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교육

강형구 2024. 7. 9. 09:30

   올해 초에 나는 경상국립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과학교육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국립대구과학관에 근무하던 시기에 나는 과천과학관 소속 모 팀장님과 함께 비형식 과학교육에 관한 학술논문을 한 편 썼는데(당시 저자가 총 4명이었다), 이를 계기로 계속 한국과학교육학회에서 내 회사 메일로 소식을 전해왔다. 올해 초 내가 국립대구과학관 교육연구실에서 근무할 때 한국과학교육학회에서 보내 준 학술대회 일정을 보니, 과학사/과학철학 분과에서 ‘정병훈’ 교수님이 발표 예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매우 반가웠다. 정병훈 교수님은 과학철학 분야에서 파이어아벤트 및 서양 근대과학철학 연구로 명성이 있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경상대학교 철학과에서 퇴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시는 것 같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말로만 듣던 정병훈 교수님을 뵐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학술대회에 참석했는데, 약간 당황스러운 상황이 일어났다. 막상 구두 발표 세션에 참석해 보니, ‘정병훈’ 교수님은 내가 사진과 영상으로 봤던 그 ‘정병훈’ 교수님이 아니었다. 발표하신 교수님은 청주교육대학교에 오랫동안 재직하신 과학교육과의 물리교육 전공 ‘정병훈’ 교수님(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학사,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석사, 독일 박사)이었고, 나는 교수님께 인사드리면서 내 박사학위 논문 한 부를 드렸다. 나는 예전에 과학철학자 정병훈 교수님의 업적을 찾아보면서 과학교육 분야에서도 논문을 다수 출판하신 걸 확인하면서 ‘대단한 분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착각이었다. 청주교대 ‘정병훈’ 교수님이 경상대 ‘정병훈’ 교수님인 줄 알았다.

 

   이제는 소속이 국립대구과학관이 아닌 국립목포대학교가 되었지만,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자로서 과학교육에 대한 나의 관심은 여전히 높다. 왜냐하면 나는 일차적으로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가장 실질적인 유용성이 과학교육에서 잘 드러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일반 대중을 위한 교양교육으로 기능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 과학자 혹은 과학 교사가 될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해 메타적으로 성찰하는 법’을 알려줄 수 있는 중요한 과목이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아닐까 한다. 결국 과학사와 과학철학은 과학을 더 잘할 수 있게, 과학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 주된 역할 아니겠는가. 실제로 내가 고등학교 시절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수학과 과학이 어려웠고 그 내용을 더 깊이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싶었기에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읽었다.

 

   한국과학철학회 학술대회에서는 과학 혹은 과학교육에 종사하는 연구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비슷하게, 한국과학교육학회 학술대회에서는 과학사 혹은 과학철학에 종사하는 연구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예전(20년 전쯤?)에는 과학교육 분야에서도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관해 관심을 가진 분들을 적잖이 찾아볼 수 있었던 것 같으나, 오늘날에는 그런 관심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게 자연스러운 추세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상황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수학과 과학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입문하게 된 나로서는 이런 상황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대체 어디에 쓸모 있습니까?”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과학사와 과학철학은 실제로 학생들이 과학을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중요하며, 이후 과학자들이 성찰적인 방식으로 과학적 실천을 할 때 핵심적인 자원으로 기능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과학사 연구자들과 과학철학 연구자들만을 대상으로 담론을 펼친다면 그 유용성은 극히 제한적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무엇보다 과학교육과 맺고 있는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