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2018년 서울여행(1)

강형구 2018. 1. 10. 05:35


   (2018년 1월 5일)   2018년 2월 중순이 되면 아내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복직하기 전에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싱가포르에 다녀오기에는 경비가 비쌌고, 일본에는 작년 여름에 다녀왔다. 휴양여행은 어떻겠냐고 아내에게 물으니 아내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작년 봄에 그랬던 것처럼 함께 서울에 다녀오기로 했다. 작년 봄에 지윤이를 장모님께 잠시 맡겨두고 서울에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부산에 계신 부모님의 신세를 지기로 했다.
  

   1월 4일(목) 퇴근하고 난 후에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내려가 명륜동에 계신 부모님 댁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1월 5일 아침에 아내와 나는 부모님 및 지윤이와 인사하고 8시 55분에 출발하는 KTX(고속열차)를 타러 부산역으로 향했다. 열차 안에서 아내와 나는 서로 상의하며 1월 5일부터 1월 8일까지 진행되는 여행의 일정을 잡았다. 사전에 아내가 여행 일정을 세워둔 것이 있었으나, 아내는 깜박하고 일정표를 대구에 있는 집에 놔두고 왔다고 했다. 기차에서 아내와 함께 여행 일정을 잡고, 카르납에 대한 책 [Carnap and the Twentieth Century Thought]를 틈틈이 읽고, 눈이 피곤하면 잠을 잤다. 그러다보니 이동 시간인 세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서울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예전 장학재단 재직 시절 자주 다녔던 콩나물국밥집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국밥 맛은 그대로였고 국밥집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내 기억 속의 국밥 맛이 실제 국밥 맛보다 더 맛있었던 것 같아, 시간이 지나 기억으로 남으면 그 기억은 원래의 경험보다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우리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아내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용증을 발급받아야 한다고 했다. 2호선 서초역에서 내려서 중앙도서관까지 걸어갔는데, 15분 정도 걷는 거리라 충분히 식후 운동이 되었다. 다만, 서울의 겨울 날씨가 대구에 비해 추운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 건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현대적이었다. 다만 다소 놀라웠던 것은 예상과는 달리 서가에 책들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아내와 나는 1층에서 이용증을 발급받은 후 도서관 구경 차 4층 일반자료실에 방문했는데, 자료실에는 최근에 나온 책들 위주로 진열되어 있어 책이 적었다. 알고 보니 예전에 출판된 책들을 열람하고 싶으면 1층에서 별도로 열람 신청을 해야 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도서관 고유의 멋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장대한 양의 서적들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그 중에서 내키는 책을 꺼내들고 한동안 책을 읽을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도서관에서 오후 3시 정도까지 머무른 우리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삼성역에서 내려 코엑스로 향했다. 나에게는 코엑스에 대한 애착 비슷한 것이 있다. 서울에 살던 시절 나는 심심하고 시간이 남으면 코엑스에 가서 서점을 구경하고 영화를 보곤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코엑스를 방문했을 때 코엑스 중앙에 “별마당 도서관”이라는 것이 새로 생겨 나의 눈길을 끌었다. 고객들은 “별마당 도서관”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었다. 제대로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도서관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아내와 함께 인문 코너와 자연과학 코너를 둘러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구비된 책들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걸어 다니는 것에 지친 우리는 코엑스의 한 카페에서 생과일주스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후 오후 5시쯤에 우리는 근처의 식당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코엑스 내의 CJ 푸드몰에 VIPS가 있었는데, 이 VIPS에서는 13,000원 정도를 내고 각자 메뉴를 3개씩 선택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제공되는 음식의 양이 많아서 우리는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금상첨화로 음식의 맛도 좋아 더욱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하고 난 후에 우리는 코엑스 내의 영화관인 메가박스에 [패터슨]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 “짐 자무시”라는 이름의 감독이 만든 영화였다. 영화 소개에 따르면 영화는 “패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에 대한 영화인데, 그는 버스 기사이자 시인이라고 했다. 영화 소개를 보니 영화에 대한 흥미가 생겨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
  

   패터슨은 “패터슨” 시에서 일하는 버스 기사다. 그는 아내, 애완견과 함께 산다. 아내는 전업주부이지만 예술적인 감각이 있고 팬케이크를 만드는 데에도 관심이 있어, 자신이 늘 집에서 머무르는 것을 다소 답답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패터슨은 그런 아내를 끔찍하게 사랑한다. 그는 매일 성실하게 버스 기사로서의 하루를 보내며, 점심때마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틈틈이 자신만의 수첩에 자신이 떠올린 구절들로 시를 쓴다. 아내는 그가 쓰는 시를 사랑하며 종종 그에게 자신의 시를 출판하라고 권유한다. 아내는 컨트리 음악 가수가 되고자 하는 희망을 갖고 통기타를 주문해서 기타 곡을 연습하며, 주말에는 동네 장터에 나가 팬케이크를 파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팬케이크 장사가 잘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시내 데이트를 즐기고 온 어느 날 저녁,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애완견이 패터슨의 수첩을 물어뜯어 놓은 것을 발견한다. 패터슨은 자신이 공을 들여 쓴 시들을 잃었다는 사실에 큰 실망감을 느낀다. 하지만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그는 산책을 하며 “패터슨” 시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다시금 마음을 가라앉힌다. 다시 한결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패터슨은 그러한 일상 속에서 버스를 운전하고 아내를 사랑하며 시를 쓴다. 아주 잔잔하고 평화로운, 그러면서도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나와 아내 둘 다 만족스럽게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에서 내려 숙소인 “토요코인”에 도착했다. “토요코인”은 우리 부부가 오래 전부터 애용하고 있는 가성비 높은 호텔이다. 숙박비가 저렴하면서도 시설이 깔끔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무료이면서 아주 맛있는 조식을 제공해준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작년 여름 일본 여행 때도 “토요코인”에서 머물렀던 경험이 있다. 방에 도착하니 아내와 나 모두에게 피로가 밀려왔다. 아침 일찍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다녔더니 다리가 아프고 몸도 피곤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편하게 누워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다. 오래간만에 아내와 둘이서 하는 여행이라 그런지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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