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기본으로 돌아가기

강형구 2023. 6. 13. 10:39

   최근 제법 바쁘게 지냈다. 특히 강의 준비와 학술대회 발표 준비 때문에 바빴다. 그런데 나는 바쁘게 지내는 와중에서도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한다. ‘기본’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기본’은 과학사, 과학철학이다. 과학기술정책을 포함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 내게는 약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내게 과학기술정책은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좋은 입문서가 이미 집에 여러 권 있으므로 그저 나의 게으름 때문에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전체를 조망하게 할 수 있는 과학사와 과학철학 관련 책들을 주기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과학사, 과학철학 전공자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나는 수학과 물리학, 수학사와 물리학사도 그 기본을 계속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극히 개인적인 선호이다. 과학사와 과학철학 연구자의 연구 분야에 따라 이런 ‘기본’이 되는 과목은 달라진다. 생물학 특히 진화론을 이런 ‘기본’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인지과학 혹은 화학을 그런 ‘기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연구자에게는 반드시 교양과목 강의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과학사와 과학철학 개론 과목은 대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그 과목을 강의하는 연구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반적으로 다시 살펴보고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학기에 경상국립대학교에서 ‘비판적 사고’와 ‘과학기술과 철학’을 수업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판적 사고’를 통해 정언 논리학, 명제논리학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고, ‘과학기술과 철학’을 통해 과학철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공부는 이제 과학철학 연구자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최근 출판된 개론서 [계산하는 기계는 생각하는 기계가 될 수 있을까?](잭 코플랜드 지음, 박영대 옮김)가 괜찮은 책처럼 보인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쓴 [괴델, 에셔, 바흐]는 이 분야에서의 고전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괴델, 에셔, 바흐]는 내가 고등학생 시절 열광적으로 읽던 책인데, 지금 다시 보면 그 느낌이 어떨지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를 전반적으로 크게 변화시킬 것임은 분명해 보이며, 이러한 시기에 과학철학 연구자가 인공지능에 대해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이 풍요롭다 못해 범람하고 있는 이 시기에, 한 분야의 고전적인 책을 여러 번 읽으며 기본기를 튼튼하게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생각은 열려 있어야 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입문서부터 시작하여 거뜬하게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고, 초기에는 일종의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다. 잘 모르니까 버벅거려야 하고, 나보다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야 한다는 ‘쪽팔림’을 감수해야 한다. 겸손한 태도로 배우고자 하고, 비교적 짧은 기간에 새로운 분야를 학습해내는 능력은 박사 학위를 가진 연구자에게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박사 학위 취득 후 거의 4달이 지나간다. 아무래도 그동안 좀 안이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려’ 한다. 내 전공의 가장 기초적인 내용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연구자가 공부할 필요가 있게 된 된 최신 정보까지 부지런히 들여다보고 생각하려 한다. 마라톤을 끝내고 잠시 쉬다가 다시 운동을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고 성실함과 책임감만을 무기로 삼는 나와 같은 평범한 연구자는 계속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학생들을 거울 삼아 기본을 다시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