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교수님’이라고 불러주면 너무 감사하면서도 약간의 민망함을 느낀다. 당연히 사뭇 권위 있는 ‘교수님’이라는 표현이 싫지 않지만, 나는 진실로 나 자신을 그저 한 명의 ‘말 글 노동자’라 생각한다. 나는 말과 글 노동으로 우리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라는 하나의 거대한 분업 체계 안에서 말 글 노동으로 나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을 기만하거나 착취하거나 고통을 주는 말 글 노동이 아니라, 이들을 즐겁게 하고 꿈꾸게 하고 이들에게 유용한 지식을 주는 말 글 노동. 이게 내가 추구하는 종류의 말 글 노동이다.
나의 성격상 글 노동은 말 노동보다 훨씬 더 편하다. 나에게 말 노동은 아직도 상당히 힘든 과업이다. 나와 함께 지내본 사람이면 내가 평소에 실로 그다지 말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거나 다른 사람에게 내가 직접 말을 하는 행위 자체가 내게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내 직업의 특성상 나는 계속 말해야만 한다.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하고, 사람들이 내게 말하는 걸 듣고, 그에 답해 또다시 말하는 일. 직장 생활을 할 때는 그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었다. 행정 업무로 바쁜 시기에는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단지 몇 마디 말만 하면 되는 날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말 글 노동자가 되니 말하기를 피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계속 말할 수밖에 없지만 아직도 말 노동은 내게 상당히 힘겹다. 계속 연습하고 단련하다 보면 계속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글 노동의 경우 어지간해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나는 글쓰기를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계속 해 왔을 것이다. 그건 모국어에 숙달하게 된 내가 나의 모국어를 매개로 생각, 경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종의 글 노동을 하고 있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 건 장교 생활을 하면서부터다.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 속 대부분의 공식적(명시적) 절차들은 말이든 글이든 언어를 통해 진행되었고, 나는 언어적 질서 속에서 세상의 모든 사물이 대체로 가지런히 행동하는 모습을 실제로 목격할 수 있었다. 거대한 언어 체계의 노동 혹은 거대한 언어적 노동 체계. 나는 그 체계의 질서 속 한 부분을 담당하는 구성원이었다.
내가 행하는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 중에는 공식적인 글 노동이 있다. 나의 공식적인 직함(국립대 교양학부 교수)이 나에게 요구하는 공식적 글 노동은 ‘연구 실적’이라는 명칭을 가지며, 나는 논문을 쓰거나 학술 발표를 해서 내게 부과되는 그러한 의무적 노동을 수행한다. 나는 이와 같은 공식적인 글 노동에 충실한 편이지만, 오래전부터 그것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데 의의를 두었을 뿐 그것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충실히 공부하지만 몇 등을 하는지 누구를 이기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 오히려 나는 나의 글 노동이 실제로 어떤 사람에게 어떤 긍정적 효과를 미치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나의 글 노동이 나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나와 수시로 교류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연구 실적을 일종의 글 노동이라고 서술하면 얻게 되는 하나의 이점은 이와 같은 실용적 관점을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글쓰기가 공식적 노동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사회 속 나의 공식적 직함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로 글을 쓰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 이런 비공식적 글쓰기를 할 때 나는 그저 나의 인간적 즐거움을 추구하는데, 이때 그 글이 실용적이고 쓸모가 있으면 좋겠지만 굳이 그렇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다. 이 글 또한 일종의 비공식적 글쓰기의 산물이다. 나는 나를 말 글 노동자로서 서술하면서 그 서술에 따라 사회 속 나의 존재를 그려본다. 그런 그리기의 작업이 나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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