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양자역학의 철학 독서노트 07

강형구 2016. 10. 26. 06:57

 

09: 코펜하겐 해석과 앙상블 해석

 

  

Hughes, R. I. G.(1989), The Structure and Interpretation of Quantum Mechanics(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Chapter 10(pp. 296-319).

 

    만약 우리가 양자역학이 경험적으로 성공적인 이론임을 받아들인다면, 이 이론의 표준적인 형식체계는 무엇인가? 양자역학이라는 물리이론은 단일한 방식으로 형식화될 수 있는가 아니면 복수의 방식으로 형식화될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양자역학의 힐버트 공간 정식화가 고전적인 양자역학의 단일한 표준적 형식체계임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만약 양자역학의 표준적인 형식체계로 힐버트 공간 정식화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하나의 물리이론인 양자역학을 우리의 경험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고전역학의 경우, 물리이론이 작동하는 위상공간에서의 물리적 사건들은 우리의 일상적 경험 및 이를 반영하는 일상적 언어와 무리 없이 대응된다. 일상적 경험과 일상적 언어에서 자연의 법칙은 관측자의 관찰과 무관하게 일양성을 유지하고, 하나의 대상은 입자이거나 파동이며, 대상들 사이에서는 인과율 및 고전적인 통계와 확률의 법칙이 적용된다.

  

   양자역학은 다르다. 양자역학에서의 경험적 귀결들 또한 실험도구를 통해서 관측할 수 있는 관찰가능량을 갖는다. 하지만 고전역학에서와는 달리, 양자역학은 이론이 실험결과와 매끄럽게 관계 맺지 않는다. 양자역학의 형식이론이 옳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는 상태공간에서의 상태벡터가 관찰가능량에 대응하는 확률값을 어떻게 갖게 되는지 모른다. 양자역학은 힐버트 공간이라는 수학적 공간에서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해서 결정론적으로 작동하다가 측정과 더불어 특정한 관찰가능량을 산출하지만, 결정론적으로 움직이던 상태벡터가 관찰가능량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우리의 일상적인 직관과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물리적 대상과 물리적 사건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일상적인 경험으로부터 얻어진다. 만약 우리가 구성하는 물리이론에 대한 해석이 일상적인 경험과 일상적인 언어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 일상적인 언어에 기초해서 해석할 경우, 고전역학에서의 물리이론의 작동 및 물리이론의 측정가능한 경험적 귀결들을 해석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 언어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을 고전역학에서 등장하는 대상 혹은 사건에 부과해도 고전역학을 해석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양자역학이라는 물리이론에 등장하는 대상들에 일상적인 개념들을 부여할 경우, 우리는 고전역학에서는 겪지 못했던 어려움들에 직면한다. 만약 전자라는 물질이 세계에 존재함을 받아들인다면, ‘전자는 실험과 측정에 따라서 파동처럼 작동하기도 하고 입자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우리가 측정 장치에 의해서 감지되는 결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측정 장치에 닿기 전까지의 전자의 운동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면, 예를 들어 측정되기 전까지의 전자가 입자와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고 말하려고 하면, ‘접촉작용의 원리를 위배해야만 전자에 대한 측정결과를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경우가 발생한다.

  

   물리적 세계가 작동하는 것과 인간의 언어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일까? 양자적 세계의 물리적 작동 기제와 우리의 일상적 언어 사이에는 중요한 간극이 있는 것인가? 경험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어야만 하나의 물리이론이 경험적 의미를 갖게 되는 것 아닌가? 양자역학 또한 우리의 일상적 경험을 바탕으로 수립된 물리이론 아닌가? 만약 양자역학이 우리의 일상언어적 해석을 벗어난다면, 이러한 벗어남은 어떤 의미에서 양자 세계의 구조를 반영하는 것 아닐까? 일상언어적 해석에 기반한 양자세계의 이해 이외에 과연 우리에게 다른 대안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