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체력 운동으로서의 글쓰기

강형구 2023. 8. 19. 17:07

   나는 나를 장거리 달리기 선수라고 생각하는 것을 즐긴다. 나는 장거리 육상 선수이며, 유명하지 않고, 경기 실적도 뛰어나지 않지만, 계속 달린다. 혹은 다른 비유도 있다. 나는 무명의 복싱 선수이며 공격형이라기보다는 수비형이지만, 근성과 고집이 있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한순간도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으며 매 순간이 치열한 전투임을 잊어본 적이 없다. 우리가 죽기 전까지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개인적인 업적들은 개인적인 투쟁 속에서 힘겹게 만들어진다.

 

   글을 쓰는 활동은 나라는 인간에게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번역’이라는 작업은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인 문장들을 나의 모국어 문장들로 옮기는 작업이다. ‘논문 집필’이라는 작업은 특정한 주제(대개 과학철학과 관련된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이를 문장들을 통해 기술하는 작업이다. 물론 나는 매일 입으로 ‘말’하지만, 나는 ‘말하기’보다는 ‘글쓰기’에 더 익숙한 편이다. ‘말하기’보다는 ‘글쓰기’가 더 친숙하게 여겨지는 나를 생각하면 그런 사실에 생각할만한 거리가 있을 것도 같다. 어쨌든, 글쓰기는 나라는 인간과는 분리할 수 없는 중요한 활동이다.

 

   나는 3-4일 정도에 한 번씩 평소에 생각하는 주제로 가볍게 한 편씩 글을 쓴다. 이런 글은 번역도 아니고 논문도 아니다. 그저 편하게 쓰는 글이다. 마치 운동선수가 평소에 기초 체력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처럼, 글쓰기가 삶의 핵심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이런 글쓰기는 기초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기초 체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번역을 할 수도, 논문을 쓸 수도, 책을 집필할 수도 있다. 글쓰기의 목적이 바뀌면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도 바뀐다. 노동으로서의 글쓰기 강도가 더 강해지고, 매일 할당되는 글쓰기 시간도 더 늘어난다. 예를 들어 논문을 쓰게 되면 2주 정도 매일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집중해서 글을 쓴다.

 

   나는 체격이 왜소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근력 운동을 해서 몸을 만들어본 적은 없다.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게는 그것을 하는 법은 알고 있지만 결코 잘하지는 못하는 아주 많은 활동이 있다. 카드 게임, 체스 혹은 장기, 축구, 농구, 배구 등등. 나의 경우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관련된 활동 이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계속 책을 번역하고, 꾸준히 논문을 쓴다. 매년 1권의 책을 번역하고, 매년 최소 2편 이상의 학술논문을 집필하여 게재하려고 하니, 이와 다른 부류의 일을 할 틈이 잘 나지 않는다. 물론 나는 기본적인 체력 운동(달리기, 자전거 타기, 역기 들기, 턱걸이 등)은 틈틈이 하지만 이를 결코 과도하게 하지는 않는다. 딱 건강을 유지하기 좋은 정도로만 한다.

 

   최근 나의 관심사는 비교적 깊이 있는 학술 활동을 오랫동안 꾸준히 하기 위해 적절한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특히 나의 경우 직장이 대학이 아닌 상황이므로, 어떻게 하면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좀 더 안정적으로 번역을 하고 논문을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나는 지금까지 틈틈이 성실하게 번역 및 논문 집필을 해왔지만, 나로서는 아직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두 활동 다 지금보다 더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잘하고 싶다. 번역도 더 잘하고 싶고, 논문도 더 잘 쓰고 싶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하고 나니, 직장에 다니는 주중에는 집에 돌아와서 집안일 하고 애들을 재우고 나면 어쩔 수 없는 녹초가 된다. 여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뿐인데(밤에 애들을 재우면 정말 피곤해서 그냥 같이 자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날은 오후부터 무척 피로함을 느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 일상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긴 하다. 이때도 강한 의지와 성실함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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