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에는 내게 갑작스러운 신상의 변동이 있었다. 국립목포대학교 교양학부의 과학기술철학 전공 전임직 교원으로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국립대구과학관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하려 했던 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도 취소해야 했다. 신속하게 광주에 숙소를 구했고, 3월부터 교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1학기에는 “MNU 대학생활” (2과목, 4학점), “디지털 문서와 콘텐츠” (1과목, 2학점), “로봇의 윤리학” (1과목, 3학점) 수업을 진행했다(총 9학점). 2학기에는 “MNU 생각산책” (1과목, 2학점), “MNU 프론티어 정신” (1과목, 2학점), “디지털 문서와 콘텐츠” (2과목, 4학점), “과학철학의 이해” (1과목, 3학점), “현대철학” (1과목, 3학점) 수업을 진행했다(총 14학점). 모두 새로 하는 강의들이라 강의 준비하는 데 제법 공을 많이 들였다. 1년이 지나니 학생들 얼굴이 익숙해졌고, 자주 가는 강의실도 퍽 친숙해졌다. 캠퍼스 전체가 낯익게 되었다.
올해의 특기할 만한 점은 라이헨바흐의 1938년 저작인 [경험과 예측]을 번역 출간했다는 것이다. 라이헨바흐 저술을 번역하는 작업은 내가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일이다. 내년에는 그의 1928년 저술인 [물리적 지식의 목표와 방법], 1956년 저술인(사후 출간된) [시간의 방향]을 번역 출간하기로 계획되어 있다. 확률론, 기호논리학, 법칙적 진술에 관한 그의 저술들 또한 향후 번역되어야 하며, 누가 번역할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그 작업에 동참할 셈이다. 라이헨바흐를 중심으로 그 시대를 풍미했던 저자들, 특히 카르납, 슐리크, 필립 프랑크(Phillip Frank), 에딩턴, 바일 등의 저술들 또한 번역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의 과학사상을 꾸준히 일관되게 연구하는 것이 나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2024년에는 라이헨바흐에 관한 연구논문 2편을 학술지에 게재했고, 아인슈타인에 관한 연구논문 1편을 곧 학술지에 게재할 예정이다. 즉, 총 3편의 연구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게 되며, 촘스키의 언어철학에 관한 논문 1편은 심사 중이다. 올해 게재한 라이헨바흐에 관한 2편의 논문 모두 그의 시간 철학에 연관된다. 내년에 그의 [시간의 방향]을 번역 출간하려는 것 역시 이 작업의 연장선 위에 있다. 시간의 철학에 관해 국내에서 드물게 몇몇 논자들이 논의하였으나, 논의가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깊이도 그다지 깊지 않았다. “시간의 철학”과 “시간과 공간의 철학”은 라이헨바흐 과학철학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라이헨바흐 연구자로서 계속 붙잡고 가야 할 만큼 중요한 주제이다.
아인슈타인에 관한 과학철학적 연구 역시 계속 끌고 가야 하는 주제이다. 과학자와 철학자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 역시 과학철학의 핵심 문제이며, 이를 아인슈타인-라이헨바흐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을 철학적 관점에서 꾸준하게 연구하는 것 또한 나의 장기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한국에도 아인슈타인 연구자가 필요하다. 노틀담 대학의 돈 하워드(Don Howard)나 스탠퍼드 대학의 토머스 라이크먼(Thomas Ryckman)과 같이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관점에서 전문적으로 아인슈타인을 연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류에 휩쓸리다가 중요한 주제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할 일은 해야 한다.
내년인 2025년에는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과 연계하여 계속 시간의 철학을 연구하고, 라이헨바흐의 확률적 실재론을 매개로 과학적 실재론의 문제 또한 들여다볼 계획이다. 아인슈타인에 관한 연구 역시 계속할 것이다. 특히 나는 상대성 이론이 시계와 자의 다양한 행태를 서술하는 물리 이론이며 이때 장(field)이라는 개념은 시각적인 특성을 가진 일종의 보조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경험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이 관점이 어느 정도까지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심산이다. 양자역학의 철학 문제에 관해서는 언젠가는 연구해야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그 분야를 탐구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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