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기

 

   인문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장들 속의 화자가 되어야 한다. 논문을 작성해야 학위를 취득할 수 있으며, 인문학 분야의 학위논문은 문장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학사학위 논문의 문장들에 비해 석사학위 논문의 문장들이 더 많고 묵직하며, 석사학위 논문의 문장들보다 박사학위 논문의 문장들이 더 많고 무게가 있다. 문장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화자가 되기 위해서는 문장들을 많이 써야 한다. 생각하는 주체 혹은 대화하는 주체가 아니라 문장들의 주체가 되어야 학위를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현재 한국의 대학 체제 안에서 인문학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문장들 속에서의 주체 혹은 화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제도적 현실이다.

  

   나는 학사학위를 2005년 2월에, 석사학위를 2011년 2월에 취득했다. 그리고 현재 나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나는 학부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철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철학 중에서도 서양 현대철학에 속하는 과학철학을 세부 전공으로 삼고 있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서양학문 분과들 중에서 가장 전통이 오래된 학문이지만, 21세기인 현대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쓰이기 다소 힘들다고 여겨지는 학문이기도 하다. 내가 졸업할 당시인 2005년에 인문학 졸업장을 받은 대학생들은 취업하기가 몹시 힘들었고, 이와 같은 상황은 그 이후에 점점 더 악화되었다. 나는 석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취직을 했지만 철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박사과정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철학 분야에서 박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나의 전공은 과학사․과학철학이다.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은 인문대학이 아니라 자연대학에 소속되어 있고, 나는 과학사 논문자격시험을 치러 합격한 경험이 있다. 과학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이론철학분야 및 과학철학분야의 논문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론철학분야는 대개 인식론과 언어철학을 의미한다. 과학철학분야의 주요 주제로는 과학적 설명, 과학이론, 환원, 과학적 방법, 구획의 문제 등이 있다. 19세기 이후의 영미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고,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논리경험주의 이후 전문적인 분과로 발전한 과학철학의 전반적인 주제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박사학위 논문 작성의 전제가 되는 논문자격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나는 직장에 다니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직장생활 틈틈이 시간을 내어서 논문자격시험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우선 이론철학시험 준비를 먼저 시작할 생각이다. 나는 학부시절부터 논리분석에 치중한 영미분석철학 전통에 대해 회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으며, 과학철학 공부를 할 때도 분석철학공부는 소홀히 했다. 그러나 분석철학을 앞으로도 계속 외면할 수는 없다. 현대 영미철학에서 분석철학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철학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분석철학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임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자 중 하나인 루돌프 카르납의 철학에 대해 생각하면서, 과연 분석철학이 어떤 종류의 철학적 작업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조금씩 정립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정립이 내가 분석철학을 공부하는 데 동기부여를 해 준다.

  

   내일부터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나는 출퇴근 전후로 시간을 조금씩 내어 논문자격시험 준비를 하고자 한다. 분석철학에 대한 책을 읽고 떠오른 나의 생각들을 매일 조금씩 나의 문장들로 기술해보려고 한다. 뛰어난 논문, 훌륭한 논문 쓰기를 포기한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문장들의 화자 혹은 주체가 되는 일이고, 이를 위해서는 문장들을 많이 써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툴고 어설픈 문장들이라고 하더라도 문장을 써야 문장의 주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