

 

   그의 오르가논은 공리적(axiomatic)연역적(deductive) 체계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귀납(induction)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지만 귀납이 연역의 일종(mode)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는 논리적인 측면에서 연역적 논증과 증명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증명에서 사용되는 방법과 발견 혹은 학습(learning)에서 사용되는 방법을 구분한다. 자연학자(physicist)는 자연을 직접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탐구를 시작해야 하며, 그런 탐구 속에서 현상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에 의하면 학문을 탐구함에 있어 지켜야 하는 원칙들이 있다. 우선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한다.생성하는 것과 소멸하는 것에 대하여2번째 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각 가능한(perceptible) 물체들을 탐구할 때의 원리는 그 자체로 지각 가능한 상반된 두 성질들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는 생성될 수 없는데 생성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대해 잠재성(potentiality)과 현실성(actuality)을 구분함으로써 답하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 종종 사실들(facts)’, ‘자료(data)’, ‘현상(phenomena)’에 호소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당시의 현상(phainomena)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accepted views) 및 이미 말해진 것 또는 생각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것이었다.

 

   그는 자연 탐구의 중요성 및 가치를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10권에서 논한다. 인간의 가장 고차적인 능력은 이성(reason, nous)이며 최상의 활동은 관조(contemplation, theoria)이지만, 관조의 대상에는 최고 학문인 형이상학과 수학 이외에도 물리학(2nd philosophy, physike)이 포함된다.동물의 부분에 대하여에서 그는 자연을 이해하는 데 있어 분해의 방법 및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단순한 관찰에서 더 나아가 신중한 연구까지 수행하지만, 단순히 연구 그 자체의 가치만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 의하면 동물을 포함한 자연을 탐구하면서 우리는 일종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설명함에 있어서 네 가지 원인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 첫째가 질료인(matter), 둘째가 형상인(form), 셋째가 작용인(moving cause), 넷째가 목적인(final cause)이다. 이 때의 목적은 현대적인 개념보다 더 포괄적인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공적인 사물에는 만드는 이(장인, 예술가)의 의식적인 노력이 개입되지만 자연에는 의식적인 목적이 개입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teleology)에는 주목할 만한 네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자연의 변화를 지배하는 자연 외적인 신적 마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자연이 최종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의 예외적인 경우가 존재한다. 셋째, 자연 과정의 목적인에 대한 연구는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에 대한 연구와 병행해서 이루어진다. 넷째, 최종 목적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의 생물학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스승인 플라톤과는 달리 질적인 원리들에 관심을 갖는다. 그에 모든 사물들이 , , 공기, 이라는 네 가지 원소로부터 비롯되며 이 원소들은 서로 상반되는 두 성질들이 조합되어서(차갑고 마른 것이 땅이다 등) 구성된다. 이 때의 성질들이란 차가움(cold), 뜨거움(hot), 축축함(wet), 마름(dry) 등의 네 가지다.

 

   『기상학(Meteorology)을 보면 그가 자연 물질들의 성질들과 그 물질들이 단순한 실험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한 복잡한 정보를 수집하고 대조했음(collate)을 알 수 있다. 천체의 물질들은 지상의 물질과는 달리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며 원운동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에 대해 그는 천상의 물체들이 다른 네 원소와는 완전히 다른 다섯 번째 원소인 에테르(aither)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불과 공기는 가벼운 본성 때문에 자연적으로 떠오르고, 물과 땅은 무거운 본성 때문에 밑으로 가라앉으며, 이런 자연적 수직 운동은 추진력(propelling)에 의해서 방해받을 수 있다. 지상에서는 원운동이 자연적인 운동이 아니지만 천상의 물체들이 보여주는 원운동은 힘을 가해주지 않아도 영원하기 때문에, 천상의 물체들은 지상 물체들의 본성과는 전혀 다른 본성을 가진 다섯 번째 원소로 구성되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문제점을 몇 가지 들어보자. 첫째, 그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둘째, 그는 천체의 물질들이 어떻게 빛을 방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물질의 운동에 따른 마찰에 의해서 빛을 방출한다는 임시적 제안을 한다. 셋째, 그는 그의 우주론에서 달 이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원인이 달이 아닌 태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중간에 매체가 개입할 때 운동하는 물체의 무게와 속도가 서로 관련 있을 것이라는 옳은 추측을 했지만, 그 관계는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정비례 관계는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학의 결점은 경험 자료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이 아닌 추상화(abstraction)를 더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데 있다. 또한 그는 자연 탐구에 있어 피상적인 관찰에 근거해 성급한 일반화를 이끌어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의 역할(roles of form)과 목적인(final cause)을 이해하기 위해서 생물학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그의 동물학(zoology) 연구 범위는 어마어마하며, 단순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들 이외에도 그 스스로 많은 연구를 수행했다. 특히 그는 해부(dissection)를 광범위하게 시행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의 정자는 형상을 제공하고 여성의 난자는 아이가 탄생하는 물질을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엠페도클레스나 원자론자의 이론과 같은 물질적 설명을 통해서는 같은 종이 대대로 번식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들의 이론을 거부했다. 그의 자연철학의 포괄성(comprehensibility)으로 인해 그의 철학은 고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및 그의 제자들은 다양한 유파들이 보여준 철학적 사유의 역사를 서술했으며, 사회과학에 대해서도 연구했고, 자연과학에 있어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뤼케이움(Lyceum)에서 행해진 연구의 규모는 전례없이 방대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 또한 플라톤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이성적 설계의 산물이었으며, 또한 그는 플라톤과 더불어 철학자란 형상과 보편자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스승과는 본질적인 부분에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사고의 차원에서는 형상과 물질이 분리될지라도 실제로 그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그는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이론적 탐구를 옹호함과 동시에 경험적 탐구의 가치 또한 그 스스로가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로이드(Lloyd),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그리스 과학8~9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기원전 3~2세기는 그리스 과학적 사유의 모든 세부 분야들에서 두드러지는 성취를 보인 시기였다. 이를 대표하는 두 인물로 프톨레마이오스와 갈렌(Galen)을 들 수 있는데, 특히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문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수학적 조합(Mathematical Composition(아랍 이름으로는 알마게스트(almagest))은 고대의 가장 완결적인(comprehensive) 천문학적 탐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론적 탐구를 세 분야로 나누는데(신학, 물리학, 수학) 그 중에서도 수학(수리천문학)은 반박 불가능한 산술적이고 기하학적인 증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만 과학적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수학을 연구하는 목적은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체 물체들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질서와 아름다움은 인간의 인품(character)을 향상시킨다.

 

   그는 천상계의 물질인 에테르가 그 형상에 있어 구형이라고 믿었고, 그의 우주에서도 지구는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구중심 우주의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알고 있었다. 첫째, 지구중심 우주 이론에서 지구 표면 위의 관찰자의 위치가 정확히 우주의 중심과 일치하지 않는다. 둘째, 천구의 크기에 비교할 때 지구는 단지 하나의 점 크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7장에서 지구가 움직이는지 정지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 논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원리에 근거하면 물체들이 움직일 때 무게가 큰 물체가 더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지구 위의 다른 물체들이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나야 한다. 하지만 그런 현상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지구가 축 회전을 한다는 가설(hypothesis)을 검토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회전의 속도가 너무 클 것이라는 이유를 근거로 그 가설을 거부한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물리학적 원리들이 관찰 증거들을 통해 지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문학자의 주 목표는 천체들의 겉보기 불규칙 운동을 균일한 원 운동의 조합으로 설명하는 것, 현상을 구제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태양이 지구와는 다른 중심을 가진 원(eccentric, 이심원) 주변을 회전하거나 주전원(epicycle) 위로 움직인다는 가정을 통해서 태양의 불규칙적인 운동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달의 불규칙적인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달이 회전하는 원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 근처에 있는 작은 원 궤도 위를 운동한다고 상정했다. 그의 우주는 기본적으로 지구 중심적이었지만 행성들의 기본적인 두 운동 중 하나는 태양과 연계되어 있었다. 그는 관찰 결과에 근거해서 (a) 행성들의 주전원 크기 (b) 행성들의 이심률(eccentricity) (c) 행성들의 경도표(longitude) (d) 각각의 행성들의 후퇴 운동의 규모(magnitude) 및 지속 시간 등을 계산할 수 있었다.

 

   그의 수학 체계는 달과 행성들의 운동을 아주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중요한 두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첫째, 이심원 주위의 주전원 위를 움직이는 달의 운동이 균일하지 않았다. 둘째, 분명 기존의 천문학적 체계와 어긋나는 몇몇 관측결과들이 무시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궁극적 목적은 수학적으로도 정확하고 물리학적으로도 참인 천문학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주로 전자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단순성(simplicity) 개념을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데, 서로 다른 두 모형이 있을 경우 어떤 모형이 더 좋은지를 판단하는 기준(criteria)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천상의 물체들은 그 겉보기와는 상관없이 원리적으로(axiomatic) 단순하다고 주장한다. 방대한 범위의 자료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수학적 논증 능력을 보여준 천문학 체계인알마게스트는 실로 뛰어난 업적이었다. 그의 천문학 체계와 아랍 천문학자들 및 코페르니쿠스의 체계 사이에는 본질적인 연속성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문학자 뿐만 아니라 점성술가이기도 했다. 그는 태양이 계절을 바꾸고 달이 조수 간만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유사하게, 천체 물체들이 지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prima facie) 생각했다. 그에 의하면 천체 물체들의 운동을 관측함으로써 지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일반적인 예측을 하는 데 원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는 점성술 뿐만 아니라 음향학(acoustics), 음악 이론, 광학(optics)에도 업적을 남겼다. 그는 기초적인 광학 법칙 세 가지를 제시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실험을 수행했다. 그는 서로 다른 매체가 주어질 경우 입사각(incidence)이 변함에 따라서 굴절(refraction)의 정도가 얼마나 변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탐구를 했다. 그는 반사와 굴절을 연구할 때 신중하고 체계적인 실험을 수행했다. 광범위하게 수행된 관찰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관찰들은 그가 수립하고자 하는 특정한 이론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는 기능을 하는 데 그쳤다.

 

갈렌(Galen)

 

   갈렌은 자신의 평생을 의학적 실천에 바쳤다. 그의 주 업적은 생물학과 의학에서 이루어졌지만 그는 또한 철학자이자 문헌학자(philologist)로도 알려져 있었다. 그에 의하면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의사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에 필수적인 부분이다.최고의 의사는 철학자이기도 하다라는 논의에서 그는 그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의사는 과학적 방법론에 익숙해야 하고 이는 타당한 논증과 타당하지 않은 논증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둘째,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 철학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셋째, 윤리학적인 측면에서 의사는 의술라는 기예(art)에 스스로를 헌신해야 하며 그런 헌신을 위해 철학적 수련이 필요하다. 그는 플라톤과 히포크라테스를 존경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헤로필루스(Herophilus), 에라시스트라투스(Erasistratus), 아스클레피아데스(Asclepiades) 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갈렌은 고대의 물리 이론을 받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떤 사물이 그 자체(per se)로서 질적 특성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우연히(per accidens)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뜨거움 혹은 차가움에 대해서 양적으로 평가를 하려고 시도하지만, 그의 시도는 체계적이지 못했고 질적 특성을 측정하는 데 있어 객관적인 기준 또한 결여되어 있었다. 네 가지 기본적 원소들과 네 가지 질적 특성들은 그의 생리학(physiology)의 물리적 기초를 이룬다. 동물들은 자연(physis) 뿐만 아니라 정신(psyche) 또한 갖고 있으며, 특히 인간은 이성적(rational)이고 영혼적(spirited)이며 욕구(appetitive)를 갖는데 갈렌은 이런 인간의 세 특성이 각각 뇌, 심장, (liver)과 대응된다고 생각했다.

 

   인간 신체에 대한 그의 이론이 단지 사변에 그친 것만은 아니었다. 첫째, 그는 동맥의 피가 밝은 이유가 공기(pneuma, air)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둘째, 그는 동맥에 공기 이외의 물질이 들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그리스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을 실험을 통해 성공적으로 반박할 수 있었다. 셋째, 그는 동물을 질식시키거나(suffocate) 동물의 뇌에 손상을 입히면 의식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영양 흡수(nutrition)를 식도(gullet)와 위 벽의 기제적인(mechanical) 활동을 통해서 설명하려고 했다. 해부학적 구조나 생리학적 과정에 대한 갈렌의 기술을 보면 그가 아주 세심하고 착실하게 관측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의학 활동에 있어 해부를 실천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끼리도 해부했지만 그가 주로 해부한 것은 유인원(ape)이었다. 그는 해부를 첫 번째로 시도할 때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종종 언급한다. 생명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부로는 부족하고 생체 해부(vivisection)가 필요했다. 그는 동물의 방광이 요관으로 차 있으며, 요관을 결속할(ligature) 경우 소변이 방광 안으로 투입되지 않는 반면 요관(ureter)은 소변과 함께 확장되며(distend), 소변의 흐름이 역행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보여주었다. 그는 피가 심실 고랑(interventicular)의 격막(septum)을 거쳐 심장의 우심실에서 좌심실으로 바로 통과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약을 파는 사람(pharmakopoles)과 의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의사는 예언가(soothsayer)와도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사가 실천적이고 철학적일 뿐만 아니라 의학이란 이성적인 기예(art)라고 생각했다.

 

린드버그(Lindberg), 서양 과학의 시초3~6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당시의 중요한 철학적 주제들을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그 목적을 위해서 그 때까지 알려진 중요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대대적으로 집약하고 정리하는 철학사적 작업을 진행한다. 그는 감각 가능한 물체들이 독립적으로 실제 세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러한 물체들의 성질은 전적으로 물체 그 자체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일상 생활에서의 물체가 그 자체로 근본적인지 아니면 더 근본적인 물질들의 합성체인지는 당시에도 중요한 문제였다. 아리스토렐레스는 어떤 것이 속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이 어떤 실체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형상과 물질을 분리시킬 수 없으며 그 둘은 오직 하나로 결합된 상태로만 나타난다.

 

   그는 지식을 얻는 것은 감각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경험이 기억이 되고, 기억은 직관(intuition)” 또는 통찰을 통해 사물들의 보편적인 성질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보편적인 성질(property)이나 정의(definition)를 파악한 이후에는 그것을 연역적 증명의 전제로 사용할 수 있다. 귀납적인 과정을 통한 지식은 그것이 연역적 형식으로 변하지 않는 한 참된 지식이 아니다. 우리는 보편적 정의를 전제로 해서 연역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와 같은 지식 이론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연을 탐구함에 있어서 기존에 있는 조야한 방식을 실용적인 목적에 맞게 이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형상(form)과 물질(matter)의 원리를 도입한다. 물질이 변하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형상은 변한다. 그리고 형상의 변화는 서로 반대인 특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이런 변화 속에서도 질서를 찾을 수 있다. 또한 그는 잠재태(potentiality)현재태(actuality)의 개념을 도입한다. 어떤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잠재적으로 존재하거나, 실제로 존재할 수 있고, 따라서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성과 원인의 이론을 제시한다. 모든 자연적 물체들에는 자연적 본성이 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들은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며, 자연에 대한 연구는 사물들의 이러한 본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가 통제된 실험을 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자연관 때문이었다. 그에게 있어 인위적인(artificial) 통제는 사물의 자연적인 운동을 방해하고 그 목적을 파악하는데 장애가 된다. 따라서 그가 현대적인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적합한 방법을 사용했을 따름이다. 그는 네 가지 원인(형상, 물질, 작용, 목적)을 제시하고, 목적과 기능을 이해해야지만 사물에 대해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천체에서부터 지상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규모의 자연 현상을 다루는 자세하고 강력한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우주가 영원하며 달 위의 세계(천상계)와 달 아래의 세계(지상계)로 구분된다고 생각했다. 지상계에서는 탄생, 죽음, 변화가 일어나지만 천상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원운동을 한다. 천상계는 불변하는 다섯 번째 원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월하고 신적인 특성을 가진 에테르(aether, quintessence)이다. 그는 네 원소(, , 공기, )들이 좀 더 근본적인 것들로 환원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근본적인 것은 질적 특성들이며 늘 서로 상반되는 성질들이 짝을 이룬다(뜨거움-차가움, 축축함-마름). 세계는 다양한 물질들로 꽉 채워져 있으며 빈틈이 없다. 그리고 이 때의 물질은 연속적이다. 위의 네 특성과 더불어 사물들이 갖고 있는 성질이 바로 무거움과 가벼움인데, 이는 절대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의 도식에 따르면 우주는 구형으로 잘 질서잡힌 형태를 띄어야 하겠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여러 속성들의 물질들이 혼합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고 운동을 일으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는 공간(space)의 세계가 아닌 장소(place)의 세계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자발적인 운동이란 없으며, 그는 자연적인 운동과 강제적인 운동을 구분했다. 그는 포물선을 그리며 운동하는 물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운동의 매체가 운동 원인을 매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로 다른 무게의 물질이 내려올 경우 소요되는 시간은 각 물체의 무게에 반비례할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그의 개념 도식에는 운동의 정량적 측도로서의 속도 개념이 없었다. 그는 천체가 완전한 운동인 연속적이고 일양적인 원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태양, ,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복잡하고 변칙적인 움직임을 완전한 원운동으로 설명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각각의 행성들에 몇 개의 구형 천구를 부여하고, 각각의 천구에 다시 행성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적 운동을 부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방대한 양의 동물학적 저서 및 인간 생리학과 심리학에 대한 짧은 저술을 남겼고, 이후 그의 영향력은 이천 년 동안 지속된다. 그는 동물을 탐구하면서 자연 사물들의 원인을 것에서 기쁨을 느끼며, 자연학적 탐구를 근거로 자연은 오직 우연의 산물이라는 원자들의 생각을 반박한다. 그는 작업은 생물학적 자료들을 모으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고 따라서 그의 동물학은 기술적(descriptive)이었다. 그는 분류의 문제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참된 지식은 사물의 원인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경우 얻어진다고 생각했다.

 

   형상과 물질, 현재태와 잠재태, 네 가지 원인 등은 그의 생물학에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형상은 생물 기관을 조직하는 원리이고 이 때의 형상은 영혼(soul)이며 영양 섭취, 번식, 성장, 감각, 운동 등을 주관한다. 식물이 영양적인 영혼 밖에 없는 반면 동물은 감각적 영혼이 있고 인간은 그와 더불어 합리적 영혼을 갖고 있다. 그런데 영혼은 유기체의 형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하지도 않다. 그는 몸의 중심 기관을 심장으로 두었으며 생명열(vital heat)과 감정, 감각은 심장에 위치한다고 생각했다.

 

 

헬레니즘 시기의 자연철학

 

   헬레니즘 시기의 자연철학은 알렉산더 대왕으로부터 이루어진 그리스 제국 시기에 학자들과 지식인들이 자연에 대해서 행한 사유(thought)를 의미한다. 기원전 5세기 이전까지 그리스에서는 청년기 이전의 아이들(paides)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는데(paideia) 이 교육은 크기 육체적인 부분(gymnastike)과 마음 혹은 영혼적인 부분(mousike)으로 나뉘어졌다. 기원전 5세기가 되면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학교가 등장하고, 교육에 있어서도 소피스트의 등장으로 인해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들은 그리스 곳곳을 돌아다니며 좀 더 고차원적인 수준의 교육을 제공했으며 그들의 목적은 시민과 정치인을 훈련시키는 데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등장한다. 이들은 많은 부분에서 소피스트들과 달랐으며 아테네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플라톤아카데미(Academy)를 설립하는데, 이는 철학적 공동체였고 이 안에서 학자들은 가르치기도 했지만 배우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뤼케이움(Lyceum)을 세우고 이른바 소요학파(peripatetics)가 형성된다. 뤼케이움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 협력해서 연구하는 것을 장려했다. 제논(Zeno)스토아 철학을 창시하고 에피쿠로스(Epicurus)에피쿠로스 학파를 만든다. 아카데미, 뤼케이움,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모두 제도적 정체성을 발전시켜 그 토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등장하면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가 학문의 중심지로 부각된다. 이 때 최초로 고급 교육이 공적인 혹은 왕조의 후원(patronage)을 받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가 그 뒤를 잇는데,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견해 및 방법론적 전략과 관심의 범위를 상당부분 이어받는다. 그는 상호 협력적인 작업을 통해 자연사와 철학사적 연구를 추진했으며, 식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광물에 대한 저서를 남겼다. 그는 식물의 생활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사려깊게 분류했으며 생리학적인 이론화를 시도했다. 또한 많은 수의 암석들과 광물들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테오프라스투스 이후 승계자인 스트라토(Strato)는 많은 부분에서 스승들의 업적을 수정하고 확장하려 시도한다. 그는 물체의 무거움과 가벼움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장소와 공간 이론 또한 반대한다. 그는 떨어지는 물체가 단순히 무게 뿐만 아니라 떨어지는 높이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입자적인 개념을 다시 받아들이고 물질의 다양한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빈 공간의 개념 또한 받아들이지만 연속적인 빈 공간이 자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철학의 목표는 행복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나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의하면 행복을 얻는 것이 자연철학의 유일한 목적이다. 에피쿠로스는 고대 원자론자들을 따라 물질의 일차적 성질(형태, 크기, 무게 등)과 이차적 성질(, 색깔, 따뜻함 등)을 구분하지만, 데모크리토스의 이성주의에는 반대했으며 모든 감각은 본질적으로 믿을만 하다고 주장했다. 비록 원자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거시적인 수준에서는 감각적인 혹은 이차적인 성질 또한 실제로 존재한다. 에피쿠로스는 무한히 작은 일탈(swerve)의 개념을 도입해서 원자론이 설명하지 못했던 충돌 반응을 설명하려고 했으며, 이를 통해 세계는 어느 정도의 비결정성을 띠게 되며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가 가능하게 된다.

 

   스토아 학파는 제논(Zeno), 클린테스(Cleanthes), 크리시푸스(Chrysippus)로 이어진다. 스토아 학파 또한 에피쿠로스 학파와 유사하게 자연철학이 윤리학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실제 존재하는 것은 물질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토아 학파는 에피쿠로스 학파와는 달리 우주가 유기체적(organic)이며 연속성(continuity)과 활동성(activity)이 있다고 주장했다. 스토아 학파에 의하면 물질은 무한히 나뉘어지는 연속체이며, “활동적 원리가 존재해서 수동적인 물질을 유기적인 단일체로 만든다. 스토아 학파는 이런 활동적 원리를 호흡 또는 혼(pneuma)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굉장히 섬세하고 활동적이며 이성적인 물질(substance)로 생명력과 합리성의 근원이 된다. 스토아 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를 받아들이지만 이것들을 수동적인 것(땅과 물)과 능동적인 것(공기와 불)으로 나눈다.

 

고대의 수리과학

 

   세계가 본질적으로 수학적이기 때문에 수학적 분석이 세계에 대한 더 심오한 이해를 제공해주는지, 아니면 수학은 오직 사물들의 양화될 수 있는 표면적 측면에만 적용될 수 있는지는 오랜 논란의 주제가 되었다. 고대 피타고라스 학파는 궁극의 실재가 수라고 생각했으며, 플라톤은 4 원소가 모두 정다면체와 삼각형으로 환원될 수 있으며 사물을 엮어주는 것은 단순한 기하학적 비율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철학이 다루어야 하는 대상이 감각 가능하고 변화하는 사물이며, 자연에 대한 수학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리스의 수학은 기하학을 강조했는데 이는 그리스인들이 무리수를 발견한 것과 관계가 있다. 그들은

가 무리수임을 발견하고(공약 불가능성) 수를 통해서는 실재를 표현할 수 없으며 기하학이 실재를 제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수학은 유클리드의원론(elements)을 통해 크게 발전했는데, 유클리드는 이 책에서 공리(axiom)연역(deductive) 체계를 상당 수준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정의(definition), 5개의 공준(postulate), 5개의 공리(axiom)를 차례로 제시한 다음 수학적 명제들을 위와 같은 정의, 공준, 공리로부터 차례대로 연역적으로 도출할 수 있음을 보인다. 그의 책 1~6권은 평면 기하학을 다루고, 7~9권은 산술적 주제들을 다루며, 10권에서는 공약불가능한 크기들을 분류하고, 11~13권에서는 고체 기하학을 다룬다. 유클리드의 책에서는 적분법의 시초가 되는 소진법(method of exhaustion) 5개 정다면체들의 성질 또한 탐구한다. 이후 아르키메데스(Archimedes)는 순수수학 및 응용수학 모두에 기여를 했고 소진법을 발전시켰으며, 아폴로니오스(Apollonius)는 원추곡선(타원, 포물선, 쌍곡선)을 연구했다.

 

   초기 천문학은 플라톤 시기 이후 초보적인 수준(태양년이 달의 차고 기울음을 기준으로 한 달의 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보정하는 것, 19년은 235개의 달로 이루어지는 데 이 중 12년은 12달로 하고 7년을 13달로 계산, 메톤Metonic 주기)에서 크게 변화를 겪는다. 플라톤과 에우독소스(Eudoxos)의 천문학에 이르러서는 (a) 별자리가 아닌 행성들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b) 별자리 및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쌍-천구(two-spherical) 모형이라는 기하학적 모형을 도입하고, (c) 행성에 대한 관측 자료를 설명하는 기하학적 이론이 지켜야 할 기준을 수립한다. 플라톤과 에우독소시 우주 모형에서 천체에 속한 구는 하루에 한 번 수직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반면, 지상에 속한 구는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모형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들이 차례로 관측되었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긴 하지만 속도에 있어 서로 상당히 차이가 났고, 화성의 경우는 역행 운동을 보였으며, 수성과 금성이 태양과 평균 속도가 유사하다는 것 또한 플라톤과 에우독소스 시대에 알려져 있었다. 이런 현상을 단일한 운동의 조합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는데, 특히 에우독소스는 각각의 행성들에 몇 개의 천구를 부여하고 각각의 천구가 복잡한 행성 운동의 일부분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려 했다. 예를 들어 화성의 경우, 가장 바깥의 천구는 하루에 한 번 회전함으로써 화성의 일주 운동을 설명한다. 두 번째 천구는 첫 번째 천구 반대 방향으로 687일에 한 번씩 회전함으로써 화성이 이심원을 서에서 동쪽으로 천천히 회전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그 안의 다른 두 개의 천구는 역행 운동에서 속도와 고도가 변하는 것을 설명하게 된다.

  

   여기서 두 가지의 물음이 제기된다. 첫째, 에우독소스는 과연 물리적 실재를 이러한 모형과 연관시키려고 했을까? 적어도 그의 경우에는 자신의 모형이 단순히 수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물리적 구조가 아닌 수학적 질서였다. 둘째, 에우독소스는 각각의 행성 모형들을 하나의 통일되고 조합된 우주론적 체계로 만들려고 했을까? 그 또한 아니었던 것 같다. 셋째, 에우독소스의 모형은 성공했을까? 이 모형은 애초부터 양적으로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대략적인 질적 합치를 거두는 것으로도 당시의 천문학자는 만족했을 것이다. 이후 칼리푸스(Callippus)는 태양과 달에 4번째 천구를 부여하고, 수성과 금성과 화성에 5번째 천구를 부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금까지 개별적인 모형들이었던 것을 단일하고 거대한 천문학적 모형으로 통합시킨다. 그는 가장 바깥에 별자리 천구를, 각각의 행성들에는 단일한 천구를 부여했으며 지구는 그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그는 천문학적 모형에 물리적 실재를 부여하려 했고, 각각의 천구에는 천구마다 부여된 최종 목적(final cause)을 위한 자연적 회전 및 바로 위에 있는 천구로부터 유발되는 회전축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에 있는 천구가 아래에 있는 천구와 역학적인 상호작용을 어떻게 전달해주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며, 행성마다 단일한 천구를 부여함에 따라 각각의 행성이 보여주는 복잡한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추가적인 반응 천구들(reacting spheres)을 도입해야만 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는 행성 천구와 반응 천구가 총 55개나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다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과연 천문학은 물리학과 수학 사이의 어느 부분에 위치하는가? 천문학은 에우독소스적인 의미에서 수학적 기예일 뿐인가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물리적 실재를 반영하는가?

 

   헤라클리데스(Heraclides)는 지구가 24시간 동안에 그 축을 한 번씩 회전한다고 제안했다. 아리스타르쿠스(Aristarchus)는 태양중심적인 체계를 제안했지만 이러한 제안은 당시의 철학적 세계관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또한 헬레니즘 시기에는 태양과 지구 및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는 지역에 따른 그림자 길이의 차이를 통해 지구의 크기를 계산하기도 했다. 천문학자 히파르쿠스(Hipparchus)는 수학적관측적도구적이론적 측면을 모두 다루었으며 춘분점(equinox)의 세차운동(precession) 및 음력 한 달의 평균을 계산하기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y)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진 천문학 체계의 발전 및 몇 세기에 걸친 천문학적 관측 결과를 활용할 수 있었다. 그는 과거 혹은 미래의 행성 위치에 대해 정확하고 정량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수학적 천문학 체계를 발전시켰다. 그는 기본적으로 원운동을 통해 행성 운동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는 원인인 태양의 불규칙적인 운동은 원운동으로 설명할 수 없었고, 따라서 이심원(eccentric) 모형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이심원 모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주전원(epicyle) 모형을 제시하고, 이 때 두 원의 상대적 크기와 속도 값을 결정해야 했다. 더 나아가 그는 주전원 모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등각속도점(equant) 모형을 도입해서 설명해야 했다. 그는 수학적 체계가 물리적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