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양자역학의 철학 독서노트 05

강형구 2016. 10. 24. 06:58

 

 

06: EPR 논변과 벨의 정리

 

데이비드 앨버트 지음, 차동우 옮김(2004), 양자역학과 경험(서울: 한길사), 3(97-110).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은 1935년에 이른바 ‘EPR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의 주된 요지는 세상에 대한 양자역학적 묘사가 필연적으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세상에 대한 충분한 묘사란 무엇일까? 아포로에 의하면 세상에 대해 진리인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세상의 실체 구성 요소도 하나도 빠짐없이 세상의 묘사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만 세상에 대한 충분한 묘사이다.

  

   아포로는 어떤 특정한 순간에 어떤 특정한 계의 측정 가능한 성질이 그 순간 그 계의 실체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열거했다. 이 조건이란 만일 어떤 방법으로도 계를 간섭하지 않고 물리량의 값을 확실하게 (즉 확률이 1과 같게) 예언할 수 있다면 이 물리량에 대응하는 실체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포로는 만일 양자역학의 경험적 예언이 옳다면 세계의 실체를 구성하는 요소가 존재해야만 하는데, 세계를 양자역학적으로 묘사하는 데는 그런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두 전자로 이루어진 계를 생각해보자. 아포로는 1번 전자의 측정이 2번 전자에는 어떤 간섭도 야기치 않는 것을 보장하는 방법을 고안해내는 것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고 가정했다(국소성의 가정). 양자역학에 의하면 1번 전자의 색을 측정해서 그 결과값이 검정일 경우 2번 전자의 색을 측정한 결과는 필연적으로 하양일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그 결과값이 하양일 경우 2번 전자의 색은 검정이 된다. 또한 양자역학에 의하면 색 측정에서와 동일한 유형의 방식으로, 1번 전자의 단단하기를 측정해서 그 결과값을 근거로 2번 전자의 단단하기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의 상태는 색 기저와 단단하기 기저를 통해서 모두 표현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1번 전자에 대한 측정에 의해 2번 전자의 단단하기를 모두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단단하기가 양립 불가능한 관찰가능량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2번 전자의 단단하기를 양자역학의 이론 체계가 실체로서 포함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 이론 체계는 필연적으로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포로의 지적은 국소성의 가정을 포기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벨은 우리에게 자연이 실제로 동작하는 이치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묘사하려고 시도하느냐와 관계없이 동작 이치 안에 진정한 비국소성이 존재함을 증명했다.” (앨버트; 107) 자연에는 비국소적 영향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영향의 미묘한 측면은 어떤 감지할 수 있는 신호를 멀리 떨어진 두 점 사이에 전달하도록 그 영향을 이용할 수가, 그 영향이 정보를 비국소적으로 나를 수 있도록 만들 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앨버트; 110)

  

   ‘국소성의 가정은 다음과 같은 접촉작용의 원리를 가정하고 있다. 공간적으로 이격되어 있는 두 점 사이에 상호작용이 있기 위해서는, 한 점으로부터 인접한 공간을 통해서 인과적 신호가 연속적으로 퍼져나가서 다른 점에 도달해야 한다. ‘접촉작용의 원리는 직관적으로 분명한 원리이다. 만약 양자역학적 현상이 이 원리를 위배한다면, 이러한 위배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양자역학적 현상을 기술하는 우리의 과학 언어 체계에 의해서 비롯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자연에는 앨버트의 말처럼 비국소적 영향이 내재되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