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평범하고 단조롭고 낙천적인

강형구 2016. 9. 24. 23:38

 

 

   토요일 밤이다. 아내는 먼저 잠들었다. 나는 케이블TV의 음악채널에서 나오는 재즈를 듣다가, 문득 무엇이라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아내와 함께 여성병원에 다녀왔다. 아내의 뱃속에 있는 우리 아이는 순탄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병원진료가 끝난 후 아내와 나는 달성도서관에 가서 2주 전에 아내가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아내가 보고 싶어 하는 책을 새로 빌렸다. 우리는 책을 빌린 다음 도서관 열람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는데, 아내는 새로 빌린 책을 읽었고 나는 논문자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분석철학에 관한 책인 [분석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점심때가 되자 우리는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음식점에 가서 파스타, 피자, 목살볶음밥을 배불리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올해 추석 연휴 전에 도서관 근처에 세워 놓았던 나의 차를 다른 차가 실수로 긁는 일이 있었다. 사고를 낸 차 주인은 현풍 근처의 한 정비공장에 가서 보험처리를 미리 해 두었고, 나는 오늘 오후에 그 정비공장에 차를 맡기고 정비가 끝날 때까지 사용할 렌터카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에는 설거지를 하고, 진공청소기로 집안 바닥을 청소하고, 대걸레로 집 곳곳을 닦았다. 청소가 끝난 다음에는 좀 쉬다가 아파트 주민 센터의 운동시설에서 간단한 근력 운동을 하고 30분 정도 달리기를 한 후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저녁 식사를 하고 아내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니 금방 시간이 지나갔다. 아내는 일찍 잠이 들었고, 나는 거실에서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이렇게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한다.

 

    거울 속의 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30대 중반의 아저씨로 보인다. 나는 약간 어리석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고, 적당한 키에 적당히 살집 있는 몸집을 갖고 있다. 나는 평소에 말 수가 적고, 조직에서는 대개의 경우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는 편이다. 매달 월급을 받아도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고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기 때문에 남는 돈은 최소한의 생활비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평소에 아주 투박한 옷차림을 하고 다닌다. 내가 누리는 유일한 취미이자 사치라고 한다면 그것은 독서다. 나는 사뭇 진지하고, 함께 대화하면 약간 지루하고 심각하며, 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30대의 아저씨가 되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이 시간이 이토록 행복할 줄이야. 아마 나와 같은 사람은 돈이 많아도, 강한 권력을 갖게 되더라도 그다지 큰 행복을 느끼지 못하리라. 나는 아무런 부담 없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나 스스로를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착각했다면, 무엇인가 새로운 생각을 해내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싸움을 하듯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런 방식의 독서를 하지 않는다. 눈으로 문장을 좇아가는 것 자체를 즐기며, 문장을 읽다가도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의 생각 흐름을 슬그머니 따라가는 경우가 잦다. 그저 글을 읽으며 생각에 잠기는 것이 좋아 글을 읽는다. 잘 읽고 못 읽는 것이 더 이상 내게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내 삶의 많은 것들이 이제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졌다는 생각을 하니 다소 기묘한 감정이 든다. 나는 과학철학을 공부했고, 취직을 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결혼 후 아내와 함께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올 겨울이 되면 아이가 태어날 것이고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책을 읽을 것이지만, 나는 그러한 독서가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 사뭇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래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생각을 한다. 아주 평범한 한 명의 30대 중반 아저씨로서.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  (0) 2016.10.08
어떤 현실인식  (0) 2016.10.07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기  (0) 2016.09.18
2016년 추석 연휴  (0) 2016.09.16
긴 여행의 주인공  (0) 2016.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