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일이 잘 풀리는 날이 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이 잘 진행되는 날. 그럴 때는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고 수월하고 원활하다. 그런 날은 정말 기분이 좋고 살맛 난다. 우연히 운 좋게도 모든 일이 잘 맞물려서 잘 풀리는 날이 있는 법인데, 괜히 나 혼자 잘나서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우쭐한 마음이 든다. 그런 날에는 그런 우쭐한 마음을 조금은 즐겨도 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 정도의 사치를 누릴 자격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너무 자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건 그 사람이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우연히도 그렇게 잘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살다 보면 일이 정말 안 풀리는 날도 어김없이 있다. 일이 하나만 꼬이는 게 아니라 이것도 꼬이고 저것도 꼬이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일도 꼬인다. 그럴 때는 나의 운명이 참담하게 느껴진다. 왜 나의 운명은 나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는가! 한탄이 절로 나온다. 좌절감과 절망감이 찾아오고, 억울함과 분노까지도 마음속에서 올라올 수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간혹 일이 정말 안 풀리는 것도 대개 나 혼자 못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게 전적으로 나의 탓은 아니라는 이야기. 어쩌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이 꼬이고 막혀버려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의 잘못을 조금은 탓하되, 너무 의기소침하거나 절망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살다 보면 그런 안 풀리는 날은 으레 있는 법이다.
이처럼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으므로, 그러려니 하고 느긋하게 생각하며 기본적으로 낙천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게 좋다.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다. 잘 먹고, 잘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할 일을 어떻게든 계속 해 나간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는 법.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기분이 좋든 기분이 나쁘든 꾸준하게 일관되게 내 할 일을 하는 것. 나의 할 일이란 읽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 것. 지극히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의 직업이다. 직접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키우거나, 물고기를 잡거나, 과일이나 채소를 키우며 사는 삶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좀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감각을 느끼며 살 수 있었을까. 읽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 일이라니. 나는 참 운 좋은 녀석이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좀 집요한 사람이긴 한 것 같다. 내가 과학의 역사와 철학에 관심을 가진 게 고등학교 1학년 때쯤이니, 거의 30년이나 계속 이 분야의 글을 읽고 생각하고 쓰며 말하고 있는 중. 내 주변에 나보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특히 내 어머니의 경우 나를 ‘공부만 할 줄 아는 바보’라고 하시는 걸 보면, 내가 뭔가 특별한 사람인 것 같진 않다. 그냥 관심이 있는 분야의 일을 지치지 않고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 나가는 것이 나의 유일한 장점이 아닐까? 지난 30년 동안 나는 내 앞에서 혹은 내 곁에서 나보다 더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을 숱하게 봐 왔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나이지 내가 나 아닌 사람이 될 수는 없잖아? 그냥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야. 하다 보면 어찌 되겠지. 그런데 사실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몰라. 그런 걸 나한테 물어보면 안 돼.
아이들은 빠른 속도로 쑥쑥 커간다. 이제 큰 딸은 머리가 제법 커져, 뭐든 천천히 느리게 하는 아빠를 때때로 구박하기도 한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서 싱싱하고 싱그러운 패기가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얼마나 궁금한 곳일까. 아이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뭘 해 나갈 수 있을지 두근두근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 나는 그런 너희들에게 제법 멋진 아빠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면 뭐가 어찌 됐든 괜찮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 적어도 너희들 결혼해서 애 낳는 건 봐야 하니까 아빠는 꾸준히 운동하며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 그리고 열심히 지치지 않고 아빠 할 일 해야지. 너희들이 나중에 너희 아이들에게 ‘이게 할아버지가 쓴 글이야’하고 자랑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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