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양자역학의 철학 독서노트 03

강형구 2016. 10. 20. 07:02

 

Hughes, R. I. G.(1989), The Structure and Interpretation of Quantum Mechanics(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Chapter 3(pp. 83-118).

 

04: 물리이론과 힐버트 공간 형식이론

 

    휴즈는 2장에서 상태와 물리량에 관한 힐버트 공간 형식이론을 다루었다. 뒤이은 3장에서 휴즈는, 왜 힐버트 공간 형식이론이 물리적 세계를 표상하는데 있어 적합한 이론인지를 논한다.

  

   우선 물리이론이 성립되기 위한 최소한의 가정들을 살펴보자. 물리이론이 수립되기 위해서는, 특정하게 구체화가능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건들에 확정적인 확률값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특정 물리량에 대한 산출값들에 유리수의 값들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하며, 실험 준비의 양태와 개별 결과값 사이에 통계적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이는 시험 준비 장치와 측정 장치 사이에 물리적 상호작용이 있음을 전제한다.

  

   이제 양자역학에서 결과값과 사건들을 어떻게 표상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양자역학에서는 각각의 결과값을 벡터공간

의 부분공간으로서 표상한다. 그리고 사건이란 결과값들의 집합의 부분집합이며, 사건들 사이에는 합집합 교집합여집합의 연산이 가능하다. 모든 결과값들에는 하나의 사건이 대응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결과값들의 집합의 부분집합(사건)은 결과값이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건들의 집합 및 그 위에서의 연산은 벡터공간

에서의 표상을 갖는다. 벡터공간에서 결과값

에 대응하는 부분공간

는 사건

를 표상하고, 상호직교하는 부분공간만이 사건을 표상한다.

  

   양자역학에서 상태들은 어떻게 표상되는가? 우선, 콜모고로프의 확률 공리들이 적용되는 방식으로, 사건들의 전체 집합에 확률함수

가 확장 적용될 수 있다. 앞서 상호직교하는 부분공간만이 사건을 표상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를 위한 조건은

이다. 이 경우, 이와 같은 부분공간들의 집합으로부터 01 사이의 값을 할당하는 함수

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사건들에 관한 확률함수이다.

는 다음 성질을 만족한다.

. 그런데 우리는

임을 알고 있으므로,

이다. 양자역학에서 순수상태는 힐버트 공간의 1차원 부분공간으로 표상된다.

  

   벡터 공간 이론을 통해서 제시된 모형은 모든 가능한 물리적 과정들을 표상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이다.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차이는 이론이 허용하는 가능한 상태들의 집합 사이의 차이로부터 비롯된다. 다시 말해, 특정한 벡터들로만 상태를 표상할 수 있는 물리이론이 있는 반면, 벡터로는 몇몇 물리적 상태를 전혀 표상할 수 없는 물리이론이 있다. ‘순수 상태란 준비 절차만 정확하면 확실한 결과값을 산출하는 상태이므로, 이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부분공간에 놓여진 규격화된 벡터가 되어야 한다. 디랙은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차이가 중첩 원리의 역할의 차이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양자역학에서는

가 계의 순수상태일 경우,

또한 계의 순수상태이다. 하지만 결정론적 이론에서는

만이 계의 순수상태일 수 있다.

  

   양자역학에서는 순수상태 뿐만 아니라 혼합상태도 존재한다. 양자역학적 현상에서는 확실한 정도로 산출이 일어나는 순수상태와는 달리, 산출 확률이 0보다 크고 1보다 작은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 양자역학에서는 물리량을 표상하는데 있어 다름아닌 연산자를 사용하는 것일까? 빛띠분해정리에 의해, 양자역학에서의 연산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 이런 꼴을 가진 어떤 연산자도 에르미트적(자기수반적)이다. 유한차원 벡터공간에서의 어떤 에르미트 연산자도 상호직교하는 부분공간으로 사영된 사영연산자들의 가중치 합으로 유일하게 나타낼 수 있다.

  

   두 개의 물리량이 서로 동일하거나 함수적 의존 관계에 있는 경우, 두 물리량은 동일한 힐버트 공간에서 표상될 수 있으며 양립가능하다. 이 때 물리량

의 부분공간과 물리량

의 부분공간은 상호직교하며 겹치지 않는다. 그리고 양립가능한 부분공간으로 사영될 경우에만 사영연산자

는 가환이다. 두 물리량이 양립가능하지 않으면서도 동일한 힐버트 공간에서 표상가능할 때, 두 물리량을 양립불가능하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두 물리량을 표상하는 연산자

가 가환이면 양립가능하고, 비가환이면 양립불가능하다.

  

   양자역학에서 계의 상태가 시간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기술하는 방정식이 슈뢰딩거 방정식인데, 이 방정식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개의 가정들에 근거한다. 첫째, 양자역학적 현상은 통계적으로 결정론적이다. 둘째, 시간이 균질적인 성격을 갖는다. 셋째, 확률변동은 연속적이다. 넷째, 하나의 벡터를 다른 벡터로 변환하는 연산자는 가역적인 성격을 갖는다. 다섯째, 순수상태는 연산자의 작용 이후에도 순수상태로 보존된다. 여섯째, 연산자의 작용 이후에도 중첩과 내적이 보존된다(선형성 보존). 여섯 개의 가정들을 모두 만족시킬 경우, 슈뢰딩거의 방정식은

가 되지만, 이 가정들은 에르미트 연산자

가 왜 계의 에너지 연산자가 되는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