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한스 라이헨바흐, [원자와 우주] 05: 천체역학

강형구 2016. 5. 9. 06:41

 

5. 천체역학

 

   운동의 상대성 개념을 끝까지 발전시키면 중력 이론이 도출된다는 것을 지난 장에서 살펴보았다. 운동의 상대성을 단순한 시각적 경험 너머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이러한 기초해 있다. 순수한 운동학적 기술을 넘어서 자연의 객관적 현상에 대한 진정한 이론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인 기술은 톨레미적인 기술보다 더 참된이론, 실재에 더 잘 부합하는 이론으로 간주되었다. 태양의 움직임은 그저 겉보기에만 그러한 것으로서 우리의 감각을 기만하며,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지구라는 관점을 지지하는 결정적인 논증들이 뉴턴의 이론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뉴턴의 이론은 우주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인 관점에 대한 동역학적 정당화를 제공해주었다. 뉴턴은 세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인 기술이 중력의 법칙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태양은 행성들에 인력을 작용하여 행성들이 타원궤도를 돌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행성들이 복잡한 방식으로 닫힌 경로를 돌게 만드는 세계에 대한 톨레미적인 기술에 대한 동역학적 설명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운동의 상대성을 지지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힘의 법칙들로부터 상대론적 개념을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와 같은 설명을 제시한 것은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업적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마흐의 생각을 진정으로 포괄적인 수리물리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이론에서는 행성 운동에 대한 뉴턴적인 설명이 물리적 정당화의 가능한 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화된 중력법칙을 사용하면 뉴턴과는 반대되는 설명 역시도 가능해진다. 톨레미의 고리 경로 역시 케플러와 뉴턴의 타원 경로만큼이나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 들어맞는다. 우리가 타원 경로를 전제할 때만이 코페르니쿠스의 관점이 톨레미의 관점을 실제로 앞선다는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실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으로부터 톨레미의 이론으로 회귀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새로운 이론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들 중에 어떤 관점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됨을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각각의 관점이 정지해 있는 기준계에 관련한 특정한 동의 아래에서 상대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두 관점 중 어떤 관점도 그릇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두 관점은 서로 상치되지 않으며, 두 관점 모두 우주와 지구 사이의 상대적인 운동에 관한 불변의 사실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주장을 제시하고자 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발전시켜 온 자연에 대한 개념적이고 일반적인 고찰들만으로는 이 주장을 지지할 수가 없다. 오직 완전한 수학적물리학적인 이론만이 최종적으로 이 주장을 옹호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이론이 매우 어려운 수학적인 난관들을 해결해야 함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학적 개념들을 사용해서 중력장을 기술함으로써 중력장이 타원 운동의 단순한 경로뿐만 아니라 톨레미의 복잡한 고리 경로 역시 함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은 오직 매우 특별한 수학적 도구를 사용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수학자들은 텐서해석학에서 아인슈타인이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적용하고 확장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 대한 상세한 연구는 이러한 특수한 수학적 언어에 대한 지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이러한 지식은 오직 전문가만이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 이론에 대한 완전하고 최종적인 설명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아인슈타인의 천체역학이 수립되어 있는 근본적인 물리적 개념들에 대한 일반적인 개요를 그려보고자 시도할 수는 있다.

  

   회전 운동은 중력에 대한 뉴턴 원리에 대한 마흐의 비판이 시작한 지점이었다. 여기서 양동이에서 회전하는 물의 예가 사용되며, 이는 지난 장에서 살펴본 바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 운동이 수학적 이론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따라서 그는 마흐의 개념들을 아주 단순한 환경과 연결시켰고, 이는 좁은 영역에서 운동과 중력장의 동등성을 공식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주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은 현대 물리학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개념인, 자연법칙들을 좁은 영역에서의 규칙성들의 귀결로 간주하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수리물리학은 미분의 개념을 창조했고, 미분은 미분해석학의 방법을 통해 좁은 영역에서 작용되는 관계들을 공식화했다. 넓은 영역에 적용되는 법칙들은 그와 같은 미분적인 법칙들의 협력과 통합의 귀결로서 나타나며, 이는 좀 더 높은 수준의 수학을 사용하여 증명될 수 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 이론에서 회전 운동은 이론의 마지막 수학적 귀결로서 나타난다. 우리는 이제 마흐의 개념을 이렇듯 좁은 공간 영역에 적용하는 데 주의를 집중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하나의 가상적 실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고찰을 진행해 나간다. 시각화할 수 있는 가상 실험을 기반으로 추론해나감으로써 그는 자신의 고찰을 좀 더 접근 가능하도록 만든다. 아인슈타인은 방 크기의 상자를 하나 생각해보자고 한다. [그림 3: 아인슈타인의 상자] 물론 우리는 그러한 상자를 좀 더 작은 크기로서 특성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체역학을 논의함에 있어 우리는 엄청나게 큰 크기를 다루므로, 이에 비교한다면 방의 크기는 거의 사라질 정도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상자 안에서 물리학자는 실험을 한다. 그러나 물리학자는 상자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들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상자에는 창문이 달려 있지 않다. 이제 상제가 위쪽을 향한 가속 운동을 한다고 가정해보자(잠시 동안 우리는 사고 실험 속의 사건들을 소박한 언어로 표현하겠다). 물리학자는 상자 속에서의 실험을 통해 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물론 물리학자는 확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가 상자의 천장에 나선 용수철을 달고 용수철 아래에 질량이 m인 물체를 매달았다고 해보자(그림 3). 그렇게 되면, 상자가 위쪽으로 가속 운동을 할 때 매달린 질량의 무게는 상대적으로 아래로 처질 것이다. 이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짐 가방들 중 일부가 기차의 운동으로부터 뒤처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로부터 귀결되는 장력에 의해 용수철의 길이는 길어난다.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추론을 하는 상자 속의 물리학자는, 용수철의 길이가 길어짐을 확인함으로써 상자의 운동이 시작되었음을 인지할 수 있다. , 그는 상자가 운동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명이 결정적인 것일까? 용수철의 길이가 늘어났다는 것에는 어떤 의문의 여지도 없다. 그러나 정말 이에 대한 단 하나의 설명만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두 번째의 방법도 있다. 만약 우리가 상자 아래에 거대한 양의 우주 질량들이 밀집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이 질량들은 중력장을 생성하여 매달린 물체의 질량을 증가시킬 것이고, 가속 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용수철의 길이를 늘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가능한 설명 때문에 물리학자는 관측된 사실들로부터 상자가 움직이고 있음을 결정적으로 추론할 수는 없다. 상자가 정지해 있는 동안에 중력장이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난점은 우리가 사고 실험에서 창문이 없는 상자를 상상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다. 창문을 통해서 밖을 바라보면 물리학자는 금방 자신이 속한 상자가 움직이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문제 상황을 수정하는 것은 오직 겉보기에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리학자가 창을 통해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그 주변에 상대적인 상자의 움직임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움직이는 과정에 대한 광학적 관측만으로는 진정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음을 살펴본 바 있다. , 기차 밖을 쳐다본다고 해서 우리가 탄 기차가 움직이는지 아니면 옆에 있는 기차가 움직이는지를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전 장에서 우리는 운동의 상대성이 운동학적으로 적용 가능함을 분명히 확인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사고 실험에서의 물리학자가 이전에 중력장을 생성하는 질량들을 보았을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논증 속에 끌고 들어오는 것 역시 소용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질량들에 의해서 생성된 장을 정적인 것으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력장이 이미 존재하고 있던 먼 거리에 있는 질량들의 운동에 의해서 생성되었다고 가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상자가 별과 행성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떠다니고(hover)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상자가 별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의 여부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별들을 향한 상자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자는 정지해 있지만 먼 거리에 있는 별들의 반대편 운동으로 인해 생성된 중력장에 의한 겉보기 운동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마흐가 제시한 동역학적 중력 효과의 개념은 여기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고찰을 통해 아인슈타인은 수학적인 이론에 이를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관성계의 개념이 수정되었다는 것이다. 뉴턴 역학을 사용하는 천문학자들은 우주를 위한 특권적인 기준계, 즉 그들이 관성계라 부르는 기준계가 존재한다는 개념을 발전시켜왔다. 이제 태양에 단단히 고정된, 강체 막대들을 늘어세운 격자로 우주 전체를 채운다고 가정해보자. 뉴턴에 따르면 그와 같은 기준계를 모든 운동 과정들을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시작점으로서 간주할 수 있다. 모든 중력 힘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운동하고 있는 한 물체의 경우, 오직 이 기준계를 참조하여 등속 운동을 기술할 수 있거나이 계 안에서 정지해 있을 것이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물체를 하나의 관성계라고 부를 것이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우리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물체에 단단히 고정시킴으로써 우주 어디에서도 관성계를 얻을 수 있다. 뉴턴 관성계와 아인슈타인 관성계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인슈타인 관성계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물체와 맞닿아 있는 근방에서만 관성계 개념이 적용된다는 것, 즉 이 계들은 국소적인 관성계라는 데 있다. 따라서 이 계들은 모든 우주를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관성계로 결합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뉴턴 역학을 아인슈타인이 미분화시켜서 수정한 것의 핵심이다. 관성계는 오직 좁은 영역에서만 존재하며, 관성계들로 이루어진 전체로서의 세계는 뉴턴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개념을 수학적 이론으로 번역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자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으로부터 물리적 본성에 관한 특정한 주요 귀결들이 어떻게 도출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귀결들 중 하나는 빛의 운동과 관련된다. 한 줄기 빛이 가속운동을 하는 상자를 통과할 경우, 상자를 기준으로 한 빛의 경로는 더 이상 직선이 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빛의 경로는 상자가 앞으로 움직임에 따라서 굽은 경로가 된다. 많은 사람들은 비가 똑바로 지면위에 내림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기차에서는 빗줄기가 차창 비스듬한 경로를 띠며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만약 기차의 운동이 등속 운동이 아니라 가속 운동이라면, 비의 경로는 직선이 아닌 곡선이 된다. 이는 빛 광선에 단순한 운동학적 고찰을 적용해서 얻은 결과다. 그러나 이제 운동과 중력의 동등성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논증을 적용해보자. 만약 모든 관측가능한 현상들이 가속 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중력장 아래에서도 적용된다면, 빛은 중력장 아래에서 휘어진 궤도를 움직일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먼 거리에 있는 별이 광선을 태양 근처로 보낸다면 광선은 태양 근처에서 휘어질 것이고 광선의 궤적은 굽은 경로를 보일 것이다. (그림 4. 태양 중력장 아래에서의 빛의 휘어짐)

  

   지구 위의 관찰자인 우리들에게 이런 휘어짐은 별의 겉보기 변위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태양이 있을 경우 별빛은 태양이 없을 때 관측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부터 도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겉보기 변위는 측정될 수 있으며, 측정을 위해서는 태양 근처에 있는 별들을 촬영해야 한다. 이는 다른 물체들을 비추는 태양이 일식 동안에 달에 의해 가려져 있을 때 가능하며, 이때 태양 근처의 별들을 관측할 수 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이 제시하는 빛의 휘어짐은 일식의 도움을 받아서만 시험될 수 있다(에딩턴, 프로인틀리히). 일식 때 이루어진 지금까지의 모든 측정은 빛의 휘어짐을 입증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와는 전혀 다른 효과인 스펙트럼선의 적색편이 역시 빛의 휘어짐과 비슷한 방식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우리는 관찰자의 운동이 관찰자에게 다가오는 파동의 진동수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장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기차 안에서 공장의 경적 소리를 들을 경우, 우리는 우리에게 도착하는 파동으로부터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정지해 있는 관찰자에 비해 초당 더 적은 수의 진동을 듣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좀 더 낮은 음조의 소리를 듣게 된다. 만약 우리가 경적에 다가가고 있다면 그 반대가 적용된다. 이와 같은 이른바 도플러 효과는 차를 타고 경적을 울리고 있는 다른 차를 스쳐지나갈 때 아주 잘 관측할 수 있다. 이 경우 경적 소리의 음조는 균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두 차가 정지해 있을 때와 비교해보면, 두 차가 마주치기 전까지는 음조가 올라갔다가 마주치고 난 이후로부터는 음조가 급격히 내려간다. 빛 파동 역시 이와 유사한 현상을 보여준다. 빛의 경우에는 빛의 색깔이 변한다. 왜냐하면 빛의 색깔은 빛의 진동수(또는 파장)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중력장은 운동과 동일한 효과를 유발하므로, 태양에 있는 원자가 지구에 있는 원자에 비해 얼마나 느린 정도로 빛의 진동들을 방출하는지를 계산해낼 수 있다. 따라서 태양의 강한 중력장은 태양 근처의 원자에 의해 방출되는 빛의 스팩트럼이 적색 쪽으로 변위하는 것을 통해서 관측될 수 있다. , 태양의 빛은 더 붉어진다. 이 효과의 크기는 매우 작기 때문에 아주 정밀한 실험도구만이 이를 관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이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은 입증되었다.

  

   우리는 이미 아인슈타인 이론을 완전하게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상당한 수학적 난관들이 있었다는 것을 살펴본 바 있다. 이러한 발전과정 중 가장 흥미로운 점이라고 한다면, 이 이론이 지난 2장에서 살펴본 바 있는 공간 개념의 확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은 아인슈타인 천문학의 개념적인 난점들을 다룰 수 있는 충분한 수학적 일반성과 유연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은 리만이 개발한 수학 이론의 도움을 받아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사용함으로써 공간과 중력을 통합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공간은 거대한 질량으로부터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에서만 유클리드적인 성격을 유지한다. 이에 반해, 거대한 질량들이 있을 경우에는 공간의 곡률이 발생하며 이를 우리는 중력으로 관측한다. 따라서 중력장은 공간의 구조와 동일하다. 뉴턴에 따르면, 행성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굽은 경로를 돌고 있을 경우 이는 인력에 의한 것이다. 태양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선들이 뻗쳐 나와 행성을 이끈다. 이에 반해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우리는 태양의 질량으로 인해 공간이 휘어져 있기 때문에 행성은 자연스럽게 굽은 경로를 따른다. 엄격하게 말해 휘는 것은 공간 자체가 아니라 4차원 시공간 다양체다. 행성이 가장 짧은 경로를 찾아내는 것은 이 4차원 시공간 다양체 내에서다. 이는 행성 운동에 대한 아주 시각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이는 굽은 표면에서 굴려진 공들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특정한 경험들을 아인슈타인 역학과 대응시킨 하나의 시각화에 지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이 시각화의 중요성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갖고 있는 기하학적 측면의 핵심은, 중력이 모든 공간을 연속적으로 관통하는 장 개념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중력은 뉴턴이 생각했던 것처럼 원거리 힘, 즉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으로까지 순간적으로 전달되는 힘이 아니다. 대신, 아인슈타인의 중력은 점차적으로 퍼져나가며 태양으로부터 행성까지 퍼져나가는 데 일정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중력의 전파는 일정한 속도를 가지며, 아인슈타인은 이 속도가 빛의 속도와 동일함을 계산해냈다.

  

   행성 궤도에 대한 아인슈타인적인 개념은 중력 원리의 개념적인 구성 성분들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이와 동시에 이 개념은 수학적 법칙에 있어서도 약간의 변화를 동반했다. 따라서 태양으로부터 발생하는 인력이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여 감소한다는 뉴턴의 공식은 오직 근사적인 공식에 지나지 않는다. 더 정확한 법칙은 더 복잡하며, 이 법칙은 행성의 타원 운동뿐만 아니라 전체 궤도가 천천히 회전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와 같은 회전은 오래 전부터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수성의 근일점 운동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계산은 이 운동에 대한 놀랄만한 설명을 제시해주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천문학에서는 우주가 어떤 모습을 보일까? 사실상 상대성이론이 등장하기 전에도 우리의 태양계가 우주의 궁극적인 단위가 아니며, 별들은 더 큰 단위로 무리지어 움직인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우리의 태양계는 다른 많은 별들과 더불어 첫 번째 집단을 형성하는데 이를 국소적 항성계라고 하며, 이 계에서는 별들이 비교적 밀집해 있다. 이 집단의 지름은 대략 1만 광년정도 된다. 거리의 천문학적 측정 단위인 광년은 빛이 1년 동안 이동하는 거리다. 빛의 빠른 속도를 감안한다면 광년은 아주 먼 거리다. 빛이 태양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하는 데에는 오로지 8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1광년은 946백억 킬로미터이다. 첫 번째 집단의 지름인 1만 광년은 아주 상당한 거리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거리는 우주적인 규모에 비교한다면 아주 작다. 이 집단이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고 나면 별들은 좀 더 드물게 흩어졌다가 다시 밀집한다. 이제 첫 번째 집단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집단이 시작되며, 이 집단은 좀 더 고차원의 단위를 형성한다. 이 별들은 은하수 평면 근처에서 밀집되어 있어 전체 집단은 렌즈와 같은 평평한 형태를 띤다. 은하수의 지름은 대략 수억 광년에 이른다. 우리는 이러한 은하수의 체계를 은하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체계도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별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에는 별과 성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운(nebulae)도 있는데, 성운은 고리 형태 또는 나선의 형태를 띤다. 우리는 이러한 별들의 구름이 우리가 속한 은하에 있지 않고 별도의 은하에 속하고 있음을 안다. , 이들이 속한 은하는 또 다른 집단을 형성한다. 우리 은하계가 다른 은하계보다 사뭇 더 크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다른 은하계들까지의 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명명해온 거리들을 뛰어넘는다. 따라서 안드로메다 성운(이 책의 첫 번째 페이지에는 릭 관측소의 거대한 망원경으로 촬영한 이 성운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은 수억 광년 떨어져 있고, 수억 광년을 초과하는 거리에 있는 성운들도 이미 탐지되었다. 아마도 그것이 현재 우리가 천문학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일 것이다.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망원경을 사용한다고 해도, 우리는 더 멀리서 존재하고 있는 별들을 식별하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수억 광년이라는 거리는 엄청난 거리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히 멀리 떨어진 거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우주의 과거를 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멀리 떨어진 별들의 현재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에게 도달하는 빛은 이 별들이 수억 광년 전에 빛을 방출했을 당시의 상태를 드러내준다. 그러나 수억 광년이라는 시간은 우주 전체와 관련하여서도 아주 긴 시간이므로,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우주 자신의 과거를 살펴봄으로써 우주가 어떻게 진화에 왔는지에 대한 견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공간이 이토록 광대하다고 해도, 아인슈타인의 계산에 따르면 우주는 결코 그 크기에 있어서 무한하지는 않다. 그 대신 세계의 공간은 이른바 구형 공간처럼 닫혀 있다. 이는 공간이 일반적인 구처럼 한정된 표면을 갖고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대신 3차원 공간은 구의 2차원 표면과 동일한 속성들을 갖는다. 이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어떤 경계도 생각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벽 또는 측정할 수 없는 영역을 마주치지 않고서 영원히 우주 공간을 여행할 수 있다. 대신 공간의 유한함은 아주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만약 우리가 계속 직선으로 움직이면 우리는 언젠가는 우리가 출발했던 지점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물론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거리는 너무나 거대해서 인간인 우리로서는 그와 같은 여행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 우주에서 우리는 결코 콜럼버스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빛은 그와 같은 거리를 통과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귀결을 낳는다. 특정한 환경에서 우리는 하나의 별을 앞쪽 방향에서도 볼 수 있고 뒤쪽 방향에서도 볼 수 있다. 불행히도 우리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양쪽에서 보는 별이 정말 동일한 별인지를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빛이 두 가지 다른 경로를 거치며 걸린 시간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빛은 우리에게 멀리 분리된 조건에 있는 별을 보여주고, 별은 우리에게 도달하는 시간 동안에 위치를 바꾸었을 것이므로(이른바 고정되었다고 불리는 별들 역시 움직인다), 우리는 정확한 측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겉보기에 서로 분리되어 있는 두 개의 별들이 실제로는 하나의 별의 복제된 상인지를 결정할 수가 없다. 아마도 우리가 아는 별들 중에 그러한 복제 상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망원경의 성능이 우주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상들이 있을 확률은 매우 작다. 만약 이러한 복제 상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지금 우리의 망원경보다 수백 배는 더 멀리 관측할 수 있는 망원경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책 1부의 마지막까지 다다랐다. 우리는 1부에서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상을 그리고자 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상을 실제 세계에서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했다. 일상적인 유클리드 공간은 좀 더 일반적인 공간 구조의 특수한 경우에 지나지 않았다. 수학자들은 이 일반적인 구조를 다룰 수 있게 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일반적인 기하학적 구조 역시 유클리드 공간만큼이나 상상 가능하도록 학습할 수 있다. 수학적으로 가능한 공간들 중 어떤 것이 실재와 대응하는지의 여부는 강체와 빛의 행동에 의해, 즉 자연에 의해서 결정되며, 인간의 사고 또는 인간의 내적 기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특성 없는 지속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이 아니다. 시간은 인과적 과정들의 본성에 의해서 배타적으로 주어지며, 결과적으로는 인과적 과정들에 의해 생성된 질서 있는 도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도식에 인과적 사건들에 대한 일반 법칙들이 반영된다. 운동은 항상 한 물체가 다른 물체들에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며, 절대 공간에 대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절대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이란 그 본질상 질량이 다른 질량에 작용하는 근본적인 힘인 중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이 밝혀짐으로써 그 자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법칙들을 드러내보였다. 시간, 공간, 중력은 좀 더 고차원적으로 통합되었으며, 이러한 통합에 관한 법칙들은 완벽한 수학에 의해 지배된다.

  

   과학이 알려주는 이러한 이상한 세계 앞에서 평범한 이해력을 가진 우리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가장 높은 빙하 지대의 높은 고지처럼 이 세계는 너무나 추상적이라서 인간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우리 세대에게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세계상이, 우리보다 덜 제한된 영혼을 가진 다가오는 세대들에게는 놀라운 선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세계상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이를 정교화해서, 이러한 세계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며 자신들의 문화적인 유산 속에 동화시키게 될 것이다. 이때 문화유산은 사회적인 유기체에게 영향을 미치고 유기체의 사고와 감정을 형성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세계상의 최종적인 형식과 그 힘을 아직까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에서 이러한 세계상에 관한 최초의 암시를 제시한 것처럼, 그 최종적인 형식은 곧 제시될 것이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은, 세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래 세대의 소유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물리학은 이러한 세계상을 물리학의 추상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얻은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여길 것이다. 이 세계상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통찰을 제시했기에, 이는 수 세대의 사고와 이데올로기,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정신적 구조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