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오만함을 반성함

강형구 2023. 8. 23. 21:58

   요즈음 ‘공동체’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사람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특정한 공동체의 일원에 지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모든 일들을 다 할 수는 없다. 어쩌면 이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무엇인가 제대로 된 일은 그러한 공동체 속에서 다른 구성원들의 인정을 받은 후에야 이루어진다. 공동체 내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그것은 그저 특정한 개인의 머릿속에 상상이나 몽상으로서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최근 복직하여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연구는 개인적일 수 있다. 개인 단위로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경우 최소한 2명 이상이 함께 논문을 쓴다. 책 집필도 마찬가지다. 설혹 복수의 사람들이 함께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연구’라는 작업은 아직까지 특정한 개인의 역량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그런데 공동체 생활은 다르다. 아무리 한 개인이 특출한 역량을 갖고 있더라도 그 개인이 공동체를 전체를 설득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에 소속된 일원으로서 유의미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공동체와 함께 일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니까 공동체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소통하고, 이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기 위한 일을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 마치 우리가 매 끼니 식사를 함으로써 삶을 영위해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는 학술적인 연구(특히 과학철학) 또한 병행하는 사람이라, 늘 공동체 생활의 중요성을 다소 망각할 위험에 놓인다. 책이나 논문을 읽으며 생각에 잠기다보면 공동체와의 상호작용을 소홀히 할 수 있다.

 

   사실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정부 비판을 하지 않는 사람을 주변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 진짜로 제대로 된 것을 실질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늘 내가 소속된 공동체에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을 모으고, 그 조직 내에서 세부 조직을 구성하고, 그렇게 구성된 조직의 규칙과 질서에 따라서 그 조직이 하는 일이 진행되어 나간다. 당연히 조직이라면 위계질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전적으로 구성원들이 모두 평등한 조직을 상상할 수 없다. 예를 들어, 2명이나 3명이 하나의 장소에서 특정한 장소로 함께 이동하는 경우에도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지시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나를 비교적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학생 시절부터 내가 책 읽고 공부하는 일을 좋아해서 더욱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공동체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이기에 더욱 더 이러한 자각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의미 있는 일은 함께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공동체는 인간에게 있어 자신의 개인적인 정체성만큼이나 중요하고, 공동체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만큼이나 중요하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이해하고 나를 그들에게 이해시키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 속에서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어떤 유의미한 일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일들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책을 번역하거나, 논문을 쓰는 것 등등. 그러나 그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내가 나의 뜻을 공동체와 함께 펼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너무 오만하게 살아온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오만함이 아니라 일종의 ‘무지’였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