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미셸 얀센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탐구] 요약

강형구 2015. 12. 20. 10:52

 

1. 들어가는 말

 

   1905년에 발표된 특수상대성 이론은 등속 운동에 대한 갈릴레이-뉴턴 상대성원리를 역학에서 물리학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한 이론이었다. 2년 뒤인 1907년에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원리를 모든 종류의 임의적 운동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운동이 상대적인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모든 운동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든 이론은 아니었다. 그의 이론은 정확히 말해 새로운 중력이론이었다. 일반상대성은 실제로 그의 이론에서 완전히 구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 역시 등속운동과 비등속운동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국소적으로는 가속도의 효과와 중력의 효과를 구분할 수 없다는 원리(등가원리, equivalence principle)를 갖고 상대성원리를 비등속운동으로 확장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등가원리만으로는 비등속운동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두 개의 추가적인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한다. 첫째, 물체의 가속도를 대체하는 중력장의 근원을 물질에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모든 물리법칙들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관계없이 동일한 형식을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은 불변성을 일반 공변성(general covariance)이라 한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공변성을 비롯한 여러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장 방정식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1915년 전까지 극히 제한된 공변성만을 만족시키는 장 방정식들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를 개요(Entwurf, outline) 장 방정식이라고 한다. 1913년에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개요 장 방정식이 모든 운동을 상대적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광범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15년에 아인슈타인은 개요 장 방정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일반 공변성을 만족시키는 새로운 장 방정식들을 발표했는데, 이를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이라고 부른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공변성을 통해 모든 운동을 상대화시킨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일반 공변성은 모든 중력장에 물질 근원을 부여할 수 있음을 보장해주지는 못했다. 이는 1916년 가을에 네덜란드 천문학자 드 지터와의 서신 교환을 통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 항을 자신의 장 방정식에 추가해서 물질 근원이 없는 중력장을 허용하지 않고자 했다.

 

   1918년에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의 세 기둥을 마흐의 원리, 등가원리, 상대성원리라고 밝혔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가 포함된 장 방정식조차도 마흐의 원리(물질 근원이 없는 중력장은 허용되지 않는다)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일반상대성 이론에서도 물리학에서 절대운동을 제거하지는 못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와 같은 탐구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은 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었으며, 이러한 시행착오들 속에서 아인슈타인은 풍부한 성과들을 얻을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 효과와 가속도 효과가 모두 단일한 관성중력장의 표현이 되게끔 만들었다. 이 관성중력장은 두 물체가 상대적으로 가속운동을 할 때 어떤 물체가 실제로 가속운동을 하는지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일반상대성 이론에서도 절대운동이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0세기 초에 물리학자들은 물질이 궁극적으로는 전자기장 및 다른 장들의 발현일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에서의 절대운동을 받아들이는 대신 전자기장과 관성중력장을 통일하고자 애썼다. 특수상대성은 전기장과 자기장을 하나의 전자기장으로,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시공간으로 통합했다. 일반상대성은 중력장과 시공구조를 하나의 관성중력장으로 통합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후 아인슈타인은 관성중력장을 전자기장과 통합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일반상대성은 절대운동을 제거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절대 시공간을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시공간을 시공간의 내용물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일반상대성은 그렇다고 답한다. 이는 일반상대성에서 절대운동이 유지됨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공간의 존재론적 지위에 관해서 일반상대성은 실체론자보다는 관계론자의 손을 들어준다.

 

   결론적으로 말해, 뉴턴도 옳았고 라이프니츠도 옳았다. 절대운동이 존재하기 때문에 뉴턴이 옳았고, 절대공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라이프니츠가 옳았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공변성을 만족하는 장 방정식을 반박하는 구멍 논증에 대항해서 점-일치(point-coincidence) 논증을 제시했고, 이는 라이프니츠가 제시한 이동 논증의 현대적 판본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아인슈타인이 등가원리를 통해 모든 운동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실패했을지라도, 등가원리는 새로운 중력이론의 초석이 되었다. 시공간과 중력이 하나의 단일 구조로 나타나야 한다는 아인슈타인의 통찰은 오래도록 물리학 속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에서 제시한 공변성과 에너지-모멘텀 보존 사이의 긴밀한 관계는 뇌더(Noether) 정리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그가 자신의 최대 실수라고 인정했던 우주상수 역시 최근에 우주론에 극적으로 복귀했다. 요약하면, 아인슈타인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이를 통해 얻은 성과들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최종적으로 실패했다면 왜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은 그토록 성공적일 수 있었을까? 이 물음에 저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들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첫째,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철학적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그가 당면하고 있었던 물리학적 문제들을 잊지 않았다. 둘째,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전자기장과 중력장 사이의 유비에 근거했다. 셋째, 아인슈타인은 이론을 개발할 때 자신의 철학적 선호가 물리적 원리들과 부딪치는 주요 지점들에서 완고한 입장이 아닌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

 

2. 첫 번째 시도 : 등가원리

 

   1907년 베른의 특허청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아인슈타인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찾아왔다. 자유낙하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 중력장에서 자유낙하 하는 것은 중력장 없이 멈춰있는 것과 적어도 국소적으로는 물리적으로 동등하다. 지구 위에서 정지해 있는 사람(a)과 자유낙하 하는 사람(b)이 있다면, a는 중력장에서 자신이 정지해 있으며 b가 가속운동 한다고 보고, b는 자신이 중력장이 없는 곳에서 정지해 있으며 a가 가속운동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된 상대성원리는 등속운동에서의 상대성원리와는 다르다. 등속운동에서 기준계들은 물리적으로 완전히 동등하다. 그러나 ab는 서로 다른 물리적 상태에 있다. a는 중력장이 존재하며 b는 중력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등속운동에서 기준계들은 대칭적이지만 가속운동에서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가속운동은 상대적이지 않으며, 이때 상대적인 것은 중력장의 존재 혹은 부재인 것이다. 비록 모든 관성효과들을 중력효과들로 환원할 수는 없을지라도, 최종적인 형태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국소적인 관성효과와 중력효과를 관성중력장의 효과로 본다.

 

   뉴턴 물리학에서 사물들에게 차별적인 방식이 아니라 보편적인 방식으로 작용하는 유일한 힘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중력이었다. 뉴턴은 이러한 보편성을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의 일치로 설명했다. 뉴턴 물리학에서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의 일치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 일치였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을 통해 중력장과 시공간의 관성구조를 단일한 관성중력장으로 통합했다. 관성중력장은 힘을 받지 않는 입자의 궤적을 구체화시킨다.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전자기장과의 유비를 사용했다. 전자기 유도에서 생성된 전기장처럼 중력장 역시 상대적인 존재성을 갖는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논문에서 자석이 움직여서 전류가 생성되는 것과 전도체가 움직여서 전류가 생성되는 것을 동등하게 설명했다. 아인슈타인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오직 단일한 전자기장이 존재하며 기준계에 따라서 이 전자기장을 전기적 성분과 자기적 성분으로 분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등가원리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공식화될 수 있다. 단일한 관성중력장이 기준계에 따라서 관성 성분과 중력 성분으로 분해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등가원리를 발견법적(heuristic) 원리로 사용하여 민코프스키 시공간에서의 가속도 효과를 토대로 중력의 효과를 추론할 수 있었다. 민코프스키 시공간에서의 회전 관성 효과는 중력장에 의한 효과로 재해석될 수 있었다. 회전하는 원반의 경우, 원반 끝에서 원반과 함께 회전하는 관찰자는 자신이 정지해 있고 중력장이 작용하고 있다고 볼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사고실험을 통해, 뉴턴의 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중력이론이 가지게 될 면모들에 대한 단서들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시간지연 효과다. 원반 끝에 놓인 시계가 원반 중심에 놓인 시계보다 천천히 가는 것처럼, 중력장 아래에 놓인 시계 역시 더 느리게 움직일 것이다. 둘째, 빛의 휘어짐 효과다. 원반의 중심에서 원반 끝 시계로 빛을 쏜다고 해보자. 원반이 회전하고 있으므로 빛의 경로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 될 것이다. 셋째, 공간 형태의 변화 효과다. 원반 끝에 있는 관찰자가 원의 둘레를 측정할 경우, 원주율이 π보다 커질 것이다. 이는 중력장에서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일으킬 것이며, 공간의 기하학은 비유클리드적인 것이 될 것이다. 중력이 있는 곳의 공간기하학이 비유클리드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아인슈타인에게 중요한 발견법적 역할을 담당했다.

 

   아인슈타인은 1912년에 등가원리에 기초한 최초의 중력이론을 제시했다. 중력장 방정식이 만족시켜야 하는 조건 중 하나는 민코프스키 시공간에서의 일정한 선형 가속과 대응하는 정적이고 균일한 중력장이 진공 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방정식은 이 조건을 만족시켰다. 하지만 에너지 보존 조건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방정식은 공간의 무한히 작은 영역에서만 유효했다. 이 상황에서 아인슈타인은 등가원리가 제시하는 철학적 약속을 따르기보다는 에너지 보존이라는 물리적인 요구조건을 선택했다. 그에게 있어 철학보다는 물리학이 더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3. 두 번째 시도 : 일반 공변성

 

   중력이 시공간의 기하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을 형식적 이론으로 만들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가우스에 의해서 개발된 곡면기하학을 이용하고자 했다. 스위스 공과대학에서 아인슈타인의 동기 그라스만은 아인슈타인에게 리만, 크리스토펠 등이 가우스의 이론을 확장한 것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 가우스와 리만 기하학에서 중심적인 양은 계량 텐서 또는 계량이다. 계량 텐서는 시공간에 기하를 부여하고 중력장에 포텐셜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2차원 구면을 2차원 평면에 투영하여 좌표를 부여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남극과 북극을 제외한 모든 점에 좌표가 부여된다. 이때 2차원 평면이 쓸모 있는 지도로서 역할을 하려면 지도상의 좌표거리를 구면상의 고유거리로 변환시켜주는 지침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때 변환 요소들은 계량에 의해서 주어지는데, 이 요소들은 방향 및 점의 위치에 따라서 달라진다. 동일한 경도에서 격자 사이의 거리(상하)는 지도가 구보다 더 크고, 동일한 위도에서 격자 사이의 거리(좌우)는 지도가 구보다 더 작다. 이 차이는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더 커진다. , 동서 변환 요소는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더 작아지고, 남북 변환 요소는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더 커진다. 극점에서 계량의 동서 요소는 0이되며, 따라서 이를 좌표 특이점이라고 부른다. 임의의 2차원 곡면에서는 모든 점에서 3개의 변환 요소가 필요하며, n차원 곡면은 n(n+1)/2개의 요소를 필요로 한다. 4차원 시공간의 경우 10개의 요소가 필요하다. 계량 장은 좌표가 할당된 점에 계량 요소들의 값을 부여한다. 곡면에 좌표를 부여할 수 있는 무한히 많은 종류의 격자들이 존재한다.

 

   가우스는 2차원 면의 곡률을 3차원 공간에 의존하지 않고 내재적으로 정의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리고 가우스는 내재적 곡률인 가우스 곡률이 계량 장의 요소들로 구성된 함수이며 이 함수가 모든 좌표계의 모든 좌표들에서 동일한 1, 2차 미분계수를 갖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고차원 공간의 내재적 곡률을 기술하는 리만 곡률 텐서의 성분들에도 적용된다. 하나의 좌표계에서 다른 좌표계로 옮길 때 계량 장으로부터 표면의 기하를 번역하는데 쓰이는 변환 규칙들은 모든 좌표계에서 동일하다. , 곡면에 대한 가우스의 이론은 일반 공변성을 만족한다.

 

   계량이 도입되면 시공간에서의 선의 길이를 계산할 수 있다. 시공간에서 가장 길이가 긴 선을 측지선(geodesic)이라 한다. 리만 기하학에서는 아핀 측지선이라 부른다. 측지선은 측지선 방정식에 의해서 결정된다. 측지선 방정식은 크리스토펠 기호를 포함하며, 이는 포텐셜의 그래디언트로 중력장의 성분들을 나타낸다. 이후 헤센베르크, 레비-치비타, 바일은 아핀 접속의 일반적 개념을 발전시켰다. 접속은 계량과 독립적으로 더 일반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일반상대성은 접속의 용어로 가장 자연스럽게 공식화될 수 있다.

 

   측지선, 계량, 아핀 등의 개념을 이용하면 등가원리를 기하학적 언어로 특성화할 수 있다. 자유낙하하거나 무중력 상태에 떠다니는 사람의 세계선은 측지선이지만 중력을 받거나 가속운동에 저항하는 사람의 세계선은 측지선이 아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물리적 상태에 있는 두 관찰자는 물리적 상황을 묘사할 때 계량 장에 대한 동일한 함수를 포함하는 동일한 방정식들을 사용할 것이다. 이는 리만 기하학의 일반 공변성 때문이다.

 

   임의적 좌표 변환을 허용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은 등속운동에서 임의운동으로 상대성원리를 자동적으로 확장하게 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측지선을 비측지선으로 만드는 변환은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측지선과 비측지선은 여전히 물리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것이다. 그레츠만은 1917년에 그 어떤 시공이론도 일반 공변성을 만족하는 방식으로 기술될 수 있음을 보였다. 또한 그는 특수상대성 이론에서 로렌츠 변환 아래에서의 불변성이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임의 좌표변환 아래에서의 불변성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수상대성 이론의 불변성은 시공간의 대칭성을 포착하지만, 일반상대성 이론의 불변성은 물질 분포에 의존하는 다양한 종류의 시공간을 드러내기 때문에 시공간의 대칭성을 포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운동의 상대성원리와도 관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공변성은 중력장의 상대성에 대해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력장의 상대성으로 인해 중력장이 존재한다고 판단하는 관찰자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는 관찰자 모두에게 물리학의 법칙은 동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중력장을 경험하지 못하는 관찰자 b는 관찰자 a가 경험하는 관성중력 효과는 관성력 때문이라고 볼 것이다. 중력장을 경험하는 관찰자 a는 그가 경험하는 관성중력 효과를 중력장의 힘 때문이라고 볼 것이다. 이러한 중력장의 상대성에서 일반 공변성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912년 말까지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을 추구하는 데 있어 충분히 광범위한 공변성을 가진 장방정식을 찾는데 집중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의 흔적은 취리히 시절 그가 썼던 공책에 담겨져 있다. 그는 아주 제한된 공변성을 만족하는 방정식들을 1913년에 출판했다가 191511월에야 비로소 일반 공변성을 만족하는 장방정식을 출판했다. 일반 공변성을 만족하는 장방정식으로 나아가지 못한 데는 이른바 구멍 논증의 역할이 컸다. 구멍 논증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공변하는 장방정식은 물질 분포가 구체화되어도 시공간 기하를 유일하게 결정하는데 실패한다.

 

   1+1차원 시공간으로 예를 들어보자. 두 개의 격자가 있다. 하나의 격자에는 계란형의 영역에 물질이 통째로 빠져있고, 이를 구멍이라고 부른다. 두 격자의 물질 분포를 기술하는 함수들은 동일하다. 왜냐하면 구멍 밖에서는 두 격자의 좌표들이 일치하며 구멍 안에서 두 격자의 함수는 모두 0의 값을 갖기 때문이다. g(x)를 직선격자의 물질 분포에 대한 장방정식의 해라고 하자. 반면 g'(x')는 구멍이 있는 격자의 기하를 기술한다고 하자. 이 경우, 장방정식이 일반 공변성을 만족한다면 g'(x')이 장방정식의 해이면 g'(x) 역시 장방정식의 해이다.

 

   점 P가 직선격자에서 좌표 (3,2)를 갖고, 구멍이 있는 격자에서는 좌표 (2,1)을 갖는다. g(x)는 점 Pgμν(3,2)라는 계량을 부여하고, g'(x')g'μν(2,1)를 부여한다. 그리고 gμν(3,2)g'μν(2,1)P에서 동일하다. 그런데 gμν(2,1)g'μν(2,1)는 서로 다른 기하를 기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장방정식의 공변성이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질이 없는 곳에서도 좌표변한 아래에서 형식을 유지하는 장방정식들을 배제한 것이다.

 

   그러나 1915년에 아인슈타인은 일반 공변성을 만족시키는 자신의 장방정식을 발표하고, 이 장방정식이 에너지-모멘텀 보존을 만족하며 적절한 극한 상황에서 뉴턴의 이론과 양립가능함을 보였다. 대신 아인슈타인은 이른바 점-일치 논증으로 구멍 논증을 극복하고자 했다. 만약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것이 시공간적 일치뿐이라면, -일치의 집합을 좌표화하는 특정 방식을 선호할 근거가 없다. , 주어진 물질 분포에 대해 다양한 기하가 주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점-일치 논증은 투박한 검증주의에 근거하며 물리적 실재 개념을 빈약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점을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은 계량 장 및 물질 장에 의해서 해당 점에 부여된 속성들의 합에 근거하는 것 밖에 없다고 한다면, PQ는 동일한 점에 대한 서로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반 공변적 장방정식은 완벽히 결정론적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장은 미분가능 다양체 위에서 정의된다. 다양체가 시공간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다양체 위에 계량 장이 덧붙여져야 한다.

 

   만약 다양체 위의 점이 계량 장과 독립적으로 개별화될 수 있다면, 이 다양체는 수학적으로는 구분되지만 경험적으로 구분될 수 없는 시공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양체 위의 점이 계량 장과 독립적으로 개별화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해야 한다. 이는 시공간에 대한 실체론적 관점이 아닌 관계론적 관점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라이프니츠는 뉴턴의 절대공간을 부정하기 위해 충분이유원리와 식별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를 사용했다. 아인슈타인 역시 점-일치 논증에서 식별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 공변성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절대 시공간에 대항하는 강력한 논증이 되었던 것이다.

 

4. 세 번째 시도 : 뉴턴의 양동이에 대한 마흐적 설명

 

   아인슈타인은 절대운동을 제거하기 위해서 일반 공변성이 아닌 다른 전략을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한 물체의 관성을, 그 물체와 우주에 있는 다른 모든 물질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유명한 양동이 실험에서 뉴턴은 물과 양동이 사이의 상대운동이 없어도 물이 움푹 패거나 상대운동이 있어도 물이 편평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물의 패임은 절대공간에 대한 물의 운동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세기에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마흐는, 양동이의 물이 패는 것은 우주에 있는 다른 물질들이 양동이에 대해 상대운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마흐는 물질과 지구가 정지해 있고 물과 양동이가 회전하는 경우가, 물과 양동이가 정지해 있고 물질과 지구가 회전하는 경우와 물리적으로 동등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뉴턴 이론에서는 물질과 지구가 회전하는 경우에 물은 패지 않는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마흐의 관점이 옳고 뉴턴의 이론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이 마흐의 관점을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다음의 좀 더 구체적인 두 가지 주장들로부터 유도되었다. 첫째, 민코프스키 시공간에서 회전하는 좌표계의 계량 장은 장 방정식의 진공해, 즉 중력을 행사하는 물질이 전혀 없을 때의 해다. 둘째, 구형 껍질(물질)이 앞서 제시된 회전하는 좌표계와 동일한 각속도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할 때 동일한 계량 장이 구형 껍질 중심 근방에 생성된다.

 

   민코프스키 시공간에서 구 껍질에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는 관찰자에게, 계량 장은 장 방정식의 진공해이다. 이는 1913년 개요 이론과 1915년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 둘 다에게서 만족된다.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은 일반 공변성을 통해 자동적으로 이 해가 양동이에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는 관찰자에게도 진공해가 되게끔 만든다. 그러나 1913년의 개요 이론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아인슈타인과 그로스만은 적절한 좌표계 사이에서 정당화되는 변환과 일반적 변환을 비자동적(non-autonomous) 변환과 자동적 변환으로 구분했다. 이때 비자동적 변환은 변환되는 계량 장에 의존한다.

 

   아인슈타인은 2년이 넘도록 회전하는 좌표계와 구 껍질 사이의 변환이 정당화되는 변환인지의 여부를 결정하고자 노력했다. , 회전 계량이 개요 장 방정식의 진공해인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1914년에 아인슈타인은 개요 이론에서 회전 계량이 진공해임을 보였다고 믿었으나 이 논의에는 오류가 있었고, 1915년에는 좀 더 일반적인 공변성을 만족하는 장 방정식으로 회전 계량을 진공해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회전 계량은 회전하는 구가 구 중심 근방에 생성하는 계량 장으로 보기 어려웠다. 주어진 물질 분포에 대한 계량 장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공간적인 무한대에서 계량 장이 갖는 값들(경계조건들)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민코프스키 시공간을 전제해서 계산을 해 보니, 우주의 물질 상호작용에 의해서 생성되는 관성력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관성력은 절대적인 민코프스키 시공간에 의해서 생성되어야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 마흐의 생각과는 달리 앞서 제시되었던 두 상황은 서로 동등하지 않았으며, 구가 회전하는 경우에는 양동이의 물이 크게 패이지 않고 거의 편평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상황 1(지구와 구가 정지해 있고 양동이와 물이 회전하는 상황)의 경우, 구의 입장에서 중력은 없고 계량 장 성분은 상수이며 물 표면이 패는 것은 관성력 때문이다. 양동이의 관점에서 볼 때 계량 장 성분은 점에 따라 변하며 물 표면은 중력장에 의해서 팬다. 시공간이 무한대로 갈 때 계량 장의 값은 무한대로 가며, 구 껍질 입자들 사이의 응집력을 가정할 필요도 없다. 반면, 상황 2(양동이와 물이 정지해 있고 지구와 구가 회전하는 상황)의 경우, 계량 장의 값은 유한으로 유지되며 별도의 구 껍질 입자들 사이의 응집력을 별도로 가정할 필요가 없다. 상황 1에서는 구가 중력장의 원천이 아닌 반면, 상황 2에서는 구가 중력장의 원천이다.

 

   아인슈타인은 서로 다른 상황 1과 상황 2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고, 회전하는 구의 계량 장이 일반 공변성에 의해 자동적으로 회전 계량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18년 물리학자 한스 티링(Hans Thirring)은 회전하는 구의 계량 장과 회전 계량은 완전히 다른 경계조건들에 대응함을 보였다. , 아인슈타인은 회전하는 양동이와 물에 대한 마흐적 설명을 제시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의 실패는 실패로만 끝나지 않았다. 위 논의는 티링과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회전하는 구가 구 내부가 아니라 구 외부의 계량 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게끔 유도했고, 이는 이른바 틀 끌림(frame dragging)’ 현상으로 2004년 미항공우주국(NASA)에 의해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5. 네 번째 시도 : 마흐의 원리와 우주상수

 

   191511월에 제시된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일반적인 공변성을 만족했다. 그러나 주어진 물질 분포에 대한 계량 장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무한대에서의 경계조건들이 필요했고 이는 절대운동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모든 관찰자에게 계량 장이 동일한 경계조건을 갖기 위해 공간적 무한대에서 계량 장의 모든 성분들이 0이거나 무한대이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가시적인 우주 밖에 많은 양의 질량이 있다고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뉴턴의 절대공간을 보이지 않는 물질로 대체하는 격이었고, 드 지터는 아인슈타인의 이러한 제안을 비판했다.

 

   아인슈타인은 드 지터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공간적 무한대에서의 경계조건을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그것은 공간적 무한성을 제거하는 것, 즉 공간적으로 닫힌 우주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 우주는 4차원 유클리드 공간의 초(hyper)-구이며, 이 구의 기하는 3차원 초-평면의 기하다. 이는 2차원 유클리드 평면에서의 원과 유사하며, 이 원이 시간과 무관하게 영원히 반지름을 유지하므로, 일종의 원통우주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우주는 정적인 우주다.

 

   아인슈타인은 원통우주의 계량 장이 갖는 성분들을 계산해서 장 방정식에 대입했다. 이때 물질 분포는 정지해 있고 질량밀도 ρ에 의해서 완전히 특성화된다. 아인슈타인의 계산 결과, 원통우주의 계량 장은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의 해가 아니라 약간 변경된 방정식의 해임이 밝혀졌다. 변경된 방정식에는 gμν에 비례하는 항인 우주항이 추가되어야 했다. 이때 비례상수 λ가 그 유명한 우주상수다. 아인슈타인은 자연에 임의적인 새 상수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볼 때 장 방정식에 우주항을 추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일반 상대성에 근거한 우주론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우주상수를 도입하는 것을 능숙하게 정당화한다. 이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장 방정식에 추가적인 항이 필요하다는 것을 논증한 다음, 우주항과 결합한 장 방정식이 원통우주를 허용함을 보였다. 이는 그의 실제 사고 순서와는 뒤바뀐 것이었다. (발견의 맥락에서는 원통우주를 먼저 생각하고 이 우주에 맞게 우주항을 도입했으나, 정당화의 맥락에서는 우주항의 도입 필요성을 먼저 논증한 후 원통우주가 허용됨을 보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우주항 추가를 뉴턴 우주론과의 비유를 들어 정당화했다. 정적 우주가 붕괴하지 않기 위해서는 뉴턴 우주론과 아인슈타인 우주론 모두에서 중력적 반발이 필요했다. 우주항은 이러한 반발력을 제공했다.

 

   하지만 드 지터는 아인슈타인과는 다른 해를 얻었다. 드 지터 우주는 4+1차원의 민코프스키 시공간에 있는 초-쌍곡공간이고, 이 공간의 기하는 3+1차원 초-평면의 기하다. 따라서 드 지터의 우주를 쌍곡우주라고도 한다. 쌍곡면에 있는 점들은 중심과 동일한 거리에 있다. 따라서 이는 3차원 유클리드 공간에 있는 구와 비유될 수 있다. 드 지터의 계산에 따르면 우주항이 추가된 장 방정식은 쌍곡우주를 허용하며, 이때 질량밀도 ρ는 모든 곳에서 0이다. 드 지터는 새로운 장 방정식의 진공해를 발견한 것이다.

 

   드 지터 우주에서 시험 입자의 관성은 멀리 있는 질량과의 상호작용 때문이 아니라 시공간 때문에 생성되는 것이었다. 이는 임의적 운동의 상대성을 확립하려는 아인슈타인의 시도가 불가능함을 의미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gμν 장이 물질에 의해 완전히 결정되며 물질 없이는 gμν 장이 존재할 수 없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관성의 상대성 조건이라 한다. 따라서 드 지터가 발견한 진공해는 아인슈타인에게는 저주와도 같았고, 그는 드 지터 우주를 부정할 근거를 찾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쌍곡우주를 원통우주로 대응시켜서 둘을 서로 비교하기 쉽게 만들었다. 정적 좌표계를 도입하면 드 지터 우주 역시 원통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비교 결과, 두 우주는 시간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였다. 아인슈타인 우주에서 시간 변환 성분은 1로 동일했다. 그러나 드 지터 우주에서 이 성분은 cos(r/R)로 위치에 따라서 변한다. 이때, 시간 변환 성분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 요소는 점점 커져야 한다.

 

   시간 요소의 변화를 근거로 아인슈타인은 드 지터 우주가 실제로 텅 빈 것이 아니라 이 우주의 지평선에 많은 양의 질량이 감추어져 있다고 보았다. 두 우주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아인슈타인 우주에서는 물질이 고루 분포되어 있고 드 지터 우주에서는 물질이 밀집되어 있는 것이라고 아인슈타인은 생각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아인슈타인은 우주항을 추가한 자신의 장 방정식이 진공해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19185월 말에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은 드 지터 우주에서 계량 장이 특이하게 행동하는 것은 정적인 좌표계를 도입한 것으로부터 파생된 것일 뿐임을 보였다. , 드 지터 우주에서의 시간 요소 변화는 좌표계의 도입에 따른 것이지 우주에 내재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인슈타인의 믿음과는 달리 드 지터 우주에는 실제로 그 어디에도 질량이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펠릭스 클라인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드 지터 우주에서 질량이 없는 중력장 방정식의 특이성 없는 해가 존재함을 인정했다. 대신, 아인슈타인은 특이점 없이는 정적 모형으로 변환될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드 지터 우주를 배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아인슈타인은 마흐의 원리를 추구하려던 이전까지의 열정을 잃어버렸다. 아인슈타인은 1920년에 계량 장을 새로운 종류의 에테르로 제시하면서, 계량 장이 물질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포기했다. 이로써 물리학에서 절대운동을 제거하려는 아인슈타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1920년 경부터 아인슈타인은 관성-중력장과 전자기장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6. 사후적 분석 :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은 어떻게 그의 철학을 점검했는가

 

   등가원리와 일반 공변성을 결합하면 중력장의 상대성을 얻을 수 있지만 상대성이 비등속운동으로 확장되지는 않는다. 계량 장을 물질로 환원하려는 아인슈타인의 시도 역시 실패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중력이론을 개발한 것은 순전히 운 좋은 우연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는 세 가지 요소들이 있다.

 

   첫째,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특수상대성의 결과와 조화시켜 좀 더 광범위한 틀 속에서 그 둘을 통합하고자 했다. 둘째, 아인슈타인이 이런 통합을 위해 계량 장을 도입했을 때 그는 맥스웰과 로렌츠의 성공적인 전자기장 이론을 모형으로 삼았다. 셋째, 아인슈타인은 그의 철학적 추구가 건전한 물리 원리들과 부딪칠 때 그의 철학을 제한하고 물리 원리들을 유지했다. 요약하면,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철학적 목표가 물리적으로 납득 가능한 이론 속에 구현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했던 것이다.

 

   특수상대성이 등장한 이후 원격 힘을 전제하는 뉴턴 이론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었다. 아인슈타인과 다른 물리학자들은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장에 의해 매개되는 새로운 중력이론을 찾고자 했다. 그런데 특수상대성의 틀에서 전개한 중력이론에서는 낙하하는 물체의 가속도가 평행속도와 독립적이지 않았고, 이는 자유낙하하는 물체의 가속도가 물체에 관계 없이 모두 동일하다는 갈릴레오의 원리와 어긋났다. 이 지점에서 아인슈타인은 문제의 초점을 특수상대성과 원격 힘의 상치에서 특수상대성과 갈릴레오 원리의 상치로 옮겼다. 그리고 그는 특수상대성의 틀에서 중력장 이론을 개발하고자 하는 시도를 포기했다. 아인슈타인의 1912년 정적 중력장 이론에서 변화하는 빛의 속도는 중력 포텐셜의 역할을 맡는다. 이는 특수상대성의 두 공준들 중 하나인 광속불변의 원리를 포기한 것이다.

 

   같은 1912년에 물리학자 노르트스트룀은 특수상대성의 틀 속에서 중력이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에서 중력 상호작용은 민코프스키 시공간의 장으로 설명된다. 노르트스트룀은 회전 평면에서 자유낙하하는 물체와 정지평면에서 자유낙하하는 물체 사이의 운동 차이가 너무 작아서 그 차이를 실제로 측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노르트스트룀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아인슈타인은 노르트스트룀 이론에서 중력장의 물질 근원을 나타내는 양이 노르트스트룀의 생각처럼 에너지 밀도가 아니라 에너지-모멘템 텐서의 자국(trace)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노르트스트룀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은 물체 입자들을 응집하게 하는 힘을 고려할 경우에 물체의 낙하가 물체의 회전 및 물체의 역학적 에너지에 의존하는 것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하나의 중력 포텐셜과 편평한 시공간을 전제하는 노르트스트룀의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개요 이론보다 더 단순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노르트스트룀의 이론을 자신의 이론과 대등하게 다루면서도 자신이 이론을 추구하는 방향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았다. 노르트스트룀 이론은 등가원리를 만족시키지 못했으므로, 아인슈타인은 일식현상에 대한 관측을 통해서 두 이론 중 어떤 것이 옳은 이론인지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인슈타인은 관성의 상대성을 구현하는 자신의 이론이 경쟁 이론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아인슈타인은 노르트스트룀의 이론 역시 중력이 시공간 구조로 통합되는 이론으로 재공식화될 수 있음을 보였다. 또한 그는 노르트스트룀 이론에서 에너지 보존을 보장하려면 물리계가 중력 포텐셜에 의존해야 하며, 이는 더 이상 경쟁 이론의 시공간이 민코프스키 시공간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1914년 초에 아인슈타인은 노르트스트룀 이론을 리만 기하학을 사용해서 재공식화했다. 이렇게 재공식화된 이론에서 중력은 굽은 시공간의 구조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며, 이는 특수상대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재공식화된 이론은 로렌츠 변환보다 더 광범위한 변환군 아래에서 공변했다. 이 이론과 아인슈타인 이론 사이의 차이는, 이 이론과 달리 아인슈타인 이론은 등가원리를 통해 중력과 관성력을 통합한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경쟁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면서 아인슈타인은 계량 텐서에 기초한 이론이 옳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에너지-모멘텀 보존 원리, 약한 정적 장에서는 새로운 이론이 뉴턴 이론의 결과와 양립가능해야 한다는 조건 역시도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중력장 방정식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지침을 주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이론 개발에 있어 전자기학과의 유비에 크게 의존했다. 그는 중력에 대한 뉴턴 이론에서 새로운 이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쿨롱의 정전기학에서 맥스웰의 전기동역학으로 나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그는 중력장과 물질 사이의 에너지-모멘텀 전달에 관한 방정식 역시 전자기장에서의 것과 유사하게 공식화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개요 이론에서 중력장의 라그랑지안 역시 맥스웰 이론의 전자기장 라그랑지안을 그 모형으로 삼아 만들었다. 1915년에 자신의 개요 이론을 포기한 아인슈타인은 이론의 일반적 형식을 유지하면서 장의 정의를 계량의 그래디언트에서 크리스토펠 기호로 변경했다. 그가 유지한 이론 형식은 새로운 이론이 에너지-모멘텀 보존 및 뉴턴 이론의 결과와 양립가능하도록 안내해주었던 셈이다.

 

   이처럼 수학적 추론과 물리학적 추론을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며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지속적으로 점검했던 아인슈타인은, 191511월에 자신의 장 방정식이 옳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비록 일반상대성을 추구하는 것에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이고 성공적인 중력 이론을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