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 5

논리경험주의 드라마

휴직 후 집안일과 애들 돌보기를 주로 하고 있는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드라마는 "논리경험주의" 드라마다. 어떻게 그런 드라마가 가능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20세기 전반기의 과학철학사를 연구하는 나에게 이보다 더 흥미로운 드라마는 없다. 철학사조로서의 논리경험주의를 서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논리경험주의자들의 특징적인 면모를 기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리크 슐리크는 막스 플랑크 아래에서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철학으로 전향했다. 플랑크의 회고에 따르면 슐리크는 매우 뛰어난 제자였다. 필립 프랑크는 어떤가? 프랑크 또한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철학으로 전향했다. 오토 노이라트는 경제학자였고, 한스 한은 수학자였다. 한스 라이헨바흐는 철학으로 박사..

카르납, 헴펠, 라이헨바흐의 성격에 대한 단상

내가 한창 과학철학에 대한 열정을 키우고 있던 대학 학부 시절의 일이다.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등과 같은 최신의 물리학 이론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성찰을 기대하고 과학철학 수업을 들었던 나는, 어쩌면 너무나 쉽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헴펠의 [자연과학철학]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음, 그렇지’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 시시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과학철학자는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 헴펠의 이 책은 과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사실들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런데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헴펠은 인격적으로 너무나 훌륭하여, 그가 재직했던 프린스턴 대학에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아마 헴펠은 늘 겸손하고, 친절하고, 한..

나이 41살, 직장 생활 10년의 결론

2022년인 올해 나는 한국 나이로 41세가 되었다(1982년생). 유아원 1년, 유치원 1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등 일반 시민이 되기 위한 교육을 총 18년 받았다. 대학원 석사 2년, 박사 2년 등 총 4년은 학자로서 성장하기 위한 교육 기간이었다. 군 복무를 3년, 직장 생활을 10년 했으니, 생계를 위한 조직 생활은 지금까지 약 13년을 한 셈이다.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받을 때부터 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활동을 좋아했다. 나는 별로 사교적인 편이 아니었고, 내가 해야 하는 의무적인 일들은 책임감을 갖고 해냈지만 그다지 적극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공부와 관련해서 나는 내가 최고가 되겠다는 욕심은 별로 없었고, 그냥 공부를 하는 게 재미있..

일상 이야기 2022.01.21

한국의 올덴버그를 꿈꾼다

나는 블로그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통 채널을 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들을 긍정하는 편이다. 그러한 다양성을 긍정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런 다양성을 긍정하기 때문에) 나의 입장은, 소통 채널을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특정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알아볼 수 있는 담론의 장으로 활용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나의 입장은 나의 실천을 통해 실제로 드러난다. 요즘 내가 놀라움을 느끼는 하나의 사실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나는 재작년에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한 적이 있다. 왜 아인슈타인 회전 원판 사고 실험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측정 막대는 가만히 있던 측정 막대에 비해 줄어들어 있지 않은가? 이에 반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시계는 가..

철학의 매력

때때로 나는 내가 조금만 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만약 우리 집안에 아들이 나 말고 한 명 더 있었더라면, 그래서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나 아닌 다른 아들을 믿고 나는 그저 철학 공부만 열심히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집안이 부유해서 경제적인 걱정은 하지 않고 계속 철학 공부만 하고 있는 분도 계신다. 가끔은 내가 그런 운명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게 여겨질 때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법학을 전공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내가 원칙주의자여서 그러셨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한 후 그 선생님을 찾아 뵙고 향후 철학을 전공하겠다고 했더니(인문대학 소속인 국사, 동양사, 서양사, 고고미술사,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