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겸손함, 기본에 충실하기, 신뢰할 수 있는 사람

강형구 2023. 6. 16. 16:46

   사실 과학철학 연구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다.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과학사 혹은 과학철학을 강의하고,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몇몇 주제들에 대해 연구하여 논문을 쓰고 투고하는 것이 연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듯 내게는 좁은 전공 분야를 넘어서서 다른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나는 우리 사회의 숱하게 많은 구성원 중 하나일 뿐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하는 것일 뿐이다. 연구자라고 해서 무엇인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은 별로 없다.

 

   물론 어떤 영역에서든 군계일학의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있다.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김연아는 아니며 축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모두 손흥민은 아닌 것처럼, 과학철학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석 교수님과 같이 뛰어나거나 유명한 연구자인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늘 겸손함을 유지하려 애쓴다. 박사 학위를 받아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만족한다. 내가 박사라는 이유로 외부에서 강의 혹은 심사 요청을 받을 때도 너무 감사하며 열심히 하려 한다.

 

   나는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며, 굳이 유명해지기 위해 인위적으로 노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럴수록 더 나의 기본에 충실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전공 분야에서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내 분야에서 정말 해야 하는 연구이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실행되지 않은 연구들에 대해서도 다시 상기한다. 사회적인 활동과 교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전공에서 기본이 되는 것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다. 나는 기초 체력이 튼튼해서 어떤 상황에서든 쉽게 지치거나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주기적으로 ‘기본으로 돌아가자’라고 되뇌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그리고 나는 타인에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타인의 관점에서 볼 때 잘 예측할 수 없어서 두렵고 신경 쓰이는 사람이 되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삶은 나에게 잘 맞지 않는다. 최대한 솔직하게 얘기하고, 한 번 약속했으면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사는 게 좋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선택과 태도의 문제라고 본다. 돌아보면 나는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 대부분 이를 수용하고 그 도움에 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 경험상 이런 모습을 여러 번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은 나를 신뢰하게 되어 도움이 필요할 때 나를 찾게 된다.

 

   곧 7월이니 복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복직 전에 좀 쉬고 싶어도 쉴 틈이 없다. 다음 주 초까지 학술대회 발표 자료를 작성해야 하고, 다음 주말까지 기말시험 채점 및 성적을 산출해야 한다. 두류도서관에서 매주 1회 진행하는 아인슈타인 강의는 8월 초까지 이어지니 계속 준비해야 하고, 초벌 번역을 끝낸 라이헨바흐의 [경험과 예측]을 정리하는 작업도 계속해야 한다. 7월에 복직한 이후에는 동아시아 과학철학회 학술대회 발표를 준비해야 하고, [상대성 이론] 번역을 시작해야 한다. 8월이나 되어야 잠깐 시간이 나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처럼 과학철학 연구자가 된 이후에는 꾸준히 할 일들이 생기고, 이런 일들을 충실하게 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다.

 

   누구나 자신의 분야가 있고 그 분야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나는 겸손하게 나의 분야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묵묵하게 해 나가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의 힘이 필요할 때는 최대한 돕는 사람이 될 것이다. 겸손하고 성실하며 믿을 수 있는 과학철학 연구자로 거듭나고 자리를 잡는 것이 내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계속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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