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이야기

서양과학사 독서노트 02: '과학의 기원'과 고대 그리스 과학

강형구 2016. 4. 9. 12:25

 

2: ‘과학의 기원과 고대 그리스 과학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서 플라톤까지-

 

로이드(Lloyd), 초기 그리스 과학1~7

 

1. 그리스 과학의 배경과 시초

 

   그리스에서 초기 과학이 탄생할 당시 근동 지방의 문명에서 등장한 세 가지의 문화적 성취가 밀레투스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첫째가 바로 기술(technology)이다. 당시에는 금속을 다루는 기술(metallurgy, 야금술)이 상당히 발전해 있었다. 또한 발달된 방적술(spinning and weaving)을 갖고 있었다. 도기 문화(pottery)가 발전해 있었고 이는 당시의 농경 수준이 축산관개 등을 비롯한 다양한 부분에서 상당했음을 뜻한다. 이 시기에는 문자 문화 자체(writing)가 상당히 발전한 상태였다. 이러한 기술적 성취는, 비록 의식적인 이론화작업이 개입되지는 않았을 지라도, 당시의 사람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관찰을 하고 그 관찰로부터 지식을 이끌어냈음을 보여준다.

 

   근동 지방의 두 번째 문화적 성취가 바로 의학(medicine)이다. 적어도 이집트의 의학은 민간 의학(folk medicine)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전해지는 파피루스에 근거하면 이집트 의학은 제목조사(examination)’진단(diagnosis)’치료(treatment)’라는 네 가지 항목에 의거해서 병을 다루는 상당히 경험적인 수준에까지 올라와 있었으나, 종국에는 항상 초자연적인 처방(치료법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주문을 외운다)을 내렸다.

 

   근동 지방의 세 번째 문화적 성취는 수학과 천문학의 발전이다. 이집트인들은 과학적인(intelligent) 달력을 고안해냈다. 바빌로니아의 수학과 천문학은 이집트보다 더 수준이 높았다. 바빌로니아의 수 체계는 자릿값 원리(place-value principle)에 기초하고 있어 이집트 수 체계에 비해 훨씬 간편했고, 이에 따라 순수한 산술적 계산뿐만 아니라 이차 방정식을 다루는 대수학의 분야에 있어서도 숙달된 모습을 보인다. 천문학의 경우 대개 점성술을 위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좁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천체 현상에 대한 광범위한 관측을 수행했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특정한 현상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런 예측은 모형(model)을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까지의 관측 자료들이 보여주는 주기(periodic table)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러한 근동 지방의 문화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철학자-과학자(philosopher-scientist)는 탈레스(Thales)였다. 밀레토스(milesian) 철학자들의 사유를 그 이전 시기의 사유와 구분해주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첫째로 그들은 자연적 현상과 초자연적 현상을 구분하고, 자연 현상은 규칙적이며 엄격하게 원인과 결과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개별적인 자연 현상이 아니라 자연 현상 일반(지진, 천둥 등)에 관심을 가졌다.

 

   둘째로 그들은 서로의 견해에 대해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비판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론과 설명들을 갖고 다른 이들의 이론 및 설명들과 경쟁했다. 그런 경쟁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어떤 근거(grounds)가 있는지, 그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증거(evidence)와 논증(argument)이 무엇인지, 상대방의 이론이 가지는 약점이 무엇인지를 깊이 따져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에서 철학이 탄생하는 데 그리스 특유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밀레토스는 면직물 공업의 발전과 식민지와의 교역을 통해 물질적으로 굉장히 부유했다. 또한 당시 그리스는 전제정치(tyranny), 과두정치(oligarchy)를 거쳐 민주정치(democracy)로 정치 제도가 변화하는 격변의 시기였다. 도시 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그리스에서는 어떤 정부 제도가 가장 이상적인지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일어났다. 이런 토론에서 탈레스와 솔론 모두 자신의 주장을 위해 초자연적 요소를 끌어들이는 것을 거부했고, 시민들 앞에서 자유롭게 토론했으며 시민들이 그 내용에 대해 평가하게끔 했다.

 

2. 밀레토스 철학자들

 

   밀레토스 철학자들은 기존에 신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여겨지던 자연의 특수한 현상들을 초자연적 요소를 끌어들이지 않고 설명하려 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우주의 구조,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기원 등 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까지도 제시했다.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는 천체들이 불로 만들어진 고리들(rings of fire)이며, 습기(wet)가 태양의 자극을 받아 모든 생물체들이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탈레스는 만물이 물(water)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지만, 물과 반대되는 속성을 가진 불이 어떻게 물을 통해 구성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되었다. 이에 아낙시만드로스는 물질적 속성을 가지지 않은 무한정자(apeiron, Boundless)를 도입해, 모든 것이 무한정자로부터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우주는 무한정자로부터 뜨거움과 차가움이 분리되면서, 마치 씨앗 속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것처럼 생성되었다. 하지만 그는 나무와 빵과 같은 서로 다른 물질들이 어떻게 하나의 물질적 실체로부터 구성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만물의 근원은 공기(air)이라고 주장했으며, 공기가 응축되거나(condensation) 희박해지는(rarefaction) 것을 통해 모든 사물들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공기가 응축되면 물이 되고 물이 응축되면 얼음이 되며 그 역도 성립한다. 아낙시만드로스가 무한정자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을 끌어들였다면, 아낙시메네스는 자신의 공기개념을 통해 사물들의 변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 있었다.

 

3. 피타고라스 학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중 밀레토스 학파와는 아주 다른 종류의 사유를 한 학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피타고라스 학파다. 이 학파는 일종의 종교 집단으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고 종교적인 의식도 병행했다. 밀레토스 학파가 물질적인 실체를 가정한 반면,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만물의 본질이 수(number)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현상의 형식적인 측면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역사상 최초로 자연을 양적으로(quantitative), 수학을 기초로 이해하려 했다. 이들은 현상의 형식적인 구조가 수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물들이 수로 구성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이 주장한 사물과 수 사이의 유사성(resemblance)은 다소 환상적이고 임의적(arbitrary)이기까지 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우주의 중심에 불덩어리가 있고 지구는 그 불덩어리 주변을 돌기 때문에 밤과 낮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들은 10이 완전한 수이기 때문에(1, 2, 3, 4는 각각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가장 기본적인 숫자이고, 10=1+2+3+4이기 때문에 완전하다) 하늘을 운행하는 천체의 수는 10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9개의 천체만 볼 수 있을 따름이므로, 이들은 이른바 지구의 역행성(counter-earth)을 고안했고 이 역행성이 월식(moon eclipse)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음향학(acoustics)에서의 예를 든 것처럼, 피타고라스 학파는 경험적인 탐구를 수행했으며 아주 단순한 실험(철 막대의 길이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현상, 단지에 담긴 물의 양에 따라 단지를 두드렸을 때 소리가 다르게 나는 현상 등) 또한 시행했다. 또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학에 최초로 연역적인 방법을 도입했다. 이른바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바빌로니아인들 또한 알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엄격한 증명을 제공한 것은 바로 피타고라스 학파였다. 또한 이들은

가 무리수(irrational number)임을 증명했으며, 피타고라스 학파 중 한 명이었던 아르키타스(Archytas)

가 주어졌을 때,

의 관계를 만족하는

값을 찾는 문제를 독창적인 기하학적 방법으로 풀어냈다.

 

4. 변화의 문제

 

   기원전 5세기 초 무렵이 되면 그리스에서는 우리의 감각을 믿을 수 있는지, 아니면 우리는 다만 우리의 이성만을 믿어야 하는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와 더불어 이른바 변화라는 것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아니면 이는 단지 불변하는 실재의 겉모습일 뿐인지에 대한 물음 또한 떠오른다. 이에 대해 최초로 해답을 제시한 이들이 바로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와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흐른다고 주장하면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고(rest) 균형(equilibrium)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의 밑바닥에는 서로 상반되는 것들끼리의 상호작용과 긴장(tension)이 숨겨져 있다. 또한 그는 감각(sense)을 진리에 대한 근거로 삼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를 매우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르메니데스는 실제로 변화하는 것은 없으며 모든 존재는 단일하다고 주장한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며,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이성적 추론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명백한 진리다. 변화하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감각이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진리를 파악하기 위해 이성만을 사용해야 한다. 감각은 우리를 기만한다(deceitful).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존재하는 것이 생겨날 수 없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받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리를 파악하기 위해 시각촉각 등의 감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earth)(water)바람(air)(fire)이라는 불변하는 네 가지 근원(뿌리, rhizomata)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변화가 일어나며, 이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은 사랑(love)과 증오(strife)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근원과 근원이 합성된 것 사이의 구분이다. 그에 의하면 근원들이 특정한 비율로 결합한 결과 각종 사물들이 형성되었다.

 

   아낙사고라스(Anaxagoras)에 의하면 엠페도클레스의 네 가지 근원 뿐만 아니라 뜨거움, 차가움, 축축함 등과 같은 자연적 성질들도 모두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는 변화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그는 모든 사물들 안에는 모든 사물들의 부분이 조금씩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따뜻한 것 속에는 차가운 것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 비율이 작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나무에는 돌의 성분이 일부분 포함되어 있다.

 

   레우키포스(Leucippus)가 제안하고 데모크리토스(Democritus)가 발전시킨 원자론에서 소크라테스 전기 사상은 그 정점에 이른다(culmination). 고대 원자론의 기본적인 공리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은 오직 원자(atom)와 허공(void) 뿐이다. 원자는 그 수가 무한하고 무한한 허공에 퍼지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원자는 서로 끊임없이 부딪쳤다 흩어지면서 사물의 겉으로 보이는 성질들을 만들어낸다. 원자론자들에 따르면 감각에 의한 지식은 가짜(bastard) 지식이고 오직 마음(mind)'을 통해서만 합당한(legitimate) 지식을 얻을 수 있다.

 

5. 히포크라테스 전서의 저술가들

 

   그리스 시대 당시의 의사들을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전문가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히포크라테스 전서의 저술가들은 의학이란 분명 하나의 엄연한 기예(art)이며, 의학의 전문가들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나 사기꾼 의사들(quack, sharlatan)과는 구분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 의사들은 이 도시 저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의술을 시행했다. 의사들은 신체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성분들이 잘 조화(balance)를 이루게끔 함으로써 환자의 건강을 보전하려고 했으며, 신체의 조화가 무너졌을 경우에는 그 조화를 다시 바로잡는 방법을 사용했다.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는 일종의 적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질병이란 자연적인 현상(natural phenomena)이며 자연적인 원인들에 의한 결과에 다름아니라고 주장해야만 했다. 그들은 질병이 초자연적 작용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부정했고, 특정한 질병을 제대로 진단(diagnosis)하기 위해서는 질병을 자세하고(detailed) 질서잡힌 방식(methodical)으로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병자를 관측한 사례에 대해 가능한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특히 전염병(Epidemics)이라는 글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질병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들에게 질병의 원인은 신체를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다. 그들은 신체가 따뜻함’, ‘차가움’, ‘마름’, ‘축축함의 네 가지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다만 가설(hypothesis)로서만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연에 대해 유사한 방식으로 논의하는 철학자들과 자신들을 구분하면서, 의학이란 엄연한 기예(techne)이며 이를 위해서는 기술(skill)과 경험(experience)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러한 가설들이 검증되어야 한다(verifiability)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철학자들과 다르다.

 

   의학자들은 철학적 개념과 방법이 의학 속에 침투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경험을 중시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조직화된 경험을 얻는 것 즉 방법의 문제(problems of method) 또한 의식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어떻게 성숙한 동물이나 식물이 하나의 균질한 씨앗으로부터 자라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개의 계란을 대상으로 하루에 하나씩 깨어보며 배(embryo)가 성장하는 것을 관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의학자들은 철학자들과 달리 실용적인 목적, 즉 병을 치료한다는 목적을 갖고 활동했던 실천가들이었다.

 

6. 플라톤

 

   기원전 5세기 중엽이 되면 그리스 세계에는 세 가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첫째, 소피스트 운동(sophist movement)과 더불어 광범위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둘째, 소크라테스로 인해 인간주의 철학이 등장한다. 셋째, 아테네(Athens)가 그리스 세계의 지적 중심지가 된다. 이 시기에 등장한 플라톤은 자신의 과학 철학적 논의에서 과학적 탐구의 기초(basis)와 목적(aim)을 제시하고, 이는 이후 그리스 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고등 교육에서 산술(arithmetic)평면 기하학과 고체 기하학천문학과 음향학 특히 이 중에서도 천문학을 배우는 까닭은 이런 학문들이 우리의 영혼을 보이지 않는 실재들에 관심을 갖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우주론(cosmology)이란 신화(myth)나 허구(fiction)와는 구분되는 세계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지만,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란 있을 수 없다. 영원히 존재하는 형상(forms)은 늘 변화하는 세계와는 구분되며 세계는 항상 이러한 형상들을 모사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을 탐구하는 것은 그 본성상 일종의 기분전환(recreation)에 머무른다.

 

   플라톤은 세계를 운행하는 이성의 작용을 밝히는 것이 자연과학적 활동의 근본적인 동기라고 본다. 티마이오스(Timaeus)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우주론적 도식(scheme) 세 가지 기본적인 요소 즉 형상(forms), 개별자(particular), 장인(craftsman)으로 구성된다. 장인인 데미우르고스는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물질을 갖고 그것을 형상과 유사하게 모사하며 그것이 곧 개별자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 요소는 바로 수학적(기하학적)인 형상이다.

 

   플라톤 당시에는 정사면체정육면체정팔면체정십이면체정이십면체(icosahedron)가 가능한 다섯 개의 정다면체라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정다면체 또한 각 면을 이루고 있는 기하학적 도형(삼각형, 사각형, 오각형)으로 나누어질 수 있고, 이 도형들 또한 다시 삼각형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그는 정사면체가 불, 정육면체가 땅, 정팔면체가 공기, 정십이면체가 우주 전체, 정이십면체가 물이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원소들이 서로 변화하는 과정을 기본적인 도형들의 결합과 분해를 통해 설명해냈다. 그는 원자론을 기하학화시킴으로써 기존의 원자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우주의 수학적 구조에 대한 플라톤의 믿음, 수학적이고 이상적인 천문학에 대한 그의 개념은 이후 매우 중요하고 풍부한 결실을 낳게 된다.

 

7. 4세기 천문학

 

   초기 그리스 과학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천문학에 있다 할 수 있다. 기원전 5세기에는 5개의 주요한 행성들(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구별되었고 각각의 행성에게 독립적인 원궤도를 부여했다. 플라톤은 붙박이 별들이 속한 천구의 운동과 태양과 달 및 기타 행성들의 운동을 구별했고, 수성(Mercury)과 금성(Venus)의 평균 속도가 같음을 알고 있었다. 플라톤이 수학적 천문학의 이상을 제시한 이후, 그 이전까지의 천문학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의 천문학이 등장했다. 즉 수학적 체계를 통해 천체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이런 수학적 천문학의 중요한 전제들은 다음과 같다. 겉보기에 변칙적으로(anomalies) 생각되는 행성들의 운동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한 불규칙성은 일양적이고(uniform) 질서잡힌 운동들의 조합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며, 이 때 질서잡힌 운동이란 다름아닌 원운동이다. 모든 천체의 움직임은 지구를 중심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24시간 동안 움직이는 원운동이다. 계절에 따라 보이는 별자리(constellation)들은 달라지지만, 특정한 계절에 해당되는 별자리의 위치는 대부분 동일하다. 별들에 대한 태양의 움직임은 규칙적으로 변화하며, 달을 비롯한 행성들은 별자리들을 지나 서에서 동으로 이동한다. 행성이 보여주는 정지 혹은 역행 현상, 복잡한 운행 경로는 단순한 원운동의 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전제들에 기초한 천문학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학적 기술이 필요했으며, 이 체계는 플라톤이 제시한 규칙을 깨트리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천문학 체계로 설명하지 못한 몇몇 현상들이 있었다. 행성들이 역행 현상을 보일 때 각각의 행성들마다 형태와 크기의 변화 정도 및 역행의 지속 기간이 달랐는데 기존의 체계에서는 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특히 화성과 금성의 경우). 또한 기존 체계는 계절들 사이의 불일치(inequality) 및 달의 겉보기 지름 변화와 행성들의 밝기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후 칼리푸스(Callippus)는 천구의 수를 늘림으로써 이전에 설명하지 못했던 현상에 대해 설명하려 했다. 에우독소스(Eudoxos)는 몇몇 천체들의 바깥 천구에서 안쪽 천구로의 이행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천구들끼리 서로 접촉하도록 해주는 이른바 반응 천구(reacting sphere)’를 도입했다. 결국 에우독소스는 55개의 천구가 필요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천구 모형은 천체의 모든 현상을 구제하지 못하게 된다. 헤라클리데스(Heraclides)는 지구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axial rotation)하며 금성과 수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하늘이 정지해 있고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24시간 주기로 회전한다고 가정한다면 천체 현상이 설명되리라 생각했다. 이에 당시의 천문학자들은 만약 지구가 회전한다면 떨어지는 물체의 움직임이나 구름의 움직임에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며 지구의 회전을 부정했다. 이후 천구 이론에 대한 대안으로 주전원 모형(model of epicycles and eccentrics)이 등장한다.

 

   위와 같은 예들은 수학적 방법이 복잡한 자연 현상을 연구하는 데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착상은 철학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착상의 밑바닥에는 세계가 합리적인 설계(design)를 통해 생성되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린드버그(Lindberg), 서양 과학의 시초1~2

 

1. 그리스 이전의 과학

 

   과학이란 무엇일까? 린드버그는 자연을 기술하는 언어, 자연을 탐구하는 방법(method), 그런 탐구를 통해 도출된 사실적 혹은 이론적 주장, 그와 같은 주장의 참됨 혹은 타당성을 판단하는 기준(criteria)을 통칭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과학을 이런 방식으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고대 혹은 중세의 맥락에서도 충분히 과학혹은 자연과학이라는 개념을 유의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 자연에 대해 접근했던 방식이 현대적인 방식과 달랐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그네들의 방식은 우리의 지적 뿌리(ancestry)를 이루기 때문에 우리의 흥미를 끈다. 우리는 편협하고 배타적인 관점에서가 아닌, 넓고(broad) 포용적인(inclusive) 관점에서 옛 시대의 과학을 살펴보아야 한다. 초기의 과학적 이론이 어떻게 등장했으며, 그 이론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형성되었고(formulate), 그 이론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울 것이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까지 인류는 구두 전승(oral tradition)을 통해서 지식을 전달했다. 우리가 관심이 있는 것은 이러한 구두 전승의 내용이며 이를 통해 인류가 세계 혹은 우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사 시대의 사람들은 그들이 설명하고자 하는 개별적이고(individual) 특수한(specific) 현상에는 그에 걸맞는 특수한 원인이 하나만 존재한다고, 원인을 일반적인 것이 아닌 특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어떤 현상에 대해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설명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는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과 결과의 일반적인 관계를 밝힌것이 아니라 해당되는 현상을 특수하게 결정짓는 독립적인 사건들의 계열을 추적한 것이었다. 또한 이 시대의 사람들은 질병이 어떤 초자연적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병이 들었을 경우에는 귀신을 쫓아내거나(exorcism) 주문을 외워서(incantation) 병을 고치려고 했다.

 

   이러한 선사 시대의 지식에서부터 새로운 개념의 지식(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새로운 지식이 등장할 수 있었던 필요조건(necessary condition)은 문자의 발명이었다. 문자의 발명을 통해서 구두로 전승되던 내용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기록을 통해 말로 전해지던 것들이 시각적이고(visible) 오래가는(enduring) 물질에 담기게 되었다. 또한 문자의 발명은 구두 문화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지적 활동을 가능하게 했다. 문자는 사고를 조직하고(organize) 전개하는(process) 새로운 방법을 가능하게 했고, 구두 문화적 배경에서는 등장할 수 없었던 무수한 질문들을 제기할 수 있게끔 했다. , 문자의 고안은 고대의 철학과 과학이 발전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자 체계의 효율성 및 보편화는 고대의 철학과 과학이 부흥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는 수학과 기하학, 천문학 등이 발전해 있었다. 그런데 바빌로니아의 수학은 이집트의 수학에 비해서 월등하게 발달해 있었고, 이는 대수적으로(algebraically) 풀어야 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확연히 드러난다.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별과 행성들에 대해 체계적으로 관측하고 측정한 후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이 때 학자들은 천체들을 관찰함으로써 신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언어의 의미를 파악해서 의뢰인에게(client) 예정된 사건을 피하거나(mitigate) 회피하는 적절한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점성술이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에 걸쳐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에 전파되고 난 후에는 수학적인 방법이 도입되고 계산적인 목적이 뚜렷해진 점성술/천문학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후 수학적 천문학은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시대에 이르러 그 정점에 이른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n) 문명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으로 의학을 들 수 있다. 파피루스에 남겨진 기록을 보면 이집트 인들은 악한 기운이나 정령이 몸에 침투해서 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까닭에 귀신을 쫓아내거나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병을 치료하려 했다. 당시에는 동물, 식물 및 광물 등을 사용한 약학적(pharmacological) 치료법도 시행되었지만, 이 치료법 또한 종교적(ritual)으로 적합한 절차와 준비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진정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한 우리는 이런 의학적 기록들에서 문제가 되는 병에 대한 기술(description), 이에 대한 진단(diagnosis), 이 병이 치료될 수 있는지의 여부 판단(verdict), 그 병을 치료하는 과정 등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그리스인들의 우주

 

   오늘날의 관점에서 그리스 인들의 서사시나 신화를 보면 얼토당토 않다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들의 믿음을 현대적인 과학적 기준으로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과학적 혹은 철학적 논의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기원전 6세기 초엽이 되면 그리스 문화에서 아주 새로운 종류의 탐구 방식이 등장한다. 합리성(rationality, nous)의 탄생이 바로 그것인데, 이 방식은 증거(evidence)를 문제삼으며 어떠한 주장도 논쟁(dispute)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러한 논쟁에서 해당 주장을 옹호(defend)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와 더불어 이 시기에는 자연 세계에 대해 아주 진지하고(serious)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일단의 철학자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자연의 구성 성분(ingredients)이 무엇인지, 자연은 어떤 방식으로 조합(composition)되어 있는지, 자연은 어떻게 작용(operation)하며 어떤 형태(shape)를 보이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그들은 이런 의문들에 대해 이전까지와의 설명되는 다른, 초자연적인 요소를 배제한 새롭고 강력한 해답을 제시한다. 철학자들에 의하면 자연 세계는 질서잡혀 있고 사물들의 본성을 알면 그것들이 이후 어떻게 행동할 지를 예측할 수 있다.

 

   최초의 철학자는 이오니아 출신의 탈레스(Thales), 그는 세계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 존재하며 겉보기에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물들은 이러한 변하지 않는(persistent) 물질인 물(water)을 토대로 구성되어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했다. 뒤이어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는 세계가 무한정자(apeiron),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공기(air)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자연 세계의 다양성과 혼돈 뒤에 숨겨진 통일성과 질서를 찾으려는 시도였다. 이와 같은 설명에는 개인적이거나 신성화된 요소가 개입되지 않으며, 철학자들은 비판적인 경쟁자들에 맞서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해야 했다. 이는 비판적 토론 전통의 시작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는 세계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오직 궁극적인 불로 구성되어 끊임없이 변화를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제논(Zeno)은 비존재(non-existence)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는 논리로 변화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4가지의 뿌리(root, 공기)로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는 사랑과 미움이라는 비물질적인 원리를 통해 뿌리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생각했고, 피타고라스 학파는 현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질서는 바로 수적 질서이며 따라서 모든 현상은 수를 모방한다고 주장했다. 레우키포스(Leucippus)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 무한히 많은 원자가 무한한 허공(void)을 무질서하게 움직인 결과로 세계의 모든 것들이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파르메니데스와 원자론자들은 감각의 기만적 성격을 중시하면서, 오직 이성의 사용(exercise of reason)을 통해서만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엠페도클레스와 아낙사고라스는 감각(sense)과 경험(experience)이 진리를 파악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Socrates)는 우주론적인 문제에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로 관심을 돌렸지만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Plato)은 다시 우주론적인 관심을 갖는다. 플라톤에 의하면 신성한 장인인 데미우르고스(Demiurge)가 이데아(idea)를 모방해서 세계를 구성했다. 세계의 모든 것은 영원한 이데아 혹은 형상들의 모방(replicas)일 뿐이며, 그런 의미에서 물질적인 것은 그 본질상 불완전(imperfect)하다. 세계는 이데아 혹은 형상의 영역과, 이를 불완전하게 모방한 물질의 영역으로 나뉘어진다. 또한 플라톤은 유명한 동굴의 비유(allegory of the cave)를 제시하면서, 우리 모두는 육체라는 감옥에 갖혀있으며 우리는 이 감옥을 벗어나기 위해 감각과 경험의 속박(bondage)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은 실재의 가장 근저에 있는 것을 형상으로 두고, 감각적인 사물들로 구성된 물질적 세계에는 이차적인 혹은 부수적인(derivative) 존재의 정도를 부여한다. 이렇게 실재의 차원을 구분하는 방법을 통해서 플라톤은 변화와 안정의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적 구도 속에서 관찰(observation)과 참된 지식(true knowledge)를 정 반대에 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은 감각이 여러 유용한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감각은 우리의 정신을 즐겁게 하는 동시에 우리의 정신이 형상의 영역에 주의를 돌릴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감각은 우리의 기억을 자극해서 형상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도록(상기하도록) 이끌어 준다. 그런 까닭에 플라톤에 의하면 변화하는 물질의 영역을 탐구하는 것 또한 연구할 가치가 있게 된다.

 

   플라톤은 우주의 질서와 합리성은 오직 외부적인 정신(mind, psyche)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확신했다. 신성한 장인인 데미우르고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료들만을 갖고 형상의 세계를 본따서 물질적 세계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세계는 이성과 계획(planning)의 산물이며 우주의 질서는 기본적으로 합리적이다. 데미우르고스는 수학자이며 기하학적 원리에 따라 우주를 만들었다. 따라서 우주는 다섯 가지의 정다면체(regular geometrical solids)로 구성되며, 이 정다면체들은 다시 2차원의 구성 요소로 분해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변화와 다양성이 설명될 뿐만 아니라 원소 사이에서의 변화(transmutation)도 설명된다. 플라톤이 제시한 기하학적 입자 이론은 자연을 수학화하는 데 있어 하나의 커다란 진전이었다. 그는 지구가 둥글며 하늘 또한 지구 주위를 둥글게 감싸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주에 관한 그의 문제 의식은 후대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콘포드(Conford), 이오니아 학파의 철학은 정말 과학적이었나?

 

   콘포드는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온 주장인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 학파의 철학에서부터 과학적 탐구의 시초를 찾을 수 있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그리스 시대에서 철학자는 시인(poet)이나 현자(sage) 혹은 예언자(seer)와 비슷한 부류의 지식인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그들이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지식의 원천은 일종의 영감과 유사한 것으로 근대 과학에서의 경험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진정 과학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그리스 의학(medicine)에서부터 발생했다. 의학은 하나의 실천적인 활동(practice)이자 기예(art)였으며, 병자를 치료한다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다.

 

   이른바 이오니아 전통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피타고라스에서부터 시작한 이탈리아 전통의 철학과는 달리 과학적이라고 여겨지는데 그것이 과연 사실일까? 현대 과학에서 원자론적 관점을 통해 물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혹시 우리는 우리의 관심(원자론)과 관점에 비추어서 이오니아 학파의 원자론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 탐구자들에게는 그들 고유의 사유 방법과 관점이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오니아 학파의 철학 또한 실험에 근거한 사유라기보다는 굉장히 교조적인(dogmatic)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그 당시에도 실행이 가능했던 아주 단순한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참조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과감한 주장을 펼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지식의 원천에 대한 상반되는 입장이 있었다. 의술(medical art)의 경우 의사들은 개별 병자들이 보여주는 증후들(symptoms)을 세세하게 기록했고 그 기록을 통해 일반적인 결론을 내렸다. 당시 의학은 실천적인 기술이었으며 병자를 치료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과학적 방법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반면 철학자들의 접근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비록 신체의 구성 성분에 대해 철학자와 의사가 아주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철학자들의 결론은 자신들의 우주론적 교리(dogma)에 의해서 도출된 것이었다. 철학자들이 증명되지 않은 공리(postulate)들로부터 인간에 대한 결론에 도달했다면, 의사들은 개별적인 관측으로부터 출발해서 자신의 원리(doctrine)를 수립해야 했다.

 

   의사들에 의하면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얻어진다. 모든 것은 감각(sense)으로부터 시작하며, 감각은 고등 동물의 기억(memory)을 자극하고, 기억이 축적되면 통일된 경험(experience)이 형성되며,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일반화(generalization)를 수행해서 결국 그 분야에 대한 기예(art)로 발전한다. 알케마이온(Alcmaeon)은 인간의 뇌 속의 작은 구멍들(pore)이 감각을 받아들이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보이려 했다. 이렇듯 우리는 의학에서 경험적 인식론의 시초를 찾을 수 있다. 정당하게 말해 아리스토텔레스 이전까지의 자연 과학적 전통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의학 뿐이다.

 

   플라톤(Plato)에 의하면 완전한 지식이란 감각 기관과 전혀 관계가 없는 정신을 통해서 얻어진다. 철학자는 감각경험 너머에 있는 영원한 지식을 기억(recollect)하기 위해 몰입(rapt)해야만 한다. 그는 내적 성찰(inner consciousness)’을 통해 지금까지 가려져 있던 진리를 순간적으로 깨닫는다. 그리스인들 및 그 시대에 속한 다른 문명인들은 이러한 초정상적인(supernormal) 지식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철학자들은 시인 및 예언자와 같은 부류의 집단에 속한 사람이었으며, 그들이 지식을 얻는 근원은 의사들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핑그리(Pingree), 그리스 중심주의(Hellenophilia) 대 과학사

 

   핑그리는 유독 그리스에서만 과학이 있었다는 그리스 중심주의적 사고를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여러 문명에서는 그 문명의 맥락과 부합하는 방식의 다양한 과학들이 번성했다. 역사학자는 특정한 과학을 탐구할 때, 그것이 일종의 사고의 체계로서 해당 문화에 있던 다른 종류의 체계들과 어떤 방식으로(how)(why)어디서(where)언제(when) 상호작용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그리스 중심주의적 사고를 전제할 때, 우리는 과학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가 그리스인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그릇된 편견을 갖게 되고 이는 다른 문화의 저열함(inferiority)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중세 시대의 이슬람 문명은 단지 그리스의 과학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다 다시 유럽에게 과학 문명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러한 편견의 대표적 예다. 사실상 이슬람 문명은 자신들 특유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리스 과학을 수정하고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에서 고도의 천문학을 발전시킨 것은 그 문명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고, 따라서 다른 문명이 바빌로니아만큼의 천문학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그 문명을 저열하다고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리스 중심주의는 과학사에 두 가지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첫째, (소극적인 의미에서) 이는 과학사가들이 관심을 갖고 탐구할 수 있는 현상들을 제한한다. 둘째, (적극적인 의미에서) 이는 서양의 과학 뿐만 아니라 비서양적인 과학 둘 다를 왜곡하는(pervert) 결과를 낳는다. 고대 문명이 보여주는 여러 종류의 천문학들은 그 문명에 속한 천문학자들 특유의 관심사와 지적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다. 유독 그리스인들만이 유일한 과학적 방법을 발견한 것이 아니고’,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이 상당히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처럼 과학적 방법을 발달시키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이 아니다’. 인도 수학자들은 공리(axiom)와 증명(proof)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유럽보다 몇 세기 전에 이차 부정방정식(indeterminate equation)을 풀었고 삼각함수의 무한 멱급수(infinite power series)를 발견했다. 유클리드의 방법만이 수학을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던 것이다. 의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대표적인 경우로 인도에는 인도 고유의 의학적 실천이 있었고 이는 그 맥락에 비추어 볼 때 합당한 의학이었다.

 

   또 다른 편견 중의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방식의 지식만을 과학으로 받아들이고 그 밖의 다른 그리스 과학들(점성학, 예언, 마술 등)을 단지 미신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핑그리에 의하면 과학이란 지각된 혹은 상상된 현상들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이다. 이같은 정의에 따르면 점성학(astrology)' 예언‘, ’마술‘, ’연금술등도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과학자들이 위와 같은 과학들에 대해서 보이는 증오(anathema)는 중세 시대의 교회가 이단적인 사상에 대해 보였던 태도와 유사하지만, 우리는 바빌로니아 천문학의 관측 기록에서 몇몇 천체 현상의 주기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찾을 수 있으며 그 현상을 예측하기 위한 수학적 모형이 최초로 고안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과학사가들은 고대의 과학 속에서 현대 과학의 요소들과 유사한 부분만을 찾으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이런 왜곡된 관점을 전제하면 고대 과학 고유의 아름다움과 뛰어남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과학 또한 인간 문화의 산물일 뿐이기 때문에, 우리는 해당 과학이 누구에 의해서언제 발명되었으며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해당 과학과 문명 고유의 맥락에 따라 파악해야 한다.

 

로이드(Lloyd), 고대 과학사 연구의 방법과 문제

 

   로이드는 두 가지 기본적인 전제들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첫 번째 전제는 과학철학적 논의들로부터 이끌어온 것으로, 모든 자료에 대한 그 어떤 종류의 기술(description)도 가치-중립적이고 이론-중립적일 수 없다. 과학의 역사를 서술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선택(selection), 판단(judgement), 방법론적인 전제들을 포함하게 된다. 물론 고대 과학의 문헌들을 연구할 때 이 문제는 심각해지며, 우리는 항상 우리와는 다른 사람의 견해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늘 가치판단적(evaluative)이라는 것(개념적 틀과 방법론을 전제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두 번째 전제는 사회 인류학자들이 사용하는 관찰자행위자범주 사이의 구분에 대한 것이다. 이 두 범주의 구분은 이질적인 개념들을 우리의 개념들과 동화시키려는 위험을 최소화시키고 더 나아가 이질적인 개념들을 그 자체의 의미망(network of meaning) 속에서 구성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우리의 첫째 전제에서 추론할 수 있듯, '관찰자''행위자'의 완전한 구분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어떠한 관찰 진술도 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역사가도 자신을 고대의 과학자들의 입장과 정확히 같도록 놓을 수는 없다. 물론 우리는 그 당시의 맥락 속에서 그들이 스스로 무엇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들의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그들의 업적이 어떤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를 탐구해야만 한다.

 

   고대의 의학을 고려할 경우,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의료 기관들이 그리스에는 없었다. 예를 들어 당시에는 의학에 종사하는 세 부류의 사람(뿌리 자르는 사람root-cutter, 약 지어 파는 사람pharmakopolai, 분만시키는 사람mid-wives)이 있었다. 히포크라테스 전서의 저술가들도 자신들의 활동의 목적, 지위, 방법에 대해 일치되는 생각을 갖지는 못했다. 그리스 의사들 중 일부는 의사의 역할이란 단지 치료하는 것일 뿐이며 신체의 물리적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갈렌(Galen) 등은 해부(dissection)가 이론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우리는 고대의 의학사를 연구할 때 의학에 대한 이런 다양한 견해들을 고려해야 한다.

 

   유클리드의 수학 또한 단순히 수학적 탐구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헤론(Heron)의 측량 기하학적 전통(측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심을 두는)의 영향 또한 받았다. 실제로 수학(mathematics)이라는 단어의 원형인 mathema을 표현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여러 분야의 지식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고 있었다. 그리스 시대 당시 수학자는 천문학자(astronomer)였을 뿐만 아니라 점성술가(astrologer)이기도 했다. 우리는 당시의 점성술 또한 잘 확립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고대의 의학과 수학이 그 현대적인 개념들과 그 맥락적 의미가 달랐던 것처럼, 자연 과학이라는 개념에도 고대 고유의 의미가 있었다. 그리스 시대 당시의 자연(phusis) 개념은 초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구분짓기 위해,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탐구는 미신적인 믿음의 영역에 속하며 자연적인 것에 대한 연구가 정당한 연구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이러한 자연 개념은 기원전 5세기가 되면 관습법 등을 포괄하는 개념인 nomos와 반대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런 예들은 자연이라는 개념이 그와 경쟁적인 다른 개념과 대비해서 자신의 탐구 분야를 구분하고 자신의 탐구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능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위의 예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과학의 기원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 어려움을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들에게는 그들이 고유하게 탐구한 특정의 문제들이 있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고 고고학적인 탐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리스에서는 의학적 해부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사람들은 천문학에 좌표 체계를 도입하고 더욱 정교한 천문학 체계를 이끌어냈다. 히파르쿠스(Hipparchus)가 세차 운동(precession)을 발견했다는 것은 그에 대한 좋은 예가 된다. 그리스 인들은 자궁(womb)이 여성의 몸 안에서 돌아다닌다고 생각했고 천구의 조화에 대해서도 믿었다. 고대 그리스 학자들이 보여주는 다원주의(pluralism)적 전통에서의 상호 논쟁은 두드러진 특징을 갖는다. 이 논쟁의 연역적(deductive)증명적(demonstrative)설명적(explanatory) 성격은 이후 유럽의 과학이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물론 고대 과학을 탐구하는 데 있어 우리가 제시하는 가설들(hypotheses)은 비교적인 접근 방법(comparative approach)을 통해 그 타당성 여부가 평가되어야만 한다. 분명 '과학'이라는 범주는 우리의 것, '행위자'의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것이다. 만약 우리가 현대 과학의 기준으로 고대의 과학적 활동을 판단한다면 당연히 시대착오(anachronism)의 오류를 범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그리스 과학에서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인들은 경험적 탐구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식했으며, 공리-연역적인 증명을 발전시켰고,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수학을 적용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고 범주와 완전하게 일치시킬 수 없으며, 그런 까닭에 우리가 역사를 탐구하는 데 있어 사용하는 그 어떤 용어들도 임시적(provisional)이며 수정 가능하다(revisable)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리와 완전히 대조되는 사회 문화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지적 탐구(예를 들어 중국에서 등장한 , 의 개념)를 단순히 우리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비교학적인 탐구 방법을 사용해서 고대의 과학사를 탐구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에서 발췌

 

   탈레스(Thales)는 자연에 관한 탐구를 헬라스 사람들에게 알게 해준 최초의 사람으로 전해진다. 그는 자신보다 앞선 모든 사람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교설(dogmata)이나 이론(logoi)을 시로 발표했다. 그는 천문학 책을 썼다. 그는 깊은 수로를 초승달 모양으로 파자고 제안해서 군대가 강을 건널 수 있게끔 했다. 그는 일식(日蝕)들과 지점(至點)을 예언했으며 그것들의 주기가 언제나 한결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모든 점에서 판단이 현명했으며 북두칠성의 작은 별들을 관찰했다. 그는 천체 연구를 하느라 위를 쳐다보다가 우물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는 우리의 그림자가 우리 자신과 같은 길이일 때를 면밀히 관찰하여 그림자에 의해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했다. 그는 삼각법을 이용하여 바다에 있는 배들이 육지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는 세계의 근원이 물이며, 땅은 물 위에 놓여 있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신으로 충만하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세계(kosmos)의 지성(nous)이며 우주는 신령(daimōn)으로 충만하고, 신적인 힘은 원소로서의 습기를 꿰뚫고 나아간다. 그는 혼을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했으며, 혼이 없는 것들에게도 혼을 부여했다.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ous)는 탈레스의 혈족이며 제자이자 후계자였다. 그는 분점과 지점, 그리고 해시계를 발견했으며 그노몬(삼각자 또는 직각 막대)을 도입했다. 그는 자연에 대해 쓴 글을 대담하게 발표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지도를 그린 최초의 두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무한정한 것(apeiron)에서 모든 하늘(ouranoi)과 그것들 속의 세계들(kosmoi)이 생겨난다. 생성을 원소의 질적 변화로 설명하지 않고, 영원한 운동으로 인한 대립자들의 분리되어 나옴(apokrinomenon)으로 설명한다. 무한정한 것을 있는 것들의 근원이자 원소라고 말하고, 운동(kinesis)은 영원하며 이 운동 속에서 하늘들이 생긴다고 했다. 무한정한 것에서 하늘들과 무수한 모든 세계들 일반이 분리되어 나오며, 소멸과 그 훨씬 이전의 생성이 무한한 세대로부터 일어난다. 그는 부분들은 변화를 겪지만 전체는 변화를 겪지 않는다고 했다. 무한정한 것은 원소들과는 다른 것이며, 그것으로부터 원소들이 생겨난다. 무한정자는 다른 것들의 근원이며, 모든 것을 포함하고(periechein) 모든 것을 조종하는 것(kybernan)이고, 신적인 것이며, 사멸하지 않고(athanaton) 파괴되지 않는다. 시간, 크기의 분할, 생성과 소멸의 무한함, 만약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과 관련해서 언제나 한정될 수밖에 없다면 한계는 결코 있을 수 없음, 끝없이 사고가 가능함 등의 5가지가 무한정자에 대한 믿음의 근거들이다. 대립자들은 하나 속에 있다가 거기서 분리되어 나온다. 지구는 균형으로 인해 머물러 있다. 습한 것에서 최초의 생물이 가시투성이의 껍질에 둘러싸여 태어났다. 사람은 태초에 다른 생물, 즉 물고기와 아주 비슷했다. 사람들은 물고기를 함께 자란 동족처럼 숭배한다.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근원을 공기라고 주장했다. 공기에서 모든 것들이 생겨나서 다시 그것으로 분해되기 때문이다. 공기는 비물체(asoma)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의 유출(ekporia)에 의해서 우리가 생겨나기 때문에, 그것은 무한할 수밖에 없고, 결코 바닥나는 일이 없으므로 풍부할 수밖에 없다. 숨은 입술에 의해서 압축되고 촘촘해져서 차가워지지만, 입이 열리면 숨이 빠져나가면서 희박해짐으로 인해 뜨거워진다. 공기가 희박해지면 불이되지만, 촘촘해지면 바람이 되고, 그 다음에는 구름이 되며, 더욱 더 촘촘해지면 물이 되고, 그 다음에는 흙이 되고, 그 다음에는 돌이 된다. 모든 것은 이것의 어떤 응축(pyknosis)에 의해서, 그리고 반대로 희박(araiosis)에 의해서 생겨난다.

 

   파르메니데스(Parmenides)는 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될 수도(gnoies) 없을 것이고 지적할(phrasais) 수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곁에 있는 것들을 누스(지성)로 확고하게 바라보라고 한다. 지성은 있는 것을 있는 것에 붙어 있음으로부터 떼어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있는 것은 생성되지 않고 소멸되지 않으며, 온전한 한 종류의 것(oulon mounogenes)이고 흔들림 없으며 완결된 것(ede teleston)이다. 있지 않다라는 것은 말할 수도 없고 사유할 수도 없다. 전적으로 있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없거나 해야 한다. 있는 것은 부동(不動)이며 시작이 없으며 그침이 없는 것으로 있다. 있는 것이 미완결이라는 것은 옳지(themis) 않다. 있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어떤 식으로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학적 탐구와는 다른 더 앞선 탐구에 속하기 때문이다. 어떤 인식 또는 사고가 있으려면 그런 부류의 것들이 있어야 함을 최초로 통찰하였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저것들에 해당하는 말(logos)들을 이것들에다 옮겨 놓았다. 그는 정의에 따라 하나인 것에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초로 하늘을 우주(kosmos)라 부르고 땅이 구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있는 것 너머에, 있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있지 않다고 여기면서 그는 필연적으로 있는 것 하나만 있지 다른 어떤 것도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의에 따라서는 하나이지만 감각에 따라서는 여럿인 것이 있다고 상정하면서 그는 두 원인 내지 두 원리를, 즉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을 놓는다. 뜨거운 것은 분리시키는 본성을 갖고 있지만 차가운 것은 모으는 본성을 갖고 있다. 만물은 그것들로부터 생겨났다. 그는 두 원소 중 우세한 것에 의해 인식이 일어난다 했으며, 감각이 거짓되다 했다.

 

   엠페도클레스(Empedokles)는 의사이자 수사가(rhetor)였다. 그에 의하면 만물은 네 뿌리들(tessara rhizomata)로 이루어져 있다. 이 뿌리들은 불, , , 공기이며 세상에는 다만 혼합(mixis)과 혼합된 것들의 분리(diallaxis)만이 있을 뿐이다. 물체들은 작은 조각들이(kata mikra moria) 서로 나란히 놓이고(parakeimenon) 서로 닿아서 생긴다. 사랑(Philotes)에 의해 그것들 전부가 하나로 합쳐지고 불화(Neikos)의 미움에 의해 제각각 따로 떨어진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결합시키며, 불화가 만들어 낸 우주를 파괴시키고 그것을 구()로 만드는 반면에, 불화는 원소들을 다시 분리시켜 지금의 이 우주와 같은 우주를 만든다. 사물에는 사랑과 불화가 교대로 지배하고 움직이는 작용이 필연적으로 성립한다. 그는 감각들 각각의 통로에 방출물들이 꼭 들어맞기 때문에 감각이 성립한다고 말한다. 사물이 거울에 비칠 때 사물 각각에서 방출물들이 나오며, 그것들은 상(eikon) 같은 것들로서 눈에 꼭 들어맞는다. 심장은 자기 안으로 드나드는 피의 바다에서 자양분을 얻는데, 특히 심장(kardia)에는 인간들에 의해 사고(noema)라 불리는 것이 있다. 인간에게서 심장 주위의 피는 생각이다. 나는 이미 한 때 소년이었고 소녀였으며, 덤불이었고 새였고, 바다에서 뛰어오르는 말 못하는 물고기였으니. 행복하다, 신적인 생각들로 부유한 자는. 가련하다, 신들에 관해 어두운 의견(doxa)에 관심을 쏟는 자는.

 

   레우키포스(Leukippos)와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견실하며 진중한 사람. 그런 사람은 명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페르시아의 왕국을 갖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원인설명(aitiologia)을 찾아내기 원한다고 말했다. 레우키포스는 감각(aisthesis)에 일치하는 것들을 실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생성도 소멸도 운동도, 또 있는 것들의 다수성(to plethos)도 부정하지 않는 설명(logoi)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꽉 찬 것(pleres)과 허공(kenon)을 원소들(stoicheia)이라 말하며, 전자를 있는 것(to on), 후자를 있지 않은 것(to me on)이라 말한다. 근원들(archai)은 그 수가 무한하다고 말했으며, 그것들은 자를 수도 없고(atomoi) 분할할 수도 없으며(adiaretoi), 꽉 차 있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도 않으며(apathesis) 허공을 갖지도 않는다고 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어떤 원자들이 아주 크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자릴 수 없는 근원들이 무한하고 언제나 운동하는 원소들이며, 어떤 것도 이런 것이기보다는 저런 것이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것들이 포함하는 형태들의 수가 무한하다. 원자들은 서로 충돌하고 부딪힘으로써 움직인다. 필연이란 질료의 저항(antitypia)과 이동(phora)과 충돌(plege)을 뜻한다. 이것들의 얽힘(symploke)과 흩어짐(peripalaxis)에 따라 모든 것들이 생겨난다. 모든 것은 이치(logos)에 따라서, 그리고 필연(anangke)에 의해 생겨난다. 감각 가능한 것은 모두 접촉 가능한 것(hapta)이다. 관습상 단 것, 쓴 것, 차가운 것, 색깔이 있지만 실제로는 원자와 허공만 있다. 1차적인 원소들인 원자들과 허공 이외에는 아무 것도 참일 수 없으며 파악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본래 존재하는 것은 오직 그것들뿐이고, 그것들로 이루어진 것들은 위치(thesis), 배열(taxis), 형태(schema)가 서로 다른 부차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사물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알기가 곤란하다. 아무것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진리는 심연에 있다. 우리들은 실로 어떤 정확한 것(atrekes)도 파악하지 못하며, 몸의 상태와 몸으로 밀고 들어오거나 몸에 저항하는 것들의 상태에 따라서 변하는 것들(metapipton)을 파악할 따름이다. 앎의 능력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적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출적인 것이다. 서출적인 것에는 다음의 모든 것들,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속한다. 반면에 적법한 것은 서출적인 것과는 구별된다.

 

   의술은 몸의 질병을 낫게 하지만, 지혜는 혼을 격정(pathos)에서 벗어나게 한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몸도 재물도 아니고, 올바름과 폭넓은 분별력이다. 참된 것을 말해야 하며, 말이 많아서는 안 된다. 법과 통치자에게, 그리고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 절도 있는 행동이다. 훌륭한 사람은 하찮은 사람들이 책잡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뉘우치기보다는 행하기에 앞서 미리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 숨김없이 말하는 것은 자유의 고유한 부분이지만, 알맞은 때를 결정하는 데에는 위험이 따른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에 괴로워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들로 즐거워하는 사람이 현명하다. 모든 승부욕(philonikie)은 어리석은 것이다. 적에게 해가 되는 것만 주시하다 보면 자신에게 이로운 것은 보지 못하는 법이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본성으로부터 보다는 훈련(askesis)을 통해 훌륭하게 된다. 말은 행위의 그림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광기 없이 아무나 위대한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