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서양근현대철학 입문(01)

강형구 2014. 8. 27. 22:13

 

1. 머리말

 

   나는 나의 책상이 단단하다고 경험한다. 하지만 물리학에 따르면 책상은 대부분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경험과 물리학이 동시에 옳을 수 있는가? 세계에 대한 과학적 관점이 인간의 경험과 양립가능한가? 좀 더 어려운 질문을 던져보자. 세계에 대한 과학적 관점이 인간의 자유의지, 도덕적 책임, 종교와 양립가능한가? 물리적 세계에서 마음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실재의 궁극적인 본성은 무엇이며, 실재에 대한 인간 지식의 한계는 무엇인가?

 

   이 강의에서 우리는 17세기부터 시작해서 20세기까지 이어지는, 실재와 지식에 대한 서양근현대철학의 사상(형이상학과 인식론)을 훑어볼 것이다. 이 시기의 철학 사조는 경험주의, 합리주의, 관념주의, 언어철학, 논리실증주의, 실존주의, 현상학,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탐구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르네 데카르트, 존 로크, 바루흐 스피노자, 데이비드 흄, 임마누엘 칸트,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찰스 샌더스 퍼스, 프리드리히 니체, 고틀로프 프레게, 지그문트 프로이트, 막스 베버, 윌리엄 제임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르틴 하이데거, 존 듀이, 윌러드 반 올먼 콰인, 토머스 사무엘 쿤, 리처드 로티, 자크 데리다 등과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철학과 사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철학자들의 사상이 역사적인 영향력을 미치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변화가 철학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이론을 창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분명 근대의 서양철학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봉건 귀족 제도의 붕괴, 상인 중산층의 성장, 종교 개혁에 의한 기독교의 분열, 민족국가의 성장, 과학혁명, 산업 및 기술 변화의 물결은 근대 서양철학 발전의 추동력이 되었다. 우리 시대의 철학자들 중 한 명이 언급한 바 있듯, 근대는 끊임없는 변화의 시대였다. 그와 같은 변화가 이 시대의 철학 사상들에도 반영되어 있다.

 

   근대철학은 고대와 중세 철학의 발전을 발판으로 등장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작업,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작업이 로마 제국과 아랍 세계를 거쳐 중세 스콜라 학자들에게 이어졌다. 중세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문제들 중 상당수는 고대 철학자들이 갖고 있던 문제들과 동일했다. 이들은 고대인들처럼 자연, 인간, 도덕적 삶, 아름다움의 본성,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 등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철학은 고대의 철학과는 매우 달랐다. 중세철학은 사제들의 철학이었다. 이 사제들은 당시의 사회에서 읽고 쓸 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으며, 신성한 질서에 소속되어 명망 있는 중세 대학에서 교육을 담당했다. 이들은 보편적인 학문적 언어인 라틴어를 통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상호 의사소통을 했다. 라틴어는 멸망한 로마 제국이 남긴 선물이었다. 또한 중세인들은 고대인들에게는 낯선 문젯거리를 갖고 있었다. 유대-기독교적인 유일신의 본성은 무엇이며, 신은 신 이외의 다른 것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 것인가?

 

   16세기와 17세기에 시작된 근대철학은 중세적 사고로부터의 중대한 이탈이었다. 이 시대의 다양한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변화들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된 중세적 세계관에 분열을 일으키는 데에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중세적 세계관에 타격을 입힌 것은 과학혁명과 초기 근대철학자들의 과학적 사유였다. 이들은 자유로운 지식인들이었으며 많은 경우 귀족이나 왕가의 후원을 받았다. 이성의 시대인 17세기 전체에 걸친 과학적 변화는 철학자들로 하여금 세계와, 우리가 어떻게 세계를 아는지에 대해 다시금 사유하도록 압박했다. 과학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우주에 대한 중세적 세계관을 붕괴시켰다. 새로운 과학을 하나로 통합하는 철학, 과학 및 과학이 윤리, 종교와 맺는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러한 철학을 만들기 위해서 철학자들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계몽의 세기인 18세기에는 이러한 철학의 개념들이 실제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과학, 정치적 자유, 교육에 대한 근대적인 관점을 통해 이 시대의 사회적 진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와 같은 진보는 새로운 철학적 회의주의에 당면하게 된다. 이후 18세기 말의 거대한 정치적 혁명들은 새로운 개념들을 통해 정치적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이르면 산업혁명이 사회를 다시 구성하게 되고, 근대인이 그 이전 세대의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거대한 역사철학적 체계가 등장한다. 근대적 사유는 근대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기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와 더불어, 이와 같은 근대성에 반기를 드는 일군의 사상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20세기에 이르면 서양철학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한편으로 철학은 다른 분과들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세부 영역에서 더욱 더 전문화된다. 논리학과 물리과학은 일련의 혁명들을 겪는다. 과학적 변화에 발맞추고자 했던 사상가들은 점점 더 다루기 힘든 이론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다른 사상가들은 과학과 관련된 문제들을 포기해버렸다. 철학은 다양한 학파들로 분화되었으며 각각의 영역에서 지식의 새로운 기초를 찾고자 했다. 20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17세기 이후 철학을 지배했던 지식의 기초를 찾고자 하는 전체적인 기획은 포기된다. 이와 더불어, 포괄적 또는 체계적인 철학을 구축하려는 시도 역시 신뢰받지 못하게 되었다. 몇몇 사상가들은 철학 자체가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볼 때, 철학의 죽음에 대한 선언은 너무나 과장된 것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 우리는 17세기 초부터 20세기 말까지 이어지는 이와 같은 복잡한 이야기를 하나씩 더듬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