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늘 애호가로서 살아간다 해도

강형구 2017. 2. 25. 20:23

 

   내가 그다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나와 며칠 동안 함께 생활해 본다면 쉽게 알 수 있다. 단지 나는 무엇인가를 일관되고 꾸준하게 하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학교 시험과는 별 관련이 없는 수학과 과학에 관한 책들을 중학교 시절부터 읽어왔다. 그것은 내가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책의 도움을 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는 책을 읽어도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 책을 읽기 전보다는 조금 더 나아져서 다행이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나는 자신의 지적 재능의 부족함을 책으로 메우고 있다.

  

   사람들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고 하면 무엇인가 대단히 깊은 학식을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의 깊이가 얼마나 얕은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볼 때 나는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애호가에 가까운 사람이다. 나는 요즘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과학사 개론서적들을 다시 읽고 있는데, 이 책들이 너무나 재미있고 저자인 선생님들이 아주 존경스럽다. 훌륭한 과학사와 과학철학 책들을 거듭해서 계속 읽고 싶다. 내가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낀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거듭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내가 애호가라는 사실에 대해 만족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비록 좋은 기회를 만나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지만, 나는 학생들 앞에서 나 자신이 대단한 지성인인 양 행세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과학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서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읽어 온 사람일 뿐이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숨기지 않을 것이다. 석사학위를 갖고 있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고 하여도, 그것은 그저 이 분야에 대한 나의 애정과 노력을 의미할 뿐이다. 학생들이 오히려 나보다 수학의 세부적인 사항, 물리학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나는 그저 내가 아는 수준으로, 내가 생각하는 수준으로 학생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애호가인 나 자신의 능력을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고, 바로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애호가이기 때문에 굳이 학자로서의 명성을 날리고 싶은 욕심이 없고,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싶은 욕심도 없다. 그저 직장인으로서 일하면서 틈틈이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내가 공부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찾을 것이다. 이번에 운이 좋아서 과학고등학교에서 강의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음 학기에 이런 기회가 또 찾아오리라는 보장을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대구지역 대학들에 소속되어 있는 평생교육원에서 교양강의를 하거나, 별도로 대구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어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구지역 사람들이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흥미를 갖고 공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척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가끔씩 직장 사람들이 내가 과학고등학교에서 강의하는 것에 대해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그저 운이 좋아 기회를 얻게 된 것뿐이라 말한다. 나는 유능한 직장인이 아니고 유능한 연구자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직장에서 나로 인해 다른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고, 공부와 관련해서는 과연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쓸 수 있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애호가로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직장 동료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나는 내가 과학사와 과학철학 애호가라는 것을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직장 동료들과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깃거리가 필요할 때 나는 그들에게 갈릴레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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