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

강형구 2023. 8. 28. 16:48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사람마다 취미, 특기, 취향 등이 서로 다르다. 나는 학생 시절부터 글 읽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글 읽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시험을 봐서 좋은 성적을 얻는 일에는 크게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을 시험 성적에서 앞지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다. 그냥 공부를 해서 시험을 보는 것은 학생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의무였고, 그저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다.

 

   나는 한반도의 남쪽 지역에서 서식하는 5천만의 인간 개체들 중 하나이다. 41년 동안 죽지 않고 겨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한 지방의 중산층 가정에서 1980년대 초반에 남성으로 태어나, 표준적인 교육 과정을 거친 후, 군 복무를 하고, 공공기관에서 10년이 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남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고 있다. 그런 나는 가끔씩 자신에게 묻는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떠나게 되는 것일까?

 

   사실 내가 나의 아이들에게 많은 돈을 남기지는 못할 것 같다.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돈이 많지 않고, 나 또한 지금껏 나름 공직 생활을 해왔기에 벌어둔 돈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아이들에게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해 온 일들이 남을까?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직장에서의 일은 직장의 필요에 의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일이 많아서 내 고유의 일이라 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 직장에서 내가 일구어 놓은 사업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긴 하지만, 이제 그 사업은 내 손을 떠났다. 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했던 사업은 내 손을 떠나 다른 사람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이 세상에 기억과 글을 남기게 되는 것 아닌가. 만약 내가 당장 내일 죽는다면(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나의 가족들에게 남겨지는 것은 내가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의 기억과 내가 쓴 글들 아니겠는가. 내가 꾸준히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는 것도 어쩌면 나를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 오래 남고 싶은 나의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나는 죽을 것이고, 나의 아이들은 나 없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게 세상의 순리다. 그럴 경우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아빠로 남게 될까. 아이들이 힘들거나 지칠 때 아이들에게 나에 대한 기억, 내가 쓴 글들이 작은 힘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나 자신이 오천 만의 개체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점, 나는 지극히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절실하게 실감할수록 나는 나의 죽음을 생각하며 살게 된다. 특히 나의 죽음이 나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남겨질지 생각하면서 산다. 사실 죽음 그 자체는 두렵지 않다. 나 또한 생명체인 이상 언젠가는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길가에 쓰러져 있는 동물들을 많이 본다. 숲길을 걸어도 곳곳에 사체들이 있다. 오히려 내가 더 두려운 것은 죽음의 의미이다.

 

   실제로 생명체로서 죽음을 맞닥뜨리면, 그 죽음이라는 사건 자체가 생명체에게는 너무나 생생하고 압도적이라 아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진실로 두려운 것은 죽음의 의미이다. 나는 죽은 이후에 나의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로 기억될 것인가. 나의 죽음은 세상에서 매일 일어나는 흔하게 흔한 죽음들 중 하나일 뿐이라, 그저 ‘무의미’로 기억될 것인가. 사실 나는 세상이 나의 죽음 이후 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가장 궁금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다. 아이들이 나를 생각할 때마다 행복하고 눈물이 나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