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걸 생각하면서 사뭇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우선 나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걸까? 그간 이런저런 사고가 나서 죽을 법도 했을 텐데. 늦은 밤 자기 위해서 조용히 누워 있으면 나는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 심장이 계속 뛰고 있는 것도 흥미롭지만 어떤 이유로 이 심장이 갑자기 멈추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 않는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전혀 없지. 이렇듯 생명체 곁에는 늘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 공교롭게도 내가 2001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는 것. 그게 왜? 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이게 중요한 상징이다. 故 이해찬 총리께서 교육부 장관을 할 때, 줄세우기식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지양하고 누구나 열심히 준비하면 잘 치를 수 있는 수능을 추구했다. 이른바 보통 사람을 위한 수능이었던 것. 이런 시대적 흐름에 올라탄 나는 머리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우직하게 꾸준하게(무식하게?) 공부해서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그때 나는 서울대학교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고 그냥 내가 받는 성적에 맞는 대학의 철학과로 가서 철학을 공부하려고 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대학교가 갖는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이는 내게 중요한 사건이긴 했다.
하여튼, 나는 서울대학교에 다니면서도 내가 운 좋게 혹은 운명의 실수로 이 대학에 다닌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서울대학교라는 기관이 갖고 있는 약간 기형적이기도 한 한국적 특권과 상징성이 부담스러웠고 불편했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냥 4년 만에 이 학교를 졸업하기로 했다. 성적이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조기졸업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비록 역사적인 우연으로 인해 서울대학교를 졸업했지만, 먼 훗날 내가 내 모교에 대항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결국 운명은 나를 그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이제 우리가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눈을 돌려야 하듯, 서울대가 아니라 지역의 유력 대학에 눈을 돌려 골고루 발전시킬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특출나고 뛰어난 사람들을 진짜로 미워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미워하는 건 뭔가 세련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할 때 나는 그냥 인생이라는 연극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할 뿐이다. 특출나고 뛰어난 역할을 맡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그런 사람에게 대항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나는 내가 평범한 보통 사람의 역할, 그럼에도 자신의 평범함을 열등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긍정하는 역할을 맡은 배우라 생각한다. 보통 사람의 과학, 보통 사람의 철학. 가끔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네가 서울대 출신이라서 그런 거야. 그럴 때마다 나는 이야기했다. 아니라고. 오히려 그 이름은 내게는 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나는 그 이름이 일종의 특권이 되는 게 싫었고, 실제로 지금까지 그런 특권을 누리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다고.
나는 서울대라는 특권뿐만 아니라 철학이라는 학문의 특권조차 버리려고 한다. 사실 이건 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철학도에게는 철학이라는 독특하면서도(변두리, 소수성) 고귀하며 전통적인 학문을 한다는 일종의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 연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자부심. 그런데 나는 그 자부심에도 안녕 인사를 했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사람은 철학적 사고를 하며, 철학 연구자는 오로지 노동 분업 과정에서 철학적 사고를 전담하게 되었을 뿐이며, 그래서 늘 일반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철학자가 일반적인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가치가 전도되고 역전된 것이다. 철학자는 일반인을 ‘대신해서 말해주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교수에 임용된 직후부터 적지 않은 주변 사람들이 내게 말하곤 했다. 거기서 몇 년 있다가 보면 더 좋은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건 당신이 나라는 사람을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내가 교수가 된 것 자체가 일종의 기적이 일어난 것과 같은 거라고. 나는 이 기적을 충분히 즐기고 싶어. 나는 철저하게 보통 사람을 위한 과학, 보통 사람을 위한 철학을 추구한다고. 왜냐하면 내가 그런 보통 사람이니까. 나한테 인서울 대학 어쩌고... 하지 마. 나는 그게 전혀 부럽지 않고, 그런 게 일종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수도권 대학에서 근거 없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지내는 것보다 지역 대학에 있으면서 이를 잘 육성하는 게 훨씬 더 가치 있고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지. 왜 그걸 잘 알면서도 실천하지는 못하냐고 책망하지는 않겠어. 사람에게는 각자 맡은 바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야. 나는 철저히 보통 사람을 위한 교양, 보통 사람을 위한 철학을 추구할 거야. 그게 내가 깨닫게 된 나의 천명이니까(知天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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