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더 바랄 게 없다

강형구 2026. 5. 31. 08:21

   나는 최근 내 삶이 매우 안정되었다고 느낀다. 이런 안정감은 이제 더 이상 내가 이 세상에 바라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종교인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그건 내가 뭔가 대단한 진리를 깨닫고 싶어서가 아니라 딱히 바라는 게 별로 없이 그냥 부지런하고 소박하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굳이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3학년 때였으니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도 대략 비슷한 이유였다.

 

   그런데 세상과 운명이 나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그렇게 살도록 쉽게 놔둘 것 같으냐? 순순히 허락할 수 없다. 이 세상의 평범한 많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들을 너도 다 해라. 군대에서 40개월 복무하기. 구립도서관에 다니며 취직 준비하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학원 다니기. 결혼해서 아이를 셋 낳아 기르기. 파견 근무하며 주말부부 하기. 전세-전세-전세-내 집 마련하기. 이직하기(2번). 주택담보대출 갚기. 육아휴직 하기. 일하고 육아하며 대학에 출강하고 박사학위 논문 쓰기. 결국 나는 국립목포대학교 교양학부에서 내가 전공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울 때 정말 너무나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고 둘째 셋째도 이제는 많이 컸다.

 

   나는 국립목포대학교를 너무 좋아한다. 내 성향과 상당히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철학과가 없어서 좋다. 왜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이제 우리 학교에 나밖에 없다(최근 김 모 교수께서 퇴임하셨으므로). 그러니 서양철학 전공 교수를 추가로 뽑지 않는 이상 나는 국립목포대학교의 유일한 서양철학 전공자다. 게다가 우리 학교에는 과학사 전공 교수도 없는데, 나의 공식 전공은 ‘과학사 및 과학철학’ 아니었던가? 나는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과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물론 나로서는 우리 학교에 서양철학 혹은 과학사 전공 교수가 나 말고 더 있으면 좋겠다고 당연히 생각하지만, 그전까지는 내가 학교에서 할 일이 많아서 좋다는 거다.

 

   게다가 우리 학교는 발전 가능성이 높아서 좋다. 우리 학교는 올해부터 전남도립대학과 통합해서 운영하고 있고, 조만간 국립순천대학교와도 느슨한 방식으로 통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남과 광주가 행정적으로 통합할 예정이므로, 장기적으로 볼 때 목포대-순천대-전남대 또한 통합 국립대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전남-광주는 신재생에너지와 인공지능 산업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한국에너지공과대학도 전남 나주에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학교는 향후 아주 오래도록 힘차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게 맞는 학교에 잘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학교 내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극단적 예를 들면, 총장??) 몇몇 교수님들처럼 대외적으로 유명한 교수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으므로, 그냥 지금처럼 계속 열심히 교육하고 연구하면 충분히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정말 이제 나는 내 삶에서 더 바랄 게 거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약간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내가 정말 이런 삶을 살아도 되는 사람일까? 좀 더 고생하고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니었어? 지금까지 나름 성실하게 욕심 없이 살아온 보답인 건가? 그렇다면 삶이란 참으로 살아볼 만하군. 조교수가 된 이후 지금껏 쌓은 연구 업적만으로 충분히 부교수로 진급할 수 있으므로 실로 걱정이 없다. 수행하는 종교인처럼 매일 규칙적이고 성실하게 지금처럼 살면 되는 거다.

 

   대구와 목포 사이에서 운전하며 오가는 길도 이제는 그다지 힘들지 않다. 왜냐하면 주중에 매일 하는 유명 시사 프로그램을 하나 듣다 보면 그 시간이 금방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오늘날 운전하며 들을 만한 강의들은 너무나 많다. 게다가 차분히 운전하다 보면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이 상당히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가족들과 지내거나 학교에서 교육하고 연구하는 거 말고는 딱히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므로 시간이 급박한 상황을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가끔 내게 내가 참 단조롭고 재미없게 산다고 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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